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생산과 이주는 금천구를 이해하는 키워드

② 생산의 길

③ 이주의 길


락희럭희구로공단은 구로구의 가리봉동과 금천구의 가산동 및 독산 3, 4동 일대를 생산과 이주라는 두 주제로 투어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글을 포함 총 3회에 걸쳐 본 프로그램에 대해 공유하고자 한다. 첫 회는 락희럭희구로공단의 취지 및 왜 우리가 금천에 살면서 생산과 이주를 이야기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여름 한나절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는 미싱밟는 소리와 미싱사/시다 구함이라고 쓰여진 손글씨 전단지, 하나 둘씩 늘어가기 시작하는 이국적 식재료상들과 중국간화자로 쓰여진 알 수 없는 간판들을 보면, 금천구는 서울의 다른 곳들과 비교해 예사롭지 않은 풍경을 가진 곳임에 틀림 없다. 그 독특한 풍경의 진원은 어디일까? 금천구에는 80년대 말까지 구로공단이라는 대규모 산업단지들의 집적지가 있었고 그 외 기아, 대한전선, 삼립빵 공장, 코카콜라 공장, 동아출판사 등 대규모 작업장들이 존재했다. 그만큼 인력에 대한 수요도 많았고, 이에 부응한 젊은 청춘들이 고향을 등지고 더 나은 삶을 찾아 이주해 왔다. 90년대를 기점으로 산업단지가 디지털지식센터로 변모하고 대규모의 공장들이 사라지긴 했지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인 의식주는 지식노동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손수 끓이고 볶아야 하고, 우리가 살 집을 땀흘려 지어야 하며, 입을 옷을 봉제해야 한다. 즉 몸노동은 삶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규모의 생산라인들이 중국과 베트남 등지로 이전해 갔다고는 하지만 디자인이 점점 정교해지고 소량으로 제작되는 여성복라인이나 고가브랜드 제품들은 국내제작을 선호하기에 이제는 흰머리 희끗한 중년이 된 공단시절의 어린 소녀들은 주택가로 스며들어 삼삼오오, 혹은 부부가 단둘이 앉아 소규모 하청 작업장을 조용히 꾸려간다. 게다가 여전히 건설붐을 경제적 추동으로 믿는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단지와 화려한 주상복합건물들은 끊임없이 올라가고, 음식점은 골목마다 지나치리만치 넘쳐난다. 건설현장과 주방일 같은 몸노동은 대학을 졸업하고 지식산업으로 이동한 한국의 젊은새대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니, 극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국적을 넘어와 이 머나먼 땅에서 험한 일 마다앉는 이주민들이 그 자리를 메우는 건 당연지사다.

 


[자료: 서울연구원 2013. 8]

 

구로공단이 국가를 먹여살리던 과거든, 작은 생산작업장들이 주택가에 산재하며 곳곳에 외국적 이주민이 증가하는 현재든, ‘생산이주는 행정구역 상 영등포에서 구로구가 되었다가 홀로 독립한 금천구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주제다. 서울시의 ‘2013년 자치구 동네관광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사업의 지원을 받아 금천구는 구로구와의 협업으로 지난 6월에 구로공단의 과거와 현재를 다양한 주제로 조명하는 연구팀을 결성했다. 4개월 간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구로공단 장터길, 산업화와 노동자의 길, 작가들이 사랑한 구로공단길, 생산의 길, 이주의 길 등 다섯 개의 경로를 최종적으로 설계했다. 이 중 락희럭희구로공단은 구로구의 가리봉동과 금천구의 가산동 및 독산 3, 4동 일대에 걸친 지역을 생산과 이주라는 주제에 집중하여 투어하는 프로그램이다.

 

락희럭희라는 수식어의 락희는 럭키의 일본식 발음으로 공단이 조성된 60년대 중반, 지금은 LG그룹의 전신 회사 중 하나인 럭희화학이 락희화학으로 불리던 데서 착안, 공단의 과거와 현재를 지역의 풍경 속에서 함께 읽자는 취지로 붙여졌다. , 공단의 잔재로서 여기저기 남아 있는 금천구의 독특한 풍경을 지역의 매력적인 문화자원으로 읽어내고 유의미하게 활용할 방법을 도모하자는 의지를 담는다. 사실 금천구의 경우, 지난 2012 4월에 이루어진 시범투어였던 산업전진기지 그 이후를 통해 연구작업의 초석이 이미 다져진 상태에서 이번 지원사업을 통해 심화연구가 가능했다. 시범투어에서는 봉제업을 중심으로 생산문화에 대한 지역토박이들과 이주여성의 경험들을 수집하고 해석하는 연구가 이루어졌었다. 지난 해의 연구작업이 개인의 기억을 중심으로 지역의 생산과 이주문화를 돌아보았다면, 이번 지원사업에서는 문헌작업의 깊이를 더하고 현장을 중심으로 지역민들의 기억들을 구체화하여 투어경로를 최종화했다.

 



 

지금은 사라진 실체인 구로공단을 연구의 주제로 가져가긴 했지만, 생산과 이주라는 주제는 앞에서 짚었듯 지역민들의 현재진행형 삶과 긴밀히 맞닿아 있기에, 구로공단을 단순히 산업단지의 집적지인 물리적 장소로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산과 이주라는 주제를 품어내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바라보며 이를 금천구의 지역정체성으로 풀어내는 것이 가능할까를 고민했다. 아파트단지 플러스 대형쇼핑몰이라는 개발공식에 의해 천편일률적으로 서울의 대부분 지역이 대량생산유통의 소비결절지로 변모해 가는 현시점에서, 구로공단의 잔재가 공간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금천의 예사롭지 않는 풍경이 주는 색다른 감동은 생산하는 도시의 가능성, 다른 방식의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시나리오를 도전하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음에 이어질 두 회차의 글은 생산의 길이주의 길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을 각기 다룰 예정이다.

 

최영숙 (셀프메이드시티 대표 / 락희럭희구로공단 총괄디렉터)

 

* 락희럭키구로공단은 서울시 '2013 자치구 동네관광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사업으로 <금천구> <금천문화원>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에서 진행하고 있다. www.facebook.com/luckygong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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