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입술, 외입술, 후다입술의 차이를 아세요? 


글 싣는 순서

① 생산과 이주는 금천구를 이해하는 키워드  2013/12/17 - [탐방/기고] - 생산과 이주는 금천구를 이해하는 키워드

② 생산의 길

③ 이주의 길  2014/01/23 - [탐방/기고/기고] - [3회]거꾸로 된 복(福)자의 의미를 아시나요?


‘락희럭키구로공단’은 구로구의 가리봉동과 금천구의 가산동 및 독산 3, 4동 일대를 생산과 이주라는 두 주제로 투어하는 프로그램이다.  총 세 차례로 나누어 연재되는 ‘락희럭키구로공단’ 마을투어에 관한 두번째 이야기로, 취지와 주요 주제들를 설명한 첫번째 이야기에 이어 투어 코스 중 하나인 ‘생산의 길’과 관련 경로지들에 담긴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마산방직, 시대복장, 효성물산, 동성어패럴 등 푸른 작업복을 입고 하얀 머릿수건을 두른 수천명의 미싱사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라인에서 일하던 대규모의 공장들이 하나둘씩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이전하거나 폐업하면서, 구로공단은 디지털의 90년대를 향해 제모습을 전환하기 시작한다. 주차장 대신 푸른 잔디밭이 있던 저층의 굴뚝공장들은 지식센터라는 이름의 유리빌딩들로 대체되고 국가 주력사업군이 노동집약적 제조업에서 지식산업으로 이전되면서 생산의 현장들은 경제논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소멸되거나 전략적으로 퇴출되었다. 락희럭키구로공단의 ‘생산의 길’은 사라진 공장들 속에서 일하던 노동하던 삶들을 기억해 내고 그들의 현재를 추적한다. 경제성장의 일등공신이면서 동시에 산업구조 변화의 폐해를 아프게 경험한 그들의 삶이 지닌 문화적 가능성을 재해석해 내고 생산문화의 창의적 부활을 도모하는데 중점을 두고 설계되었다.   








  


한때는 산업역군으로 칭송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잊혀진 사랑이 되어가고 있는 섬세한 기술자들과 숙련된 노동자들에게 제조는 쉽게 버릴 수 없는 ‘삶의 방식’이다. 2010년 기준 구로 2, 3공단이 있던 금천구의 제조업체 수는 약 4300개, 종사자 4만여 명으로, 전체 종사자 십팔만 오천명 중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등록되지 않은 소규모 작업장들까지 고려한다면 아직도 생산의 현장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1공단이 있던 구로구도 3천 개가 넘는 사업장에서 이만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2012 구로구 금천구 통계연보 참조) 우리의 눈에 그들이 규모화되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패션봉제업의 경우, 가산동과 독산동 골목골목을 차분히 들여다 보면, 소규모의 특화된 공정으로 승부를 거는 수많은 작업장 속에서 30여년 넘게 미싱 앞에 앉아 있는 이름없는 장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세월이 지나 꽃다웠던 그들의 얼굴에 주름살이 사뿐히 앉았을 뿐, 박카스로 졸음과 피곤함을 쫓으며 라디오를 틀어놓고 세상과 가늘게 접속을 시도하면서 작업에 몰두하는 작업장의 모습은 공단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생산의 풍경들을 간직하고 있다. 

   


