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대통령이 기자 회견을 자청하였다. 국정농단 주모자들과의 공모 혐의로 이제 검찰의 대면조사 요구를 받고 있던 중이라 정치권은 물론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회견 요지는, 국민에게 사과를 할 때 제기했던 국회 추천 총리를 선임해 달라는 것이고, 약속대로 총리에게 조각 구성 등 헌법이 규정하는 권한에 더하여 내치와 외치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까지도 위임하겠다고 하며, 더하여 특검의 조사에도 성실히 임하겠다한다. 

먼저 책임총리 국회 추천 제의를 거절했던 야당 정치권은 이후 대통령의 버티기 작전이 시작되면서 당혹스러워 했고, 탄핵 추진에 있어서도 야당 간 엇박자를 내는 등 대통령 퇴진을 위한 시스템적 불안정한 행보를 하였으며, 야당이 합세하여 탄핵을 할 것을 결정했지만 그 후의 절차 곧 대통령 권한 대행자가 되는 현 국무총리에 대한 불신으로 난감해 하던 터라 대통령의 제의를 논란 없이 수용함으로 후임 총리 인선 절차를 시작하였다.   

책임 총리 후보를 두고 여·야간 의견의 불일치로 다소 소란스러웠으나 사태가 사태니 만큼 여·야는 한 발씩 양보하여 양쪽이 공감하는 중립적인 인물을 선정하여 대통령에게 임명을 요구하였고, 대통령은 약속대로 군말 없이 이를 수락함으로 새 총리 체제가 출범하였으며, 새 총리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중립적이면서도 전문성을 갖춘 내각을 구성하는 것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않던 상황이 전개되었다. 새 총리 체제가 출범하자 대통령은 다시 기자회견을 요청하고는 그간의 청와대 참모들의 국정 농단 등 죄과에 자신이 연루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대통령직을 사퇴하겠다고 선포하였고, 대통령직을 놓은 만큼 그 동안 누렸던 헌법적 특권이 소멸됨을 스스로 인정하고는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하였다. 

세상은 깜짝 놀라며 한편은 대통령의 비리를 질책하면서도 다른 한편 비록 잘못을 하였지만 책임지는 대통령의 용기 있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었다. 국내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물론 외국 언론들도 빅뉴스로 취급하였다. 그 동안 비난 일변도로 치달으면서 당장에라도 자리에서 끌어내려던 민심은 대통령의 결단에 찬사와 함께 촛불을 내러놓고 대신 연민을 표하는 모습들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외신은 ‘위대한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하였다.”

작금의 상황이 아주 어지러워서 잠깐 소설을 써 봤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 다수의 가슴에 희망을 던지는 상황의 전개가 아닌가!

물론 이런 상황의 기대는 어렵다. 우선 당사자에게 그런 기대를 가질만한 신뢰를 두기가 어렵다. 다시 말하면 그럴만한 그릇이 아닌 것은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행보가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런 한편, 그를 공격하는 측에도 유사한 상황 전개를 끌어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기가 어렵다. 입장만 다를 뿐 공격을 받고 있는 자와 다른 점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 대부분은 외형상으로는 나라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덕분에 그들의 입장을 유리하게 전환함으로 차기 권력자로 부상하고자 필요한 일만 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 대해 국민들은 어떤 모습인가? 우선 보이는 것, 그러니까 상당수의 국민들의 주조는 무조건 대통령의 퇴진이다. 대통령으로서의 자질부족을 이유로 내세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범죄자로 보는 수도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그냥 싫다는 수도 만만치 않다. 평소의 그의 삶에 대한 반감 때문인가 보다.

가치관의 다양성을 가진 인간사회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판단은 오류이므로 민심을 따지고 싶지 않다. 인간의 가치관을 함부로 구획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과오를 저질렀고 그것은 그의 위치 때문에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엄청난 범죄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그가 저질은 과오는 일반인이라 해도 평범하다 할 수 없는 범죄인데 하물며 대통령이라는 직분에서 저질렀으니 그 정도는 형량하기 어려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 세상 사정이 이렇다. 그렇듯 현재와 같은 흐름에서는 이 혼란의 끝은 긴 시간을 요할 것으로 보인다. 공격하는 쪽이나 공격받는 쪽이나 결정적일만한 어떤 장치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꿎은 국민들만 추운 날씨에 촛불행사를 계속해야 할 판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형화된 조직이 없는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촛불을 드는 일 외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는가!

