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이야기]


나는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있고, 내 뱉어 본 적이 있다.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전지전능하며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절대적인 존재. 하지만 그런 신을 대체할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신성한 신에 빗대어 진 ‘엄마’라는 역할에 고귀함을 느끼는 동시에 엄청난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엄마’로서 사는 것이 힘에 버거웠다. 첫째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꼬맹이였을 때 우연히 영재테스트를 했는데 결과치가 아주 좋다는 학습지선생님의 말에 학습지를 다섯 과목이나 시킨 적도 있었다. 도서관에 더 자주 데리고 가려고 이리저리 궁리한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 후 교육비를 줄여보겠다고 내가 직접 수학을 가르치다가 안한다는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며 문제집을 두 동강내어 던져버린 적도 있었고, 시장을 보고 요리를 일일이 다 해서 먹이고 신랑에게는 바깥일에만 매진 할 수 있게 집안일은 전혀 시키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아이와 가정 일에 집중 된 나의 삶에 우울감이 오는데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책에서는 ‘60점 엄마’가 ‘100점 엄마’보다 아이에게 더 좋다고 한다. 하루 종일 아이를 끼고 살았던 시절에, 난 스스로 100점 엄마가 되려고 했었다. 처음엔 아이도 그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서로 부딪히는게 많아지면서 차츰 깨닫게 되었다. 아... 아이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커주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구나. 난 나의 삶이 있는 거구나.
페미니즘이 이슈화 되면서 여성의 자립과 평등에 해한 관점이 급속도로 바뀐 것을 느낀다. 사회만 바뀐 것이 아니라 육아는 엄마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예전의 나와 아주 딴판의 말을 한다. “애는 좀 설렁설렁 키워야 서로 편해요, 옆집아이라고 생각하고 키워 봐요.”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나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든든한 지지자이다.

사실 작가는 정말 힘든 육아를 했다. 아이가 소아암에 걸려 많은 위기를 넘겨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엄마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차피 대세에 지장이 없으니 육아를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한다. ‘엄마가 얼마만큼 열심히 하든, 아이는 제 운명대로 자랄 것이라’는 말이 엄마로서의 불안감과 죄책감 같은 원죄를 사하여 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들렸다. 
경력단절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일하는 엄마가 된 지금 아이들은 내가 걱정했던 것 보다 훨씬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친구들과 더 사이좋게 놀고, 자유롭게 TV도 보고, 숙제도 나름 열심히 해간다. 이런 과정에서 혹시나 아이가 아프다 해도 그것은 엄마인 내가 옆에 없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엄마인 내가 행복하고 어른으로서 자립해 있어야 아이들도 그러한 나를 보고 배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짧게 책의 내용을 남겨본다.

 - 엄마는 다만 가장 가까운 한 어른으로서,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면서 아이에게 ‘이런 삶도 있단다’를 보여 줄 수 있을 뿐이다. -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이명신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월요분과로 옮기고 나서 처음으로 내 순번으로 정해진 책이다. 겉표지만 보고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인가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가난하여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애쓰고 욕심 없이 살다간 진정한 의사 이야기였다. 신앙심이 깊었고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며 무료 병원을 여는 등 많은 사람에게 큰 도움을 주었던 정말 훌륭한 의사선생님의 일대기를 알 수 있는 책이었다.
 동의보감에서 보면 ‘심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심의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늘 편안케 하는 인격을 지닌 인물로 병자가 그 의원의 눈빛만 보고도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경지에 있다. 그건 의원이 병자에 대해 진실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있고서야 가능한 품격이다. 장기려 박사야말로 ‘한국의 슈바이처’ ‘사랑의 의사’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하며 돌아가실 때까지 수많은 어려운 환자들을 돌봐주셨던 의사였다.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장기려 박사님의 미담들과 중간중간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희생의 봉사 정신을 실천하는 박사님은 멋있고 존경스럽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을 힘들지 않았을까? 나 자신도 챙기고 내 가족도 챙겨가면서 주변 사람들도 챙겨주면 좋을 텐데 뭔가 가족들에게는 무심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되면서 조금 화가 나는 부분도 있었다. 
 의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필독서로 지정되어 읽고 뭔가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책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죽기 전까지 저런 마음으로 봉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장기려 박사님이 남기신 시 한편과 좌우명도 공유한다. 

 

 

송도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장기려

수도꼭지엔 언제나 시원한 물이 나온다.
지난겨울엔 연탄이 떨어지지 않았다.
쌀독에 쌀은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세끼 밥을 먹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신다.
언제나 그리운 이가 있다.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더 키울 수 있다.
그 놈이 새끼를 낳아도 걱정할 일이 못 된다.

보고 듣고 말함에 불편함이 없다.
슬프게 울고 기쁨에 웃을 수 있다.
사진첩에 추억이 있다.
기쁠 때 볼 사람이 있다.
슬플 때 볼 바다가 있다.
그리고 ........세상에 사랑이 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임선명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208

 

수레바퀴돌듯 일상이 돌아가지만 차 한 잔 잠시 마시거나 하늘 한 번 올려다 볼 여유 정도는 갖고있어서 다행입니다. 거기에 조금 더 호사를 부려 책을 보거나 그림감상을 하며 사색에 빠지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말이 다가오며 마음은 들뜨고 몸은 바빠져 어수선하기만하고 책이 눈에 들어올리 만무합니다. 그런데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이 와중에 우연히 이 책을 만나다니... 햇살이 드는 창가에 여유롭게 앉아있는 한 여자가 있는 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작가는 매일 그림을 그리고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글만, 아니면 그림만 그리는 경우가 더 많으니 이 사실 또한 책을 더 특별하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이 책은 ‘방’을 매개로 펼쳐지는 여러 삶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에세이인데, 작가는 마치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그 안의 주인공과 만나고 온 것처럼 당시의 상황과 뒷이야기와 주변의 작은 소품들이 흩어진 연유까지 섬세하게 글로 담아냈습니다. 가끔씩은 어디부터가 작가 개인의 감상이고 어디부터가 그림에 대한 이야기인지 경계선이 모호하게 느껴졌고 그것은 오히려 이야기에 더 깊게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미술 교과서에 나온 유명한 인상파화가정도만 알던 나에게 네이버에 검색해도 자료가 쉽게 나오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화가들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작가의 감상적인 이야기와 그림에 대한 해석을 들으면서 어느새 저도 공감하고 위로받고 있었습니다.

그림이란 것은 우리의 삶과 절대 떨어져있을 수 없고,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모든 일상들은 한폭의 그림으로 담아 영원히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장면들인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이불자락을 움켜쥐고 꼼지락거리는 아이의 모습도, 식구들과 한자리에 앉아 담담하게 밥을 먹는 모습도, 퇴근길에 슈퍼에 들러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저의 모습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란 것을 말입니다... 소확행과 비슷한 말일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일상 자체가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인데 화려하거나 색다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치를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방’은 우리의 일상과 기억,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수많은 시간과 사건의 공간을 말합니다. ‘방’에서 우리는 숨기도 하고, 지키기도 하고, 도전하기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을 보다보면 또 하나의 재미난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예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는 것입니다. 프랜시스 루이스 모라가 1914년에 그린 「뉴욕시티의 지하철 탑승객들」이란 그림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같이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신문. 이 광경을 너무나 익숙하게 어디서 본 것 같았습니다. 신문을 핸드폰으로 바꾸니 영락없이 지금과 똑같습니다!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며 혼자 웃었습니다. ‘시대가 이렇게 바뀐 것이었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바뀐거네.’ 하면서요. 이 그림은 유난히도 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상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있는데 그 변화가 근본적인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동굴에 살았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집에 살고, 마차를 탄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차를 타는 것처럼 말입니다. 

