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대한 초등학생의 생각

 

요즘 초등학생들의 학원 이용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이에 맞춰 초등학생들이 학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기 위해 서울문성초등학교 6학년 학생 61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학생들의 73.8%가 학원을 다니고 있었으며 26.2%는 학원을 다니고 있지 않았다.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의 68.9%가 일주일에 5~6회 학원을 다니는 것을 보면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보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설문조사 응답을 보면 초등학교 6학년 학생 대부분이 학원을 다니는 것을 싫어함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학생들이 학원에 다니는 이유가 궁금해 서울문성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학원이 필요한지 물었다.
 19.7%는 ‘학교에서 집중을 잘하고 집에서 개인적으로 공부해도 충분히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어서 학원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답했고, 29.5%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거나 예습을 해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학원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가장 많은 의견인 50.8%는 ‘초등학교는 학교 공부가 딱히 어렵지 않고, 어렸을 때는 뛰어놀고, 공부가 어려워지는 중고등학교에 가서 학원을 다녀도 되므로 지금은 학원이 필요하지 않지만 후에는 학원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서울문성초등학교 6학년 61명의 설문조사를 보면 10명 중 7명이 학원에 다닌다. 그런데 그중 5명이 학원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표현하며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뛰어놀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초등학생으로서 이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부모님께서도 자녀들의 공부를 위해 학원에 다니게 하는 것이지만 부모님의 관심과 지도가 자녀들에겐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초등학생까지는 공부보단 다양한 체험과 놀이로 즐겁게 공부하고 싶다. 체험을 통해 얻는 것이 많다는 걸 많은 어른들께 알려 드리고 싶었고, 학원을 다니는 초등학생들에게 힘을 내라고 전하고 싶다.

문성초교 6학년
박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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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207

 

김학의가 무죄가 선고됐다. 어쩌란 말인가? 어쩌잔 말인가? 페이스 북에 공유된 글을 본다. [양진호 무죄, 김학의 무죄, 윤중천 무죄, 미성년자 불법 포르노 운영자 1년 6개월, 소라넷 운영자 징역 4년 추징금 14억 천만원 취소, 양진호 위디스크 사이버 포주 벗방 채널 개설, 최종범 강남 미용실 개업 성업 중. 소라넷 미동의 동영상으로 피해자 여성들 자살, 피해자 설리 타의에 의한 자살, 피해자 구하라 타의에 의한 자살. 이래도 모르겠나? 이렇게 설명해 줘도? 이래도 이 세상이 공정하고 여성 혐오가 없다고...] 남성으로 남성의 구조적 특권, 내재된 습성, 복구되고 마는 가부장적 관성을 반성하고 비판하고 또 성찰한지 30년, 그래도 나는 저 무참한 관성과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죽음 앞에 더 할 말이, 아무 할 말이 없다. 무참하다.    

돌아보면 유죄가 무죄가 되고 무죄가 유죄가 되는 것이 역사다. 지금의 무죄는 역사 속에서 무지와 공포와 혐오와 증오가 되고, 지금의 유죄는 인류 앞에서 저항과 해방과 평등의 이름으로 무죄가 된다. 하지만 그 역사라는 말 속의 시간과 공간에는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이, 말 못할 고통과 인내와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지... 현실에서 법으로 무죄를 유죄로 만드는 것은 돈이다. 무죄를 유죄로 만드는 것은 권력이다. 그들의 유착이 그 시대의 지배적 구조를 검게 물들인 결과다. 탈옥한 지강헌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로 그 본질을 꿰뚫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유무죄를 법으로 결정하는 것은 가난과 차별이다. 소외와 폭력이다. 그것을 요약하면 민중에게 들씌운 유죄를 무죄로 만드는 역사지만 눈앞에서 무죄를 유죄로 만들고 유죄를 무죄로 만드는 마법의 힘은 결국 돈과 권력이다. 

우리는 그 적나라한 장면을 또 목격한다. 심지어 유죄지만 무죄란다. 공소시효가 지났단다. 김학의 사건이다. 김학의가 법무부 차관이 되었다가 범죄 마각이 들어 난 것이 2014년, 그 동안 세 번의 수사가 있었는데 두 번 무혐의, 마지막 한번 유죄라는데 공소 시효가 지나 무죄란다. 하지만 이 ‘비극적 희극’을 만든 것은 공소시효라는 시간이 아니다. 만약 공소시효가 문제라면 그 전에 두 번의 수사에 대해 우리는 눈 감고 만다. 1980년대 중후반 성동구치소에서 가장 인기 높은 이는 중풍을 맞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였다. 절둑이며 법정에 온 그는 발음도 되지 않아 손짓으로 자기 모습을 가르치면 모든 변론이 끝났다. ‘나는 이렇게 되어 먹고 살 수 없으니 봐 달라.’는 몸짓으로 유죄는 무죄가 되고 실형은 집행유예가 되었다. 이런 이른바 전관예우라는 강도행위가 아주 노골적이었고 사회적 약자들은 그런 부정부패가 제공하는 더러운 편리하도 받고 싶어 난리를 쳐야 했다. 

