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없이도 잘 큽니다


개장 초기에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텃밭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요즘은 부쩍 어르신들이 눈에 띈다. “우리 아들이 분양받았는데 바빠서 못 오니까 내 차지가 됐지 뭐.”라고 하신다. 의지만 넘쳤던 젊은이들은 이래저래 바빠서 텃밭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고, 익히 농사라는 것을 지어봐서 손길 필요함을 아는 어르신들은 텃밭의 작물들을 나몰라라 할 수 없어 공을 들이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이런 ‘경작본능’은 대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고, 우리 주말농장을 훌륭하게 이끌어 주는 주된 동력이다. 하지만 한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농사의 상식’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에 농사 좀 지어보셨다는 어르신들은 “배추를 저렇게 그냥 심으면 망해요. 굼벵이 잡는 약을 살~짝 치고, 비닐을 쫙~ 깔아줘야 잘 큰다니까.”라고 얘기하신다. 주말농장에서는 친환경 농사를 위해 화학비료, 화학농약, 비닐멀칭을 금지하고 있고 분양자 전체에게 이러한 내용을 알리기 위해 ‘의무교육’까지 시행했지만 어르신들의 ‘상식’으론 도저히 납득이 어려운 내용일 뿐이다. 

하루에도 몇 분씩 운영진에게 대놓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살 수 없냐고 물으신다. 여기선 그런 거 사용하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면 그래도 양심은 있으셔서 “우리 집 옥상에 뿌릴려고 그래요. 여기다 뿌릴 거 아니예요.”라고 하신다. 그러시곤 걱정스러운 말투로 “굼벵이 잡는 약을 미리 쳐주어야 가을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하시며 돌아서신다. 


언젠가는 깻잎이 심어진 밭 위로 하얗게 서리가 내린 것처럼 뭔가가 뿌려진 걸 봤다. 진짜 서리가 내린 줄 알고 깜짝 놀라서 가봤더니 하얀색 화학 비료가 뭉텅이로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사용량을 알지 못하니 그냥 있는 대로 뿌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소리 없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새벽 농약이다. 인적이 드물고 특히 운영진이 없는 시간에 어르신 특유의 부지런함이 발동되는 것이다. 물조리개에 물을 받다보면 거품이 유난히 많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십중팔구 농약을 탔던 흔적이다. 그럴 때마다 의심은 되지만 그렇다고 누가 그랬는지 캐낼 방법도 없고 설사 알아낸다 해도 딱히 어쩔 도리는  없으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해 유해함을 알리고 설득하는 노력을 할 뿐이다.   

종묘상에 가면 씨앗의 종류보다 농약과 비료의 종류가 훨씬 더 많다. 씨앗 한 봉지 심으면서 뿌려야할 화학제품들이 어찌나 많은지... 종묘상에서는 그것 없인 농사가 안된다고 단언한다. 값이라도 싸면 좋으련만 굼벵이 잡는 약, 민달팽이 잡는 약, 하면서 꽤나 비싸게 판매된다. 세계시장의 대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종묘회사의 경우에는 아예 자기회사의 씨앗에 맞는 농약과 비료를 따로 만들어 내고 그것을 셋트로 판매하고 있다. 종묘회사가 물류까지 점령하고 있어서 이 셋트를 구매해 사용하지 않는 농민들의 채소는 판매 경로를 찾기 힘들어지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정말 무시무시한 현실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걸 본적이 없는 분들에게 이제는 화학비료와 농약 없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농사의 상식’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생전 처음 농사를 짓는 초짜들이 화학제품 사용의 필요성도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쓸 생각도 안하는 것 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운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연을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후대를 위해 아끼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땅의 건강함을 지금이라도 조금씩 지켜낼 수 있었으면 한다.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

사무국장   김선정

cafe.daum.net/gcfarmer

'탐방 기고 > 텃밭에서 만난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텃밭요리대회  (0) 2012.07.20

금천구청 앞 큰 텃밭의 개장식이 4월에 있었다. 그후 많은 사람들이 상추, 오이,고추 등을 심고 거두었다.

마을신문 금천in 과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도심 속 소중한 공간인 금천한내텃밭에서 일어난 일들을 연재를 기획하며 금천구에서 다양한 텃밭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해본다.

비온 뒤라 그런지 햇살은 더 뜨겁고 끈적끈적 올라오는 습기 때문에 숨만 쉬어도 땀구멍에 이슬이 맺히고 등짝이 찰싹 들러붙는다. 채소 색깔이 만약 초록이 아닌 주황이나 분홍색이었다면 어쩔 뻔 했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생각이 스칠 즈음 어디선가 왁자지껄 하게 들이닥친 사람들이 있었다.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호기롭게 나타난 이들은 여성발전센터에서 ‘도시농업지도사’ 과정을 수강하고 있는 늦깍이 학생들이다. 숨도 쉬기 힘든 날씨에 요리를 하기로 했단다. 네 개 조로 나눈 사람들이 서로 자신들이 준비한 음식을 뽐내면서 만들기 시작했다. 상대팀을 견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양으로 승부한 떡볶이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꼴찌를 먼저 꿰찼고, 채소 샐러드는 옆 팀 샌드위치 속으로 들어갔다. 

텃밭을 소재로 한 요리를 한 접시씩 출품(?)하는데 세심한 데코레이션까지 합쳐져 멋진 작품전이 되었다. ‘상추불뚝전’, ‘오감을 자극하는 영양만점 샐러드’, ‘주물럭 샌드위치’, ‘푸짐한 나눔 떡볶이’로 붙여진 작품들은 노란 치커리 꽃과 상추, 집에서 직접 가져온 바구니와 예쁜 접시로 장식되었다. 숨도 쉬기 힘들었던 방금 전과는 달리 눈으로만 봐도 즐거운 음식들을 보면서 온 몸이 시원하게 식혀지는 것 같았다. 역시 여성들은 위대하다! 








이어서 텃밭운동회 기획이 시작되었다. 풀잎으로 허수아비 만들기, 고랑 천천히 갔다 오기, 깻잎 입으로 이어 날리기, 밀짚모자 손 안대고 이어 옮기기, 몸으로 채소이름 말하기, 씨앗이 싹트는 모습 연기하기 등 재미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도시농업을 접하면서 열정에 넘쳤던 예전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씨앗 하나도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고 감자 하나를 심으면서도 길게 토론을 해야 했던 그 때가 엊그제 같다. 두둑에 감자를 엎어서 심어야 하는지 뒤집어서 심어야 하는지, 두둑 한가운데 심어야 하는지 옆구리에 심어야 하는지... 끝도 없는 토론하느라 주변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머리통만한 고구마를 보고 깜짝 놀래고, 주먹만한 애기 수박을 보면서 콩닥거렸던 ‘처음의 그 설레임’은 지금도 내 맘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 사무국장   김선정

cafe.daum.net/gcfar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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