올해가 끝나가는 이 즈음 짧은 여유의 시간이 난다면 이 책을 살짝 들여다보세요.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까지 얻을 수 있을 꺼예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이명신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저자 우지현 출판 위즈덤하우스

 

 

은행나무 어린이 도서관 책이야기 207

 

매일 바쁘게 살고 있는데 삶은 더 윤택해지지 않고 더 바빠지기만 할 뿐 왜 이렇게 여유를 찾을 수 없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분명 전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시간적, 경제적 여유는 더 없이 살고 있을까?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질문을 하는 책 <똑똑한 고양이/ 피터 콜링턴 글. 그림>에 나오는 주인공 냐옹이는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주인이 모든 것을 해주기를 기다릴 줄만 안다. 그러던 고양이가 스스로 밥을 챙겨먹게 되고, 열쇠로 현관문을 열 수가 있게 되고, 시장도 볼 수 있는 등 점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게 된다. 주위에서 냐옹이가 똑똑해졌다며 칭찬을 해주며 이것저것 스스로 하게 한다. 그러나 칭찬은 아주 잠깐 냐옹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즐기고 싶은 것도 덩달아 많아지게 된다. 그전에는 안 해도 괜찮았던 것들이 자꾸만 생겨났다. 영화보고, 외식하고, 쇼핑하고, 게임을 하는 등 즐기고 싶은 것들도 많아졌다. 그러면서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만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어버렸다. 냐옹이는 여유 없는 삶에 지쳐만 갔다. 몸도 마음도......
그러면서 선택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누군가 해주기를 기다리기만 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아주 행복해한다. 
그런 냐옹이를 보는 다른 고양이들은  “이제야 진짜 똑똑한 고양이가 되었군.”하며 하루 종일 늘어지게 여유를 즐기는 삶을 함께 보낸다.

나는 왜 바쁘고 힘들까? 왜 더 가지고 싶고 즐기고 싶어서 안달을 하며 살까? 
한 개를 가지면 왜 또 다른 무언가를 더 갖고 싶은 것이 자꾸 생기는 걸까?
여유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나를 들여다보며 깊이 생각해본다. 진정 바쁘게 사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며 즐겁고 행복한가?
냐옹이가 처음으로 되돌아가듯 나에게도 멈춤과 비움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더 갖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위해 나를 더 이상 혹사시키지 말아야지. 욕망의 노예로 사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지. 그럼 내가 원하는 여유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 슬프다! 너무나 오랫동안 바쁘게 살아서인지 내가 진정 원하는 여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냐옹이처럼 당장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일상에서 꼭 안 해도 될 일, 필요하지도 않고 내 마음이 원하지도 않는 것들을 찾아 안 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내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깃드는 그날을 위해 일상에서 안 해도 될 것들을 찾아보련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양기순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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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206

 

아들러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 멀었다.
△말하기 능력은 살아가는 능력과 직결된다고 한다.  
△우리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자기수용과 상호신뢰를 전제로 하면 인간관계가 원만하게 풀린다고 한다. 특히, 아들러는 인간은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임을 강조한다. 수평관계에서 건전한 사람은 상대를 바꾸기보다는 자신을 바꾸려 하고, 건전하지 않은 사람은 상대를 바꾸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들러의 사상을 좀 더 들여다보면
△사람이 항상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항상 좋은 사람인 것과 진정으로 바람직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다르다. 진정으로 바람직한  관계는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도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얽매이지 않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또한, 낙관적인 태도는 신뢰 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힘들기는 하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 위기에 몰렸을 때도 ‘나라면 이 문제를 충분히 해결 할 수 있다’라고 자신을 믿고 도전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여러 가지 상황의 경우를 볼 때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할 때, 주의를 줄 때,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때 웃는 얼굴로 말하면 미움을 사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한 착각이라는 것이다.

△경청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공감하면서 듣기, 흥미를 가지고 듣기, 몸 전체로 듣기, 상대방의 말을 함부로 정리하지 않고 끝까지 듣기, 일방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기(내 대화가 끝나면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한 호흡 시간을 준다), 호감을 얻는 맞장구, 반감을 사는 맞장구를 쳐 준다,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마음과 상대방의 주관에 끌려가지 않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

△아들러 책을 읽다 보면 분명 다 맞는 말이긴 한데... 다르게 생각하면 내가 아들러의 방식으로 현대사회를 살게 된다면 호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나는 아들러의 사상에 자꾸만 빠져들게 된다. 내 자신이 절대 흔들리지 않고 나에 대한 믿음과 아들러의 사상을 함께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자기수용과 타자 신뢰, 타자에 대한 공헌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이주희

 

은행나무 어린이 도서관의 책읽기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글입니다

도다 구미 지음 ㅣ 옮긴이 이정환 ㅣ출판사 나무생각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204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의 덕을 보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손안의 인터넷서점이 그것이다. 오랜만에 문학 장르로 들어가서 무슨 책이 신간으로 나왔는지, 인기가 있는지 쭉 보다가 도서관 독서모임을 갖는 요일과 같은 ‘화요일’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제목을 다시 들여다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이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
알고 보니 거의 20년 가까이 중·고등학생 추천도서에 있을 만큼 권장되고 있는 책이었다. 책의 겉표지를 리뉴얼해서 다시 출판할 정도로 베스트셀러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출판사마다 평범한 사람의 죽어가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작가는 열한 번째 출판사에서 출판계약을 맺게 되었고 지금 이 책은 수 십 개국에 출판되어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여러 모임, 장례식장, 교회 등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읽혀지고 있었다. 
나는 화요일 날 독서모임을 갖는데, 작가 미치 앨봄은 몇 달 동안의 화요일동안 작가의 대학시절 교수님과 죽어가는 것의 의미를 토론하는 모임을 갖는다. 그 내용에서도 엄청난 파격과 무게가 느껴지는 이유는 삶과 죽음은 동시에 있고 우리 곁에서 멀지않음에도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멀찌감치 밀어놓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수님은 60세가 넘으면서 근위축성측삭경화증, 즉 루게릭병에 걸린다. 내 생전에 영어로 더 쉽고 익숙한 병으로 유일하다. 얼마 전 하늘의 별이 된 앨빈 토플러도 이 병에 걸렸었다. 그래서인지 루게릭병은 천재에게나 걸리는 희귀하고 어쩌면 미화된 기억으로 있었다. 하지만 책에서 보니 몸이 아래부터 위로 녹아내려 몸 안에 몸이 갇히고 통증은 그대로 느껴진다니 정말 무섭게 느껴졌다. 그 무시무시한 병에 걸린 모리교수가 ‘생명이 있는 나를 참을성 있게 연구하시오’라고 말하니 그는 죽음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을까.
사람은 태어나면 동시에 한번 죽음을 약속한 것과 다름없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조차 죽음은 환상으로 아련하게 꾸며진 이미지 일뿐 전혀 현실감이 없다. 하지만 죽음의 그 순간을 알아내려고 생각에 빠지는 것은 우매한 일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신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마지막이 있는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는냐에 집중해야한다. 그 과정이 가치가 있다면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마라톤을 완주한 느낌처럼 해냈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 이해가된다. 교수는 우리가 달성하려는 많은 것들은 가치가 없는 것이 많다고 한다. 내가 오늘을 달리게 하는 그것은 결국에 나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배가 목표 없이 항해하면 비바람에 휩쓸려 외딴 무인도에 다다를 수도 있는 것처럼 인생의 항해자인 나는 다시 한 번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목표를 점검해야겠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것이 인생의 최우선순위가 되면 결국 끝없는 사막을 걷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삶이라는 여정에는 나무도 있고 꽃도 있고 웅덩이도 패여 있지만 부드러운 잔디밭도 있는 것이다. 힘든 일이 생겨도 그러려니 하고 기쁜 일이 생기면 반갑고 감사하게 맞이해야겠다. 오늘 하루도 내 인생여정의 의미 있는 하루이길...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이명신