김학의가 무죄가 된 것은 김학의가 무죄라서가 아니다. 김학의를 무죄로 만든 구조, 그 구조에서 흉기를 휘두른 똘마니들의 합작품이다. 검사와 판사, 그전에 경찰들, 돈과 권력에 의해 세뇌되고 사주된 이들의 한판 사기극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세상의 시간에 범죄를 감추고, 그 시간을 범죄로 오염시키면서, 크고 작은 특권과 이권을 지켜온 한국 자본주의의 더러운 지배 구조의 필연적 산물이다. 그 타락의 사냥개이자 흉기 경찰 검찰 판사들이다. 그들은 법을 앞세워 법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항상 법 뒤에 숨어 망나니 칼을 휘둘렀다. 유죄를 무죄로 만든 범죄자들, 두 번의 수사로 유죄를 무죄로 만든 놈들이 여전히 법을 휘두르는 조건에서 대한민국의 시간은 범죄의 방패가 되고 말 뿐이다. 살인강도에게 살인강도의 이유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살인강도의 손에서 칼을 제거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학의의 진실보다 먼저 할 것은 그를 무죄로 만든 검찰이라는 복마전(伏魔殿)에 검사라는 흉기(凶器)를 제거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간을 범죄로 오염시키고 양심과 염치를 파괴한 흉기검사들을 응징하는 것으로 재발방지를 시작하자.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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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아프리카로 나갈 때만해도 꽤 순수했었던 하다. 그곳을 위해 이 년 열심히 일하고, 나의 잠재력도 시험해 보자며 힘이 들어가 있던 때였고, 지인들은 나의 뒤늦은 바람기에 힘을 보태주며 기부를 약속하기도 했었다. 그래서였던지 나는 내가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을 때,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신나게 일했다.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그래서 나는 내가 잘 ‘들이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 쓰는 게 아닌데, 기부금을 받는 것에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거절에도 상처받지 않았다. 
엔지오에서 일한지 거의 일 년이 되어간다. 어느 분야이던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이곳에 발령을 받으면서 나는 후원금을 모집해야 하는 상황은 예측하지 못했다. 해외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후원금을 모집하겠어? 그런 것은 본부에서 해주는 거지. 조직을 관리하고 예산에 맞춰 잘 집행하는 것만이 나의 일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본부에서 보내온 후원자 명단을 보면서 알았다. 내게 많은 부분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경력이 필요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열심히 ‘앵벌이’를 시작했다. 평생 내 ‘갑’으로의 지위를 보장하겠다는 너스레로 지인들께 손을 벌렸다. 아직 잠재우지 못한 나의 바람기를 조금은 안쓰러워하며, “그래, 나도 ‘갑’ 한번 돼보자.”라는 말로 지인들은 기꺼이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내 입에서 ‘앵벌이’란 말이 나온 후 그 일은 정말 앵벌이가 되었고, ‘갑’이란 말이 나온 후 정말 나는 ‘을’이 되어 있었다.  아무도 내게 채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지만, 나는 채무자가 된듯했다. 순수한 열정의 산물이 아닌, 조직에 대한 의무가 나에게 그 일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길에서, 혹은 일하는 도중 죽고 싶다. 아프리카는 그러기에 좋은 땅이다. 이곳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었다. 나는 살아남았고, 아프리카 생활만 만5년이 되어간다. 지금은 조직을 관리하고 조직에서 운영하는 프로젝트 전반을 책임지고 있지만, 계약이 끝나면 프로젝트 매니저로 오지에서 한 번은 활동해 보고 싶다. 그 후 한 학년에 한 반만 있는 작은 학교를 운영하며 정원사가 되어 학교를 예쁘게 꾸미며 늙어가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었다. 멋지다며 후원을 약속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꿈을 접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남의 돈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감과 도덕성, 그리고 자기희생을 요구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매력적인 사기꾼이 되어야 하는데, 그만큼의 그릇은 되지 못하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궁금했다. 마더 테레사. 그녀에 대한 일화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음식을 구하러 나갔다가 모욕 받는 것을 보며, 동료 수녀가 자존심 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우리는 지금 자존심을 구하러 온 게 아니고, 아이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얻으러 온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이다.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글을 쓰기위한 확인 작업이 필요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구글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그녀를 욕보이고 있었다. ‘당신은 테레사 수녀에게 속았다.’, 성인의 반열 오른 마더 테레사…’거짓 성녀’다?, ‘성녀’ 마더 테레사는 없다. 
한 문장, 한 문장을 타고 들어가자 악의에 가득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아이티 독재자의 아내인 미셸 뒤발리에와 그녀가 다정하게 양손을 맞잡고 미소 짓는 사진을 보여주며, 후원금에 대한 반대급부로 독재자의 이미지 세탁은 물론 대중선동에도 앞장섰다는 내용이 보인다. 기부금에 좋은 기부와 나쁜 기부가 있을까? 쓰는 사람이 잘 사용하면 깨끗한 돈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그들을 미화하는데 일조하면 안 되지. 일단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기로 하자.
마더 테레사의 시설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집’에는 삭발한 채 한 방에 오륙십 명씩 수용돼 죽어가고 있는 말기 환자들이 있었고, 그들을 위한 구호물자나 비상약은커녕 모르핀조차 없었다. 그녀가 받은 엄청난 액수의 후원금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 돈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그녀를 다국적 선교사업체의 수장, 혹은 근본주의 종교 사업가가 아니었을까, 라며 의심하고 있다. 내가 엔지오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엔지오의 실상을 알고 난 지금은 그 의심이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나의 단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는 많은 돈이 든다. ‘사랑의 선교회’는 123개 국가에서 610개의 선교단체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단체를 운영하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여정에서 만난 그녀.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성녀’의 반열에 올랐다. 얼마나 많은 검증을 거쳤겠는가? 나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나는 내 마지막 꿈을 버리기로 한다. 남의 돈으로 내 꿈을 사는 일, 하고 싶지 않다. 혹시 누군가 내가 꾸었던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어떤 이유로 자신이 할 수 없어 그 꿈을 실현시켜줄 대리인을 찾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 대리자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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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206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짜르의 장군 잘베스키는 이렇게 적었다. “일용노동자가 시장이 된다. 자물쇠 제조공이 공장주가 된다. 짐꾼이나 경비원이 갑자기 재판장이 된다. 병원의 조수가 병원장이 된다. 이발사가 관리가 된다. 상병이 총사령관이 된다. 누가 이 사실을 믿겠는가?” 
‘누가 이 사실을 믿겠는가?’ 귀족도 영주도 지주도 아닌 것들이 사회 정치 경제의 주역이 되는 세상을? 그러니깐 봉건전제가 민주공화제로 바뀌는 역사를 짜르의 장군은 상상도 못했다. 
우리는 21세기 서울에서 짜르 장군의 환생을 본다. 육군 대장 출신 박찬주다. 부모 갑질이라니, 상사 갑질이라니, 선생 갑질이라니, 그것은 세상을 지탱하는 등뼈이자 훈육의 고갱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이런 위계질서를 흔드는 것들은 당연히 ‘삼청교육대’에 보내야 하는 것이다. 
삼청교육대는 80년대 초반 전두환이 사회를 억압했던 두 가지 공포 “광주 학살”과 “삼청교육대와 백골단”의 상징이다. ‘감히 반대를 하려면 목숨을 걸어라, 까불면 다 죽는다.’는 협박의 흉기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느슨해진 심신을 다잡는 ‘극기 훈련’이라 한다. 그러니 그에게 갑질이란 말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일까? 수직적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니, 수평적 존중으로 조직이 굴러갈 수 있다니, 아랫것들 그러니깐 천한 것들이 가진 권리라니... 이 무슨 하늘과 땅이 거꾸로 서는 소리란 말인가? 
이렇게 노골적인 것은 사실 걱정도 되지 않는다. 왜냐면 보편과 상식의 눈에 그들의 낡아 썩어 문드러진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찬주라는 전형적인 괴물 꼰대로부터 황교안과 그의 주변, 광주학살이 구국의 결단이고, 삼청교육대가 극기 훈련이니, 고문은 아마 정신 교양 쯤 여기는 저들이 실은 친일 후예들일 뿐 아니라 독재자의 적자들임을 친절하게 되새기게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근데 여기 또 다른 낡음이 있다. 1973년 대구 태생으로 KAIST 전산학과를 나와, 게임개발사와 벤처투자사를 거쳐 스타트업을 한, “성공한 1세대 벤처기업인”으로 “소탈하고 수평적 리더십의 소유자“로 문재인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장병규라는 분이다. “내일 당장 망할지 모르는데 벤처가 어떻게 52시간 지키나” “나는 20대 때 2년 동안 주 100시간씩 일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내 인생을 위해서 한 거다. 스타트업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스타트업에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를 뺏는 거다.”(중앙일보) 이 정도면 박찬주가 전두환 시대에 산다면 이 젊은 개혁가는 박정희의 유신시대를 만들고 있다. 법과 관련된 인권적 의식은 한 200년 전쯤인데 그가 미래 혁신 혁명의 대표라니 정말 앞이 캄캄하다. 
기성의 택시에 비해 ‘타다’라는 것이 혁신인데 이를 낡은 법 의식이 가로막는다고 하고 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승객을 골라 태우는 것이 기존의 택시라면, ‘타다’는 승객이 차를 골라 타고,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어서 서비스의 혁신이라는 것이다. 자가용처럼 부리는 택시는 참 좋지만 그 편리함에 운전하는 노동자가 제거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새벽에 배송되는 택배의 신선함에 밤새 배달하는 노동자들의 피땀이 흥건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 소비자 중심의 사회, 생산자,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능멸, 이것이 바로 가장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옥화라는 것을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퇴행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깐 군대장 출신 박찬주가 낡아 보이지만 이른바 “성공한 1세대 벤처기업인으로 성공, “포브스 선정 2019 한국 부자 순위 47위“ “자산 8억9000만 달러(1조 513억 원)”를 가지신 것도 모자라 청와대 핵심을 차지하신 이분이 나에게는 군내 악취가 더 난다. 과거를 고집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로 퇴행을 포장한 이 교활함에 치가 떨린다. 그래서 묻는다. ‘천박한 과거’ 박찬주 황교안과 ‘미래 팔이 과거’ 장병규 문재인, 지금 누가 더 낡았는가?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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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통신 시즌2>

 

나는 참 속물이다. 보여 지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을 하면서도 과정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하지만,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결과 없는 과정은 경험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나만 유독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조금 심한 게 아닐까 생각되면, 나의 속물  근성이 부끄럽다 못해 자괴감마저 든다.
큰 행사를 치를 때면 나의 고질병이 더 크게 발현되는데,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초대 손님. 해외에 있다 보면 한국 측에서 가장 큰 손님은 말할 것도 없이 대사. 현지 측으로는 대사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정부 관료를 선정하려고 애를 쓴다. 귀빈의 수준 여부와 행사 규모는 보통 정비례하는데, 행사 규모를 넘어서는 욕심을 부려 과한 수준의 귀빈을 모시면 행사가 빛이 나는 건 명약관화한데, 그에 비례해서 데미지를 감수해야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끼리 조촐하게 행사를 치르면 실수도 재미로 반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반해, 판을 키우다보면 작은 실수에도 긴장하게 되어 더 큰 실수로 이어진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인데, 축구리그 폐막식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서두르다 보니 꽃꽂이용 전지가위를 잊고 나온 모양이다. 분명 챙긴 것 같았는데, 가방을 바꾸면서 빠진듯했다. 다행히 운전기사가 내민 면도용 칼을 사용해 어찌어찌 테이블용 꽃꽂이를 하고 있는 중에 우리 측 귀빈들이 속속 도착한다. 교통 정체를 고려해 일찍 나서다보니 시작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것이다. 
손님맞이 하랴, 귀빈석 세팅하랴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행사 시작 시간이다. 우리 측 귀빈은 모두 와서 자릴 잡았는데, 현지 귀빈들은 아무도 도착을 하지 않는다. 마음만 급해 전화를 하고 있는 중에 축구리그 PM인 베아트리스가 와서 큰일이 생겼단다. 무슨 큰일? 이것보다 더 큰 일이 또 뭐가 있어? 경찰이 왔단다. 주변학교에서 국가고시를 치르고 있으니 행사를 취소하라고 한단다. 이곳이 교육센터라 다양한 시설이 모여 있는데, 축구장 바로 맞은편에 있던 학교에서 국가고시를 치르고 있는 중이었나 보다. 우리와 파트너쉽을 맺고 있는 단체의 장이 교육센터장까지 겸하고 있기에 그가 앞서 정보를 주었기 때문에,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느닷없이 경찰이라니... 그것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날짜를 잡은 거냐고 종주먹을 들이대고 싶었지만, 지금 잘잘못을 따지고 있을 틈이 없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는데 어쩌겠는가? 수습은 차후에 해야지. 경찰 병력을 몰고 오기 전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겠다는 전의로 밀어붙였다. 다행히 시간이 조금 지나자 현지 최고 귀빈이 도착했다. 주요 귀빈의 참석으로 행사는 시작되었는데, 오프닝 행사를 마치면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운동장으로 옮겨 결승전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제일 힘 있는 현지 귀빈의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다행히 그가 방패막이가 되어 주어 행사장을 옮기지 않고 침묵 속에서 결승전을 치렀다. 힘이란 좋은 것이란 걸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시상식까지 마치고 식사 시간. 귀빈석 오른편 천막 아래, 잔치 음식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한 번도 드셔보지 못하셨을 현지식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고 가시지요? 추억이 될 텐데.”

