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출근을 서두른다. 입안이 깔깔한 시간이지만 아침밥은 꼭 챙겨 먹어둬야 한다. 세상이 온통 꽁꽁 얼어붙은 새벽 4시30분, 차가운 버스에 몸을 싣는다. ‘제길 히터가 고장난지 언젠데...’ 운전석은 아예 에어컨이고 승객석 뒷자리의 히터가 약하게 온기를 내뿜는다.


그래도 부지런히 달린다. 사람들이 하나 둘 올라오면 차 안도 온기가 스며든다. 요즘은 방학기간이라 떠들썩한 아이들 얼굴을 보지 못한다. 아이들 얼굴이 사라지면 내 월급날도 사라진다. 수입이 줄어서 월급을 제때 못준다는 사장님의 한마디에 우리들 생활도 모든 것이 마비되고 만다. 

  이제 12시, 남들은 점심 먹는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점심시간이 없다. 퇴근 시간이 2시 30분이니 퇴근 후에 집에 가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 새벽밥 든든히 먹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도 배가 고프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지고 짜증이 난다.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시흥역 앞에서 오뎅이라도 먹을 수 있는 날은 그래도 운 좋은 날이다. 노점이나 다른 차들이 가로 막고 있으면 그나마도 차를 댈 수가 없어서 침만 한번 꿀꺽 삼기고 만다.

짜증이 막 올라오는데 보건소 앞에서 느릿하게 올라오시는 할머니... 속이 터진다. 시간 맞춰 못가면 퇴근시간도 늦어지는데, 뭐라 말은 못하고 인상만 구겨진다.   오후반인 경우는 그래도 손님 없는 4시 반부터 5시 반까지 밥을 먹을 수 있다. 한시간 동안 여러명의 기사가 돌아가면서 먹는다. 약 8분여 시간동안 밥 한 그릇을 먹어 치워야 한다.  트림할 시간도 없이 차에 올라탄다. 그리고 퇴근시간에 맞춰 열심히 달린다. 꾸불꾸불한 길을 시루안의 콩나물처럼 가득 찬 손님들을 싣고 달리다 보면 뒤통수가 근질거린다. 

  “과속방지턱이 안보이나 왜 이렇게 막 달려? 아저씨 히터 좀 쎄게 틀어. 얼어 죽겠네.”라는 불평불만이 쏟아진다. 해가 떨어지면 사람들 온기로는 찬바람을 당할 수 없게 된다.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잠시 귀머거리가 되어야 한다. 술 취한 승객한테 잘못 댓거리 했다가는 바로 교통불편 신고에 접수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은 무난한 하루다. 중간에 고장이라도 나면 그날은 완전 똥 밟은 날이다. 늦춰진 시간만큼 퇴근시간도 늦춰지지만 그보다 하루 종일 승객들을 꽉 채워서 다녀야하고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의 욕설을 들어야 한다. 그건 정말 악몽이다. 

배고프고 짜증나도 시내버스 기사가 되는 날까지 꾹 참고 버텨야한다. 마을버스 경력이 없으면 시내버스 기사가 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나도 친절한 운전기사가 되고 싶다. 불편한 어르신 부축도 해드리고 싶고, 학생들이 좀 떠들어도 인자하게 웃어주고 싶다. 꾸불꾸불 한 언덕길 오를 때도 부드럽게 달리고 싶다.
그런데 나는 굶주린 늑대이고 짜증 잔뜩 난 꼰대이다. 막 밟아야 올아 가는 똥차 기사이다.     
  

김선정 기자
gcinnews@gmail.com

* 본 기사는 금천구 마을버스 기사를 취재하여 기자의 시점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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