미치 앨봄(작가) 지음 ㅣ 공경희(번역가) 옮김 ㅣ 살림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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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203

 

『트리갭의 샘물』은 ‘영생’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 단편동화집을 읽다 추천받은 책이었어요.
그날 참 신기한 게, 같은 책을 여러 명이 읽었는데, 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더라구요.
‘뭔가 부족해. 아이들이라고 이만큼만 쓴 걸까? 이 주제가 짧은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들 말이에요. 작가들이 더 고민하고, 한발 더 나아가 ‘영생’이라는 주제를 풀어주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마음을 풀어놓으며 답답해하고 있을 때였어요. 
“‘영생’을 주제로 한 책은 『트리갭의 샘물』을 읽어봐요!”
라고 한 분이 자신 있게 추천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다이어리 한쪽에 크게 별표 쳐가며 ‘꼭 읽기!’ 해놨지만, 인연이 없었는지 읽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며칠 전 글은 써야 겠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글로 쓰고 싶은 책’이 없는 거예요. 그림책도 뒤적여봤고, 소설책도 뒤적여봤고, 실용서까지도 뒤적여 봤지만 마음에 오는 책이 그날따라 없었어요. 터벅터벅 도서관에 갔고, 그때 마침 반납된 『트리갭의 샘물』을 본 거예요. 어찌나 반갑던지요. ‘아! 이거 봐야겠다!’ 하고 얼른 빌려왔답니다.
그리고 오가는 버스 안에서 읽었죠. 생각보다 금방 읽었어요. 동화 같기도 하고, 옛이야기 같기도 한 분위기의 이 책을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갑게, 기쁘게 읽었어요. 읽으면서 알았거든요. 이 책은 ‘좋은 책’이라는 걸 말이에요. 제게 ‘좋은 책’이란 읽고 나면 마음에 무언가가 남는 책인데, 남는 게 뭔지 명확한 책이에요. ‘뭘 남겨야 하지?’하고 고민할 여지를 주는 건 제 기준에서는 좋은 책이 아니에요.
『트리갭의 샘물』 의 줄거리는 간단해요. 한 숲에 사는 한 가족, 그 가족은 샘물을 먹고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는 가족이에요. 아주 나이도 많죠.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살고 있어요. 그리고 그 숲 소유주의 딸인 어린 아이, 어느 날 이 아이와 그 가족이 만나게 되요. 그리고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죠.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가족들끼리만 숨듯 살아가야 하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말이에요. 가족은 여자 아이에게는 절.대.로 그 샘물을 먹지 말라고 하죠.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다면서요. 나중에 여자 아이는 샘물을 먹고 영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친구인 두꺼비에게 부어 버려요. 그리고 나중에 이 가족이 이 마을에 왔을 때 이미 여자 아이는 죽고 없죠. 샘물도 사라져 버렸구요.
이 책은 끊임없이 ‘영생’이라는 것이 행복한 삶이 될 수 없다며 가족의 입을 통해, 여자 아이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흘러가는 시간을 사는 사람들 속에서 정지된 시간을 사는 사람들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잖아요. 다들 나이를 먹는데, 이 가족은 늘 그대로였어요. 그러다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느낄 때쯤 떠나는 거예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그래서 또 몇 년을 살다, 또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느낄 때쯤 또다시 떠나야 하는 거예요. 도망치듯이 말이에요. 결혼을 해도 행복할 수 없고, 모두가 늙어가고 죽어가는 가운데, 이 가족만 그대로인 거예요.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말이에요. 
그래도 읽으면서 다행이다 싶은 건 가족이 다 영생을 얻었다는 거예요. 혼자라면 너무 외로웠을 텐데, 가족 4명이 다 영생을 얻었으니 서로 의지하며 나누며 그래도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도 그래서 가족에게 영생을 준 거겠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 졌어요. 
“아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
“싫어. 아픈데 죽지도 못하고 계속 살면 뭐해?”
“음... 아프지도 않고 영원히 산다면 어때?”
“싫어. 늙어서 계속 사는 건 싫어.” 

 

“그럼, 지금 모습 그대로 멈춰서 아프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계속 사는 건 어때?”
“싫어. 가족들이 나보다 먼저 죽을 거잖아. 그러니까 난 영원히 사는 거 아주아주 싫어.”
『트리갭의 샘물』에서 작가가 하려던 말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나 봐요. 아이의 마지막 말이 작가가 하려던 말이었고, 제가 마음에 남겼던 말이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죽는 걸 보는 게 얼마나 괴로운 건지 아이는 그 짧은 상상만으로 이미 알고 있었나봐요.  
작가는 그래서 가족 모두에게 영생을 주었나 봐요. ‘행복하지 않은 영생이지만 그래도 옆에 함께 할 가족이 있으면 받아들이고 살 수 있다’ 고 말이에요. 동화니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결말이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우리는 어떤 현실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잖아요. 앞으로도 사람들은 영생을 꿈꾸겠죠?  
하지만 3학년 아이도 영생이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걸 보면, ‘영생’은 말 그대로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꿈’으로만 남을 것 같네요. .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안해나

 

 

나탈리 배비트 / 대교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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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202

 

2019년을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9월도 다 지나고 이제 2019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음이 참 안타깝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 시간! 얼마 전 서점을 들렀다. 「1초마다 세계는」이란 커다란 시계가 그려져 있는 표지가 눈길을 끄는 시간에 대한 그림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첫 장에서 ‘1초마다 세계에서는 결혼식이 두 번 열려요.’, ‘아기 4명이 태어나요.’ 라고 시작한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간 1초에 세계에서는 수많은 가정들이 탄생하고, 수많은 아이들 또한 태어나고 있다. 물론 죽어가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세계는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다. 이런 세계에서 1초 동안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사십 그루의 나무가 베어지고, 그보다 여덟 그루가 작은 삼십이 그루가 심어지며, 바닷물 만 천 리터가 증발하고, 사하라 사막의 모래 육만 삼천 킬로그램이 바람에 실려 가고 플라스틱 병이 만 오천 개가 만들어지고 이중 천 육백 개만 재활용이 되고, 가정에서 쓰레기를 사천 킬로그램이 버려진단다. 이렇게 계속 가다보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이 책은 우리에게 대놓고 환경을 지켜야 해요라는 말은 하지않는다. 하지만 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 문장들을 보면 불편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얼마 전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에서 한 달 이상 화재가 계속된 적이 있었다. 무분별한 개발 허가로 인한 인재로 우리는 지구 산소의 20%를 생산해 내고 있는 곳을 파괴하고 있다. 바다에 휩쓸려간 쓰레기들이 섬이 이루고,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전 세계 동물들이 신음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조금씩 파괴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그곳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일회용품을 사용 자제, 탄소에니지 개발 등 범국가적으로 환경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늦었지만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지구가 원초의 모습이 될지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조금씩 노력하고 서로 마음을 합하다 보면 지구는 언젠가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걸어본다. 
1초에 교통사고로 두 명이 다치고, 문자 메시지는 이천 건이 오가고, 인터넷으로 사천건의 물건이 팔리고, 책 열네 권과 스마트 폰 사십대가 팔리며, 무기 사는 데에 오만 삼천 오백달러를 쓴단다. 이렇게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추어 인터넷의 홍수 속에 잘 못된 정보도 퍼 나르고, 대면하고 있지 않다고 칼보다 더 무서운 댓글들로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으며, 각기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저 많은 돈들을 쓰고 있다. 경제의 구조가 점점 바뀌고, 새로운 직업들도 생겨나고 없어지는 직업들도 있다. 이렇게 세계의 시계는 돌아가고 있다. 
1초. 정말 짧은 눈 한 번 깜박할 시간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하루에 86,400초. 1초에 벌어진 일들의 86,400의 곱으로 일어난다니, 이런 걸 생각하면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백세 시대! 앞으로 살아온 날만큼 살아갈 것이다.
먼 훗날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하며 눈을 가만히 감으며 글을 마무리 한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윤숙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201