대사는 이미 여러 차례 만나 그분의 성정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대사 부인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기에 혹여 불편해 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역시 부창부수. 오히려 현지 귀빈이 일국의 대사를 어떻게 운동장에서 식사를 하게 할 수 있느냐며, 근처에 있는 호텔로 자릴 옮겨 따로 식사를 하자고 한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대사도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대사부인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식용바나나 레시피를 물어보며, 늘 한국음식만 요리해 먹었는데 도전해 봐야겠단다. 대사는 점심을 먹고 가지 않았으면 서운했을 뻔 했다며, 아주 맛나게 점심을 먹는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행사에 느닷없는 복병을 만나 초반에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여기는 아프리카가 아니냐며 언제든 변수가 있는 곳이니 마음 쓰지 말라고 도리어 위로하고, 늘 대접 받으며 생활했을 두 분이 운동장 탁상에서 조악한 식사를 즐겁게 하며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거. 멋지지 않은가! 절반의 성공에 그쳤지만, 좋은 사람들 덕분에 실패했다는 자괴감을 털어버리고, 일 년 동안 애쓴 행사의 마무리에 방점을 두기로 한다. 베아트리스에게도 잘했다고, 마음고생 많았다고, 안아 주어야겠다. 그리고 나에게도 칭찬을 해주어야겠다. “폼생 폼사면 어때? 너답게 잘 살고 있어.”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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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204

 

2013년, 박근혜 사퇴를 촉구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에서 박창신 신부가 한 발언 중 ‘NLL과 연평도’ 관련 부분만 꼬투리 잡아 당시 박근혜 대통령, 정홍원 총리, 황우여 대표에서 윤상현, 김태흠, 유승민 등등 새누리당 의원과 어버이연합과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들까지 집단으로 막말과 협박을 쏟아댔다. 그들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박 신부의 조국이 어디냐?”고 물었다. ‘구속시키라’는 구호는 점잖고, 성당에 난입, 화형식을 해대며 ‘즉각 사형에 처하라.’는 요구를 했다. 그때 박근혜는 “국민과 국론을 분열시키는 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며 국론의 통일을 강조했다. 
국론 통일을 말하면서 견해가 다른 이들을 ‘비국민’이라 하는 것은 100% 일본 군국주의 산물이다. 이 말의 존재 자체가 아직도 한반도 남녘에 일제의 정신적 문화적 식민노예의식이 절대적 위력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광화문과 서초동 대규모 집회를 ‘국론분열’이 아니라 “대의정치가 민의를 반영하지 못했을 때 국민들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 행위로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본다” 했다. 물론 여기서도 국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나 직접 민주의 보완제도인 대의민주주의를 근본으로 보며 민주주의 본말을 전도시킨 근본적 한계는 여전하지만 말이다.
국론은 없어야 한다. 있다면 정책에 대한 정부 정당의 입장이 있을 뿐이다. 국론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국론이란 말로 모든 이의 일치와 복종을 요구하면서, 이견이 있거나 따르지 않는 사람을 ‘비국민’이라하기 때문이다. 이런 낱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일제가 1930년대 후반 국가총동원법이 내리면서부터다. 조선 등 식민지를 포함한 일제 군국주의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애국심이라 선동하면서 정부를 비판하는 모든 것을 격리, 차별 증오하기 위해 만들어 낸 장치다. 국가와 정부를 일치시키고 관료체제를 국민 봉사 체제가 아니라 감시 동원체제로 만들어 버리며 국론을 분열시키는 존재를 비국민으로 만든다. 그 최근 버전이 ‘종북좌빨’이다. 국론이란 말 자체가 군국주의 파시즘이자 지독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다. 민심은 변하는 것이고 발전하는 것이며 계급계층의 이해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사상 양심의 자유가 필요한 것이고 공화주의와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고 헌법 전문에 저항권 정신이 적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국론분열을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머릿속에 일본과 미국, 군부독재와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구조적 적폐의 축이 살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당 시절에 ‘너의 조국이 어디냐’ 묻던 이들이 ‘조국 물러나라’ 하고 있고, 조국에 대한 비판이 외려 애국이라던 이들이 조국수호를 외치고 있다. 총칼을 쥔 파시즘이 광장을 지배하는 파시즘으로 야누스가 되어 출몰하고 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두 광장은 출렁이는 태극기로 하나가 됐다. 저 도저한 국가주의라니... 나는 차라리 눈을 감는다. 
통일 후 첫 독일 대통령이자 법률가 출신의 보수정치인 헤어초크는 TV 토크쇼에서 “독일을 사랑하십니까?”라는 진행자 질문을 받았다. 그는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결혼 제도를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국가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결혼과 같은 제도이고 사랑해야 할 것은 독일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아내와 같은 독일 국민들이란 말이다. 사람이 먼저라고 했던 이들아, 당신들이 서 있는 광장에 고통 받는 민중, 그 사람들은 있는가?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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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한민국의 제일야당 대표가 공개된 장소에서 삭발을 했다. 이유는 법무부 장관 임명 반대에도 대통령이 무시하고 임명을 한데 대한 항의다. 누구는 잘 했다 하고 누구는 그저 그렇다 하는데 코미디라는 이도 있다. 누구 말을 앞세우고 싶지는 않지만 모양이 좋지 않다는 데 공감이 두어진다. 
삭발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보통의 이해로는 세속인이 불교에 귀의하고는 일정 수도를 거친 후 승려가 되는 절차 때 하는 의식이고, 이런 경우가 아닌 것은 이해관계에 있는 한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에게 물리적 대항이 어려울 때 자기 의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는 대개 약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제3자에게 자기주장의 공감을 구할 때 하는 행위이다. 
금번 야당 대표의 삭발은 후자의 경우이기는 하나 그런 패턴으로 보기는 좀 그렇다. 통념적인 관점 그러니까 삭발 당사자가 약자로 볼 수도 없고 또한 주장의 내용을 볼 때도 그렇다. 물론 정치판에서 의원 숫자가 여당보다 적은 야당은 상대방인 여당에 비해 약자로 볼 수 있지만 그런 구조를 약자로 보는 것은 통념에 비추어 볼 때 바른 표현이라 보기 어렵다. 삭발의 목적을 냉정히 살펴보면 자기 정파의 주장 관철을 위한 여론몰이로 보인다. 좀 우스운 비유이겠지만 국민들을 자극하여 동정을 구하기 위하여 벌이는 구차한 퍼포먼스에 다름이 없다. 
그간의 정치 상황을 볼 때 그들 정파로서는 어떤 형태로던 전기가 필요한 시점이고 그래서 정부 여당의 허점이나 실수를 살피고자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터다. 이런 중에 그들이 가시 같이 여기던 인사가 법무장관 후보가 되자 당력을 총집결하여 후보자의 결함을 찾았고, 일부 흠결을 발견하고는 이를 우호 언론의 도움을 받아 확대하였는데 상당수 국민들이 비판적 관심을 보이자 이를 후보자 낙마를 통해 책임당사자인 정부 여당에 타격을 주는 호재로 삼았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러한 야당의 강경한 반대에다 일부 국민들의 비판적 여론에도 후보자를 장관으로 임명하였는데 이러한 결정이 잘한 것인지 또는 잘못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통령의 행위는 헌법이 부여한 권리의 행사이고 그것이 법률적 하자가 없다면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다시 말하면 현재에 대통령의 권리를 무효화할 장애가 없는데도 그 권한을 부정하는 것은 헌법 규정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번 임명이 있기 얼마 전에도 야당이 극렬하게 반대한 후보자를 임명한 적이 있었는데 그 후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으면서도 이번 임명을 두고는 죽자 살자 하며 반대를 하고 뜻대로 되지 않자 야당 대표가 삭발까지 한 것은 시국을 보는 관점의 일관성 없음을 탓하는 것으로만은 해석이 어렵다. 
추측컨대 야당의 행위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즉 문제의 당사자인 법무부 장관 죽이기를 통한 유리한 정국 이끌기가 그것이다. 과거 그들이 여당이던 시절의 적폐로 국민의 신뢰 추락으로 인한 위축된 위치와 그에 따른 국면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제의 장관은 그들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던데 대한 응징적 반격도 필요한 터다. 국민들의 여론에 예민한 정치인들의 속성 상 이런 호기를 놓칠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모습 그러니까 제일 야당 대표의 삭발모습을 긍정적으로 보기가 어렵고 그래서 그런지 뉴스의 확대 편성에도 국민들은 비례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필자의 편견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에 대해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 대한 신뢰의 문제도 있겠지만 제일 야당 대표의 삭발이 필요한 사안인가에 대한 공감도가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그의 삭발에 의미를 두기에는 그가 지닌 현실적 권력이 막강하고 그런 배경에서 품위 있는 반대 표시를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일 게다. 
솔직히 그들 정당에 대한 신뢰를 두지 못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과거 그들이 집권 주체였을 때의 적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는데도 별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하면 작금에 그들이 보인 행태들이 바람직한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고 더욱이 민주주의 실현 책임 당사자로서의 기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배경으로 이번 일의 의미를 평가절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에 보여주는 그들의 행태가 그들이 가진 권위에 반한데 대한 실망이다. 
비록 문제의 장관에 대한 흠결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당사자적 책임 유무를 검찰이 조사 중이고, 임명일 현재에 그가 장관이 되어서 안 될 직접적인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를 시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부정하는 행위이므로 법치(法治)가 아니고 더욱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총력적 반대를 하는 것은 정치 의도를 가진 행위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을 압도하는 의석수 확보고 그를 바탕으로 집권 기회를 잡기 위한 정치포석이 그것이다. 이러한 추구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그러나 집권을 목적한다면 그에 맞갖은 모습이어야 한다. 국민을 설득을 하려면 발전적 국가 비전 제시와 그 달성에 설득력을 가진 정책 제시와 같은 모습이 그것이다.
집권을 위해 상대 당을 공격하는 것은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 제기에 상식이 결여되면 국민들은 공감하지 않는다. 공격을 위해 반대를 할 때는 상식범위에서 그리고 권위 있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막강한 위치의 제일 야당 대표의 삭발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2019.10.09.)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다양한 마을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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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통신 시즌2>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그 무렵 나는 사용 가능한 제품을 교육의 결과물로 내놓고 싶었다. 첫 시도로 앞치마를 만든 후, 실크 스크린으로 회사 로고와 아프리카 문양을 새기기로 했다. 원했던 결과물이 나오면 그것이 상품으로의 가치가 있는 지 시험해 볼 작정이었다. 실습 재료가 될 앞치마를 만들 솜씨 좋은 사람과 그 물건을 팔아보게 할 여성을 찾고 있던 때였다. 그녀는 마침 양장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 앞치마 샘플을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그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다시 만났을 때 내가 원하던 물건을 내밀었다. 손이 예상외로 야물었다. 가격도 그만하면 괜찮다. 실습에 필요한 개수를 파악해 주문을 넣었고, 약속 시간에 물건을 받았다. 테크닉만을 가르치던 예전의 수업 방식에서 한 단계 나아가 실생활에서 사용할 완제품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캐서린과 나의 첫 거래는 훌륭했게 마무리 되었다.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나의 바람을 이룰 수 있을까? 나는 그녀를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싶었다. 몇 번의 기회를 주고, 그녀가 주인공으로의 그릇이 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후원자들에게 감사함을 전할 선물이 필요했다. 우리 사업지의 특산물 중에 캐슈넛을 잘 포장한다면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캐슈넛을 담을 주머니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곳 전통 천인 키텡게로 복주머니를 만들어 보자.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쯤이랄 수 있는 가리야코로 가서 아프리카 문양이 새겨진 천을 떠왔다. 겉감은 바탕색이 검정색이라 속감으로는 겉이 비치는 빨강색을 선택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후 꽤 예쁜 수제 견본이 만들어졌다. 견본을 내밀며 똑같이 만들 수 있겠는지 물었다. 문제없단다. 그래도 미심쩍어 우선 한 개를 만들게 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예쁘게 만든 복주머니를 가지고 왔고, 다량의 물건을 만들게 했다. 
출장자 편에 보내야 하는 데, 날짜는 다가오는 데 물건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찌 된 건가? 여러 번 독촉 끝에 전해 받은 물건은 크기가 제각각이다. 끈이 들어가는 부분도 어떤 건 너무 넓고, 어떤 건 너무 좁아 여닫는 것마저 여의치 않다. 새로 만들 시간은 없다. 이미 약속한 것인데 건네는 수밖에. 화를 낼 수도 없고, 그저 한마디 했다. 이번 건 실망스럽다고. 그녀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왜? 아...... 왜냐고? 정말 모른단 말인가? 
한 번 더 속아 보기로 했다. 시간이 촉박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그래도 한 번은 성공하지 않았던가? 삼세판이라고 했다. 이번엔 학생용 가방 견본을 내밀며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참 잘한다.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이번엔 견본마저 전해 받지 못했다. 아프리카 생활 5년차다, 나도 알만큼 안다. 이곳을. 이곳 사람들을. 그녀에게만 목매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를 통한 성공스토리 만들기는 물 건너갔다. 그녀가 목적은 아니었으니 괜찮다. 다만, 우리가 하는 교육이 단지 새로운 경험으로 그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소득과 연결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여성의 자립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은 성공이 주위로 퍼져나가 빛이 되길 희망했다.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이글을 쓰며 생각한다. 나도 할 수 없었던 성공을, 그녀에게 요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도 무임승차하고 싶었던 것일까?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날개 기자단에서 금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강혜승 위원장님과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위원장님과 조정옥 공동대표님 두 분이 인터뷰를 하셨다) 우리 기자단은 위원장님과의 인터뷰 전 미리 인터뷰 질문을 고민하고 준비하였다. 
인터뷰 당일. 기자단 중 질문을 하는 순서를 정했는데 내가 첫 번째로 선택이 되었다. 나는 너무너무 떨렸다. ‘다른 기자 친구들이 내 질문을 듣고 수준 낮다고 수근거리거나 무시하면 어떡하지?’, ‘선생님이 내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안 해주시면 어떡하지?’ 등 온갖 생각이란 생각은 다 들었다. 
  콩닥콩닥 떨리는 마음으로 첫 번째 질문을 했다. “소녀상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 질문을 하고 나니 한결 속이 홀가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위원장님께서는 “2015년 12월에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함께 한일 위안부 협상했는데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께 진정한 사과는 하지 않고 10억엔 출연금으로 위안부 문제를 무마하려 했습니다. 이같은 협상으로 사람들이 위안부를 잊을까봐 그리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대답해 주셨다. 떨리는 나와 달리 차분히 대답해주시는 위원장님의 답변에 나는 힘이 나서 나머지 준비한 질문까지 잘 끝낼 수 있었다. 휴~ 나의 첫 인터뷰 성공!! 
  나의 순서가 끝나고 위원장님은 우리 날개 기자단과 인터뷰를 계속 진행하셨다. 다른 기자들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들도 하고 위원장님은 내가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위원장님은 우리 기자단의 질문을 잘 들어 주시고 열심히 답변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위원장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소녀상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금천구청 앞에 세워진 소녀상을 보면서 ‘위안부 동상이네~’라고 그냥 단순 조형물처럼 생각하고, 그 앞을 무관심하게 지나갔는데 두 분과 인터뷰를 하고 나니 이 소녀상을 만드는데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기부가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게 되었다. 또한 아직도 일본의 사과를 기다리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여러 봉사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동안 무관심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소녀상은 80여개 정도가 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사는 금천구에도 평화의 소녀상 있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내가 비록 아직 어려서 나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아무런 도움이 안됐지만, 이제라도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소녀상 이야기를 모르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장서희
 금나래 초등학교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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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통신 시즌2>

