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탄에 묻힌 사람들의 이야기 <1945, 철원>을 읽고


   철원에 있다는 노동당사 이야기는 진작에 듣고 있었는데 책을 읽기 전, 작가가 그 노동당사를 보고 이 소설을 기획했을 것 같았다.

  사진으로 본 그 건물은, 경험하지도 않은 많은 일들을 느끼게 했다. 실제로 봤다면 더했겠지만 사진으로도 그것은 충분했다.

  2008년쯤, 여성문화유산해설사 강의를 들으며 꽤 오랜 시간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종강을 앞두고, 문화유산을 찾아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발표를 했는데 우리 조는 고려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공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귀한 집 부녀자까지도 끌려갔던 공녀는 경복궁을 거쳐 서대문과 독립문을 지나 원산까지 가고 다시 중국땅으로 가는 긴 여정을 마쳐야 했다. 우리 조는 그녀들의 행선지를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고, 독립문 근처에서 그녀들에 대한 예를 올리기로 하고 댕기와 버선을 준비했다.

  그녀들이 거쳐갔던 서대문과 독립문 근처를 왔다갔다하다가 그녀들의 소리를 들었다고 해야할까 그녀들의 뒷모습을 봤다해야 할까, 아니면 두 가지를 다 듣고 봤을지도 모르겠다. 댕기를 길게 늘어뜨린 여인들이 걸어가고 있었고, 잠시지만 울음소리를 들었다. 지금도 그 곳에 가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철원의, 폭격에 온 몸을 맡긴 그 건물을 보니 또다시 어떤 이야기와 어떤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역사라는 것이 나와 동떨어져있는 것이 아님을 이제 알기 때문일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특히 이 땅에서 벌어진 일들은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사상의 대립을 겪지 않았다 해도 결국 내 안에서 나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잘못 봤나 자꾸 앞 쪽을 보게 된다. 주인공 경애와 기수, 은혜들의 나이가 고작 열여섯이라니... 그 나이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하고, 가족과 이념 사이에서 방황해야 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진작에 보았던 박완서의 소설에서도 열아홉의 어린 박완서가 겪었던 일은 그와 다르지 않았다. 전쟁은 그에게 하나의 숙제가 되어 대부분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박완서는 자신이 겪은 일이었겠지만 이 소설은 ‘철원노동당사가 본 것’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그 시절 있음직한 이야기로 씨실과 날실을 잘 엮었다.

  사상의 극단은 현실의 어려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전두환 시절 학교를 다닌 나는 아직도 전경들의 군화발 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꿈을 꾸고, 깨어서도 땀을 흘린다. 내게 닥쳤던 현실은, 나름 암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역시 극한의 사상들이 출연하고 대립한다. 술을 먹지 못한다는 이유로, 집안이 가난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르조아지라며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던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졸업후 그 시절에 배웠던 인간다움을 위해 애썼던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원을 차리고 참교육 따위는 아랑곳 안했고, 돈을 버는데 열을 올렸다. 사실 그걸 비난할 수도 없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공산주의 사상은 그간 눌리고 억압되었던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연천댁이 그랬고, 경애도, 제영도 그랬다. 뭔가 빼앗기기만 한 사람들이 인간다움으로 대접받고 공평한 처우를 받고 무엇보다 생명같은 땅을 나누어주지 않았던가. 그 사상은 옳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 사상의 실천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사람살이는 그렇게 딱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권력의 맛을 들인 사람은 그것을 추구하게 되어 다시 비인간적인 상황을 만들곤 한다.

  우리 어머니는 신경줄이 얇아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는데, 그러다가 울먹이며 갑자기 전쟁 때 이야기를 한다. 노쇠해지면서 하는 이야기는 주로 지주이자 천주교신자였던 아버지가 숨어지내던 그 곳에 밥을 갖다주던 이야기다. 냉정하기만 한 아버지, 한번도 애썼다고 안아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작은 단발머리 아이는 산을 넘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피투성이인채로 구덩이에서 발견되었고, 다시 소녀 시절로 돌아간 어머니는 아버지,아버지 부르며 운다. 외할아버지는 최근, 순교한 것으로 인정받고 성인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피로 가득찬 아버지의 고무신을 잊지 못하고 마음에 큰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그게 누구의 잘못인가? 누구에게도 그건 너 때문이라고 속시원하게 말하지도 못한 세월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세월이 준 상처로 가족은 해체되고, 믿었던 이는 배신을 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온갖 인물들이 나오는데 다소 극적인 면도 있지만 그럴 법한 이야기들이다.

  끝에 책을 좋아하는 경애가 미자를 데리고 예전 서화영의 서재로 데리고 가 책을 빌려주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하지만 이 때는 1947년으로 평화로운 시절은 그 이후에도 절대 오지 않았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경애가 들은 무심한 총성이 그 무지막지한 시대를 알리는 소리는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다시 또 철원의 노동당사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가 본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기둥에 선명한 총탄이 그것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묻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민 경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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