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모칼럼]대의제와 주민참여 제도



마을공동체 활동의 활발한 전개에 더하여 ‘주민 참여’를 내건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의 정책들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그 수와 내용이 다양하게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식이 날로 성장하고 있고 그에 따른 위정자들의 자각으로 인한 결과적 현상으로 우리사회 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민주주의의 저변확대가 기대되는 과정을 맞고 있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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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함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 민주주의가 덜 성숙된 사회라는 지적에 겸허할 필요가 있다. 여러 문제를 말할 수 있지만 민주(民主)를 말하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대의정치(代議政治)가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대의정치를 이해하면, 국정(國政)에는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지만 이는 비현실적이므로 일정 수 단위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을 뽑아 이들로 하여금 대신 담당케 하는 즉 대의(代議) 제도다. 국회의원, 시·도(광역)의원, 시·군·구(기초)의원이 그 대표적 예로, 이러한 제도는 민간부문에서도 광범하게 도입되고 있는데 조합 등 큰 단체의 대의원제도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대의정치의 후진성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별 이의 없이 공감을 할 정도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런 평가가 있을 만큼 우리의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 의원들의 상당수는 국민의 신뢰에 거리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그들을 직접 선출한 유권자들로 부터 외면당하는 경우조차도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물론 의원들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그들의 의정활동이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친 것에 더하여 실망스런 행위조차하기 때문이다. 요약을 하면, 의원들의 능력과 자질 문제다. 의원 면면을 보면 학력이나 경륜 면에서 가벼이 볼 여지가 별로 없는 이른바 엘리트(elite)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참으로 난해하다. 

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일차적으로 본인의 책임인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함에도 간과해서는 안 될 다른 원인이 있는 데 그것은 그들이 의원이 되는 과정 즉 선출과 관련한 제도의 문제가 그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의원이 되려면 법령에 따라 입후보를 해야 하고, 이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정당의 추천 즉 공천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 신청에 의한 무소속 출마다. (여기서 무소속의 경우는 논제 밖이므로 생략하자.) 우리 선거 환경에서 정당의 공천은 아주 중요한 과정으로,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파의 공천은 곧 당선이나 다름없다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거 메커니즘(election mechanism)이다. 

이론(異論)이 있겠지만, 우리의 의원들은 의원이 되기 전 그러니까 후보 때에는 부적격성을 발견하기 어렵지만 의원이 된 후 무능이나 자질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의원이 되는 과정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상당수의 의원들은 그들의 현재가 있게 한 배경 즉 정파의 배려에 보답하고 그로서 취득한 기왕의 권리 지속을 위해 자기 구속을 스스로 정당화함으로 개인적 신념과 철학을 바꾸거나 버림으로 결과적으로 천박한 이기적 기회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정리를 하면, 의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우선적으로 본인 탓이지만 의원이 되는 과정 즉 선거제도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들의 저질행태(모두는 아니다)는 그들이 있게 되는 과정에서 단초(端初)가 마련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원이 되려면 공천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 타의(他意)가 작용하는 게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현실이다. 이를 해부해 보자. 후보 선정의 주요 포인트는 정파에 대한 충성도인데 이는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민주주의 원리에 배치되는데다 다분히 후진적이다. 그리고 ‘당선가능성’이라는 기준인데 이것도 비과학적인데다 공정성 문제를 가진다.


 조직이 크면 그것이 조건 충족으로 간주되는데 이에는 필연적으로 자금이 연관되기 때문이고 따라서 이는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파에 소속되지 않는 무소속 출마가  있지만 우리 선거 환경에서 그 길은 불확실한 선택이고 그렇듯 당선확률도 낮다. 이와 같이 우리의 대의제 과정에는 민주주의 원리인 기회균등이 경시되는데 그것의 개선이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은 물론 헌법규정의 국민 참정권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의제(代議制)보다 더 나은 제도는 현재로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은 정치 선진국의 사례로 설명된다. 우리나라도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이 제도를 도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그 여정에 굴곡과 파행이 있었음에도 민주주의 국가로의 발전에 기여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대의제는 살펴본 바와 같이 문제가 있으므로 이의 개선 당위(當爲)를 헌법이 규정하는 민주주의 국가(헌법 제1조)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제기는 거창했는데 마땅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함은 유감이다. 항간에는 ‘의원 소환제’나 ‘국민 발안 제’ 등의 도입을 제기하는데 공감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유효한 대책이라 확신할 수가 없다. 전자는 법 제정 주체가 대상인 만큼 입법이 순탄치 않고 설혹 된다 하더라도 기대효과는  미지수다. 입법당사자 구속이 취지인 만큼 단서 없는 순수한 내용의 기대가 어렵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도 유사하다. 우선 그것을 있게 하는 과정이 전자의 어려움과 다르지 않고, 과정을 극복하였다 하여도 정연한 진행의 보장이 어려운가 하면 부작용조차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일고 그로 인한 민민(民民) 갈등 우려가 그것이다. 그럼함에도 이 제도 도입은 긍정한다. 어떤 형태로던 현재의 대의제 불합리 해소책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제기되는 문제의 본질, 즉 현행 우리 대의제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의 대안이 아니다. 단지 ‘견제를 통한 문제의 방지’ 목적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생각해 보는, 보완책이자 대안도 될 수도 있는 제도의 도입인데 현재 여러 유형으로 전개되고 있는 ‘주민참여’라는 이름의 각종 주민활동 제도의 활용이 그것이다. 이 제도를 이해해 보면, 국정에의 직접 주민참여 즉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행이고 곧 민주주의의 연원(淵源)이다. 정치인들이 평소 ‘국민’을 앞세우는 것은 이러한 원리를 알기 때문이 아닐까?

살펴보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주민참여 제도’ 중에는 민주주의를 사실적으로 이해할만한 내용이 많고 그것의 시행 일선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은 실감 있게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있다. 이러한 주민참여 제도를 대의제와 연관하여 보는 것은 비약(飛躍)일 수 있으나 그 기능에 대한 본원적인 이해, 즉 제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 공감을 구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글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국정 시행을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국가 행정 제 부문에 국민이 자유롭게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대의제는 이러한 목적으로 도입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방향에서 대의제를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이해를 진보적으로 해 보고자 하는 것이 ‘주민참여제도’ 도입 의견이다. 다시 말하면 대의제에 대한 견제나 보완을 말하기 이전에 민주주의의 본질에 다가가는 추구 즉 ‘직접민주주의’로 이해하는 것이다. 함께 고민해 볼 가치가 있지 않는가? (♣2017.1.6.)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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