 

담장 없는 파란색 박공지붕 집의 현관문을 열고 그녀가 나온다. 화려한 문양이 수놓인 빨강 드레스를 입고, 함박꽃보다 더 커다란 웃음을 피우며. 앞치마를 입고 일에 열중할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사교계의 여왕 같다.
그녀가 내놓은 사진첩 속의 흑백 결혼식 사진. 자그마한 키에 가녀린 몸매를 하고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다. 지금의 풍만하고 당당한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순백의 드레스 속에 자신감을 꽁꽁 여며 놓았으리라. 
그녀 옆에는 키가 크고 늘씬한 신사가 자릴 지킨다. 직업학교를 다니면서 만났다는 그들은 서로의 유일한 사랑이었다고 했다. 남편을 5년 전에 먼저 보냈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단다. 인터뷰 중에 들어온 청년, 프랭크는 그녀와 함께 살며 대학에 다니고 있는 막내아들이다. 그가 사별한 남편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했다. 프랭크 속에 숨어있는 그녀의 남편을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아 보인다. 말수가 적고, 부드러운 성품에, 성실했을 그의 모습을. 
내가 페트리시아를 처음 본 건, 아니, 그녀를 처음 인식한 건, 실크스크린 교육 날이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수업이 끝날 무렵,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때마침 교육의 결과물로 앞치마가 나왔고, 내가 속한 조직의 로고를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프린트했던 것이다. 조직 홍보도 하고 교육생들에게 결과물의 효과도 바로 볼 수 있게 하기위해 로고가 찍힌 앞치마를 그녀에게 입게 하며 그녀를 기억하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꽤 오래 살았지만 특별한 인연이나 사건이 없으면, 여전히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기억이 안 되는 탓이다. 
조금 식상한 질문이긴 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물었다. 예상한 대로 결혼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우리 조직을 만나 소액대출을 통해 사업 기회를 얻은 것이란다. 그라민 은행을 롤모델로 한, 여성의 자립을 목적으로 우리나라 돈 20만원에서 100만원 한도로 무담보·저금리로 융자를 해주는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구멍가게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돈으로 무슨 사업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의 집에서 물건 몇 가지를 놓고 시작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6개월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업을 잘만 꾸리면 빌린 돈은 자본이 되고, 또다시 대출을 일으켜 물건의 가짓수를 늘리며 사업을 조금씩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가 음식배달 서비스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을 꼽는다. 우리는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고, 교육이 끝난 후 점심을 제공한다. 
배달 업자는 소액대출로 사업을 시작한 사람 중에서 요리 솜씨가 좋은 사람들을 골라 기회를 주기 때문에 그녀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그녀의 요리 솜씨는 단연 으뜸이어서 그녀에게 자주 기회가 돌아가고, 수입이 늘며 살림이 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내가 사업장을 방문한 날은 특별히 내 식판에 고기를 듬뿍 넣어주곤 한다. 그녀와 인터뷰를 하며 생각해 본다. 자신도 미처 몰랐던 사업가 기질이 싹틔워질 적절한 토양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딸 하나에 아들이 셋. 첫째 딸 빌리지니어는 그녀와 가까이 살면서 손주들의 재롱을 선물한다. 큰 아들은 다르에스살람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밑에 두 아들은 그녀의 곁을 지키며 바쁠 때는 일손이 되어준다. 남편을 일찍 여윈 걸 빼면 복 많은 중년여성이다. 50대 초반의 그녀. 아직 젊고 에너지 가득한 그녀에게 제2의 인생이 활짝 열려, 그 어느 시절보다 힘찬 날개 짓으로 비상하길 기대하는 건 나만의 욕심일까?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대법에서 최종 승소했다.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 고공 농성을 비롯한 치열한 투쟁이 만든 결과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소송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 노동자들이 불법 파견 여부이고, 두 번째는 불법 파견일 경우 파견근로자가 원청이 아닌 파견사업주로부터 해고를 당한 경우의 효력 여부다. 첫 번째는 누가 실질적으로 일의 과정과 결과를 지배하고 있는가의 문제였다. 형식은 도급 파견이지만 실제는 원청의 직접 지배를 받는 경우에 대한 불법 파견 여부를 묻는 것인데 이는 현대차와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 차례가 넘는 소송을 통해 불법파견임을 확인한 바 있다. 문제는 두 번째다. 불법 파견이면 그 이후 파견업체의 행위가 노동자들과 도로공사간의 근로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판결이다. 파견회사와 노동자간의 근로관계가 아닌 도공과 노동자간의 계약이 본질이란 것이다. 그동안 기업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직접적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에게 이중 삼중의 덫을 놓아 징계 해고 사직을 강요하는 외주화 편법이 불법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자회사를 만들고 그곳으로 가지 않으면 지시 불이행에 무단결근 등 각종 혐의를 씌워 또 다른 징계 해고로 절망을 주고, 노동위와 법원이 형식만으로 정당성을 주던 관행이 불의, 불법하단 말이다. 
이 판결의 또 다른 의의는 기만적 비정규직 대책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공적 영역 비정규직 제로를 선포했을 때 노동자들은 환호를 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자회사로 정규직화란 이름만 바뀐, 임금 등이 외려 깎인, 눈뜨고 코 베인 결과만 남았다. 이런 기만적 개혁을 시작한 것은 서울시장 박원순이고 그것을 전국화 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다. 이번 판결은 박원순과 문재인으로 이어지던 비정규직 대책인 ‘자회사 전환 정책’이 비정규직 고통을 은폐 고착시킨 부당한 짓임을 확인한 것이다. 게다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핵심 구조도 확인했다. 도로공사 사장은 이강래다. 김대중 정권 시절 전북지사였다고 한다. 그가 이번 소송에 기용한 변호사는 김앤장, 친일파를 변호하고, 가습기 살인기업을 옹호하고, 민주노조를 파괴하며 사법농단을 주도한 특권층들의 반칙과 탈법의 집사이자 저격수 그 더러운 이름 김앤장이다. 사이비 정책으로 노동자를 기만하는 청와대, 기업가의 편에서 책임에 물 타기 하며 시간만 벌어 주는 노동부, 그리고 적폐의 전문가들, 이 삼각 커넥션이 노동적폐의 축임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본 천국 노동 지옥 헬 조선에서는 노동자의 법적 승리는 아직 완전한 승리가 아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승리했지만 그것을 법적으로 보장받는 것은 피해를 당한 1,500명 중 소송 당사자인 300여명뿐이다. 나머지 1200명은 또 다시 2-3년이 걸리는 소송을 해야 한다. 현대차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동일 조건 동일 판정을 위해 열한번의 소송을 해야 했다. 돈과 시간이 넘쳐나는 자본과 한 번의 법률비용에도 생계가 바스러지는 노동자간의 차이가 사라진 곳에서 공정한 사회는 말은 지독한 고문일 뿐이다. 현존 법의 사각지대를 채우고 막는 것은 결국 현실 정치이고 노동조합과의 교섭 합의다. 해결의 결정권이 청와대와 도로공사가 불법을 인정하고 반성한 결과에 달렸다는 말이다. 다행히 이글은 쓰는 중에 서울대 병원 노사가 파견, 용역 노동자 전원을 직접고용 한다는 합의 소식이 들린다. 고맙다. 도로공사 노사가 가야할 길을 서울병원 노사가 한발 먼저 갔다. 새로운 희망을 개척하는 톨게이트와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보여준 힘, ‘원하청 노동자의 모범적인 공동 투쟁’ ‘소속 불문 단결 투쟁’이란 모범을 사회발전의 힘으로 제대로 살려보자. 희망이 고문이 되지 않게 말이다.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201