 

아주 오래전,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을 시작할 때부터 옛이야기는 내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옛이야기 분과에 들어가 공부를 할 때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 하임의 <옛이야기의 매력>을 읽고는 이런 세계가 있었나 많이 놀라고 내용을 곱씹게 되었다. 그동안에 늘 궁금했던 것, 옛이야기에는 왜 계모가 그렇게도 많이 나오고, 그들의 악행은 왜 이리 심한건지, 아이들의 심리는 어떤 건지 등에 대한 심리분석적인 내용에 놀라기도 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옛이야기를 이론적으로 정리해주는 책을 접한 적이 없고 특히 우리 것과 외국의 것을 비교하거나 한꺼번에 설명해주지 않고, 외국의 옛이야기보다 우리 것이 훨씬 훌륭하다는 일방적인 논리에 약간 실망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김환희 선생님의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이라는 책은 내게는 멋진 발견이었다. 거기에는 콩쥐팥쥐와 신데렐라를 같은 비중으로 두고 설명하고 있었고, 이와 같은 설화의 줄기는 각 나라에 많이 분포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우리 옛이야기의 원형을 소개하고 그림책으로 나온 원형에 충실한 것들을 소개했다. 그림은 아름답지만 이야기의 원형을 파괴하거나 의미를 염두에 두지 않는 그림책을 가감 없이 비판했다. 
세상에는 비슷한 이야기들이 돌아다니고 있고 절대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았던 그 옛날부터 내려오던 이야기들이 어떤 경우는 아주 똑같은 이야기로 아직 숨 쉬고 있다는 이론적인 틀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옛이야기를 공부할 때부터 답답하게만 느꼈던 것들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계모에게 구박을 받고 신을 잃어버리지만 삶을 현명하게 살아가며 행복을 찾는 주인공들... 조금씩은 다른 모습이었지만(어떤 면에서는 우리 주인공들이 훨씬 훌륭하다)또 비슷한 모습이기도 했다.
신입교육에서 옛이야기 강의를 준비하며 김환희 선생님의 다른 책 <옛이야기 공부법>을 만났다. 목 뒤의 염증을 떼는 수술을 하고나서는 책을 앉아서 보기가 힘들어 누워보게 되었는데 그러자니 팔이 아파 책 한 권 읽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린다. 좋아하는 소설책도 아닌 이 책을 누운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엄청나게 재미있어서? 아니다. 옛이야기에 매료된 사람들은 재미있게 읽겠지만 학자인 작가의 글투와 내용은 아무래도 학술적이다. 옛이야기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의 성격인 이 책은 작가가 매료되었던 <구렁덩덩 신선비>를 중심에 두고 갖가지 해설을 해준다. 
다소 학술적인 내용이 나온 뒤에는 작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그 부분을 읽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학자이긴 하지만 ‘교수’의 이름을 걸지는 못한 작가의 개인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은 굉장히 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비교문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재능을 감지하고 아주 열심히 공부하며 대학에 적을 두고자 했던 그 결의는 번번이 무너졌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은 늘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나는 이 감정을 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남편이 강사생활을 오래 했고 그동안에 펼쳐졌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그 좌절감과, 이미 자리를 잡은 이들이 요구했던 부당했던 내용들이 다시 떠올랐다. 작가의 담담하면서도 빈틈없는 문장은 내 마음을 울리고 말았다. 
강의 준비를 하면서 선생님께 몇 가지 여쭈어봤던 터라 새벽 한시라는 것조차 인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보냈다. 공부를 하고 있었다며 주신 답장은 “옛이야기가 지닌 치유의 힘을 알 수 있어서 공부가 즐거웠어요.” 였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다친 마음은 옛이야기의 숲에 들어가면서부터 조금씩 치유되었다고 한다. 아기장수와 콩쥐, 바리공주와 신선비의 색시 들을 만나면서 아무런 조건도 보상도 없이 이야기만을 남기고 사라져간 이야기꾼들에 대해 감탄한다. 그 이야기들은 탄탄한 서사의 구성을 가지고 있고 폭넓은 세계관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아들이 ‘상문고 사태’로 비리로 얼룩진 재단에 반대하는 시위에 앞장섰을 때에도 작가는 아기장수의 부모를 생각했다. 아기장수의 부모들 특히나 어머니들은 대부분 아기장수를 죽게 만들고 위험에 빠트린다. 작가는 이것이 세상을 바꿀 인물이 나왔을 때, 혹은 인간들의 삶이 도탄에 빠졌을 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이해했다. 아기장수의 어머니의 행동이 작가에게는 반면교사였던 것이다. 결국은 두려움은 가득 안고 있었지만 부모들도 아이들 편에 서서 비리재단을 물리치는데 함께 했다고 한다. 
깊은 공부를 하지도 않았는데 옛이야기는 나를 늪에 빠지게도 했다. 내가 좋아하던 신화인 <오늘이>에 나오는 내용이 외국의 <황금머리카락>이라는 이야기와 거의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것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구렁덩덩신선비의 기원이 인도설화라는 것을 어디선가 본 듯 해서 선생님께 전화로 말씀드렸을 때 선생님은 “아니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라고 하셨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옛이야기는 단정적으로 확신을 갖고 말할 수가 없다. 것이 옛이야기의 주요한 매력이기도 하다. 
옛이야기의 숲은 깊고 넓다. 그것은 우리의 심신을 위로해주는 작은 샘물 같기도 하지만 삶에서 겪는 깊은 고뇌에서 우리를 끌어올리기도 하는 진정 헤아릴 수도, 알 수도 없는 숲이다. 손을 잡고 함께 가보는 것이 어떨지... 

 

김환희 지음 / 창비 출판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민경아

성격이 다르지만 단짝 친구인 오리와 곰의 이야기다. 
오리는 성격이 활발해 혼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친구 곰을 찾아 가지만 곰은 낚시를 떠나 일주일 후에 돌아온다는 메모를 남겼다. 혼자 남은 오리가 잘 할 수 있다며 괜찮아, 할 수 있어 아무일도 아니라며 혼자 지내보려하지만 어떤 일을 해도 심심하고 재미가 없자 곰을 그리워하다 ‘곰은 나 없이도 잘 지내고 있을까?’생각을 하며 “곰아, 돌아와!” 소리쳐 부르며 곰을 찾아 나선다.
 낚시를 하러 나온 곰은 혼자 있으니 귀찮게 하는 오리도 없고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캠핑을 준비하며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텐트도 칠 수 없고 낚시도 안 되고 간식거리도 없는데 비까지 내리니 한숨만 나온다. 밤이 되고 무서움을 느낀 곰이 다른 생각으로 무서움을 떨쳐내려 하는 그 때 오리가 나타난다. 서로 깜짝 놀라고 오리는 곰에게 이것저것 안부를 묻는다. 
그렇게 둘은 다시 만나고 반가워하고 곰이 오리에게 ‘네가 와서 반갑다’고 말하며 오리가 곰에게 ‘니가 나를 피하는 줄 알았다’며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밤을 같이 보내고 다음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오리는 또다시 곰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곰을 귀찮게 하며 언제나 영원히 함께 있겠다고 말하자 곰이 ‘언제나 영원히’한 말에 한숨을 쉬며 책 이야기가 끝난다.
 친구 사이가 항상 좋을 수 없고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지만 친구와 떨어져 있을 때 친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활동을 같이 하던 친구가 방학을 해서 만날 기회가 줄어들자 집에서 시간 보내기가 너무 지루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무언가 허전하고 할 일이 없어진 것 같았다는 말을 듣고 ‘곰이 떠난 후 심심해하던 오리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안경애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조리 존 글/벤지 데이비스 그림/ 이순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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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199]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권윤덕 글/ 창비 펴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어린 시절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부모님은 일하러 일찍 나가시고 동생과 둘이 집에 남아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다 헤집어 어지르기도 하고, 저녁때가 되면 기다리다 지치고, 무섭고, 배고프곤 했었던 때가 기억나 코끝이 찡해집니다. 

