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꽝’

망치질 소리가 요란하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며칠을 미루더니 드디어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열 시쯤 되어 장정 네 명이 들어섰다. 손바닥만한 공간을 수리하는 것이니 금방 끝나겠군 했다. 그런데 조금 후, 망치 소리는 인부들의 잡담으로 바뀌었다. 타일을 깨던 망치가 부러져 바꾸러 가야한단다. 다시 망치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점심 시간이라며 옷깃을 여민다. 곧 돌아오겠다는 그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들어선다. 망치질 소리 대신 청소하는 기척이 나는 가 했더니 퇴근 시간이란다. 

시계를 보니 세 시. 문설주 부분의 타일만 겨우 떼어낸 상태다. 너무 단단해, 일하는 게 여의치 않은 탓이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내일이 지나면 다시 주말. 저 기세로 일하면 타일 벽을 제거하는 데만 며칠이 걸릴듯하다

(타일공사를 하고 있는 타자니아 인부)


학교 푼디(기술자)와 자재를 사러 시장에 갔을 때다. 타일을 고르고 흥정을 마친 후 계산기를 들고 셈을 하는 종업원의 손짓이 둔하다. 영수증에 적어넣는 숫자는 셈에 밝지 않은 내가 한 눈에 봐도 뭔가 이상하다. 다시 계산기를 누르더니 계면적은 듯 웃으며 숫자를 고쳐 적는다. 

물건을 사고 나오면서 푼디는 한마디 한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느리지? 하지만 느린대신 정확해.” 계산기까지 들고도 간단한 셈마저 틀린 걸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그냥 웃고 만다. 


그러나 푼디의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살림살이 욕심은 없는데 물을 사용하는 공간 만은 깨끗해야 살맛이 나는 탓에 좀 번거롭지만 수리를 하기로 한 것인데, 끝마무리가 제대로 될 까 불안해진 탓이다.

내가 집을 좀 손봐야겠다고 했더니 나의 코워커인로엘은 말했다. 

“그 집을 사용한 사람은 미국인이야. 아프리카 사람이 아닌.”

'미국인'으로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두어 번 강조한다. 

미국인이라고 싸잡아 말했지만, 너와 같은 외국인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아파트는 외국인 전용이라 했으니 말이다. 

(거실에서 격자모양의 창문 너머에로 보이는 음베야)



삼십 년이 넘은 건물이니 당연한 거라 했더니 자신의 관사는 깨끗하다고 손사레를 쳤다. 그 특유의 넉살을 담아 유쾌하게 말했지만 예사롭게 들리지 만은 않았다.

공사 현장을 왔다갔다하며, 한편으로는 식탁을 책상 삼아 글을 쓰는 지금. 어설프게 짜진 격자창 속에 갇힌 음베야 산이 성큼 다가와 있다. 확 트인 통유리창이라면 더 좋았을 걸 하다가, 삐뚤삐뚤하게 잘라진 퍼즐 조각 같은 지금이 더 정감있다고 고쳐 생각한다.

피스코 단원이 돌아간 후 오래 비어있던 관사는 춥고 썰렁하다. 이곳에 사람 사는 기운을 담으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절기상으로 겨울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갈 땅, 음베야는 고산지대인 탓에 날씨마저 추운 탓이다. 수리가 끝나고 자리가 잡히면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낼 거실만이라도 분위기를 좀 따뜻하게 바꿔야겠다. 


이년이 지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할 터이지만, 그때까지는 내게 안식처가 되어줄 ‘나의 집’. 좀 늦으면 어떤가?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지 않은가!

탄자니아의 속담에‘하라카하라카 하이나 바라카’란 것이 있다. ‘빨리 빨리는 축복이 없다’,라는 뜻이다. 여기는 탄자니아. 나는 오늘도 중얼거린다.


하라카하라카 

하이나 바라카. 