 

아마존 열대우림이 산불로 3주 넘게 타고 있다. 기후변화로 아마존이 건조해진 데다, 아마존 개발을 공약으로 내건 보우소나루 정부 출범 이후 열대우림이 지속적으로 파괴돼 산불이 대형화됐다는 지적이다. 개발이란 망령에 사로잡힌 자본과 권력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재앙이다. 실제로 브라질의 트럼프, 브라질의 이명박이라는 보우소나루는 올 1월 취임 후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나라의 발전을 위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며 ‘환경보호구역 지정 기준 완화, 환경법 위반 기업 벌금 감면, 원주민 보호구역 내 광산 개발 허용 등 각종 규제 완화와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결과 아마존 환경 훼손 벌금은 29.4% 줄고, 아마존에서의 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늘었고 열대우림 면적은 약 3440㎢ 감소했다. 아마존은 지구 산소의 20% 이상을 생성한다. 그래서 ‘지구의 허파’다. 아마존 밀림의 파괴는 지구에서 생명의 숨통을 조이는 행위다. “말 그대로 우리의 집이, 지구의 허파 아마존이 불타고 있다”, “국제적인 위기”다 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SNS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이 아니면 우리는 ‘지구의 허파’를, 수천 종의 야생돌물과 나무들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그 어떤 때보다 우리 자연이 위협받고 있어요.” 그리고 한발 더 들어가 문명적 질문을 한다. “아마존 열대 우림 화재가 프랑스 노틀담성당 화재만큼 주목 받지 못하는 이유는 뭐죠?” 우려와 걱정에 대해 보우소나루의 대답은 단호하다. ‘주권침해’다. 한 발 더 나간다. “브라질에 문제를 일으키려는 돈이 떨어진 NGO들에 의해 시작됐을 수 있다고 본다.” 참으로 익숙하다. 묻지마 종북 주사 아닌가? 개발 성장이란 이름으로 기업의 탐욕에 노동자 민중은 물론 전 인류의 생명과 안전을 손쉽게 포기하는 모습 그대로 아닌가? 당장 동네 거리에 경축 신안산 착공 프랑이 업적이랍시고 휘날리고 있지 않는가? 일본과 정치 역사 전쟁을 하면서 구체적인 대책은 주 52시간제를 줄이고 가습기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반도체로 무수한 노동자가 암에 눈까지 멀었지만 화학물에 대한 생명의 규제를 풀고, 예비타당성이라는 이성적 과정을 생략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자본주의는 인류에 대한 냉혹한 독재자다. 모든 고상한 것과 존엄한 것을 오직 돈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단색화 해 버렸다. 소로스가 ‘자본은 부도덕한 존재가 아니라 무도덕하다’고 했는데 정곡이다. 자본의 논리로는 인류는 도덕이나 선의 정의 공정 평화 평등을 말할 수 없다. 그 결과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이 됐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식량만 하더라고 전체 인구의 두 세배가 먹고 살아도 충분한 생산성을 자랑하지만 오늘도 수십억의 인류가 매일 굶주리고 있다. 자본의 이윤 경쟁 논리는 생산성의 향상 방향과 목표를 지웠다.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버는 부모가 돈을 벌기 위해 자식을 내다 파는 꼴이 자본주의다. 그래서 모자라서가 아니라 남아서 위기인 기괴한 체제가 자본주의다. 나누면 되는 것을 파는 것으로만 돌린 이 몽매가 비인간적이고 반생명적 인류 문명의 타락의 핵심 원인이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생명을 지워버릴 뿐이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풍요해서 굶어 죽는 기괴한 경제 위기를 벗기 위해 새로운 정치 사회적 관점의 정치가 필요하다. 규제완화니 복지에 대한 속도조절이니 하면서 결국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매몰되고 마는 문재인 정권의 모습은 결국 에게 하는 말이다. 지금 당신들이 선택한 길은 이명박근혜의 길과 하등 차이가 없다. 그 길엔 인류를 위한 답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마존 화재다. 평화와 통일,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노동자 민중들이 행복한 방향으로 가야 길이 생긴다. 자기 폐가 타고 있어도 아픔을 모르는 사람들과 자기가 가는 길이 적폐의 길임을 모르는 이들의 본질은 결국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지 않는 것이다.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연일 폭염 주의보가 내렸던 8월이다. 날씨 못지않게 전국적으로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선  ‘NO 아베’ 일본 불매 운동도 뜨겁게 타올랐다. 그래서일까?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8월 15일 광복절은 여느 때보다 남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방학이지만 ‘평화날개 기자단’도 바쁜 8월을 보냈다.  뜨거운 8월이 한차례 소나기로 한풀 꺾였던 지난 8월 12일 기자단은 강화도 답사를 떠났다. 강화평화전망대와 교동대 일대를 탐방하는 시간이었다. 강화도는 날이 좋으면 강 넘어 이북 땅이 한 눈에 잡힐 듯 아스라히 펼쳐지는 곳이다. 더구나 실향민들이 만든 대룡마을은 또 어떤가... 활자로만 보던 ‘통일’이라는 말을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강화다. 소낙비가 오락가락하던 궂은 날씨에도 기자단은 강화답사를 무사히 마쳤다. 통일 이라는 말을 공기로 실감할 수 있는 강화 답사를 진행하며 기자단과 한 가지 작업을 진행했다. 자신이 느낀 강화를 사진으로 담아오는 작업이었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솔직한 후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지면을 통해 기자단의 눈으로 본 강화를 사진과 글로 소개한다.  -8월 평화날개 신문을 내며-

 

  지난 8월 12일 월요일 금천구 청소년 평화의 날개 기자단은 강화도 제적봉 통일전망대를 다녀왔다. 
통일전망대에선 우리나라의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위한 노력의 사진과 글이 제일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1층, 2층, 3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우리는 3층 전망대에 올라가서 우리나라와 1.8km 거리에 떨어진 북한의 모습을 보았다, 아쉽게도 그날은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려서 북한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전시된 사진과 TV로 봤을 때는 날씨가 좋아서 북한의 모습이 잘 보였다. 
 분단으로 머나 먼 땅이 돼 버린 북한, 우리 눈앞에서는 가깝게 느껴지지만 철책선 때문에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졌다. 강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북한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우리나라는 지금은 트랙터로 농사를 짓지만 북한은 1970, 80년대처럼 아직도 소달구지로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그런 다음 강혜승 선생님이 500원을 주셔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모습을 조금 볼 수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2층에는 전시관이 있었다. 전시관에서 기사를 쓰려고 사진을 각자 찍었다. 거기에는 안쓰러운 그림과 사진도 있었고 북한의 지폐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북한말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사투리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와서 이동하려는데 통일 염원소에 많은 엽서와 글이 있었고 나는 그 중에서 제일 좋은 말 한 가지를 골라서 찍었다. 뭐냐면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자 한 발짝, 두 발짝 다가갈게” 라는 말이었다. 그 전쟁 하나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죽고 고아가 많이 속출하고 배고픔에 굶주린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니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빨리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해서 이글을 골랐다, 그리고 입구에서 모두 모여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버스를 타고 밥을 먹으러 갔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교동 대룡시장 안에 있는 오래된 교동 이발소로 갔다.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대룡시장은 전쟁 후 실향민들이 모여서 만든 마을이라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대룡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는데 낡고 오래된 집, 가게들과 지금은 볼 수 없는 낡은 간판들이 많았다. 시장 중간 중간에 사람 모형, 제비집 모형 등 신기한 모형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시장을 둘러보고 무려 100년이 넘은 교동초등학교도 가봤는데 학교 주변은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학교보다 더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화도를 다녀와서 나는 통일이 꼭 이루어져야 되고 정말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전망대에 가서 북한 땅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정말 재미있기도 하고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한 관경이어서 더욱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떠올랐었다. 빨리 통일이 돼서 이산가족들이 상봉하고 북한 땅도 가보고 싶다. 

