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의 탄자니아 통신-13


나는 한국어 전도사???



교정을 걷다 보면 다양한 언어로 인사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외국인이다 보니 가장 많이 듣는 것은 역시 영어다. 그 다음이 중국어인데, 아프리카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면 나는 한국말로 답한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어리둥절해 하는 그들에게 이것은 한국식 인사라고 설명해 주면, 그제서야 알은체를 하며 드라마 얘기를 꺼낸다. 요즘 탄자니아에서 ‘주몽’이 인기인지 주몽 얘기를 많이 한다.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대사에서 자주 듣던 문장이나 단어의 뜻을 물어오기도 한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은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는데, 그럴 때마다 반을 편성해 오라며 돌아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눈에 봐도 에너지가 넘치는 교직원을 만났는데 그 역시 같은 요구를 해왔다. 

가끔은 예외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 예외가 세상의 한 부분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믿는 유형이다. 그는 그날 저녁 메신저를 통해 명단을 보내왔다. 반신반의하며 수업 일정을 잡아보라 했다. 단톡방이 열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시간표까지 나왔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수업이 열렸다. 오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몇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중국어 강사로 파견되어 온 ‘화화’와 고등학생 ‘조슈아’가 합류한 것이다. 


화화는 Hanban이라고 불리는 중국 교육부 소속의 ‘국제 중국어 교사’ 자원봉사 단원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기도 한 그녀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탄자니아에 왔다. 쾌활하고 적극적일뿐더러,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도 강해 수업을 즐긴다.

조슈아는 음베야 산을 등산하며 만났던 교수, 찰스의 아들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방학을 맞이해 집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합류할 시점에는 이미 진도가 제법 나간 터라 조금 일찍 오게 해서 기초를 가르치니 금방 글자를 깨우쳤다. 곧 스마트폰에 한국어 자판을 설치해 인사를 해왔다. 지금은 한국에 있는 또래와 채팅을 즐긴다. 컴퓨터에 한글을 입력할 수 있게 해주고 자판 연습 프로그램을 깔아줬더니, 한글 자판 스티커를 사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게 가르치는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내 영어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곳은 특이하게 초등학교에서는 스와힐리어 교재로 공부하다 중등 학교로 진학하면 모든 과목을 영어로 바꿔 수업을 받게 된다. 자국어도, 영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교육정책 탓인데, 이런 시스템에서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향상되긴 어렵다. 그래서 능력 있는 부모들은 사립 학교에 보내 초등교육부터 영어로 수업을 받게 한다. 교수 아버지를 둔 행운으로 사립 학교를 다닌 덕에 그의 영어는 제법 유창하다. 수업이 없는 날은 메신저를 통해 쉴새 없이 영어로 질문을 해대니 나 역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덕분에 내 영어 어휘도 많이 늘었다. 이제 방학이 끝나 다시 모로고로에 있는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며, 졸업 후 다시 합류하겠다고 한다. 그가 빠진 수업을 생각하니 잔재미가 떨어질 듯해서 걱정이다. 



국제 사회에서 그 나라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자국어 사용 인구 수가 사용될 정도로 언어는 힘이다. 일찍부터 그 사실을 간파한 유럽의 강대국들은 자국어 사용 인구를 늘리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해왔다.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란세스,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 영국의 영국문화원 등을 들 수 있는데, 중국은 그들을 모방해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공자학당을 설립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언어뿐 아니고 토목과 건축 분야는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곳은 요즘 어디를 가나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인데 거의 대부분이 중국 자본과 기술력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프리카는 중국 땅이라고 할 만큼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코이카와 세종학당을 통해 한글 보급과 나라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도도마 대학에 한국어 학과를 개설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어를 전공으로 하려는 학생은 많지 않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선택 과목으로 개설한다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욕구를 가진 학생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이곳 대학으로 오며 한국어 교육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맡은 전공과목에 대한 부담으로 다른 건 고려할 여건이 아니었는데 우연찮게 시작한 수업이 나를 나아가게 한다. 며칠 전, 총장 보좌인 음본데를 만나 한국어를 선택 과목으로 하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검토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중국 대학에서 한국어를 강의한 경력으로 시도해 보는 것인데,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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