탐방 기고/장제모칼럼

[장제모칼럼] 화해의 조건

금천마을신문 2018. 6. 5. 11:23

[장제모칼럼] 화해의 조건


남북한 정상이 만나 화기애애한 시간을 통해 미래설계를 나눔으로 그간에 첨예했던 남북 간 갈등이 진정되고 평화의 조짐이 인다고 좋아했던 게 엊그제인데 다시 남북이 냉랭한 모습이 되고 있어 모처럼 조성된 화해무드가 깨어질까 걱정이다.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현재의 사정으로 볼 때 당초에 기대했던 남북 간의 허물없는 관계를 이루는 데는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북한이 갑자기 경직된 자세를 보이는 것은 보통사람들의 일반적 관점에서 볼 때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양 체제 그러니까 양 국의 최고지도자가 그것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만나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실행한다고 이른바 판문점 선언을 해 놓고도 석연찮은 이유로 다시 냉랭한 분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미 약속한 남북 간 고위급 회담 요청에 응답을 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에 한국 등 5개국 초청을 선언해놓고도 남한만 달랑 빼버리고 다른 4개국 언론인들만 초청한 것은 그들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을 무시할 수 없는 사유가 된다. 

이러한 과정이 있게 된 것은 분명 두 당사자 중에 어느 일방이 잘못을 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해가 가능하다. 아무려면 양국의 정상이 만나 공식적인 회담을 하였고 대외적으로 선언을 하고 그것을 문서화해 놓고도 채 잉크도 마르기 전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뒤늦게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 취재를 위해 제출한 남쪽 언론인들의 입북을 허가했으니 심각한 상황으로 몰고 갈 심사는 아닌 것으로 볼 수는 있지만 솔직히 상호 간 신뢰에 흠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신뢰의 흠을 만든 주 책임자는 누구인가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외형으로는 분명 북한의 탓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남측 사람들의 일반적 이해인 것 같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그 책임에 남쪽도 자유롭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이에는 ‘그렇다’는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의견이다. 

남북은 한 민족이지만 그간의 경과에서 보았듯이 오랜 분단의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은 서로의 체제에 대한 적대감에 더해 가치관적 차이도 컸었다. 이런 사정으로 연민과 이해 그리고 갈등이 불규칙하게 진행하는 관계였고 어떤 때는 서로가 타도의 대상일 때도 있었는데 최근 그러니까 양 정상이 만나기 직전까지도 그런 상황이었던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파국 일보직전까지 내달았던 게 지난 펑창 동계올림픽 개막전까지였다. 그런 양자기 화해를 하고자 만났는데 그 과정을 보편적 이해로만 보려 하는 것은 무리다. 

북한이 어느 날 갑자기 태도를 달리 한 것(바꾼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미국의 강경한 태도가 주요 이유라 보는 견해가 많은 것 같은데 이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액면대로 수용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물론 미국의 자세가 국가대 국가의 외교 관례상 온당하게 보기 어려운 모습이고 특히 미국 최고지도자의 절제되지 않는 언사는 자존심이 상했을 수 있고 더욱이 굴욕적 협상을 요구한 것은 북한이 반발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런데 북측은 이를 남쪽에 분풀이 하듯 반응을 했고 더욱이 마치 그간의 일은 없는 것으로 할 듯이 강경한 자세로 반발은 한 연유는 무엇일까? 시중의 이해를 참고하면 ‘미국에게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제대로 할 말을 해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동의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하면 북측은 미국의 행위도 불쾌하지만 남측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만만치 않다는 제스쳐로 보아야 한다. 즉 화해를 이야기 하면서 상대를 헐뜯는 것은 진정한 화해를 하고자 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표현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이냐고 하겠지만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에는 분명히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것은 필자만의 이해가 아닐 것이다. 화해 무드가 무르익는 시점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남측에서 저지른 것이 그것이다. 우선 제기할 수 있는 것은 탈북민이 주축인 일단의 집단이 대북 전단 살포로 자극을 했고 태영호 북한의 전 영국 주재 영사의 대북 비난 발언이 가세했다. 특히 북측이 최고 존엄으로 두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원색적 비난은 화약고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남측 입장에서는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통제된 사회 질서를 가진 북측 체제에서는 이해되는 것이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더욱이 남북의 정상이 만나 화해를 통한 평화를 이야기 하는 중에 이와 같은 체제 자극에 더하여 그들의 존엄에 대한 모욕적 행위들이 있었던 것은 남쪽에서 조차 심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따라서 북측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남측의 행위들이 잘못되었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문제 삼는 북측을 두고도 비상식적이라 하지 않는다. 다만 이상(理想) 체계가 극단적으로 다른 두 사이가 화해를 위한 시간을 갖고 있는 중에 일방이 자기 이상체계를 바탕으로 다른 일방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되기 어렵다. 긴 시간을 남과 북은 다른 이상체계에서 지내왔음을 생각하자는 뜻이다.

그렇다고 북측을 무조건 이해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예리한 칼로 종이를 자를 때도 자르고자 하는 부위나 접근 각도를 제대로 찾지 않으면 목적한 바대로 자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손을 다칠 수가 있듯이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것이다. 남과 북은 그럴 만큼 두 사이에는 깊고 난해한 간극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화해의 말뜻은 ‘싸움하던 것을 멈추고 서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앰’이라 한다. 지금 남과 북은 긴 시간의 적대행위를 끝내고 화해를 위한 진행을 하고 있다. 그러한 도정에서 서로가 지켜야 하는 것은 화해를 해야 하는 그간의 시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이성적 가치와 합리적 바탕이 존중되는 일방이 보다 깊은 이해로 접근을 해야 한다. 쉽게 설명을 하면 여러 가치가 존중되는 남측이 아직은 획일적 가치를 가진 북측을 배려해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한반도를 공간으로 하는 우리 민족에게 남과 북은 같은 운명체로 서로를 인정해야 하는 사이다. 그간의 격리는 따지고 보면 타의에 의한 것이지 남과 북 스스로가 원하여 있게 된 역사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남북 분단은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서구열강의 탐욕이 근원이고 이에 빌붙어 자기 영달을 꾀하고자 이들과 유착한 당시의 남북 지도자로 인하였다. 그 치욕적인 역사는 한반도를 삶터로 삼는 사람들이라면 부인해서도 안 되고 망각해서도 한 된다. 

이제 남북은 분단으로 인해 생성된 서로의 가치를 살펴보고 그 간극을 좁혀나가는 장을 마련하고자 서로를 조심스레 이해하려는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에 미국이 간여하는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되고 중국이 끼어들게 해서도 안 된다. 과거에 그들이 했던 것과 같은 어떤 획책도 이번에는 용인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남과 북이 서로의 지향점이 동일한 것을 찾을 수 있다. 시간이 걸려도 함께 해야 하는 목표는 그것이고 화해는 그래서 필요하다. 

화해는 보편적 조건이 바탕이어야 하지만 그 공식이 이 장에서 도입이 어려운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래서 누군가 불익(不益)을 감내해야 하는데 그 자리는 이성(理性)을 바탕으로 하는 체계를 가진 남측이 맡아야 한다. 이는 당면한 현실을 위한 위대한 희생이고 이 땅, 곧 한반도를 공간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후손을 위한 축복의 서막이 된다.(♣2018.05.25.)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