 최예나/ 서울문교초 5학년 

 

기자단의 답사후기

 

박소은/ 서울두산초등학교 5학년 
강화도에 있는 통일 전망대에 갔다. 망원경 넘어 북한에 계신 분들을 어렴풋이라도 보니 북한이 생각보다 가까워서 신기했다. 북한이 강넘어 바로 앞에 있는데도 가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빨리 통일이 되어 북한에 갈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이윤수/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강화도는 내가 3번째 로 간 곳이다. 강화도에서 본 북한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우리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것 1.8km 길이지만 다른 이념으로 갈라진 것이 너무나 슬펐다. 통일이 돼서 모두 화목하게 지내는 그 날까지...

이주은/ 서울문백초등학교 5학년 
강화도가 우리나라 남한에서 북한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곳이여서 더욱 더 안타깝고 슬펐던 것 같았다. 해설도 듣다보니 많은 느낌이 든 것 같았다.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답답했다. 무섭게 쳐져 있는 철조망이 마치 북한과 남한을 감시하는 걸림돌 같았다. 하루빨리 통일 되어서 남과 북이 만나는 첫 발자국이 강화도에서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주호/ 서울문백초등학교 5학년
강화도 답사 중에서 인상적인 곳은 바로 38선이랑 북한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이다. 그곳에 가보니 분단 현실이 아픔으로 다가와 마음이 숙연해졌다. 6.25 전쟁을 담은 사진과 대룡시장에 있는 교동 이발관이라는 곳에서 북한에 있다가 전쟁으로 한국으로 오신 할아버지 말씀도 들었다. 어서 빨리 평화통일을 이루어 북한에도 가보고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과도 만나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서윤/ 서울문교초등학교 5학년
 분단이 돼서 가장 슬픈 건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면 헤어진 가족들을 만날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것 같다.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거의 가만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에 철장들이 기분을 더 슬프게 하는 것 같았다. 강화도는 나에게 여러생각을 하게 해준 곳이다.

이채원/ 서울두산초등학교 5학년 
 우리 민족은 분단의 아픔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아픔을 함께 느끼기 위해 날개 기자단은 강화도에 갔다. 평화전망대에서는 우리가 직접 망원경으로 북한의 땅을 보아서 ‘아,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살아도 만나지 못하구나.’라는 생각도 했고 최대한 이산가족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는 교동시장에 가서 교동이발관을 운영하시는 할아버지를 만나서 6.25전쟁을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생생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신기했다. 할아버지도 이발을 30년 정도 해 왔는데 지금까지 해 오셨듯이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꾸준히 건강도 챙기면서 일하셨으면 좋겠다. 이번 강화도 기행은 북한에 대해서 알아보고 분단에 아픔을 함께 느꼈기에 더욱 뜻깊고 의미있는 기행이였던 것 같다.

최윤영/ 서울두산초등학교 5학년 
강화도에 갔다. 강화도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이었다. 1.8km라는 좁은 거리를 건너가지 못한다는 게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다 우리가 좁은 강 하나를 중심으로 갈라지는 사태까지 났는지 참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신기한 점은 우리나라 말과 북한 말이 다른 것이다. 북한 말의 특징은 보이는대로 이름을 부른다고 했다. 이런 점이 제일 인상 깊었다. 그리고 분명 같은 한글인데 외국어같이 들리는 게 어색했다. 어떻게 보니 이런 언어가 분단의 아픔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어서 통일이 되어 우리와 같은 말을 사용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노희재/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난 망원경으로 보는 북한이 아니라 직접 내 눈으로 보는 북한이 인상적이었다.  남한과 북한사이에 강 하나가 있는데 그 거리가 짧은 건 1.8km 밖에 차이가  안나는데도 대한민국과 북한이 66년째 통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그 거리면 보트타고 갈 수 있는 거리인데 대한민국에서 북한으로 건너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노희원/ 서울금나래초등학교 5학년
나는 북한과 남한의 언어차이가 제일 인상 깊었다.  강 하나인 1.8km때문에 북한과 남한의 언어가 다르다는 게 신기하다기 보다는 너무 안스럽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리고 먼저 평화통일을 위해 한발짝 다가서려면 남과 북의 언어통일을 위해 반의 반걸음씩이라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반도의 평화통일ᆞ한반도의 언어통일이 반드시 된다고 생각한다.

정원/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강화도 외진 시골마을에 위치한 대룡시장, 그곳에는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6.25 전쟁이 끝난 후 6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의 마음은 고향을 떠난 그 순간에서 멈추어 있는 듯 싶었다.
 이산가족 정보 통합 시스템에 등록 된 2019년 7월 31일 기준 이산가족 생존자 수에 따르면 남은 생존자 수는 약 5만 4000여 명으로 초기 대비 40.6%에 불과하며 그중에서 70대 이상은 85.8%에 육박한다. 이는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전에 고향 땅을 밟고 싶다는 그 분들의 간절한 소망을, 그들의 삶에 대한 희망을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남은 우리들의 의무이자 도리이지 않을까?

권서현/ 서울두산초등학교 6학년 
 나는 전망대에서 본 북한의 모습과 대룡시장에 있는 교동 이발소가 인상 깊었다. 강화도는 북한과 1.8km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망원경으로 본 북한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모습과 별로 다른 것이 없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가깝지만 가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대룡시장은 실향민들이 만든 골목시장이었다. 그 곳에 있는 교동 이발소의 이발사는 탈북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셨지만 이발사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가족을 생각하면서 일을 해 고난을 이겨내고 자수성가하게 되었다. 나는 이발사 할아버지가 멋졌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북한의 모습을 망원경 없이 볼 수 있고 실향민들의 그리움을 덜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장서윤/ 서울두산초등학교 6학년 
평화통일기자단 친구들, 선생님, 부모님과 강화도에 다녀왔었다.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은 1.8km 밖에 되지않는 가까운 거리인데도 서로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과 함께 북한말 맞추기 게임을 통해 북한의 언어를 배우는 시간도 갖었고, 교통이발관 이발사님의 안타까운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번  다시는 이 땅에 이러한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통일을 위해 많이 기도할 것이다. 

임유빈/ 서울두산초등학교 6학년 
강화도는 북한과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망원경을 통해 북한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북한을 보기 때문에 들뜬 기분도 들었지만 1.8km 정도밖에 차이 안 나는 곳에 직접 가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평화전망대에서 나와 우리는 대룡시장에 갔다. 대룡 시장은 남과 북이 분단 되었을 때 남겨진 실향민들이 만든 시장이라고 한다. 북한을 가까이나마 느낄 수 있는 곳에 와보게 되어 기분이 설레었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몸으로 마음으로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았다. 통일도 이제..멀지 않았다는 신호 아닐까?

임예빈/ 서울두산초등학교 5학년 
강화도에 가서 대룡시장, 전망대, 박물관에 들렸다. 박물관에서는 북한과 우리나라의 차이점, 북한의 돈, 전쟁으로 인한 피해 사례 등을 배웠고, 대룡시장은 옛날 시장을 똑같이 재현해서 신기했다. 그중 대룡이발소에 가서 북한에서 이주해오신 할아버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전망대에서는 바로 앞에 있는 북한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강화도에 있는 전망대가 제일 기억에 남았는데, 그 이유는 강화도에 있는 전망대가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이 멀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1.8km 앞에 있다는게 신기했고 지금은 바다 너머로만 봐야하지만 빨리 통일이 되어 직접 가보고 싶다

함상열/  서울문일중 2학년
  강화도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1.8K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넘어가지 못하고 전망대에서 보기만 해야 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점이었다. 우리 모두 같은 한국사람이고 이렇게 가깝게 있는데 분단국가라니 참으로 안타깝다. 분단이 안되었더라면 다같이 놀 수도 있는데 분단이 되는 바람에 이쪽으로 넘어온 사람들도 결국 다시는 저 땅을 밟지 못하게 되었다. 저기 보이는 북한 사람들도 우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면 좋겠고 통일문제가 빨리 해결이 나면 좋겠다. 통일문제도 해결이 나야지 우리는 강대국으로 성장을 할 수 있고 여러 이산가족 같은 문제도 해결이 되고 분단을 이겨내고 통일을 한 멋진 나라, 대한민국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북한 땅을 밟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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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모 칼럼]

 