 이 책엔 고양이가 나옵니다.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친근한 고양이.
‘우리집 고양이는 깍쟁이에요. 안아주려고 하면 도망가고 모르는 척 하면 옆으로 다가오고‘ 로 시작하는 책에서 아이는 고양이와 함께 놀기도 하고, 빨래도 널고, 파리도 쫓고, 꽃냄새도 맡고, 벌레도 내려다보고, 놀다가 심심하면 밖도 내다봅니다.
밖에는 아이들이 많이 놀고 있지만 아이는 말합니다. 
내 친구는 고양이밖에 없고 고양이 친구도 나밖에 없다고...
저녁이 되어 엄마가 올 시간이 되면 밖의 모든 소리가 귀에 들리고 점점 무서움을 느낍니다. 
고양이와 이불속에 숨기 바쁜 아이... 고양이와 둘만 있으면 될 것처럼 보였으나 아닌가봅니다. 

 조금씩 아이는 변해갑니다. 이젠 내가 고양이를 따라 하겠다고, 용기를 내어 어두운 창밖을 찬찬히 살펴보고 높은 곳에 올라 먼 곳도 바라보고, 고양이처럼 몸도 크게 부풀려보고... 그리고 ‘이제 밖으로 나가는 거야!‘하고 외치며 고양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 놉니다. 
 그림책들이 다 그렇듯 색감이며 중간 중간 고양이나 아이의 모습, 또는 주위의 모습 등에서 찾아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굳이 글을 읽지 않아도 그림만으로도 알 수 있을 만큼 섬세하고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한번 씩 외로워질 때면 이 책을 찾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그림책에서 내 어린 시절을 한번 떠올려보며 미소 지어봅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노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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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198

 

어른이 된 우리는 대부분 어린 시절 목욕탕에 대한 기억이 한두 가지씩 있을 것입니다.
나 어렸을 적엔 목욕탕 가는 것이 거의 일주일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집에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어 목욕탕에 안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 중 목욕탕을 안 가봤거나 잘 모르는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본 아이들도 목욕탕 하면 때 밀고 씻는 공간보다는 찜질방을 더 많이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커서 목욕탕이 어떤 공간으로 기억될까요?
 판다들도 목욕탕을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판다 가족이 집에 있다가 (여기에서는 집이 동물원입니다.) 목욕탕에 갑니다. 판다들의 목욕탕은 어떤 모습일까요? 판다들이 목욕을 하면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판다 목욕탕에서 판다의 비밀이 하나둘씩 벗겨집니다. 
이 책은 글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유아들 책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큰 아이들도 좋아합니다.
판다들의 반전적인 모습에 어른들도 웃음 짓게 합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욱 재미있고 구석구석 붙어있는 글들도 재치가 넘칩니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여기저기 살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과연 판다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의 입에서는 “판다는 ooo이었어요” 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은 뭐라고 말했을까요?
쉿!!! 판다의 비밀은 무엇인지 조용히 살펴볼까요?

투페라 투페라 지음 / 노란우산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박현진

책이야기 197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 한 권을 읽었다’기 보다 성인 동화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본 기분이다. 위기의 순간도 있지만 잔잔한 분위기가 책 전반에 흐르고 선한 마음, 따뜻한 마음, 착실함으로 살아가야만 할 것 같은 동화적 판타지 감성이 피어오르는 그런 책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책이 만들어져 판매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에 대한 설명, 책 블로그에 대한 묘사는 사실적인 부분도 있어서 도서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흥미롭게 읽혀졌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백화점 대형서점에서 일하는 잇세이는 어린 시절 가족을 잃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조용하고 성실한 청년이다. 
어느 날 잇세이는 책을 훔친 아이를 뒤쫓았고 도망가던 아이는 차에 치이는 사고가 난다. 이 일로 아이를 뒤쫓은 잇세이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결국 서점을 그만 두게 된다. 10년 동안 일해 온 서점을 그만둔 후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잇세이는 작은 시골마을의 ‘오후도 서점’을 찾아간다.
오후도 서점의 주인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오후도 블로그’ 주인.
오후도 블로그의 주인인 할아버지는 병으로 입원상태이고 어린 손자가 책방을 지키고는 있으나 운영은 어려운 상태. 오후도 주인 할아버지는 잇세이에게 서점운영을 부탁하게 되고 잇세이는 고심 끝에 수락한다.
잇세이가 오후도 서점을 맡으면서 서점에는 활기가 띄기 시작하고 잇세이 또한 삶의 기운을 다시 느낀다. 다니던 서점에서 기획 중이던 신간 책을 오후도 서점에 들여놓은 과정에서 옛사람들과 인연도 다시 이어지고 잇세이는 진정으로 살아있는 행복감을 느낀다.
다소 진부한 줄거리이긴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오: 벚나무 앵, 후: 바람 풍)처럼 벚꽃 날리는 봄밤 같은 편안함과 책이 있는 공간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여서 물 흐르듯 읽어진다.
올 초 구로구에 있는 ‘인공위성’이라는 이색 서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건축설계사가 대표인 이 서점은 콘크리트 벽, 검정 철재 선반, 기다란 원목 테이블, 간접 조명들과 커피, 차를 만드는 공간까지 서점이라기보다 카페 분위기에 가까웠고, 판매 도서들의 선정도 특별했다.
기증자들에게 받은 책만을 판매하는 이 서점은 기증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질문을 만들고 흰색의 새 덮개에 그 질문으로 해시태그(#)를 달아 도서를 판매 한다. 일종의 해시태그북이라고 해야 하나...이렇게 만들어진 질문들엔 누군가의 번뇌가, 또 누군가의 희망이 담겨 인공위성에서 쏘아 올려지는 것인가...본 책과 함께 인터뷰 책자도 함께 판매하는 이 서점은 도서를 판매한다기보다  사람 이야기, 삶의 이야기를 판매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후도 서점이야기를 보면서 이 ‘인공위성’서점 생각이 계속 났던 건 왜일까?언제부턴가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대형 서점, 국공립도서관의 큰 규모에서 작은 규모인 작은 도서관으로, 이젠 더 작은 공간인 서점과 책방으로  각각의 색깔과 개성을 가지고 생겨나는 것은 너무도 반가운 일인 듯 싶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공간을 찾아가는 것은 개인의 몫이지만.
문득 나도 나만의 색깔의 분위기의 책방이 하나 갖고 싶어진다.
아직 나만의 색깔을 찾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숙제이긴 하지만...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이혜숙

 

무라야마 사키 지음 / 류순미 옮김 / 출판사 클

 

