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 135


진부(陳腐)는 사상, 표현, 행동 따위가 낡아서 새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문자를 뜯어보면 펼 진(陳)에 썩어 악취 날 부(腐)자입니다. 어원을 설명한 것을 보니 고기 먹기 어려운 시절에 고기를 부의 상징으로 알고 먹지도 않고 고기 자랑을 하다 고기가 썩었는데 그 썩은 내도 맞지 못하고 썩은 고기를 자랑하는 꼴을 진부라고 합니다. 


참신(斬新)은 새롭고 산뜻한 것을 이릅니다. 이 단어의 문자를 뜯어보면 벨 참(斬)에 새로울 신(新)입니다. 벨 참자를 분해하면 차거(車) + 도끼근(斤)입니다. 모두가 죄인들을 처벌하는 형벌도구라 합니다. 진부한 것을 도끼로 베어 내는 것이 참신입니다. 


우리는 지금 진부를 찍어 참신을 만드는 역사적 격변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격변은 낡은 것이 제 몫을 다하고 수명을 다했다는 것이고, 새로운 것이 마구 움터나는 시기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억눌린 곳에서 가난하고 고통 받은 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이 우왕좌왕(右往左往)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시기이며, 자꾸 진부한 과거로 머물게 하려는 무수한 음모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 민(民)은 과거와의 단절에 예민해야 합니다. 과거는 정체입니다. 정체는 종종 달콤한 휴식과 게으름의 편안을 줍니다. 휴식과 편안함은 강력한 유혹입니다. 나아감과 고쳐감에 대한 피곤을 눅이는 강력한 힘입니다. 이것이 수구보수정치의 토대입니다. 수구(새누리당)는 아예 어제로 현실을 돌리려 하다가 역사의 몽둥이를 맞고 있습니다. 보수 야당은 민심의 힘을 주권자의 민주주의를 대리한다는 여의도에 가두려 합니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의 혁명적 힘을 두려워합니다. 이 모두가 진부한 것들입니다. 대리(대의) 민주주의는 누가 내 대신 밥을 먹고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 배가 부르고 내 병이 낫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기고 있습니다. 낡은 것들이 자기 붕괴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살아 있는 역사책의 주인들입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가 새로운 세상을 열고 있는 가운데 다시 한 번 우리의 거대하고 숭고한 힘을 되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힘은 쪽수입니다. 십만이 백만이 되니 꽁무니만 쫓던 보수 야당도 퇴진 탄핵의 길로 나섭니다. 백만이 천만이 된다면 경찰 차벽이라는 성벽에 숨어 고집을 부리는 청와대 요물정권도 성경 속 여리고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질겨야 합니다. 진박 공안 편집증 김진태 따위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우리를 개돼지 취급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춘천의 시민들은 꺼지지 않는 LED 촛불을 들었습니다. 광주는 횃불을 들었습니다. 등잔불은 바람에 꺼지지만 들불 산불은 바람을 타고 모든 장벽을 태우는 법입니다. 문제는 지구력입니다. 헌정을 농단하다 청와대에 농성 중인 박그네 정권의 무기는 우리가 양은 냄비처럼 달아올랐다 곧 식을 것이라는 우리 안의 ‘지침과 포기’를 노립니다. 