소규모의 특화된 작업장들은 그들의 주요 종목을 명확하게 명시하는 것으로 그럴싸한 간판이나 브랜드를 대신한다. 안감봉제 전문  ‘우라집’, 주머니를 내는 특수기계를 칭하는 ‘웰팅기’, 고무줄이 들어간 임가공을 칭하는 ‘스모킹’ 등이 그 예들이다. 주머니의 다른 형태를 지칭하는 외입술, 쌍입술, 후다입술 등 일반인들은 쉽게 알 수 없는 특수용어들이 즐비한 봉제골목은 유명 브랜드들로 구성된 패션아울렛이 주는 스펙타클에 뒤지지 않는 독특한 풍경으로,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아남아 온 생산문화를 증명해 낸다. 그런 점에서 생산의 길 투어 중 만나게 되는 ‘독산동 특수봉제 용어사전’은 생산현장의 산지식을 투어객들과 교류하기 위해 락희럭키구로공단팀과 독산동 봉제인들이 협업하여 만들어 낸 이 지역만의 고유한 문화컨텐츠라고 볼 수 있다. 현장중심의 리서치와 여러 공장들과의 협업이라는 지난한 제작과정을 거쳐 완성된 이 사전이 투어 중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유될 수 있도록 장소협조를 해 주신 금천예술공장 입주작가 금천미세스에게도 이 지면을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생산의 길’은 번화된 패션유통가와 봉제작업의 현장들을 함께 돌아보는 팩토리투어로, 금천 패션 드라이브에서 시작되는 ‘가산동 경로’와 다양한 봉제 작업장들과 부속가게들로 이루어진 ‘독산동 경로’로 구성되어 있다. 가산동 경로는 마리오아울렛 3관 앞에 설치된 구로공단기념비에서 시작해 패션가 틈새에서 조용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전국에 일곱개 밖에 남지 않았다는 지퍼공장들 중 한 곳인 나루지퍼, 제조업에 종사하는 독신여성들의 편의와 노동력의 효율성을 위해 지어진 근로복지공단아파트, 가산동 봉제삼거리, 50년 넘게 한결같이 노트를 제작해 오고 있는 무극사, 재단과 봉제 및 마도매까지 봉제의 전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신사복 제조업장 (주)아름다운사람을 거쳐 전화명세서 인쇄공장이었던 금천예술공장에서 마무리 된다. 

   


여유롭게 시간을 안배한다면 잠시 쉰 뒤에 이어서 갈 수 있는 독산동 경로는 금천구의 가장 큰 제조업장이었던 코카콜라공장의 옛 부지에서 시작한다. 핸재 홈플러스가 들어와 있고 후면으로 지식센터가 지어지고 있는 이 부지를 통해 생산의 도시가 소비의 도시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본다. 이를 지나 독산 3동으로 넘어가면서 시작되는 봉제부속거리와 특수봉제골목, 공단의 흥망성쇄와 맥을 같이 해 온 전통시장 중 하나인 남문시장, 50년이 넘은 봉제부속상으로 근현대박물관 수준을 능가하는 금복상회, 남문시장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중국문화의 거리 독산3동 리틀차이나, 2대가 운영해 오고 있는 동네목욕탕으로 남탕은 봉제공장으로 변용된 흥미로운 동네장소 형제목욕탕, 원청과 하청 작업장들의 관계 및 부속상과 봉제전문 직업소개소 등의 공존을 통해 보이지 않는 봉제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독산로 107길과 독산대로를 끝으로 생산의 길 투어는 완성이 된다.  


  


2013년도에는 제작문화, 손문화에 관심있는 청년 그룹들을 중심으로 6회의 시범투어가 이루어졌는데 투어신청이 조기마감 되는 등, 도심 내 점점 희소해져 가는 생산 현장의 풍경은 젊은 창작자들을 뜨겁게 달구었다. 무엇보다 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객공미싱사로 현업에 종사하고 계신 강명자님, 김연순님 두 해설사 분들의 살아있는 노동이야기는 투어 경로지들이 지닌 흥미로운 팩트들에 더해진 또 하나의 백미였다. 생산을 제조의 기능으로만 보지 않고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현장’으로 재해석하고 가치부여하는 기회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그 과정에서 지역의 봉제인들이 적극적인 주체로 등장하길 희망해 본다. 




최영숙 (셀프메이드시티 대표 / 락희럭키구로공단 총괄디렉터)

* 락희럭키구로공단은 서울시 '2013 자치구 동네관광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사업으로 <금천구>와 <금천문화원>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에서 진행하고 있다. www.facebook.com/luckygong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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