그렇다고 국민들에게 이 이상의 행위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동기로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헌법적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결과에 가치를 둘 수 없다. 목적이 숭고하다 해서 수단 강구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결론을 말한다. 정치권은 국민들의 촛불에 고무되어 황홀감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고 하루 빨리 뜻을 모아라.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방향 곧 헌법적 절차인 탄핵을 행동하라. 그것이야 말로 헌정질서를 지킴으로 민주헌정국가로서의 위상을 지키는 것이다. 제발 여야로 편을 갈라  싸움박질 하지 말고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는 자세로 정파적 이익도 명분도 접어두고 혼연일체가 되어 한 목적을 위한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라. 지금 나라는 경제사정에 더하여 외교 국방에 이르기 까지 몹시 어려운 사정임을 명심하라!

국민들은 이제 새로운 의미의 촛불을 밝혀라. 그것은 질서에 의한 대통령의 퇴진이 되도록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왕에 한뜻을 가지기로 한 정치권들이니 정파적 이해를 떠나 한 마음이 되어 오로지 한 목적만을 위해 응집토록 독려하는 한편 목적을 달성될 때 까지는 결코 다른 길로 가지 않도록, 촛불을 더욱 밝게 올려야 한다.

탄핵 후의 일로 정치권도 국민도 미리 걱정을 하면서 서로 당기고 밀고 하지를 말라. 시간을 끌면 반동들이 작동할 수 있다. 이 땅에는 아직도 비민주적이고 비정상적인 수구세력들이 여러 분야에 무수히 산재하고 있으며, 그들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쓸 수 있는 에너지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 

단언하건데, 권한 이양을 받은 국무총리는 그가 누구이던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진리를 밝히고자 높이 치켜 든 국민들의 촛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미덥지 못하지만 현재의 각료들도 나름의 경륜과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현 사태에 따른 상황인식을 함으로 경솔하거나 서투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이성을 찾아 이 환란의 시간을 견뎌냄으로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자. 오천년 역사를 가진 이 민족에게 지금과 같은 간난(艱難)의 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시간들 속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세계의 역사 속에 뚜렷한 지표를 펼친 대한민국이 아닌가! (♣2016.11.25.)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정조임금이 오신다. 조선왕조 임금 중에서 제4대 세종에 이어 바람직한 군주로 후세에 기억되는 제22대 정조 임금이 오신다. 비정상의 세계에서 당신이 겪으신 한(恨)을 상기도 잊지 못해 세상을 두드리러 다시 오시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당신의 의미 있는 거행의 첫날 쉼 장소인 시흥행궁이 없어져 버렸으니.......,


오는 10월 8~9일 양일간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 화성행궁까지 7박8일 간의 ‘을묘년 화성원행(乙卯年-1975년, 華城遠行)’을 원형 재현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거행된다. 이 행사는 정조가 평소의 이상(理想)을 현실화 하고자 했던 화성(華城) 곧 수원시가 지금껏 독자적 연례행사로 치르던 것을 이번에는 서울시 및 이웃도시들과 함께 한다고 한다.


이 거행은, 정조임금께서 당신이 품고 있는 국가통치 이념을 드러내고 더불어 세상 보편 가치조차 말살되고 있는 당시의 혼돈 된 사회질서를 바로잡고자 즉위 이전부터 계획하였던 개혁의지의 표명이다. 그렇듯 분명한 목적을 가진 장엄하고도 규모가 큰 국왕의 행차 의식으로 우리 민족은 물론 이를 아는 외국인에게도 깊은 인상을 갖게 하는 역사의 재현이다. 

지난 역사의 한 임금의 행차인 이 의식을 막대한 비용을 들이면서 그것도 여러 지방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은 역사적 상징을 범국민적 행사로 치름으로 문화국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함으로 관광한국의 이미지 제고효과에 더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때문으로 이해한다. 