요구가 높아야 합니다. 속담에 ‘빵만을 원하면 빵도 얻지 못한다. 빵 이상을 원해야 빵이라도 얻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딱 맞는 경우입니다. 박그네 정부가 아니라 박그네 정부를 만들고 즐긴 새누리당과 그 정치세력들, 그 정치의 흉기가 되어 민주주의를 질식시켜 온 경찰 검찰 판사들, 백만원 주고 백억 이득을 취하면서도 희생양이라 말하는 재벌들에 대한, 그들이 남긴 반인간적 반노동적 개악 법 제도 정책들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을 가하자는 요구가 커지고 깊어 져야 합니다. 우리의 요구가 참신하지 못하고 진부한 것으로 남는다면, 우리의 요구가 전진이 아니라 정체된다면 결국 어둠을 발본색원하지 못해 역사를 고인 물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의 촛불은 위가 아니라 앞을 비춰야 합니다. 투쟁을 합법의 틀로 가두면서 그것을 비폭력 평화라 꾸미고, 수구와 반동의 폭력에 대한 분노를 불법 폭력으로 돌리는 것은 전제된 폭력에 눈감는 짓입니다. 경찰이 쳐 논 차벽 자체가 불법입니다. 법원이 인정한 행진도 차단하는 경찰이 불법입니다. 그것은 한사람을 지키기 위해 5천만을 적대하는 거대한 폭력입니다. 이 폭력은 일인을 위해 민주공화국을 포기한 사유화된 권력의 실체입니다. 그런데 그 폭력에 평화라는 꽃을 붙이는 것은 기막힌 허위요 기만입니다. 오직 권력을 고스란히 먹겠다는 또 다른 기득권의 탐욕스런 요언입니다. 한국 헌법은 3.1운동과 4.19정신을 전문에 담고 있습니다. 반제 자주 반독재 민주를 위해 목숨을 걸고 감옥을 마다하지 말라는 것이지 무슨 비폭력 정신이 아닙니다. 여야 기득권들은 오직 높은 권좌로 오르려 합니다. 우리 민(民)은 위가 아니라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광장에서 최후의 압제자가 도망칠 때까지 모든 선을 넘고 모든 벽을 부숴 나가야 합니다. 


이번 주에 서울에서만 2백만을 만듭시다. 그 중심에 진부가 아니라 참신이 서게 합시다. 전국에서 천만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벌들만 웃는 사회, 여전히 분단과 증오로 살이 찌는 나라, 1번 찍고 후회하고 2번 찍고 후회하는 정치를 확 뒤집는 진정한 역사를 참신하게 만들어 나갑시다. 그러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피해의식, 독박의식, 불안과 공포를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백만 민중 속에 설 때 우리는 낡은 정권과 그 체제를 깨는 것과 더불어 우리 안의 이기와 공포의 낡은 의식도 함께 깨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우리 안의 비겁과의 단절이요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의 전진입니다. 백만이 나요, 내가 백만인 경험을 품고 5천만 민중이 나요 내가 전체 민중인 저 곳으로 한발 더 나갑시다. 제발 죽 쒀 개주지 말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읍시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주)천일기업 노동자 비대위와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 위원회가 지난 8월 17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폐업과 체불임금에 대한 해결방아을 촉구하고 있다.


대한민국 노동자가 올해 못 받은 임금이 1조 4000억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사상 최악의 체불 임금 규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8월 말 현재, 임금을 받지 못해 정부에 진정한 노동자가 21만 4052명, 체불액은 9471억원이다. 지난해에 비해 체불 노동자는 12%, 체불액은 11%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IMF 시기 최대 규모였던  2009년 1조 3438억원을 넘어 1조 4000억원에 이를 것이라 한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일본의 2014년 체불액은 1,440억원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세 배 규모라는 점을 배제한 채 단순 비교해도 10배, 감안하면 30배에 이른다.


고용노동부는 고질적인 임금 체불의 원인을 체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문화, 경기가 나빠지면 직원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경영자들의 인식이라 진단한다. 돈만 챙겨 도주하는 사장, 법인 대표를 다른 사람으로 돌려 임금을 떼먹는 사장이 흔하고 흔하다. 이런 부분을 충돌질 하는 것은 층층시하 하도급이라는 피라미드형 깔대기 구조의 사업 구조도 한 몫 한다. 올해 한국 임금 체불이 압도적인 이유는 경기침체에 경기 침체에다 조선·해운 산업 구조조정 등의 여파도 크다. 이에 대한 노동부의 대책은 ‘고의·상습 체불 사업주의 명단을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체불임금 외의 부가금까지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를 신설해 체불임금의 두 배까지 보상’하게 만드는 제도를 만들고, 퇴직 근로자에게만 지급되던 지연이자 역시 재직 근로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단다. 

