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


두리안의 일종인 '훼나스'라는 과일을 보여주는 상인

 

내 마음이 에덴인데 어딘들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이곳이 바로 에덴동산이 아니었을까 싶다는 내용의 메시지에 대한 지인의 답신이다. 지금 내 마음은 정녕 에덴인가?

말라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냐사 호수를 끼고 있는 도시 키에라. 내가 살고 있는 주에 있지만 이곳과는 날씨가 확연히 다르다. 이곳이 초가을쯤의 날씨라면 그곳은 온도계의 눈금이 30을 웃돌고, 건기임에도 주위는 온통 초록빛이다. 호수를 끼고 있는 탓일 것이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 샛길로 빠지자 간간이 농가만 보일 뿐 주위는 온통 카카오나무다.

 

가나와 함께라면 고독마저도 감미롭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의 성우가 나레이터를 하고, 긴 생머리의 청순했던 채시라가 유난히 돋보였던 초콜릿 광고다. 고독마저도 감미롭게 만들어 버렸던 마법의 초콜릿 원료가 되는 나무. 좀 멋지게 묘사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참 볼품이 없다. 엉성한 나무줄기에 잎은 이상할 정도로 윤기가 없는 것이 푸석푸석해 보인다. 조화가 아닐까하고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했다. 과일은 메인 가지 여기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잘못 돋아난 혹처럼 기괴하기까지 하다. 모습으로 치면 천생 럭비공이다.

샛노랗게 잘 익은 과일을 따서 돌에 내려치자 쩍하고 갈라지며 하얀 과육이 알알이 드러난다. 미끌미끌한 과육은 새콤하면서 달작지근하고 부드럽지만 먹을 건 없다. 씨앗이 카카오 원두가 되는 것인데, 마치 오랫동안 씻기고 씻겨 매끈해진 바닷가 조약돌 같다. 짙은 보랏빛을 띠고 있어 언뜻 보면 검정색으로 보인다. 겉껍질이 따로 없고, 씹어보니 의외로 부드럽게 씹히는 것이 풋콩처럼 비릿하면서 쓴맛이 난다. 입자는 어느새 고운 보랏빛으로 변해있다.

 

과수원을 직접 볼 기회가 없었던 어린 시절, 나는 과일을 보면 저게 어떻게 나무에 매달려 있을지가 참 궁금했었다.

처음 딸기밭을 보며 밭두렁을 타고 이리저리 뻗어 있는 가지에 달린 빨갛고 싱싱한 딸기는, 차마 저걸 어찌 따나 싶을 만큼 경이로웠다. 그 후 참외와 수박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그러다 나무에 달린 사과를 보면서는 마치 신밧드의 모험에 동참한 기분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시시한 것이 다 궁금했구나 싶은데, 그런 사소한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이곳까지 이끈 힘이 아닐까도 싶다.

탄자니아는 내게 식물원이고 동물원이며 박물관이다. 여기는 자연이 만든 것은 무엇이든 풍부하다. 세네갈에 살면서 나는 신이 버린 땅이란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곳은 신이 축복한 땅이다.

 

돌아 나오는 길이었다. 몇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그 곁에 어른 머리통 두 세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크기에 삐죽삐죽 침이 돋은 과일을 달고 있는 나무가 있다. 두리안의 한 종류일 거라고 추측했는데 젝플룻, 이곳에선 훼나스라고 불리는 과일이었다.

주인을 불러 살 수 있냐고 했더니 창고로 안내했다. 시장에 내달 팔 요량으로 보관한 과일 몇 개가 바닥에 뒹굴고 있다. 크고 잘생긴 놈을 하나 골라 내 온다. 저걸 집에 가져가는 것은 엄두조차도 못 내겠다 싶어 마당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할 요량이다.

잠시 후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바나나 잎을 따든 아저씨가 나타나는 가 싶더니 교복을 입은 학생을 비롯해 꼬마들이 몰려드는데 어림짐작으로 봐도 서른 명은 너끈하다. 마치 미리 대기하고 기다리던 엑스트라 배우들 같다. 커다란 바나나 잎을 척 까니 그대로 잔칫상이다.

박을 타듯 타니 노랗게 익은 과육 사이로 울콩 같은 씨앗이 듬성듬성 박혀있다. 잔치의 주빈이 되어버린 내게 제일 먼저 한쪽을 잘라 건네는데 먹는 게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씨앗이 박힌 곳을 중심으로 결이 나있는데 쭉쭉 찢어 먹으니 쫄깃하고 달다.

지금 생각해보니 몇 개 더 사서 푸짐하게 나누어 먹었어도 좋았을 걸 싶다. 그 당시에는 갑자기 모여들던 사람들, 식탁보 같던 바나나 잎, 과일에 대한 호기심 등에 신바람이 나서 생각할 여가가 없었다.

돌아와 현지인 친구에게 그 곳을 스케치해 보여주니, 이곳이 에덴이었던 걸 어찌 알았냐며 박장대소했다. 아담과 이브가 백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아담과 이브는 흑인이었단다.