정조가 세자 무렵에서 즉위 이후의 당시 사회는, 정치권력을 장악한 유림(儒林)세력들이 공리공론(空理空論)만 일삼으면서 건설적 변화를 거부하고 임금조차 무시한 채 백성을 수탈하는 가렴주구(苛斂誅求)의 주구(走狗)노릇을 하였다. 정조의 이 거행은 이러한 비인도적 비생산적 세력인 수구(守舊) 세력들을 배척하고 민중을 국가의 구성원으로 예우하는 참 민주주의의 시현을 선포한 위대한 행군이다.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권력지향세력에 둘러싸여 소통 제로가 됨으로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오늘의 정치현상에 던지는 시사가 그곳에 있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위대한 행사의 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우리 고장 시흥(금천)이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 장엄한 그 장정 첫날밤을 챙겨야 하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사실은 있는데 그것을 재현할 현장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여간 난처하지 않다. 그 현장에는, 더욱 난처한 사실을 만나게 한다. 시흥 행궁이 있던 공간이 그곳 일대라 짐작되는 유력한 증거물인 천년 은행나무들(세 그루)이 길 가운데와 가장자리에서 자동차 매연으로 신음하며  까맣게 타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문화를 존중하는 민족으로 자부하고 그것을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으며 헌법에 조차 이를 명문으로 규정하여 국가정책에서 챙기고 있는 문화국가(?)이다. 그런 나라에 숭고한 이상과 철학을 행동한 위대한 역사인물의 행적이 형태는커녕 그 위치조차 모르고 있는 부끄러운 사실이 존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시흥(금천)에서 만나는 현실이다. 어떻게 이렇게 황당한 일이 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를 한없는 부끄러움에 빠지게 하는가?  

이러한 현상에는 그럴만한 역사의 과정이 있음을 이해한다. 찬란한 문화를 일으켜 민족의 자긍심을 갖게 하였던 조선왕조는 후세에 이르러서 정치권력의 무능으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역사의 유산은 물론 민족의 자긍심까지 말살시켰다. 서방의 도움으로 간신히 해방을 맞았지만 철학 부재한데다 무도하기까지 했던 정치권력들이 대를 이어 40여년을 지배하면서 세상을 온통 물질가치로 오염시킴으로 찬란한 우리 역사의 숨결들은 곳곳에 진한 상처를 입혔는데 오늘 우리가 분통해 하는 이곳 시흥(금천)의 역사도 그 사례의 하나이다.

1970년 초까지 은행나무들이 있는 곳은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었고 주변 일대는 지금과 같은 혼란스런 도시 시설들은 없었는데 행궁의 흔적을 챙기는 것은 고사하고 오늘의 은행나무의 생육 현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주변일대를 처참하게 망가뜨려 버렸다. 그 역사의 현장에는 문화민족이라면 도무지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들, 1000년에 가까운 생육 역사를 가진 은행나무 세 그루가 길 가운데와 가장자리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선도비들조차 길 가운데에서 온갖 길 먼지와 차량들이 품어내는 아황산가스를 덮어쓴 체 볼품없는 모습으로 서 있다.  

이렇게 황폐한 환경이 될 동안 이곳을 사는 시흥(금천) 사람들,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역사의 숨결을 찾아 문화도시를 만드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물질 풍요만을 추구하는 경박한 시민의식만 있었지 않은가? 시민들이야 그렇다 해도 고장을 잘 가꾸겠다고 자리를 차지한 정치지도자를 비롯한 관료들은 또 어떤가! 

구전(口傳)에 의하면 시흥행궁자리는 시흥5동의 천년은행나무 세 그루가 있는 부근일거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여기가 그곳’이라 할 만한 역사의 사실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다만 일제 강점기에 행궁은 없어졌고 그들의 지배체제에서 흔적조자 지워지면서 그 공간은 인간의 이기심 충족의 장으로 변하게 되어 오늘과 같은 현상이 있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혼돈의 역사인 일제 강점이 끝나면서 전국 각지에서는 역사 실종을 찾는 운동이 전개되면서 많은 역사 유적들이 더러는 제 모습을 찾고 그렇지 못한 곳은 그 흔적에 의미를 둘 수 있는 역사(役事)들이 전개 되었는데 이곳은 그 공간의 위치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무관심 지대가 되어버린 데는 이곳을 생활공간으로 두고 있는 우리 모두가 통절히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진정을 하고 다시 역사를 본다. 정조 임금은 이곳에 행궁을 두는 것을 기화로 이곳 행정지명을 당시까지의 금천현(衿川縣)에서 시흥현(始興縣)으로 하고 고을 수장인 정6품인 현감을 정5품인 현령으로 승진시켰다. 그가 준비한 역사의 장을 펼치는 첫 기착지로서 의미를 부여한 것 일게다. 