우리는 오늘, 결연한 마음으로 대내외에 국가의 자존과 민족의 자긍을 선언한다. 대한민국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국가로 평화를 지향하는 민족이다. 우리는 이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한편 세계에 다시 공표함으로 인류는 평등하고 인종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서로 존중하여야 함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 선언은 오천 년 우리 역사의 배경에서 찾고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의 뜻을 바탕으로 둔다. 모든 세계인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여 서로 도와 함께 발전하려는 것으로 각자의 양심에 따라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독립영웅 선조들이 설파했던 바이며, 전 인류가 함께 추구해야 하는 길이자 모두의 정당한 권리다. 
역사 이래 한 반도는 일본의 무도한 침략으로 강토는 더러운 발에 유린당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고 민족이 겪은 고통은 말로 다하지 못한다. 그들이 한반도에 저질은 행위는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세계가 다 알고 있다. 그런  전력에도 뉘우침이 없더니, 이제 다시 알량한 기술로 문명을 빙자하여 침공을 하니 그 모습 딱하기 그지없다. 문명을 앞세우면서 행동은 야만적으로 하니 말이다
우리 민족을 우롱하는 욕된 말들은 안 들은 척 무시하면 되지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술과 독창성으로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위협하는 데는 분노를 넘어 적개심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의 비이성적 행위야 낯설지 않지만 인류 공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국민조차 속이는 행위는 참으로 보기 흉하다.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은 이러한 일본의 저급한 행보에 우려와 함께 연민조차 가진다. 
우리는, 일본이 저질은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들어 속 좁게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긴 시간 우리 문화를 깔보았고, 우리사회의 선량한 풍속과 민족적 신념을 흉보는가 하면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바꾸기를 하고 있지만 이 또한 탓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회주의에 능란한 간교한 정치인과 그들에 아부하는 소수 학자들의 논리일 뿐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는 인간의 의지로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꽃다운 소녀들의 청춘을 송두리째 앗아간 인간수심의 범죄와, 무고한 생명을 실험 살생한 것과, 신성한 노동을 착취한 죄는 오직 반성을 통한 갚음만이 필요하다. 이는 누구의 배려로 용서를 논할 대상이 아니고 오로지 피해자의 양심에 따라 처분 될 뿐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기에도 바쁜 우리는 일본을 원망하고 과오를 따지며 싸울 겨를이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을 바로 세워 민족의 자존을 지키는 일이다. 양심에 따라 우리의 운명을 만들고 지켜야 하지 감정에 매몰되어 문화인답지 못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다만 낡은 사고에 빠진 일본의 정치인과 학자들에게 이성을 찾도록 정의로운 충고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신랄하게 추궁해 갈 것이다. 
일본정부가 유념할 것은, 진실을 왜곡하여 두 민족을 이간하는 것은 궁극에는 자멸의 길이 된다는 사실이다. 하루빨리 잘못을 뉘우쳐 양 민족이 이해를 통한 화해로 좋은 이웃이 되도록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재앙을 피하는 길이다. 또한 일본의 양심세력들은 작금의 사태가 국민의 뜻이 아니고 일부 못난 정치인과 그들에 빌붙어 진리를 외면하는 학자 등에 의한 정의롭지 못한 행위임을 자각하고 현재에 제기된 양국 간의 문제에 사려 깊게 접근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부도덕한 정치인과 학자들의 설자리를 없애 오늘과 같은 불행한 역사가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민족 또한 울분으로 이성을 잃는 과오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오직 진실을 말하고 정의롭게 행동함으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부와 긍지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오늘의 사태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길이다.
일본과 한국이 함께 할 일은, 이웃한 민족끼리 선린관계로 뭉쳐 패권주의적 외세를 배제하는 일이다. 그것이 동아시아를 지키는 거룩한 임무고 궁극에는 세계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일찍이 대한국인 안중근 님께서 양 민족에게 한 고언이다. 명심해야 한다.(♣2019.08.14) 

 

장서희 기자

 

저번 주에 전쟁기념관을 갔다 왔어. 나는 그 곳에서 6.25전쟁에 대해서 배웠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인천상륙작전과 학도의 용군이야.
  인천 상륙 작전은 맥아더 장군의 지휘 하에 이뤄진 작전인데, 전쟁 후 서울과 인천은 북한에게 넘어갔고, 우리 군인은 저 아래 낙동강 앞까지 밀린 아주 위태한 상황이었지. 맥아더 장군은 미군과 함께 상륙을 준비하면서 부산 쪽에만 군인들이 많고 수도권에는 별로 없다는 것을 계산했어. 그리고 인천을 통해 상륙을 해서 서울까지 다시 우리가 되찾을 수 있었지.
  다음 인상 깊었던 것은 학도의 용군인데 학도의 용군은 학도병을 말하는데, 학도병은 군인이 아닌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전쟁이 나자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인으로 전쟁에 참가 한거야. 나는 그 분들이 너무 자랑스러웠어. 우리 또래, 우리 오빠 정도의 나이인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어 전쟁에 참가한 그 마음이 너무 커 보였기 때문이야.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으면 멀리멀리 도망갔었을 텐데, 전쟁에 참가한 학도병들이 너무 대단해보였어.    
  특히 한 학도병이 어머니께 편지를 쓴 게 그 곳에 있었는데 그 편지글이 내 마음을 울렸어. “어머니,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라고 쓴 글인데 보자마자 나는 많이 울컥했어. 글을 쓴 학도병이 사람을 죽인 게 얼마나 슬프고 무서웠을지 그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았어.
  인천상륙작전과 학도병 외에도 6.25전쟁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많이 희생된 UN군이었어. 열심히 싸운 우리 국군도 감사하지만, 한 번도 들어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와서 우리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워주신 UN군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 나 같았으면 “그들이 누구인데 그 나라에 내가 왜 가서 싸워? 죽을 수도 있는데?”라며 전쟁에 참가할 생각은 전혀 안 했을 텐데 전쟁기념관에 쓰여진 수많은 UN군들의 희생에 너무 감사했어.

  전쟁기념관을 다녀오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게 희생한 우리 국군과 UN군, 학도병 그리고 수없이 많이 죽은 우리 국민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 그들의 희생으로 지금 내가 편하게 살고 있으므로 그 분들의 몫까지 내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그 분들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도록 평생 노력할거야. 친구들아~ 너희들도 이번 여름 방학에 전쟁기념관에 가보렴. 강추! 강추!!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장서희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은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시키겠단 목적으로 소련과 중공군의 지원을 받아 남침을 하여 시작된 것이 6.25전쟁이다.
 6.25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엄청났다. 국군 62만 명과 유엔군 15만 명이 전사, 부상, 실종되었으며 전쟁으로 인한 난민은 1000만여 명이나 되었다. 이는 그 당시 전 국민의 절반이나 되는 엄청난 수였다. 또한 북한군에게 밀려 후퇴할 때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고 대한민국 제조업의42%가 파괴되었으며 도로, 철도, 항만, 학교는 물론 개인 자택까지 대부분 파괴되어 경제체제가 무너지고 국민들의 생활이 황패해졌다. 그리고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이산가족이 생겨나는 등 아직까지도 큰 고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6.25 전쟁은 국민들에게 전쟁의 무서움과 고통, 참혹함 등을 각인시켜주었고 전쟁이란 어떠한 이유라도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통일이 절실하다. 최근 과거보다 많이 나아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통일이 더 이상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통일이 현실이 된다면 많은 이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기술력과 자본 그리고 북한의 자원과 저렴한 인건비가 만나면 큰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보다 우리민족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만 문제점은 독일처럼 갑작스러운 통일의 여파로 인한 여러 가지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평화적인 통일은 우리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주변 강대국을 우리의 평화통일을 위한 조력자로 끌어들여야 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감으로 갑작스러운 통일로 인한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 또한 지속적인 교류와 원활한 소통으로 점진적인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용산전쟁기념관을 방문한 평화날개 기자단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정 원  

함상열 기자

 

 우리는 흔히 기념관이라고 하면은 행복한 날, 아님 의미 있는 날들을 기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전쟁기념관을 보면서 전쟁은 기념할만한 것이 아닌데 오히려 ‘추모관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전쟁기념관을 견학하고 나서 전쟁은 그만한 커다란 희생이 있었고 그 희생자를 존중해 주기 위해서라도 전쟁 기념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을 기준으로 몇 주간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할 준비를 마치고 38선을 넘어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경보령을 해제 했었던 우리나라는 순식간에 서울을 빼앗겼고 결국 낙동강에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 후 우리는 유엔군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유엔군이 도착하고 거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인 맥아더 장군이 있었다. 당시에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북한군이 모여 있었기에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을 개시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북한군은 우리의 습격에 당하고 만다. 우리군은 상황을 180도 바꾸어서 우리는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중공군(지금의 중국이)이 개입을 하게 되고 그리고 우리는 북한과 함께 38선을 기준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각 측의 지원해주는 국가들이 이대로는 너무 힘드니 그만 휴전하자 라고 해서 공산주의 상징인 중국에 도움을 받은 북한과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의 도움을 받은 우리나라는 휴전협정을 맺고 냉전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북한으로 나뉘게 되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전쟁기념관을 많이 가는 이유가 유엔군 참전국가들 중 우리 땅에서 싸우다 죽은 자국 참전용사들이 많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전쟁 중 희생된 군인도 기억해야 되지만 사실 그 전쟁 중 우리나라 땅에서 이 전쟁의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국민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많은 국민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갔지 않는가?
  우리 땅에서 서로에게 총을 들이 대며 죽고 죽이는 전쟁은 절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를 정신적으로 재무장 하고 국방력을 튼튼히 해 우리나라를 넘보지 않게 해야 한다. 전쟁 없는 ‘평화적 통일’을 위해 우리는 북한과 핵을 폐기하자는 협상을 하고 끊어졌던 기찻길을 잇는 노력을 하고 있다.
 통일이 잘 되어서 우리나라도 분단국가에서 벗어나 다시는 우리영토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통일을 바라는 중2 
함상열 (문일중학교 2학년)

  임유빈 기자

 

약 70년 전 우리나라는 한 사건을 통해 한민족인 남과 북이 서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바로 6.25 전쟁입니다. 6.25 전쟁이란 1950년 6월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 군사 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하여 한반도에 일어난 전쟁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일어난 까닭은 무엇일까요? 
 6.25 전쟁이 일어난 까닭을 알기 위해서는 8월15일 우리나라가 광복한 날로 돌아가 봐야합니다. 광복 후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마자, 우리나라는 독립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신탁통치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신탁통치에 대한 갈등과 대립 속 의견이 다른 미국과 소련은 각각 남과 북을 따로 통치하기로 하였고, 통일된 정부를 원했던 한반도에서는 남과 북 두 개의 정부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남한과 북한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6.25전쟁을 기억해야하고 잊지 않아야하는 역사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왜 70년이나 지난 역사를 기억해야만 할까요? 그 이유는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아픈 과거를 잊지 말아야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6.25와 같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북한과 대화해야 합니다. 저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관심을 통해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두산초등학교 
6학년 임유빈