이경혜 글, 이은영 그림 바람의아이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올해 초 큰딸이 할아버지 전화를 차단시켜버리는 일이 생겼다. 토익 시험을 준비하는 손녀를 위해 80이 넘은 할아버지가 토익 문제집을 사오고, 시험 일정을 안내하고, 공부를 어디서 하느냐 잘 되느냐 맛있는 거 사줄까 등등 전화를 하셨다. 아이는 집중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지나친 관심에 짜증을 내다가 결국은 전화를 차단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을 즈음 「새를 사랑한 새장」(이경혜 글 이은영 그림, 바람의 아이들)을 읽게 되었다. 
  겨울을 맞은 넓은 초원, 자작나무에는 텅 빈 새장이 매달려 있다. 새장은 춥고 외로워하던 터인데 길 잃은 홍방울새가 날아들어 잠이 들었다. 새장은 나무의 정령에게 마법의 힘을 빌렸다. 하지만 새가 새장을 떠나면 마법의 힘은 사라기 때문에 새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자물쇠로 잠가 두었다.새장은 홍방울새에게 폭신한 깃털 이불, 장미꽃잎이 둥둥 떠 있는 목욕물, 맛있는 벌레 요리까지 준비해주고 편안하게 지내도록 한다. 맛있게 먹고 난 뒤 홍방울새가 숲에 가서 한 바퀴 돌고 올 테니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해도 새장은 홍방울새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새장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새장 안에 모든 걸 갖추어 주었으니 편안하게 새장에서 지내라는 것이다. 한동안 홍방울새는 새장이 온갖 정성으로 돌보는 것을 기꺼이 즐기면서 행복에 겨워 노래까지 부르며 지낸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는데 홍방울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온몸이 펄펄 끓고 맛있는 벌레 요리도 먹지 않는다. 새장은 온갖 정성으로 돌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어느 날 까마귀가 와서 자물쇠를 부숴주면서 얼른 새장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 그 안에 있다가는 병들어 죽는다고. 홍방울새가 막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새장은 슬픈 목소리로 무엇이든 다 해줄 테니 떠나지 말라고 한다. 그 소리에 홍방울새는 차마 떠나지 못하고 새장에 남는다. 
새장은 밤새도록 홍방울새를 돌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새장은 나무의 정령에게 홍방울새를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나무의 정령은 “하늘을 나는 새가 날지 못해서 생긴 병은 나도 어쩔 수가 없단다.” 라고 한다. 밤새도록 찢어지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린 새장은 다음날 홍방울새를 내보낸다. 날아갈 힘도 없던 홍방울새는 날개가 저절로 활짝 펴져 멀리멀리 날아갔다. 
  홍방울새가 날아간 새장은 덜커덕덜커덕 흔들리며 춥고 외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해진 홍방울새는 다시 새장에 들어와 잠을 잔다. 다시 마법에 걸린 새장은 자장가를 불러주고 편안하게 쉴 수 있게 해 준다. 달라진 것은 새장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는 것이다. 

  새장과 홍방울새 이야기는 지극 정성으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와 닮았다. 어렵고 힘든 일은 내가 다 해 줄 테니 너는 편안하게 내 울타리 안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라. 아이의 생각보다는 내가 더 많이 살아봤고 경험이 많은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으니 내 말을 다 믿고 넌 나만 따라와 하는 듯하다. 새장 안에만 있던 홍방울새처럼 자신이 날개가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새장이 해주는 대로 있다가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시름시름 앓게 될지도 모른다. 

  새는 하늘을 날아야 행복한 동물인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니 새장 안에서 병이 들게 된 것이고, 아기였던 손녀는 이제 성인이 되어 자기 앞 가름을 해 나갈 수 있는데도 할아버지식대로 사랑을 주게 된 것이 손녀와 사이가 멀어지게 된 이유였다. 

  새나 식물이나 사람이나 그것을 돌보는 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삶을 스스로 펼쳐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일 뿐이다. 적·당·한·거·리를 두고서 말이다. 
 「적·당·한·거·리」(전소영, 달그림) 이 책은 식물들 돌보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딱 내 책이네~.”하면서 왔다. 식물들의 특성을 잘 파악해서 물을 주어야 할 때, 겨울이면 밖에 두어도 될 식물, 안으로 들여놔야 할 식물, 햇빛을 좋아할 식물, 그늘에 두어도 될 식물 등등 그 식물의 특성에 맞게 도와주어야 한다. 
  물을 가끔 주어야 할 식물에게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뿌리가 썩게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또 물을 자주 주어야 할 식물이 목말라 하지 않도록 잘 관찰하고 그 특성에 맞게 도와주는 일 참으로 어렵지만 잘만 하면 아주 기쁘고 행복한 일이 된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

 

*시흥5동 금천마을공동체지원세터 1층에 마련된 기록관에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展(전)이 6월21일부터 7월19일까지 진행됩니다. 17살이 된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지난 이야기들과 기억속의 사람들, 기록물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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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몰려와 책을 보고 잠시 두런거리다가는 다시 훅 나가버린 어느 오후, 갑자기 찾아온 적막에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한참 서성거렸지만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닌지라 얼른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 가보았다. 그림책 하나가 바로 꽂히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있다. 
 그림책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의 표지에는 한 할아버지가 작은 집 앞에서 역시 작은 마당을 쓸고 있고 푸른색을 전신으로 입고 있는 투명한 느낌의 사람이 마주 서 있다. 
 50년을 넘게 혼자 살아온 할아버지는 언제부턴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결국 모습을 드러내는데 다름 아닌 귀신이었다. 일본인이었던 이 귀신은 자신의 비석을 찾으면 유골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문기사에 흥분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귀신을 알아보게 되자 당장 자신의 비석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자신의 비석이 있는 곳에 할아버지가 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집 가스통 받침으로 쓰던 비석은 귀신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그의 것이 아니었다. 죽은 날짜가 다르다고 했다. 침통해하는 귀신이 불쌍해진 할아버지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귀신은 자신이 숨겨둔 은을 찾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비석을 함께 찾아줄 것을 부탁한다. 할아버지는 아주 힘들어하면서도 일단 동네를 뒤진다. 
 도저히 더 이상은 찾을 수 없다고 하자 귀신은 풀이 죽는다. 할아버지가 왜 이 땅에서 죽었는지 묻자 귀신은 자신이 100년 전에 고향 대마도를 떠나 돈을 벌러 부산에 정착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병이 들어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자신은 열다섯 살에 전쟁으로 피난을 가야했는데 장남인 자신을 먼저 보내고 따라오겠다는 부모님은 영영 만나지 못했고 고향인 연백은 북한땅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귀신과 할아버지는 이제부터 열심히 귀신의 비석을 함께 찾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 그림에서는 같은 그림에서 도드라지지 않았던 할아버지네 댓돌이 보인다. 그 댓돌에는 한자로 뭔가 잔뜩 써져있다. 아마도 그것이 귀신이 찾던 비석이 아닐까 싶었다.
 책의 뒤쪽에 작가가 쓴 이야기를 읽고서야 이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부산 아미동은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다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시절에 우리나라에 있던 일본인들의 무덤이라고 했지만 작가는 조선시대 무역을 담당했던 초량왜관에서 일하던 일본인들의 무덤도 이 곳에 섞여있다고 했다. 책에 나온 귀신도 그런 사람이었다. 
 일본인들은 무덤 앞에 비석을 많이 쓰는데 3층으로 짓는 경우도 많았다. 전쟁이 나고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면서 천막조차 칠 곳이 없던 이들이 일본인 공동묘지터에 있던 비석을 주춧돌 삼아 집을 짓기도 하고 비석을 이용해 담벼락도 만들고 했다. 죽음에 대해서는 엄숙함을 갖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도 전쟁의 날벼락 속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는지 비석들은 뒹굴거나 벽으로 이용되고 가스통 받침으로 지금까지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관련 사진을 보고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일본사람들의 공동묘지라면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있던 사람들이고, 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잘 지내기보다는 뭔가 군림하던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그럼에도 이들의 비석이 거리를 뒹굴고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고 심지어 유골항아리들이 훼손되는 경우도 많았다니 그것이 바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시는 이곳을 비석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뜻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마을에는 관광객을 위한 것인지 작은 인형들도 만들어놓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도깨비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일본의 요괴 오니의 형상이었다. 일부러 일본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다행인 것은 주민들 중 일부는 일본인들의 영혼을 위해 향을 피우며 죽은 넋을 위로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니 아이들은 슬픔과 위로를 이야기한다. 슬픔은 다른 색으로 두 사람에게 있고 위로는 두 사람이 다 필요하다고 했다. 고학년이라 생각이 의젓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그림은 말없는 위로를 느끼게 한다. 
 비록 우리를 아프게 하고 억압하던 이들이라도 죽음의 세계로 떠난 이들은 적절한 존중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터에 자리를 잡아야 했던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은 더 존중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실현되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양쪽 다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민경아 