과일 한 통이면 즉석에서 축제가 열릴 수 있는 이곳.

늘 축제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마음을 열면 어디서든 천국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10월 28일

 


Fungatera



“푼가 테라”

“푼가 테라”


앞서가던찰스는 ‘푼가 테라’를 외치며 손을 내민다. 

그의 말에 의하면 테라는 자체 동력을 갖지 못한 컨테이너를, 푼가는엔진을 가진 차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력을 가진 차가 그렇지 못한 컨테이너를 끌고 가는 것이다. 손에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간다는 뜻도 되고 힘내라는 격려의 말로 쓰이기도 한단다.

지금음베야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루사조는음베야 산에 오를 팀을 구성 중인데 함께 하겠냐는 전화를 해왔다. 우리 집 창을 통해 매일 보는 풍경이기도 했고, 집수리 때문에 지쳐있기도 하던 터라 흔쾌히 그러마, 고 대답했던 것이다. 


새벽 여섯 시가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도착했으니 내려오라는 루사조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경쾌하게 울린다. 계단을 내려가자 그녀의 자동차가 전조등을 켠 채서있다. 빛이 소리 없이 어둠을 잠식하나 싶더니 어느새 사위는 밝은 빛으로 채워진다. 참 순식간이다. 어둠이 내리는 것보다 빠르다. 

산행 초반에는 영 힘이 든다. 일행 중 몇명과 뒤로 처진다. 그 중 한 둘은 뒤처진 일행을 위해 속도를 줄여준 것이리라. 

나는 늘 그렇듯 초반에는 힘을 못 쓰다, 조금씩 신체 리듬이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몸이 가뿐해지며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매사에 늦되다.

나를 위해 보조를 맞춰주던 찰스와자연스럽게 팀이 되어 일행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찰스는 내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한국 여성의 강인함을 알겠다며 은근슬쩍 추켜 세운다.

시간이 갈수록 여러 팀으로 나눠지고, 선두 그룹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여기저기서‘요~~~~~ 요요요요요, 요~~~~요요요요요’하는 메아리 소리가 요들 송처럼 가볍게 나풀거리며 산을 간지른다. 나는 우리네 식으로 손나발을 불며 ‘야~~호’로 화답하자 그들도 나를 따라 ‘야~~호’를 외친다. 


여러 개의 작은 산봉우리를 넘고 넘어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사방이 산인데고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정상은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인장 류가 자라고 있고,정상을 향해완만하게곡선을 이룬 산등성이엔 노란 야생화가 만발해 마치 유채꽃밭 같다. 계곡을 이루는 곳은 어김 없이 열대성 산림이 울창하다. 멀리에는세파족이 사는 마을이 제법 크게 자릴 잡고 있다. 그들은양을 키우고화전을 일구며 산다고 한다. 

일행을 기다리는 와중에 한 편에선 열심히 사진을 찍고, 한 편에선 동영상을 촬영하며 인터뷰까지 한다. 나에게도 폰을 들이대며 한국말로 한마디 하라고 재촉한다.

아프리카는 사진 찍고 찍히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대륙인 것만은 분명하다. 저렇게저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긴 역사를 통해 기록할 언어를 갖지 못해 남의 나라 철자를 차용해서 쓰는지…


내려가는 길은 곡예다. 바위산은 그렇다 쳐도 한 발짝만 잘못디디면 양쪽이 낭떠러지. 거의 기다시피 내려온다.

바위산을 겨우 벗어나 한 숨 돌리며,한 시간길어야 한 시간반이라 했으니 곧 마을이 나타나겠지 했는데 다시 새로운 능선이 저만치 앞에 보인다.가까이 가니 앞서간 일행들이 미끄러지다시피 헤쳐나간 흔적만 있다. 엉덩이에 불이 나는 가 보다 하면, 잡목 숲. 두 팔을 휘저으며 길을 만들며 나아간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질 무렵, 무릎을 삐끗했는지 시큰거리기 시작한다.헛발질만놓다뒤뚱거린다.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잡는다. 까만 얼굴에 눈과 치아만 하얀 낯선 얼굴의 청년이다. 그의 도움을 잠시 받지만여전히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는 메고 있던 가방을 뒤따라오던 동료에게 부탁하고 등을 내민다. 도리가 없다. 나 때문에 지연될 수는 없는 일. 염치불구하고 업힌다. 그는 마치 산토끼 같다. 한 걸음에 달려 내려간다. 

그는 동력을 가진 푼가. 나는 동력이 없는 테라다.

국부인 니에레레는 말했다고 한다.탄자니아는 아직 엔진을 켜지 못해, 유럽이 끌어주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시동이 걸리면 엄청난 속도로 달릴 것이라고… 이곳이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란 것을 알아갈수록 그의 말은 설득력을 갖는다. 막내의 설음을 딛고 젊고 힘찬 대륙으로 태어날 그날. 나도 기다려 볼 것이다.



소피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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