소피아

8월 12일

라면을 끓이며

 

 

냄비에서 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옆에는 라면 봉지 두 개가 입을 벌리고 있다. 스프 봉지를 꺼내 봉지를 뜯고 끓는 물에 털어 넣는다. 그리고는 볼품없이 잘라놓은 소시지를 넣는다. 이곳 사람들은 도마를 사용하지 않기에 손에 들고 뚝뚝 자른 탓이다. 마지막으로 라면의 면발을 넣는다.
어학원 부엌이 한국인으로 붐빈다. 며칠 전 한국인 선교사 몇 분이 스와힐리어 교육 상담을 받으러 왔다가 라면 두 봉지를 건네주고 간 것인데, 어학원 식당을 잠시 빌려 요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부터 감기로 골골거리는 나를 위해 감기약이라며.....
접시에 소복이 담긴 밥과 야채 볶음 사이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냄비가 놓인다.
한국 음식에 어울리는 식기가 있을 리 없다. 아쉬운 데로 찻잔을 그릇 대신으로 삼아 면발을 나누어 담은 후 냄비 체 들고 국물을 따른다. 라면 두 봉을 네 명이 나누어 먹어야 하기에, 물을 넉넉히 잡은 탓에 심심해진 국물이지만 다들 맛있다며 법석을 떤다.

해외생활을 꽤 했지만 한국 음식을 그리워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세네갈에서 유일하게 생각났던 건 짭짜름한 젓갈이 유일했다. 그것도 잠시 스치듯 몇 번 생각난 것이지 크게 아쉬워하지도 않았었다. 그런 내가 새삼 입맛이 변해 갑자기 한국음식에 감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료들이 약이라며 처방해준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따뜻함이 난데없는 행복을 주고 있다.

 

 

카카오톡단톡 방은 우리의 연락망이다. 누군가 수다가 필요하면 모임을 주동한다.
“호디“ “카리브”호디는 남의 방에 들어가기 전 노크 대용으로 쓰는 스와힐리어인데, 우리에겐 일종의 암호다. ‘프린세스’의 방이 우리의 아지트다. 그의 방 만이 유일하게 전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프린세스’. 와니. 유일한 남자다. 낯선 상황이 되면 여지없이 까탈을 떨곤 해서 누군가 그를 ‘프린세스’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인데 그 표현이 너무나 절묘해서, 그가 까탈을 부리기 시작하면 우리 중 누군가가 ‘아이구, 우리 프린세스 어쩌나’하며 그들 어른다.
우리가 그렇게 놀려도 마음 상해하지 않을뿐더러 며칠만 지나면 언제 까탈을 부렸냐는 듯 상황을 즐긴다. 또한 육체적인 힘이 필요할 때는 말없이 팔을 걷어붙일 줄도 안다.
약속시간이 되면 여행을 좋아해 이미 여러 나라를 경험하고 외국인 친구들과 가장 잘 어울려 우리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는 스텔라가 호디를 외치며 입장한다.
조금 지나면 웃음소리가 하이디처럼 경쾌해 명랑소녀라고 이름 붙인 필리가호디를 외치며 들어온다. 신기한 건 나와 참 다르구나 싶은데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의외로 닮은 점이 많아 편한 아가씨다.

우리 넷은 하는 일도 나이대도 성격도 다 다른데, 매우 독립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에 익숙한 것이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갈등이 없다. 설사 사소한 오해가 있다고 해도 솔직하게 표현하고 받아들이기에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는 탓이다.
아침을 좀처럼 먹지 않는 내가 하루는 아침 시간에 식당에 갔다. 보통 식사 시간이 되면 먼저 간 사람이 자리를 잡고 먹고 있으면 하나 둘 모이게 마련인데 그날은 아무도 오지 않는다.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선생님 중의 한 분인 장구오가 동료들의 안부를 물어온다. 잘 모르겠다는 나의 대답에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네가 아는 게 도대체 뭐냐, 고 정색을 한다. 이곳 탄자니아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웃집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그건 아주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아침 식사보다 잠을 선택했다는 걸 알기에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자, 아프거나 위험한 일이 발생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탄자니아에는 ‘한 손가락으로는 이를 잡을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냥 웃고 만다. 옆방에 살면서 따로 와서 밥을 먹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신의 그릇을 챙겨 먼저 자리를 뜨는 우리가 그들 눈에는 참 별스럽게 보일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구오에게 이런 우리를 설명할 길은 없다.

 

방으로 돌아오는 밤하늘에 보름달이 바오밥나무 가지에 걸려있다. 필리가 말한다.
“특별한 일이 있는 날 하늘을 쳐다보면 보름달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정말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면 보름달이 있더라고요.”라면 두 봉지가 특별함을 줄 수 있는 지금. 난 이 순간이 좋다.


 

소피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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