최저 임금제를 두고 노동자와 정부 그리고 사용자 간의 다툼이 요란하다. 주는 자와 받는 자간의 시비인 것 같지만 그렇게만 볼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와 같이 안일하게 생각할 국민은 많지 않겠지만 시대를 함께 살아가야 할 국민 모두의 문제로 보고 함께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부족한 것 같다. 서두부터 따지듯 접근하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이 문제는 이해 당사자와 정부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로 보아야 함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최저 임금제는 글자 그대로 근로자의 노동에 대한 최소보수 즉 노력가치의 하한선을 정하는 것으로 이의 논의에 대해서는 그것을 부담해야 할 당사자인 사업자들조차도 가볍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그로 인해 향후 만나게 될 그들의 입장 때문에 공감을 못하는 것으로 본다. 그럴 만큼 우리 사회의 최저 임금에 대한 시민의식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사실 이 문제 즉 최저 임금제는 중요 사회 과제가 된지 오래고 그래서 이해 관계자들은 서로의 처지를 무시하지 않지만 워낙 어려운 각자의 사정들 때문에 대립관계가 되었다고 이해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의 임금 체계는 다분히 근로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라는 점에는 정부와 다수의 국민들이 우려와 더불어 대책 필요성에 공감 하는 분위기다.
최저 임금문제는 정의의 문제이나 사회적 여건 불비로 묻혀왔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표면화되고 그에 따른 진전이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일자리문제로 근로자의 선택에 여유가 없게 되면서 다시 묻혀버렸다가 생활고로 일가족 자살사건이 일어나면서 생존의 문제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후보시절 최저 임금을 정액(시급 10,000원)으로 공약한 것은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한 우려의 표현으로 본다. 부담해야 할 대상 즉 기업들의 사정도 어렵기는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사정으로 보는 것이다. 그럴 만큼 우리 사회의 일용 근로자의 삶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근로자가 어렵다고 부담을 기업에만 지울 것인가, 그럴 경우 기업이 어려움을 만나게 되니 국가가 나서 세금으로 이를 보전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럴 만큼 우리의 국가 경제는 여력이 있는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질문이지만 누구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듯 고용과 임금 문제를 보는 우리사회의 분위기는 부정성이 기조다.. 
유념해야 하는 것은, 현재와 같은 저임금문제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문제로 받아들여 그 구성원들이 뜻을 모아 공동대응으로 대응해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가 마땅한 정책을 마련하도록 국민들은 모두가 내 문제 마냥 독려하고 성공적 시행을 위해 정부에 힘을 모아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권리를 바르게 행사하는 것이자 민주시민의 역할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국가가 좋은 정책을 마련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준비된 이야기를 해보자. 국가는 최저 임금제를 이런 저런 잣대를 가지고 헤매지 말고 인간의 존엄성을 잣대로 삼아 정리를 해야 한다. 다양성이 복잡하게 존재하는 사회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제도는 허구가 아닌 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긍한다면 답이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의를 푯대로 하면 목적이 보일 것이고 그것을 지향하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이로움이 된다.
다음으로, 이 예민한 문제를 누가 어떻게 담당할 것인가를 이야기해보자. 실질적 이해 당사자인 기업과 근로자이지만 두 대상은 이해충돌로 합의 기대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개입하여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두루 뭉술 정책으로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물론 어려운 사정이기는 하지만 더는 방안이 없다면 상대적 약자 편을 들어야 한다. 모두를 보호하여야 하지만 방법이 궁색하니 달리 선택이 없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그래서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기업들이 어렵고 특히 영세기업들은 더욱 그렇다. 기업이 존재해야 근로자의 자리가 있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자리 빌미로 현실에 눈감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기업이 어렵다고 근로자들을 생존의 장 밖으로 밀어내는 형국이니 말이다. 일가족이 목숨을 끊는 일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냉정해야 한다. 현실을 감안한 정책을 만들고 그것의 실효성 담보를 확실히 해야 한다. 한쪽이 유리하면 다른 한쪽이 불리하게 되는 게임이다. 모두를 만족할 수 없으니 유감스럽지만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 다만 다른 한쪽에 대해서는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지금은 모양이 별로지만 언젠가는 정부 신뢰로 국민들이 답을 할 것이다. 
결론을 말한다. 국가는 최저임금 제도를 마련하고 그 실행에 공무원들의 우유부단이 없도록 확실한 장치를 두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한 헌법 원리를 앞세우면 명분은 충분하다. 그런 한편 기업도 또 다른 약자로 두는 정책을 따로 수립하도록 한다. 
기업은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현재를 수용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고용이 있음을 지지하지만 기업의 존재이유를 사람의 생존에서 찾아야 한다. 근로자들도 겸허한 자세로 현실을 보아야 한다. 불만족한 배경일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 자기 발전의 계기로 보답해야 한다. 사회의 부(富)는 나눔으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동의한다면 그것에 기여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 나눔은 그 정신이 평등할 때 비로소 가치를 가진다.(♣2019.07.28.)

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199

 

친일 친미만이 살길이라며 반공반북과 대립시켜 지들 매국 본능을 감춘 채 노골적인 항복요구로 해대는 친일 망동도 많지만, 반일(反日)이 극일(克日)이 아니라 혐일(嫌日)이 되는 것에 불끈한 이성적인 분들이 ‘나도 친일’이라 말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목줄 급소가 잡혔다고 한 걱정하는 분들이 냉철한 이성으로 대화와 타협을 주문한다. 경험으로 노동자에게, 또는 모든 사회적 약자에게 ‘현실적’이라는 말은 ‘굴욕적’이라는 말이다. 타협하라는 말은 굴종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순응 적응을 하다못해 ‘알아서 복종’을 하라는 말이다. 현실적인 이유의 태반은 ‘물질적’ ‘경제적’이다. 하루 한 끼의 온전함, 가족들의 안위, 그것이 우선하는 생존의 비루함이다. 그래서 현실적이라는 것은 자기 가치가 만든 자기 존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땀 배인 희망, 나 말고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현실적이지 못한 행위는 감상적 감정적 무엇이 된다. 감정 감상이 폭발하는 이유, 폭발까지 이르는 과정의 의미, 현실과 이성을 넘는 역사적 역동성은 자기들의 필요한 만큼만 끌어다 이용할 뿐이다. 이성은 보통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이다. 당연히 압도적으로 물질적인데 그것의 대표적 표현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약자가 참고 견디라는 말이다.  
반일역사애국론과 친일경제애국론은 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둘 다 70년 한반도 및 한일관계의 진정한 몸통 미국의 문제를 불가피한 전제로 본다. 둘 다 문제의 근본 대신에 현실의 안주를 애걸한다. 다만 반일애국론은 현 집권 정치의 유지, 친일 경제 애국론은 현 경제 체제의 존속을 바란다. 그래서 한국 재벌 중심의 빈부격차의 경제 구조가 깨져야 한다는 것을 잊은 친일을 하고, 노동자 민중의 피땀을 더욱 심하게 쥐어짜겠다는 반일을 한다.  
이번 친일 반일 소동을 야기한 아베의 심보는 복합적이다. 오랜 경제적 난관을 뚫기 위해 긴장과 팽창 정세 구조의 필요, 강대국으로 일제(日帝)를 복구하고픈 정치적 야욕, 동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한반도 대립과 긴장을 축으로 한 미일동맹 강화, 1965년 한일협정이 만든 기울어진 한일관계를 깨려는 한국 정권을 길들이거나 교체, 당장은 일본 내정에서 선거 승리를 위해 작심하고 선방을 날린 셈이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대응도 복합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 체제와 통일로 가는 구조를 위한 대응이다. 기울어진 한일 정치 경제적 구조, 그러니깐 독재정권의 반민족적 반민중적 한일협정 체재의 근본적 혁파, 외교에서의 적폐의 청산을 하는 방향에서의 대응이다. 다른 측면에서 이 기울어진 운동장 적폐구조가 국내의 분단예속 구조에서 특권을 누린 체제에 대한 성찰적 대응이다. 노동자 민중의 애국심의 분출이 또다시 분단예속 적폐들의 면죄부나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칙과 특권을 타파하는 방향으로의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간다.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인정하는 ‘특별 연장근로’ 도입, ‘재량근로제’ 도입 확대, 화학물질을 들여오고 연구할 때 필요한 규제 및 인허가 기간 단축, 세금혜택과 예산 배정, 반도체 소재 개발사업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추진까지 과로와 산업재해로 무수하게 죽은 노동자들의 목숨 값으로 겨우 생긴 생명과 생태의 보호 장벽을 허물고 이명박근혜 이후 자본가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날강도적이고 반생명적인 조건을 다 보장한다고 나선다. 
우리는 분노하다 피똥 싸고,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은 뒤에서 허옇게 웃는다. 결국 애국은 우리 노동자 민중들은 동네잔치에 간 사이에 집안 다 털린 꼴이 된다. 그러니 작금의 반일 혐한 소동이 실은 아베 정권과 문재인 정권이 자기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한 적대적인 척 공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조금 더 나아가 삼성과 이재용 구하기의 한일합작 협작은 아닌지 의구심이다. 
분명한 것은 애국이 맹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맹목의 애국은 반공 반북 전쟁 애국이 되고 노동자 민중의 피땀을 쥐어짜다 죽이는 애국이 된다. 한국 현대사가 만든 애국 적폐, 적폐애국이다. 이것도 이참에 끊고, 노동자 민중이 행복하고. 나라의 자주와 평화가 통일로 가는 애국을 하자는 말이다.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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