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송게아 [소피아의 탄자니아 통신-14]


  ‘우리의 프린세스’는 사람을 좋아해 누구를 만나도 ‘카리부 송게아’한다. 

  송게아에 오는 걸 환영한다는 스와힐리어다. 그가 나를 자신의 집에 놀러오라며 빼놓지 않는 자랑이 남부 최고의 도서관을 가졌다는 ‘송게아 여고’, 독일식 수제 소시지 공장 그리고 유서 깊다는 가톨릭 성당이다. 임지에서 보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랑거리도 늘어났는데,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라는 돼지 숯불구이 요리도 그 중의 하나다. 건기 막바지, 수돗물이 나오지 않자 한 가지가 더 덧붙여졌는데, 매일 하루에 한 번씩 길어온다는 우물물 맛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깨끗하고 시원하며 물맛 좋기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국에서 친구가 다녀간 후, 한 가지가 더 늘어났는데, 오리지널 참이슬을 ‘나를 위해 묻어 두었다는 뻥’이다. 그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그 말도 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진위여부 파악 겸, 남쪽 지방을 둘러볼 요량으로 온 송게아는 아담한 도시로 생각보다 깨끗하다. 

  송게아 여고 교문을 들어선 후 조금 걷자 가장 먼저 도서관 건물이 보인다. 정자처럼 꾸민 휴식 공간을 하나의 건물로 사면을 에워 싼 형태다. 교실 중 한 칸은 책을 진열하고, 나머지는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배치했는데 그의 말이 과장만은 아니다. 아프리카, 그것도 고등학교 도서관으로서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시설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교사(校舍)는 아름답다. 소박하지만 정원이 있고 정원 사이를 지붕 덮인 회랑이 지나고 있다. 독일인이 지은 건물이라는 데 삼십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잘 관리되어 깨끗하다. 운동장도 널찍하다. 가운데는 농구대와 배구 코트가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체육 활동을 한단다. 운동장 옆에 허름한 건물 한 채가 있었는데, 그곳이 그가 거처하는 관사다. 방 두 개에 거실과 욕실, 부엌이 있다. 선배가 놓고 간 살림살이를 더해 여염집만큼이나 복잡하다. 손을 좀 보았어도 되련만, 다른 사람도 살았는데 나는 못살겠나 싶어 그냥 들어왔다고 했다. 어학원에서 함께 지낼 때는 어찌나 까탈을 부리던지, 우리 중 누군가가 프린세스라 불렀다. 그 말이 어찌나 절묘했던지 그가 까탈을 부리기 시작하면 ‘우리의 프린세스 어쩌나’하며 어르곤 했었다. 그런 그가 알고 보니 무수리 중에서도 상무수리다.  


수업 시간이 되어 함께 교실로 갔다. 하얀 남방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주름치마, 초록색 니트의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니트 색만큼의 싱싱한 호기심을 담고 나를 반긴다. 

‘만나서 반가워. 내 이름은 소피아야, 나는.....’ 나의 인사가 끝나자 유난히 예쁜 이마와 아름다운 눈을 가진 소녀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킨다. 짝꿍이 결석을 했는지 그녀의 옆 자리가 비어있었던 탓이다. 내가 자리에 앉자 옆 분단의 통통한 녀석은 내 머리칼부터 잡는다. 빡빡머리만 허용되는 그녀들에게 자연스런 생머리만큼 선망의 대상은 없는 까닭이다. 또한 전원 기숙사 생활에, 종교 활동 외의 바깥나들이가 철저히 통제됨은 물론 전화조차 사용 금지라고 한다. 이를 어길 시 즉시 퇴학 처리된다고 한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한참 멋을 부릴 나이에 통제된 공간과 엄격한 교칙에 갇혀 딴 생각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다.  

  나 역시 꽤나 보수적인 환경에서 고교 시절을 보냈다. 흰 블라우스에 검정 플레어스커트 교복에 귓불 위 일 센티미터 단발이었다. 흔히 좀 까졌다고 했던 친구들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기어이 머리의 일부를 뭉텅 잘리기도 했다. 밥은 안 먹어도 블라우스 칼라는 다림질해야 했고, 멋을 부린답시고 스커트 벨트 부분을 두어 번 접어 짧게 입다 훈육 선생님께 걸려 치도곤을 당하기도 했다. 어른들은 제일 예쁠 때라고들 했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오후 수업이 끝나자 전체 조회를 했는데 이때는 비교적 자유롭다. 주임교사의 훈시가 시작되었음에도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대열에 합류하고 있었고, 구석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수다를 떠는 몇 무리의 학생도 있다. 저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들려주고 있을까?  우리의 아침 조회에는 땅딸막한 키에 펑퍼짐한 몸매의 교장 선생님이 함께 하셨다. 그의 훈시는, ‘천하의 영재’로 시작해 ‘천하의 영재’로 끝을 맺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고, 삼년 내내 비슷한 훈시를 들어야했던 우리가 넌덜머리를 내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고 동창회가 열렸다. 살아온 길은 달랐지만, 그의 말들이 살아가는 내내 자긍심을 갖게 해주었다는 것에 우리 모두 이견이 없었다. 학창 시절, 선생님에 얽힌 사연은 살아가는 내내 이야기 거리가 된다.   

 

 우리의 프린세스는 수학 선생님이다. 여학생들에게 수학은 보통 어렵고 하기 싫은 과목이다. 그러나 그를 좋아해 수학까지 좋아진 학생도 있을 것이다. 뽀얀 음준구(하얀 사람이라는 스와힐리어) 총각 선생님. 그와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살아가는 내내 즐거운 추억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들만의 시간이 올 때, 온갖 미사여구를 덧붙여 자신들만의 무용담을 펼쳐 보일런지도 모르겠다. 


3월10일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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