그런데 이제 이곳에서 시흥(始興)은 이제 동명(同名) 등 몇몇 기관의 명칭으로 있을 뿐 역사의 주적(主績)은  딴 곳으로 가버렸다. 시흥시(始興市)를 행정지명으로 곳이 따로 있고 그래서 국가의 행정기록도 그곳에 가버렸다. 이곳 시흥은 이제는 다만 금천일 뿐이다. 물론 금천도 이곳 역사이니 그것이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흥이란 지명과 그것이 이곳에서 가지는 의미가 서서히 퇴색되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일찍이 개화한 서방 국가들은 사소한 역사라 하더라도 그것이 가진 의미를 부각하기 위하여 국가예산을 드려 기념의 장을 만들어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선진국으로 이해되는 것은 앞선 문명에 더하여 문화에 대한 남다른 의식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문화민족이라면 이러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필요한 행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금 10월 8일 행사에 주민들이 대대적으로 참여를 하자. 비록 시설은 없어졌지만 역사의 사실과 그로 인한 공간은 없어지지 않으니 이번 행사를 계기로 시흥행궁 복원 당위를 범주민적으로 펼칠 명분을 구해내자. 이를 위하여 선행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고사상태의 은행나무를 살리고 길 가운데 방치된 선도비의 갈무리다. 그래서 앞선 사람들이 망가뜨린 역사와 훼손된 문화를 다시 살리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어 시흥행궁 복원사업 현실화의 토대를 만들자.(♣2016.9.25.)


서울시의 ‘청년활동 지원 사업’을 평가한다.

 

 

서울시는 구직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취업지원을 위해 1년 이상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미취업 청년 3000명에게 이른바 “청년수당” 월 50만원을 최대 6개월 동안 지급한다는 “청년활동 지원 사업” 시책을 발표했는데 발표 2주 만에 630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청년수당'은 서울시가 정기 소득이 없는 미취업자이면서 사회활동 의지를 갖춘 만 19~39세 미취업 청년 3000명에게 최장 6개월간 교육비와 교통비, 식비 등 월 50만원의 활동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쉽게 이해를 하자면 청년들의 취업지원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정부 측 주무관서인 복지부는 이의 시행을 반대하고 있어 이 정책의 실행여부는 아직은 미지수다.
서울시가 이러한 시책을 시행하려는 것은 현재 우리사회가 당면한 청년실업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증좌로 시책의 정당성이나 합리성을 따지기 이전에 그 발상에 우선 성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청년실업 문제는 국가의 현재는 물론 미래를 위하여 마땅한 해소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만큼 가능한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하는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럴 만큼 지금 우리 사회는 청년 실업해소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만큼 심각하고도 긴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냉정을 찾아 이를 살펴보면 이러한 정책이 과연 온당한가에는 의문이 든다. 물론 그 시행에 일정한 기준을 두겠지만 어떻든 무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라 보편 가치관으로 수긍이 어렵고 그 시책의 성공적 결과에 대한 기대도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색을 하고 반대를 하는 이유도 그런 점에서 이해가 된다.

