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일상에서 변화가 있나요? 

- 실생활에서 느끼는 '일상에서 여성주의 이슈' 집담회 




<인터뷰는 시흥대로변 골목에 위치한 카페 '재미길'에서 진행되었다. 왼쪽부터 곽승희 씨, 소망 씨, 김인주 씨>



여성주의 이슈의 초점을 흐리는 역공격, '백래시' 많아져 

위력이 위력인 줄도 모르는 '일상갑질' 스스로 인지해야


최근 몇 년간 수많은 여성주의 이슈가 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 성폭력에 대한 신고가 이루어지는 한편 불법촬영과 편파수사에 대한 규탄 집회, 임신중지 범죄화 반대, 안희정 성폭력 사건 무죄 판결에 대한 항의 등 여성주의 이슈를 문제제기하고 해결을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도 바뀐 게 있을까? 일상에서 체감하는 여성주의 이슈에 대해 금천구의원 출마자이자 청년 주민인 곽승희 씨(승), 마을공동체센터의 김인주 씨(인)와 페미니스트 대학생 소망 씨(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근 기억에 남는 여성주의 이슈 있는지, 혹은 그 이슈에 대한 주변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소 : 원래 성폭력에 대해 학내 분위기가 상당히 인권친화적이었는데 올해부터 완전히 뒤집힌 상태다. ‘에브리타임’이라는 커뮤니티 앱에서 익명을 이용해 페미니스트 활동가들 개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심각한 수준이다. 

인 : 요즘은 스쿨미투라고 중고등학교에서도 성폭력 피해가 터져 나온다. 한 학교에서 남학생이 여자화장실에 불법카메라 설치를 했는데 여기에 대다수 여학생과 여자선생님 한 분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걸 여학생들이 항의했을 때 학교 측에서 그럴 수도 있지, 라며 넘겼다. 보다 못해 피해 교사가 직접 신고하니까 ‘애를 왜 감싸지 않느냐’며 도리어 학생들과 교사도 모두 학교에서 불이익 받는 중이라고 하더라. 

승 : 요즘 기사보기가 너무 싫다. 여성 대상 범죄기사가 밝혀지는 건 좋은데 너무 많아서 보는 것만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나마 유의미한 기사라고 올라온 게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팀이 100일 동안 수사를 하는데 엄청나게 많이 잡았다며 자화자찬하더라. 570명을 수사하고 28명 구속했다고 하는데 그 동안은 뭐했는지, 진작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소: 한 10년 잡아야 거의 다 잡힐까 말까 할 것 같다. 

승 :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보도한 웹하드, 카르텔, 즉 정작 음란물이 지속적으로 유포되는 웹하드에 대해서는 딱히 조사를 한 것도 없다. 

인 : 더 (추적을) 피하는 기술은 늘어나고.

승 : 올리는 곳이랑 (추적을) 피하는 곳이 같은 곳인 게 정말 문제다. 내부에서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계속 개발되는 중이라고 한다. 이번 경찰 수사에서도 불법 촬영을 팔아 수익을 올리는 웹하드 업체 네 곳이 적발되었는데 운영진이 구속된 게 없다고 한다. 경찰청 말도 웃기다. 그간 여성계에서 성차별과 성범죄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종합 수사 체계를 갖췄더니 한 달 만에 성과가 나타났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게 어이가 없다. 

그 동안 경찰이 성폭력 범죄수사를 하지 않았던 걸 반성은 안하고 성과만 강조하는 걸 보니 갈 길이 먼 것 같다.

승 : (경찰내부에서)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면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줘야 될 것 같다. 그래야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인 : 권력을 준다고 해서 좋아할 것 같진 않다. 분명 경찰 중에서도 운영자들, 소비자도 많을 테니. 이번 박카스남이 서초구청 공무원이란 기사가 올라와 보고있을 때 다른 자치구 활동가들과 있었다. 서초구에서 오신 분이 있는데 얼굴을 못 쳐다보겠더라. 

승 : 주민센터에도 불법 카메라가 설치되었단 기사도 있다. 안전한 곳이 없다는 기분이 든다. 금천구청 화장실도 입구가 딱 분리되어있지 않고 남, 여 구분이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아 안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서울시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곳에 불법 카메라 검사한다던데 그건 좀 편하게 느껴지더라. 


금천구에서도 여성정책팀에서는 몇 년 전부터 주요 시설에 불법카메라 설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하더라. 

소 : 사실 기계마저도 믿을 수가 없다. 지인이 경찰서에서 모집하는 공공활동에 자원하여 잠실에서 불법카메라 체크 활동을 했다. 그런데 없을 리가 없는 장소에서 한 달 내내 확인해도 잡히는 게 없어 기계가 작동이 되는지 의심된다고 했다. 어쩌면 기계가 불법카메라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주기적으로 검사하겠다는 대학도 있었는데 언젠가 발견되었다고 난리 났다가 그게 거짓말로 밝혀지기도 했다. 

인 : 내 손에 쥐어든 기계마저도 믿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승 : 한편으로 이런 상황에서 무슨 아이 안 낳는다고 탓하는 게 어이가 없다. 내가 아이를 24시간 보호할 수 없고 사회와 같이 하는 게 당연한데 이 사회가 도저히 아이를 내놓을 수 없는 사회지 않는가? 이러면서 애를 낳으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여성주의 이슈가 터지고 나서 여성을 대하는 사회 전반의 태도를 보면 전체 사회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승 : 오세라비라고 ‘그 페미니즘은 잘못됐다’란 책을 쓴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책에서 지금이  여성우대사회니까 여성들한테 자신감 잃지 말고 당당히 살라며 김어준 뉴스공장에 나와서 인터뷰까지 했다. 그런 방송을 내보내는 TBS 자체에 실망스러웠다. 심지어 김어준은 안희정 성폭행 사건이 나왔을 때부터 김지은을 통한 공작이 펼쳐질 것이라고도 했다. 페미니즘 진영에 옳은 소리를 이용하는 사람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도 안 되는 말로 반박하면서 반대에 있는 남자들을 등에 업고 나오는 사람 너무 어이없다.

