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안소영 지음, 강남미 그림, 출판사 보림 



온종일 방에 들어앉아 혼자 실없이 웃거나 끙끙대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기도하는 이덕무를 보고 사람들은 어딘가 모자라는 책만 보는 바보 "간서치"라 불러다 한다. 이 책은 본가의 적자가 아니니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니 살림을 꾸려 갈 녹봉도 받지 못하고 온전한 양반들만의 세계에 끼워주지도 않았던 서자출신 이덕무와 그의 벗들(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명문가의 자제지만 생각이 깊었던 이서구, 스승이었던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등 역사속 인물들의 삶을 마치 곁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저 별 도리 없이 가난을 대물림 받아 가슴속에 품은 뜻을 세상에 펼쳐 볼 수 없었던 이덕무는 굶주린 때에, 날씨가 추울때에, 근심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기침병을 앓을 때에는 온종일 작은 방에 앉아 햇살을 따라 책상을 옮겨가면서 애써 돼내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한다.


 1766년 5월 백탑(원각사 십층석탑) 이 있는 대사동으로 이사를 하게되고 벗들과 스승을 만나게 됨으로써 이덕무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의 벗중에 박제가는 오랑캐의 신기한 것만을 좋아하며 쫓아 다닌다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잘못된 것에는 눈을 부라리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뜻을 굽히는 법이 없이 그의 말은 언제나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의 눈을 백성들에게 닿아 있었기에 양반과 백성을 구분하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농민과 수공업자 상인들의 순서를 매기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다. 

 쾌한 생명력을,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편안하게 해주는 독특한 기운이 있는 유득공또한 그의 벗이었다. 유득공은 늘 소매에 종이와 붓을 넣고 다니며 조금이라도 색다른 것을 보면 글로 써두어 글 상자 속에 보관하였다. 조선의 역사. 조선의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눈여겨 보았으며 조선땅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그는 (이십일도회고시)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처남 매부지간이었던 백동수는 성미가 급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무인 집안의 자손으로 할아버지에게 활 쏘는 법, 말 타는 법을 배우고 당시 최고 검객 김광택에게 검술을 배웠으며 의술과 단학도 아울러 익혔다. 


 가난에 찌든 선비였던 이덕무와 부족함이 없던 명문가의 자제였던 이서구가 벗이 될 수 있었던건 책을 통해서였다. 문턱이 닳도록 오고가며 책을 나누고 읽고 이야기하면서 서로가 너무 잘 맞았다. 

 이렇듯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사람으로써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마음에 맞는 벗들과 함께 백탑 아래에서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나이와 신분에 꺼리낌없이 함께 어울리는 것이었다.

 탑과 벗들과의 사귐이 무르익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도 더 큰 세계와의 만남을 갖게해주는 스승을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보면 누가 중심이고 누가 변두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의 스스로가 중심인것을 가르쳐준 단헌 홍대용 선생과 편견에 사로잡힌 세상은 새로운 활기라고는 없는 세상,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것들로만 가득한 세상이라며 편견을 버리라고 가르쳤던 연암 박지원과의 만남이었다. 

 정신없이 벗들의 이야기까지 읽어내려갔을때 생각이 들었다. 누구와 어디와 많이 닮았다.  같이 보고픈 책을 정해 열심히 읽고 부족한 책을 줄서서 돌아가며 읽어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정을 쌓아가는 은행나무도서관 역시 그들의 "청장서옥" 못지 않다는 것에 뿌듯했다. 

 서자 출신이라는 운명이 그들을 얽매일때 세상에 태어나 쓰일 때가 없다는 절망감에 고통스러울때 백성의 미래가 조선의 미래가 걱정스러울때 같이 분노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벗이 없었다면 어디에 마음을 둘 수 있었을까?


 이덕무는 나이 40이 다 되어 박제가, 유득공과 함꼐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의 수행원으로 가면서 넓은 세계로 첫 발을 내딛는다. 정조의 탕평책으로 규장각 검서관이된 그는 여러 서적의 편찬, 교정, 감수에 참여하였으며 많은 시편도 남긴다. 그 뒤로는 경기도 적성지방의 현감으로 내려가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 고을을 다스렸다. 그들이 후세에 남긴 많은 서적들을 다 읽어볼 수는 없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다하더라도 누군가 나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와 나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때, 우리는 시간을 나눌 수 있다. 옛삶과 우리가, 우리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하는 벗이 되리라." 이 글귀 처럼 "책만 보는 바보" 한 권의 책으로도 책과 벗들을 그리고 내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하는 벗이 될 수 있으리라 싶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정혜숙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