 


국가의 모든 정책의 수립은 그것의 시행으로 이뤄낼 수 있는 공익적 성과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과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국가정책 시행은 예산이 수반되고 그것은 모두 국민들의 부담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목표는 공익성에 두고 있지만 그 성과가 추상적인 사업은 정부의 정책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특별한 사안에 따른 불가피한 시행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글자 그대로 특별한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
이런 유형, 즉 목표치가 불분명하거나 성과가 추상적인 정책 사업은 대개 인기영합적인 사업들이 많다. 선거를 앞두거나 그러한 공약으로 권력을 쟁취한 세력들에 의해 시행되는 경우가 그것으로 결과는 하나같이 공익성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국고 낭비 질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정책시행 과오는 특히 복지정책에서 많이 보인다. 정책의 특성상 국민들에게 기대치를 심어주게 됨으로 그 정책 시행주체에 대한 지지로 연결될 수 있어 선거를 앞둔 국가 권력자들이 선호하고 그래서 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시의 ‘청년수당 장첵’도 그런 범주에 두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확고하게 ‘아니다’라고 부인하기도 어렵다.
우선 이 정책이 가진 외관(外觀)이 그렇다. 정책의 모양도 그런가 하면 시기도 의심을 가질만한 하다. 더욱 짙은 혐의는 그 대상이 국민 구성에서 가장 비판적이라 할 수 있는 청년층인데서 찾을 수 있다. 필자의 과민함일지 모르지만 이들 정책 대상 세대는 감정이입(感情移入)이 풍부하고 그래서 타 세대에 비해 사회 여론 조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권력을 지향하는 세력은 이런 세대의 동향에 민감하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이른바 ‘청년수당’을 어떻게 보는가? 지금까지의 논조를 볼 때 필자는 이 정책을 반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으나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이를 지지한다. 그런 정책이 반갑고 기대를 가져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사회가 당면한 상황으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현상극복을 위한 국가적 대책을 촉구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비판적 부언(附言)을 단 것은 정책의 행태나 시기를 감안할 때 오해의 소지가 있고 그래서 모처럼 마련된 요긴한 정책이 무력화 될까 우려되는데 따른 당부를 더하고자 함이다. 솔직히 이 정책은 인기 영합적이라 오해할만한 소지가 있다. 포퓰리즘 냄새가 짙고 그래서 일반 다중(多衆)의 비판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책의 행태와 시기 특히 그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시행주체가 누구인가는 의혹을 둘만한 충분한 요건이 된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시행되어야 한다. 현재의 청년실업에 대한 대책은 중요한 과제이므로 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시점 등을 두고 오해를 이야기 하지만 이는 ‘나무는 보면서 숲을 못 보는 격이다’ 청년실업 문제의 방안강구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긴급하고도 긴요한 국가적 현안이 아닌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여(與)든 야(野)든 정치권은 말할 것 없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열외(列外)가 되지 않아야 한다.
비교를 위한 접근이 논쟁 사유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정책으로 소요되는 예산은 그것의 효용성이나 실용성에 가치를 둘 수 있다. 예정된 총 소요 예산(90억원)은 국회의원들의 예산에 비교할 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크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잡비 예산에 비하여도 작은 금액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는 국가위기 극복의 한 일환에서 조명되어야 할 만큼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내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로 정치권은 활발한 정책 대결모습을 보일 것이고 따라서 권력 지향세력에 의한 무분별한 포퓰리즘 정책들이 남발할 것이다. 그들의 공약 중에서 아마 청년 실업해소는 중요한 공약이 될 것이 분명하고 그 비중도 높을 것이므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이 정책은 선제적이라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작년(2015년)부터 준비하여 일 년 여에 이르는 시간에 걸쳐 검토되어 그 내용과 방향 등이 상당 수준의 과학적 결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므로 임기응변적으로 남발되는 다른 이들의 정책과는 차별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견(豫見)컨데, 내년 정치판도에서 청년실업 문제는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고 따라서 정치권은 중요한 과제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정책 주체인 서울시 당국자에게 당부한다. 그대들은 당면한 시대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목표를 향해 진군하기 바란다. 결과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어려운 사안이고 비판에 더해 반대조차 심한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것을 이해하는 국민들이 있음을 기억하여 용기를 가져주기 바란다. 진정한 애국자는 국가가 위기를 만났을 때 목숨조차 바친다는 각오로 임하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소신에 따라 최선을 다하라. 심각한 청년실업 사태인 지금 상황에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위대하고 성스럽기조차 하다. 진정한 나라사랑 모습은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임무를 담당하는 것에서 빛을 발한다.(♣2016.7.24.)

 

 


장제모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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