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는 말이 있다. 재주는 능한데 덕이 없어 사람에게 유익한 존재가 못되는 이를 두고 말한다. 돈과 권력의 힘을 믿고 횡포를 부리다 망한 이들에게도 붙여지는 이름이다. 87년 민주화 시민항쟁을 거치면서 한국은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시민의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그 결과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가 만들어 졌다. 그래서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청문회를 통해 고위급 간부가 되는 문제에 재덕을 따지는 절차가 만들어졌다. 기능만 승한 재주나, 권력에 아부하는 능력으로 국가의 공적 책임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성숙한 민의가 반영된 제도요 절차다. 


그런데 이명박 박그네 정부를 거치면서 이런 기준이 시나브로 실종됐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총칼의 만든 철의 권력이 인사를 만사(萬事)가 아니라 망사(忘死)로 만들었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돈이 만든 권력이 인사를 망사(忘死)로 만들다가 박그네 정부 들어서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후안무치의 말종들만 등용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맞는 것도 희한하다. 일찍이 국제 투기꾼 소로스는 ‘돈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무도덕한 것’이라 했다. 권력은 부모 형제와도 못 나눈다고 했다. 그러니 돈과 권력은 부패와 부정으로 간다. 그것을 막는 것은 도덕적 조건을 만드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 사람으로 염치와 양심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동반될 때다.  


사람은 재주만큼 덕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지도자는 재주만큼 덕도 스스로 쌓는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을 갖춰야 한다. 그게 리더십이다. 지혜가 많거나 술수가 능한 것은 재(才)의 영역이다. 많은 사람들은 재를 통한 성공을 부러워하여 재가 곧 덕이라 믿기도 한다. 하지만 달라도 엄청 다르다. 재는 총명함이고 덕은 공평 온화함이다. 재는 수단의 문제이고 덕은 기반이자 목적의 문제다. 


자치통감을 쓴 중국의 사마광은 재덕을 겸비하면 성인, 덕도 없고, 재주도 없으면 어리석은 자, 덕이 재주를 능가하면 군자, 재주가 덕을 능가하면 소인이라 구별했다. 그러면서 인재를 등용하는데 군자를 쓰는 것이 중요한데 군자로서의 인재가 없다면 소인보다 차라리 어리석은 자가 낫다고 말한다. 소인은 재능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고, 그가 저지르는 악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소인의 재주는 재앙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의 장관 등 권력자가 된 이들을 보면 전형적인 소인들이다. 새누리 당이 보여주는 막장 국회의원들의 염치없는 소리들, 그 좋은 머리로 부정부패나 저지르는 판검사들, 그 엄청난 힘으로 권력의 편에 서서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경찰 공권력, 무엇보다 백남기 농민열사에 대한 서울대 병원 정치의사들로 대표되는 지식인들의 패악질.. 어느새 한국은 재승박덕이 지탄의 대상이 아니라 성공의 필수요건이 되었다. 그러니 장관이 되는데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별별 불법 행위들이 당연한 듯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외려 뇌물 특혜 각종 부정부패가 능력의 기준이다. 우(牛) 병우, 최(膗) 순실, 진(嗔) 병준, 그리고 백(魄) 선하, 더러운 재승박덕 자들이 지성과 이성과 염치와 양심과 천의(天意)와 민의(民意), 그리고 민심(民心)을 저버리고도, 폭정의 흉기로서 자신들의 재능을 쏟고도 떵떵거린다. 헬조선이란 말이 자학의 말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 말임을 증명한다. 


한국이 염치없는 세상이 된 것의 가장 큰 공헌자는 이명박이다. 그가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냐.”며 거짓을 당연시 할 때 몰염치는 눈을 떴다. 그를 “도둑질 서방질이면 어떠냐, 돈만 잘 벌어 올” 서방으로 여겨 대통령을 뽑는 순간 덕은 장해물이 되었고 파렴치는 성공과 출세의 능력이 되었다. 재승박덕도 아니고 재승무덕이 되었다. 그러니 절로 한국청렴도는 최하위권이다. 물론 그 전에 헬 조선의 기본으로 양심과 염치를 제거한 것은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 자체다. 민족 반역자 매국노 친일파는 청산되지 못했다. 그들은 친미파 반공파가 되어 부정과 부패로, 총칼의 억압으로, 특권과 반칙으로 돈과 권력을 틀어쥐고 반공 반북의 칼을 휘둘러댔다.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 이긴 놈이 장땡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돈 벌고 출세한 사람들을 시기하지 말고 존경하라’는 식의 양아치 심보가 체계적으로 세뇌된 역사가 신자유주의를 무도덕한 세상을 만나 음지 상처에 곰팡이 슬 듯 만개한 것이다. 그것이 헬 조선의 본 모습이다.    


사람이 여타 짐승과 다른 점은 지능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의 지능이 덕을 갖추지 못하면 지능의 능력은 사기 협작 범죄의 흉기가 된다는 점이다. 사이코패스가 무서운 것은 그의 지능에 연민과 양심이 소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염치와 양심이 없는 사람은 어떤 짐승 어떤 악귀보다 잔인하고 또 잔인한 존재가 된다. 매일 뉴스에 오르는 엽기적인 범죄나 패륜은 개인의 심성이 문제가 아니라 양심과 염치가 없는 세상이 길러낸 결과물이다. 붕어빵과 국화빵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붕어빵이나 국화빵의 결정이 아니라 빵틀이라지 않는가? 재승박덕 재승무덕한 세상에서 개인은 자기와 상관없이 괴물이 되어 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사람의 길을 포기하는 순간 사람은 사람에게 악귀다. 그런 순간을 조장하고 그런 관계를 증폭하고 이런 사회를 영구화하려는 것 중 하나가 지금 공공노동자들이 파업으로 막고 있는 이른바 성과연봉제다. 협력을 경쟁으로, 동료를 경쟁자로, 관계를 적대 화하고, 삶을 전쟁 화하는,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사람에 대해 굶주린 야수로 만드는 체제에 대한 인간적 저항이 공공 화물 노동자들의 파업이다. 안전 사회를 위한 진실을 향한 세월호 유족들의 분투, 국가의 파렴치한 폭력에 맞서 굴하지 않는 백남기 열사 유가족들의 투쟁이 고마운 이유도 헬조선의 패륜 사회를 막는 몸짓이기 때문이다. 돈이 아니라, 광기의 사유화된 권력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가 이기는 세상을 만들자. 공자님은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 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그 이웃이 있다는 말이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불의에 저항하는 이들을 외롭지 않게 우리가 연대로 그들의 이웃이 되자는 말이다. 그렇게 하자. 당장 연대의 손품 발품을 팔자.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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