소 : (그 책이) 여성혐오 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승 : 안희정 판결만 봐도 성폭력은 범죄인데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이런 식으로 기준을 흐리려는 시도와 문제 지적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또 그게 확산이 빨리 되고 있다.


즉, 백래시(편집자주:사회적 진보/변화에 대한 대중의 반발)가 발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왜 문제가 되는 사안들이 잘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소 : 여성주의 관련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언제나 여성인권을 찍어 누르려는 사람은 등장하기 마련인데 특히, 그게 사회 전반에 걸쳐서 유아적이고 말 잘 듣고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을 선호하는 현상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인 : 애교도 보여줘야 하고. 한편으로, 백래시가 일어나는 게 (여성주의 사안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자신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게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페미니즘을 통해 설명할 수 없던 것을 설명하는 언어가 생긴 것이다. 

승 : 대표적인 게 이퀄리스트(평등주의자)이다. 그들은 페미니즘이 아니고 이퀄리즘이 중요하다는 논리의 말을 한다. 이퀄리즘이란 단어 자체가 날조된 게 밝혀졌어도 언어캐치가 그 만큼 무섭다.

인 : 즉, 그 언어를 얻게 된 순간부터 무기가 된다. 안희정 판결도 페미니즘에서 사용하는 온갖 단어 쏙 빼서 판결에 집어넣지 않았나. 그러면서 관계는 인정되나 위력은 발생되지 않았다는 말이 정말 웃기다. 술은 마셨으나 음주는 아니다나 마찬가지랄까.

승 :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이 논문 심사 받을 때 직접 겪은 일화를 들어 위력발생 과정을 설명한 글을 본 게 있다. 뻔히 논문을 안 읽고 하는 질문인 걸 알아도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모든 질문에 어떻게든 잘 보이도록 대답할 수밖에 없다. 위력은 이렇게 작동한다. 스스로 그 상황에서 저항하거나 거부한다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여기서 그때 너는 왜 노예처럼 (수동적으로) 했냐는 게 말이 안 되는 이유다. 

소 : 다니는 학교에서 예전에 한 교수의 망언이 있었다. 한창 할리우드 발 미투가 퍼질 때였는데 그 교수가 한 말이 “너네, 출산률도 낮은데 술 먹고 돌아다녀라. 길에서 자라”라며. 그러다 강간당해서 애낳아라 소리인데 새 학기가 막 시작된 상황이고 교수니까 아무도 말도 못했다. 그 수업에 있었던 친구한테 전해 듣고 나중에 학내 교수들의 성폭력 발언 레퍼런스에 오르고 나서야 공개되었지만 다들 무서워서 말 못하겠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승 :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가 발생하는 세상을 만든 사람에게 왜 그랬냐고 해야 되는데 이 사회는 그 문제를 터트린 사람을 탓한다.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 문제를 김지은한테가 아니라 안희정한테 말해야 되는 건데.

인 : 법은 잘못된 사람을 처벌하는 최후의 시스템인데도 고발한 사람에게 “왜 이제 와서..”라고 말하곤 한다. 법을 해석하는 법관들도 이런 방향 적용이 안 되는 상황인 것 같다.



일상에서 위력이 작동하는 관계가 있는데 용기 내기가 쉽지 않다는 말로 들린다.

인 : 처음부터 이야기하기 쉽지 않는 상하관계가 있는데도 자신은 좀 (다른 사람에 비해) 쉽게 대해주지 않느냐는 얘기들을 한다. 나는 안 그럴 것이라는 자만심이 있는 것이다. 위력에 대해서.  

소 : ‘난 좀 다르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하찮고 금방 무너지는. 

승 : 그런 말들을 하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면 안 되는 말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인 : 그런 사람들은 꼭 남들에겐 분개하는데 자기반성은 안하니까 타산지석을 삼게 된다. 나는 나부터 반성해야지, 라고.

소 : 일상갑질이 정말 더 무서운 것 같다. 예전에 학생들이 정말 좋아하는 교수님이 계셨는데 학내투쟁 논의 테이블에 오시더니 (학생들에게) 예의가 없다면서 이게 뭐냐고 불같이 화내며 나간 적이 있다.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도 많이 한 사회학 교수인데 다들 엄청 실망했다. 

승 : 일상에서의 나는 구조적으로 낮은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걸 보면 돌이켜보면 사회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소 : ‘권력형 성폭력’이 신조어로 등장한 것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원래도 모든 성폭력은 권력 관계에서 일어난다. 일상에서도 권력이 없는 게 아닌 것이다.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사회 전체가 여성주의 이슈로 들썩이게 되면서 각자 일상에서 느끼는 여성주의 이슈를 좀 더 명민하게 인식하고 주변과 나눌 수는 있게 된 건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요원한 게 현실이다. 더 많은 문제들이 공유되고 논쟁과 토론도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바뀌는 건 더디겠지만 그 과정들이 모두 변화로 이어지는 한걸음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박새솜 기자

gcinnews@gmail.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