이영아 글·그림/ 꿈교출판사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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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날 수줍음 가득 미소를 가진 여인이 도서관에 들어오며 ‘염소 시즈카’ 그림책이 있는지 묻는다. 처음으로 우리도서관을 방문 하셨다고 한다. 시즈카(しずか)- 일본 말로 ‘조용함,- 다시마 세이조 책을 소개 받았고, 함께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을 소개 받으셨다고 한다. 수줍음 가진 여인은 ‘시즈카 그림이 참 좋네요’ 그림책을 보며 좋아하신다. 다시마 세이조의 순수한 그림과 자연 사랑을 닮은듯한 이분은 책을 빌려 본인의 화원(꽃과 생활)에  그림책을 전시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알게 된 ‘염소 시즈카’ 그림책은 학교에서 책읽어주기 활동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이 되었다. 200페이지나 되는 긴 그림책인데도 아이들은 이야기 속에 쏙 빠져 들어온다. 노랑 바탕의 표지에 가느다란 다리로 커다란 몸을 무겁게 지탱하고 있는 염소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귀여워 아이들은 책장을 쉽게 넘기곤 한다. 또한  글이 세로쓰기로 쓰여 있어 옛 책처럼 책장을 반대방향으로 넘기는 느낌은 아이들에게 더욱 새로움을 경험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단순한 그림과 다양한 각도로 바라 본 자연스러움의 조화, 역동적인 이미지와 천진함이 어우러진 표현은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듯 빠져들게 한다. 한숨 돌려 다음 시간에 읽어주겠다 하면 아이들은 ‘지금요 지금요’을 외친다. 시즈카의 그 다음 사건이 너무도 궁금하다고 한다.

 아기 염소 시즈카의 봄부터 겨울, 다시 봄이 올 때까지의 시간을 그리며 엄마 염소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나호코 가족과 시즈카가 친해지는 이야기, 말썽을 피우며 자라고,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새끼를 낳고, 스스로 선 새끼를 본인처럼 홀로 떠나보내는 이야기, 가족의 양식이 되는 시즈카 젖을 짜는 아빠이야기, 다시 말썽을 피우는 시즈카 이야기 -일곱 편이 한 권의 책 안에 들어 있다. 

 어린 시절에는 들판에서 풀을 뜯던 염소들을 무섭게만 여겼었는데 시즈카 이야기는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 한다. 
 ‘염소 시즈카’ 책을 알게 해준 여인, 지금은 도서관 독서 동아리에 참여하여 책을 읽고 있다. 그분께 ‘염소 시즈카’ 그림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만남부터 하고도 아직까지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 봄이 가기 전에 마음을 나누어야겠다. 조용히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시미선 

 

다시마 세이조 지음 / 보림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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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시간상자라는 제목이 맘에 들었던 그림책이었다.
모래사장을 연상시키는 면지를 지나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서 그림책은 시작된다. 
글자가 없는 그림책이라 더 흥미로웠고, 글자가 없지만 글자가 있는 그림책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었다. 소년이 파도에 떠내려 온 오랜 시간 바다에 잠겨 있었을 것 같은 수중카메라를 발견하면서 그림책은 시작된다. 
‘영화 주만지‘의 주인공 아이들이 그림책을 발견 하는 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왠지 나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 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바다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은 환상 속에 점점 책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페이지 하나하나마다 숨겨져 있는 비밀들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아 오랜 시간 페이지 구석구석에 머물게 했다. 읽고 났을 때는 마치 영화 한편을 보는듯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 그림책이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데이비드 위즈너’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나는 ‘데이비드 위즈너’의 팬이 되어 버렸다.
나에게도 시간 상자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어릴 적 아버지가 어렵게 장만하셨던 카메라는 항상 나와 동생을 따라 다녔고, 소풍이나 나들이를 갈 때면 항상 아버지의 가슴에서 자랑스럽게 빛나곤 하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핸드폰 액정이나 디지털화된 화면을 통해 바로 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고,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면 사진인화를 통해 잘나온 사진, 이상한 사진들을 한꺼번에 받아서 잘나온 사진만 앨범에 꽂아두던 시절이었다. 읍내에 나가 사진을 찾아와서 함께 보고 내사진이 잘나왔네 못나왔네 웃고 장난치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까만색 투박한 시간 상자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떠오르고 이제는 내 옆에 안 계시는 아버지가 너무나 보고 싶다. 잦은 이사를 하며 앨범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때의 사진들을 지금은 볼 수 없어 많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때의 추억들은 내 가슴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 상자를 만들고, 가끔씩은 꺼내보고 때로는 위로를 받는다. 어떤 이에게는 시간상자는 추억으로 소중함으로 기다림으로 그리움으로 간직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모두에게 아름다운 시간 상자를 선물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윤 숙 

 

 

데이비드 위즈너 / 베틀북

 

강렬한 빨강색에 카메라 렌즈 같기도 하고 물고기의 눈 같기도 한 표지가 눈길을 끄는 데이비즈 위즈너의 <시간상자>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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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4월입니다. 올 해도 어김없이 그날이 돌아옵니다. 벌써 5주기라니 세월이 참 무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관련된 이가 없어도 4월은 힘이 드는 달입니다. 도서관에서도 한 켠에 추모의 뜻을 담아 관련 책을 전시하고 노란 종이배를 접어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이 주로 어린아이들인지라 내용은 잘 모르고 어설프게 종이배만 접어서 벽에 붙여 놓지요. 조금 더 자라면 알게 될 일이라 억지로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내용도 모르고 <우연한 빵집>을 읽어보려 집어든 날이 마침 4월 16일인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겠지만 읽다 보니 그날이 지나고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한적한 동네 주택가 뒷골목에 빵집이 하나 있어요. 간판도 가게 이름도 없이 그저 자그마한 빵집입니다. 빵집 주인은 소설가가 되려고 방황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레시피와 빵집을 물려받습니다. 그 덕에 오래전 친구를 만나게 되지요. 그 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그 배를 탔어요. 약혼자를 남긴채...
유난히 빵을 좋아하던 윤지는 태환이와 진아의 친구입니다. 학교가 다른 두 아이는 윤지를 보내고 마음을 잡지 못하지요. 이 작은 빵집을 정말 우연히 발견하고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된 하경이는 오빠가 군대에서 의문사하게 된 아픔을 가진 아이입니다. 
이렇듯 저마다의 사연은 빵집을 매개로 이어지는데요, 때로는 눈물의 빵을 씹으면서, 혹은 말랑한 빵 반죽을 만들면서요. 그리고 작은 빵집에 그들 모두를 초대하는 베이킹강좌가 열리게 되고 모두는 빵집으로 향합니다. 빵집주인은 그 뒤 뭘 할까요? 짐작하는 대로입니다. <우연한 빵집> 소설을 시작하는 것이죠.
빵집 이야기라 여러 가지 빵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져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말랑한 반죽으로 하얀 속살을 가진 따끈한 빵이 나올 때면 빵순이는 그저 침이 꿀꺽하니 넘어갑니다. 가벼운듯하나 자꾸 먹먹하게 하는 책입니다. 아직 그날에 대한 일은 다 밝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정치화하는 사람들로 인해 비난도 무성하지요. 그들을 보내고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그저 돈의 잣대로 재는 이들이 더한 아픔을 주는 게 작금의 사정입니다. 
빵집의 사람들처럼 반가운 소식도 늘어갑니다. 희생자 엄마들이 모여 연극무대를 펼치고 생존 학생 중에는 유치원교사의 꿈을 접고 응급구조사가 되려는 친구도 있어요. 같이 응원합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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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책도둑/ 마커스 주삭 / 문학동네