하지만 회사 사정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임금 지급부터 안주거나 줄이는 경영자의 시대착오적 사고방식 때문이라는 노동부 진단은 틀렸다. 자본가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대한 탐욕은 지극히 자본가다운 것이지 전근대적인 것이 아니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자본주의에서 임금은 노동자에겐 생명 줄이지만 자본가에겐 그저 비용이다. 비용은 줄일수록 좋다. 적게 주고 많이 시키는 것이 모든 경영학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래서 국부론에서 아담 스미스는 사회 정치 정책을 자본가에게 맞기지 말라는 충고를 한다. 그들은 비도덕한 것이 아니라 무도덕하다. 그러니 자본가들의 쉼 없는 착취본능을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최소 최저 기준을 만들어 통제하는 것이 노동법이다. 정부와 노동부 행정이 필요한 것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한 탐욕 무한 착취를 하려는 자본의 광란을 막아내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규제를 척결하고, 노동개혁을 한다는 현 정부의 입장은 자본가들의 광란에 노동자 민중의 목숨 줄을 던져주는 미친 짓이다. 


체불은 일반 절도보다 더 악질적인 사회적 범죄다. 절도는 단지 돈과 물건만 훔치지만 체불은 돈과 물건에 노동자들의 피땀을 훔치기 때문이다. 임금 청구 시효가 3년인 것도 말이 안 된다. 일반 채권에 대한 청구 시효가 최소 5년에서 7년이다. 그런데 박정희 유신 독재가 기업하기 좋으라고 “임금 청구 시효를 3년”으로 만들었다. 민법적 규정만도 못한 노동법이라니 이것은 상식이 아니다. 더 문제는 체불이든 해고든 그것 때문에 겪는 노동자와 가족들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나 배상은 전무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버스나 기차를 타면 부정승차로 비용을 30배나 더 받는다고 협박한다. 그렇다면 노동자 양해 없는 체불도, 부당해고가 확정되면 보상임금도 그만큼 주어야 상식이지만 체불시 임금의 두 배, 부당해고 시 세배라도 주는 제도가 절박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습 체불 사업주를 처벌하기 위한 부가금 제도를 신설’, ‘지연이자제와 같은 지원 정책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우선 이 상습에는 주휴 연휴 포괄임금 등을 통한 편법이나 불법으로 임금을 갈취하는 것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또한 지금의 현실에서 ‘고의적 또는 상습적인 체불 사업주에 대한 구속 수사, 명단 공개’라는 엄포나 ‘현행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규정’으로는 처벌 효과를 제대로 거둘 수 없다. 실제 구속도 드물고 벌금도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더 강력한 징벌적 처벌이 필요하다.


체불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해마다 골만 깊어지는 것의 가장 큰 책임자는 개별 자본가가 아니다. 돈만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 상 안 그런 것이 이상하다. 그래서 탐욕의 자본을 절제 시키고 감시하는 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의 첫째는 있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을 철저히 지키게 만드는 것이다. 그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국가고 노동부다. 국가가 행정적으로 제대로 하면 예를 들면 체불사업자를 제대로 처벌하면 현재 발생되는 체불 임금의 70%는 무조건 해결된다. 노동부는 항상 일손이 없다고 한다. 근로감독관 한 사람에게 수십 수백 건의 사건이 배당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 등에서 ‘명예 노동감독관제’ 등을 통해 일을 분담 분산시켜 해결하자고 했지만 항상 외면한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민주’노조를 만드는 길이다. 노조가 있는 곳의 체불은 없는 곳의 체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다. 이것만으로 체불임금 50%는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조 만들면 탄압하고 노조활동을 범죄시 하는 것이 국가고 노동부니 ‘전근대적’이든 ‘태생적으로 탐욕적’이든 체불임금 발생을 저지할 수 없다. 


차로 본다면 회사의 경영은 액셀러레이터이고 노조는 브레이크다. 성장 발전의 맹목에 자정 기능, 사회적 도덕성, 일의 성패에 대한 성찰 기능을 하게 만드는 것이 노조다. 그래서 노조는 회사의 걸림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거름이요 보약이다. 그런데 이런 기초적인 상식을 가진 사용자가 없다. 국가와 노동부가 사용자들보다 더 이악스럽게 노조를 부정하고 파괴한다. 그 결과가 바로 체불임금도 사상최대다. 그래서 체불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와 노동부 그들의 ‘행정의 실패’에 있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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