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우리는 세계 다른 나라와 친선과 우호관계를 추구하겠지만 세계 어느 국가도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전제 아래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는 오랜 동맹은 강화하고 새로운 동맹도 만들어, 문명국가들을 단합시켜 급진 이슬람 테러집단을 이 지구상에서 없애 버릴 것"이다. 트럼프의 취임사 중 국제관계에 대한 언급이다. 


전체적으로 ‘오직 미국’만을 외친 취임사다. 이런 트럼프에 대해 미국의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끔찍하고, 무지막지하고, 위험한 파트타임 어릿광대이자 풀타임 소시오패스"라고 말한다. 또 누구는 ‘영리한 멍청이’라고 한다. 2015년에 트럼프는 미국 대선에 뛰어든다. 그리고 막말과 기행으로 대중적 인기를 끈다. 이때 대다수의 언론들은 비웃었고 그의 인기는 금방 식을 것이라 봤다. 그런데 그는 끝내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 역대 미대선 후보 중 가장 부자였지만 선거비용은 상대 후보의 절반도 쓰지 않았다. 힐러리는 돈으로 뉴스를 샀지만 트럼프는 막말과 기행을 뉴스거리를 찾는 언론이 저절로 달라붙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불투명, 돌발, 불확실성을 백인 남성의 뚝심이자 백인 남성의 낭만으로 만들었다. 무식하고 우직하고 멍청한 척 하며 할 것 다하고 승리하기까지 하니 ‘멍청한 영리한 이’ 가 아닐 수 없다.  


트럼프를 닉슨에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보통 미국의 양당은 대외 전략에서 질적 차이가 없다. 다만 공화당은 미국 우선주의라 부르는 고립주의를, 민주당은 민주와 인권을 내세운 개입주의를 선호한다. 그래서 실제 전쟁은 민주당 정권이 많이 일으켰는데 공화당이 더 호전적인 것처럼 느낀다. 이런 모습을 민주당은 세련된 ‘양복 입은 조폭’, 공화당은 배 유리병으로 긁으며 진상을 피우는 ‘양아치 조폭’이라고 비유했다. 모습은 양아치가 훨씬 흉하지만 피해는 양복이 훨씬 크게 만든다. 이런 공화당의 입장을 ‘미치광이 전략’이라 부른다. "미치광이 전략 (Madman Theory)"을 대외정책으로 삼은 미국 대통령이 닉슨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작은 일에도 발끈해서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로 믿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소련이나 제3세계에게 ‘나를 건들면 죽는다’ ‘한다면 한다.’라는 메시지를 주려했다. 적어도 트럼프는 미국인과 인류에게 미치광이 전략을 성공시킨 모습이다. 



미국의 석학 노암 촘스키는 트럼프를 ‘인류공동체의 삶을 가능하면 빨리 파괴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는 자’라 평가했다. 그러면서 2016년 11월 8일을 상기한다. 11월 8일, 세계기상기구(WMO)는 파리 기후협약 이행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모로코에서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2)를 연 날이자,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무참히 뭉개버릴, 세계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의 대선이 있던 날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트럼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미국이 됐다고 평가한다. 촘스키 교수의 말을 좀 더 빌리자면 트럼프 시대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관리 감독한 잘 나가던 미국 경제가 박살난 2007년 대공황의 산물이다. 그린스펀은 "노동자들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킴으로써" 경제를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위기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차마 임금 인상, 복지 혜택, 노동 안정성 등을 요구할 수 없었다. 참고 견디는 노동자 민중은 신자유주의적 기준으로 보면 매우 건강한 경제의 신호다. 그 결과 남성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1960년대 수준으로 추락했다. 반면 극소수 최상위층과 1% 부자들의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졌다. 그런데 또 왜 사상 최대 부자인 트럼프가 미국의 선택이 되었을까?


촘스키 교수는 진정한 원인을 빈부격차로 본다. 지금의 빈부격차는 자유시장 원리나 실적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기업하기 좋은 세상’ 정책 결정이 낳은 것이라 진단한다. 임금이나 복지 혜택의 파괴가 진행됐다. 안정적 일자리 방패인 노조가 파괴됐다. 그것은 자기 존엄성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 자기가 속한 세상에서 무언가 가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도 무너뜨렸다. 그런데 미국 백인들은 그 원인을 빈부격차에서 찾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능력주의 경쟁을 당연시 해 온 미국 백인들은 상층부 사람들이 잘 나가는 것에 대해선 불만이 없다. 잘 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하다. 그것이 '미국적 방식'이다. 오히려 불만의 대상은 자기보다 못한 이들이 된다. 자기들의 나아짐을 방해하고 괴롭히는 고통의 제공자는 뒤쳐진 사람들이다. '규칙을 따르지 않는 무자격자들'이 정부 정책 때문에 자기들을 앞질러 나가게 됐다고 여긴다. 이주민에 대한 혐오 복지에 대한 부정이 정부에 대한 증오로 나타났고, 이런 이들에게 트럼프는 변화를 대변하는 사람이다. 그 변화가 개선이 아니라 개악, 나아가 퇴락이겠지만 말이다. 


사회를 구조적으로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볼 사회적 시각이 사라진 곳에서 핀 시대가 트럼프 시대다. 사회를 제대로 배우면서 휴머니즘을 지탱할 공동체적 관계가 부족한, 노조나 진보 계급정당 등이 부재한 세상에서 고립된 원자로 사는 미국 사람들이 믿는 능력주의는 결국 ‘문제는 사회적인데 해결은 개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자 ‘사회가 생산한 질곡을 개인이 책임지는 시대’다. 트럼프의 시대를 연 다른 요인은 인종주의다. 그리고 기독교 근본주의다. 촘스키는 그런 미국인들의 정서를 이렇게 전한다. ‘미국에서 심각한 지구 온난화의 위협에 대해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 인구의 40%가 조만간 예수가 재림할 텐데 지구 온난화 따위가 무슨 문제냐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성경을 부정하는 것 같으면 오히려 과학이 비정상이 되는 구조가 미국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봉착된 문제를 세계의 이름이 아니라 미국의 이름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철저하게 실리를 따지는 장사치 정치이자, 걸리면 죽인다는 양아치 정치를 선언한 것이다. 무지몽매 맹목 그리고 의도된 미치광이 놀음에, 미국 판 이명박그네정치를 한꺼번에 볼 것이기에 세상은 아주 후져질 것이다. 그럴수록 ‘평화 친선 연대 그리고 통일’에 대한 주체적 각오가 필요하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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