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이야기
혼자가 아닌 날
글자가 없는 그림책입니다. 커다란 사슴에 기대어 편안히 잠든 아이 모습이 그려진 표지를 열면 만화 같은 그림이 칸칸이 그려져 있는데, 아침 7시인가요? 침대에서 내려오는 작은 발의 아이가 기지개를 켭니다. 엄마는 벌써 출근을 하네요. 시무룩한 아이를 돌아보며 문이 닫힙니다. 철벽같은 커다랗고 컴컴한 문 앞에 남은 작은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철렁 떨어집니다. 아이는 혼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거울 앞에서 화장도 해 보고 인형놀이도 하고 자전거도 혼자 탑니다. 그러기를 잠시 앨범을 꺼내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는 창밖을 쳐다봅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어요. 아이는 종이에 메모를 남기고 외출준비를 합니다. 그림으로 보기는 네 살 정도로 봤는데 글씨를 남기고 옷을 차려 입는걸 보면 7살 정도는 된 거 같아요. 작은 가방에 동전과 나무로 깎은 듯한 사슴까지 챙겨 넣고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네요. 다시 한 번 문이 닫힙니다. 꼼꼼하게 챙기면서 외출준비를 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 보여서 또 가슴이 울컥합니다.
우리 아이가 네 살 되던 해에 아이를 놀이방에 보내게 되었는데, 집에서 할머니하고 지내던 아이는 놀이방에 오던 아이들 중에도 유난히 엄마랑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참 미안하고 가슴 아프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그만둘 수도 없어 고민도 많이 했지요. 저녁에 부랴부랴 뛰어가서 아이를 부르면, 아이는 있던 자리에서 가만히 쳐다만 보고 다가오지를 않아서 더 애를 태우던 그 기억이 책을 보는 내내 떠나질 않네요.
할머니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잠이 든 아이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울어버립니다. 그때 나타난 사슴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구름계단을 올라 구름위에서 혼자 있는 아기곰도 만나고 고래뱃속 탐험도 하고 (고래는 처음 텔레비전에서 본 그 고래네요)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 여러 가지 모양을 그리다가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이 듭니다. 사슴은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작별을 하지요. 집에 돌아와 아이의 메모를 본 엄마 아빠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할머니 집에도 없는 아이 걱정에 애 태우는 모습에 공감 제대로 해버렸네요.
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이 있던 어린 시절 자신의 외로움과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림책으로는 다소 두꺼운 100쪽이 넘는 분량에 글자 없는 그림책이지만 통통한 아기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눈사람 아저씨>처럼 만화형식의 전개는 저절로 글을 떠올리게 되고 약간 몽환적이라고도 느껴지는 무채색이 주는 포근함도 있습니다.
사슴이 데려다 준 집, 엄마의 품에서 잠든 아이의 손에는 나무로 만든 사슴이 쥐어져 있네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어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