등과 팔…늘 이들을 혹사하면서도 고마운 줄 모르고 생활하다가 이들이 아픔으로 비명을지를 때 낯선 곳에 누워 각종 검사를 하고는 뒷목을 갈라 목에 붙어있던 놈을 떼어냈다. 힘든 일이어서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지만 다시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누군가에게 많이 고맙고 되도록 착하게 살아야겠다 싶었다. 소개하려는 책 '책도둑'은 병원생활을 한 달 넘게 하던 때에 읽었던 책이다. 

마음도 힘들 때였지만 사실은 몸이 말을 안 듣던 때였고, 무엇보다 난생 처음 겪는 이 일이 낯설고 무섭게만 느껴졌을 때였다. 누운 채로 팔을 이용해 간신히 읽어 본 이 책, 다 읽고 난 후에는 뜨거운 국물이 빈 속을 타고 가듯 마음에 한줄기 자국을 남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사람답게'라는 지극히 평범한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책도둑'은 무거운 이야기지만 소설 전체에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죽음의 신이 화자가 되어 잔잔한 이야기를 한다. 유대인이 핍박받는 이야기가 주되었던 2차 세계대전 이야기지만 책도둑은 그 시절을 살아낸 독일 사람들 이야기이다. 가해자로만 나오지만 무심한 눈길의 주인공이던 독일사람들... 대부분의 문학작품에서 이들은 그런 모습이었다. '책도둑'은 책을 도둑질하는 소녀의 이야기이면서 전쟁을 겪어내는 독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전쟁을 일으킨 그들이지만 사실은 '그들'이라고 할수 있나싶을 정도로 평범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다.전쟁은 누구도 행복하게 하지 않았다. 이들도 공습과 굶주림에 직면했고 힘들게 살아간다. 주인공 리젤의 상황에서 책이란 미지의 세상이기도 하고 현재의 방공호이기도 했다. 글을 떠듬거리며 읽을 정도로 서툴렀던 리젤은 차츰 책을 알게 되면서 다른 불안을 느끼는 주민들과 방공호에서 책을 읽는다. 그 내용이 무엇이건 주민들은 리젤의 책읽기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리젤의 양아버지는 은혜를 입었던 유태인 친구의 아들을 돕는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을까 의심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전쟁의 책임이 옅어질 수 있다는 조바심도 나올 수 있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 상황이 분명 있었을 것으로 믿게 되었다. 사람의 생활, 평범한 이들의 삶과 사랑과 우정은 어디에서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각종 전쟁 영화나 문학작품에 나오면서도 늘 박제화 되어 있던 독일사람들을 모처럼 숨결을 지닌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기뻤다.이 책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건 문장이 간결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내용에서 그대로 영화장면이 떠오를 정도다.(이미 영화로 나왔는데 깡마르고 이지적인 리젤을 상상했던 나는 지나치게 예쁜 주인공에 조금 실망..) 유대인과 우정을 나누고 은혜를 갚는 독일인.. 작가는 실제부모님이, 끌려가는 유대인에게 빵을 주고 채찍을 맞던 독일인의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 작가는 그것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책과 말이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사는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말한다. 히틀러의 '마인 캄프(나의 투쟁)'이라는 책과 공습에 사람들의 불안을 덜어주었던 리젤의 책읽기는 같은 말과 글이지만 얼마나 다른지…

특별한 사건과 소음이 없는듯 한데도 조용히 눈물이 흐르는 책이다. 마음을 적시는 책이다.나의 말과 나의 책들은 내 삶을 어떻게 바꾸고 혹은 가꾸고 있는가... 책을 도둑질하고 그 안에서 안식을 구하는 작은 여자아이, 그의 훔친 책이 불안한 다른 이웃들에게 어떤 위안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민경아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당나귀 가죽




샤를 페로 글. 페리 그림. 계몽사 어린이 세계의 동화


요즘 유행하고 있는 하얀 토끼발모자를 매일매일 쓰고 다니는 딸아이를 보니 <당나귀 가죽>이 생각이 난다. 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집 중 하나인 <당나귀 가죽>은 여타의 공주님들과 조금 남다른 행보를 걷는다.취직을 하는 공주님이라니! 멋지다. 어느 나라의 왕비가 병사하자 그녀를 못잊은 임금님은 왕비를 가장 닮은 딸, 마리아를 왕비로 맞이하기로 한다. 경악스럽지만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어린이들의 정신붕괴를 막기 위해 왕비의 여동생으로 편집해놓는다.마리아의 유모는 영리해서 왕에게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드레스, 훌륭한 달밤의 드레스, 태양의 빛을 머금은 듯한 드레스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페리의 그림을 보면 이 드레스들이 예뻐서 입이 쩍 벌어진다. 수채화인데도 질감이 느껴지게 그리다니 이야기가 더 생생해진다.임금님은 능력자셨다. 그 어려운 걸 척척 해내셔서 마리아는 울면서 유모에게 달려간다. 유모도 만만찮다. 왕가의 보물인 귀를 흔들면 금화가 나오는 당나귀를 죽여 가죽을 달라고 하라고 시킨다. 이쯤 되면 유모는 혹시 스파이가 아닐까 싶다. 신하들의 만류를 말리고 당나귀는 가죽이 되어서 마리아에게 왔다.유모는 당나귀 가죽을 우리 딸처럼 마리아의 머리에 씌워주고 예쁜 얼굴에 검댕을 묻혀주며 이웃나라로 도망가라고 한다.그렇게 지체 높은 아가씨는 농가에 취직해서 마당청소와 돼지 먹이 주는 하녀 일을 하면서 고되게 살아가다가 우여곡절 끝에 이웃나라 왕자님을 반하게 해서 결혼을 하는 이야기다. 왕자랑 만나는 계기도 재밌지만 내용을 다 알려주면 재미없으니까 생략한다. ㅎㅎ마리아의 결혼식에는 임금님도 오셔서 자기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하면서 훈훈하게 끝난다.역시 동화다. 보통 전쟁이 나야 할 법한 상황일 텐데 쿨한 임금님께 감탄한다.우리 어린이들이 토끼 가죽(?)을 뒤집어 쓰고 이성과 썸도 타고 즐겁게 살아가는 나날이 되길 바란다. 물론 이 가죽은 흉측하지 않고 귀여움을 증가시킨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김지현



*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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