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통신] 키툴로 고원의 아이들



“꺅~~~”

나를 안내하던 선생님을 따라, 기숙사 건물을 돌아 뒷마당으로 들어서던 중에 들리던 비명이다. 옷을 벗고 우물가에 모여 있던 꼬맹이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친 나를 보고, 손으로 아랫도리를 가리며 소리친 것이다. 나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 “미안해.” 하며 황급히 돌아 나오면서도, 그 광경이 어찌나 우습던지 한참을 웃었다.

  

이곳은 키툴로 고원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성 모니카 초등학교다. 원래의 목적지는 생태공원이었는데 우연히 만난 수녀님으로 인해 스케줄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다. 구글 지도를 보며,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가는 길에는 늘 복병이 기다리기 마련인데, 오지에 위치한 국립공원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몇 번의 버스와 트럭을 얻어 탔으나, 목적지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그러나 걷기에는 부담스런 산중에 짐짝처럼 부려졌다. 다행히 운이 좋아 곧 수녀님이 운전하는 차를 만났고, 그것이 또 하나의 인연이 된 것이다.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로 신부님이 교장 선생님을 역임하시고 계셨는데, 나를 무척 반겨 주신다. 특별한 손님이라시며 와인까지 겹들인 점심 식사에 초대하셨을 뿐더러, 점심을 먹고 학교를 둘러보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교사(敎師) 한 분을 붙여 주셔서 함께 둘러보게 되었다. 유치원 두 반과 초등학교 각 학년 당 한반씩 일곱 개 교실. 그 외 양호실, 식당, 기숙사, 강당으로 이루어진 작은 교사(校舍)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고, 건물 사이사이에 화단을 만들어 정감 있다. 

고학년 교실 안에는 앞쪽과 뒤쪽에 칠판이 붙어있었는데, 전면의 칠판에는 피부층을 색색의 분필을 사용해 그린 후, 세부 명칭을 적어 놓았다. 차트로 만들어 두면 다음에도 사용할 수 있을텐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요즘 인터넷에 뜨고 있는 가나에 있는 고등학교 선생님의 사연이 떠올랐다. 컴퓨터 교육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컴퓨터가 한 대도 없어 고민 하다, 다양한 색상의 분필을 이용해 MS워드 화면을 사진처럼 정교하게 칠판에 그렸고, 그 장면을 찍어 SNS에 올렸다. 그 정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여기 저기 공유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 아프리카 지부에서 컴퓨터를 지원했다는 내용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뒷면의 칠판에는 수학 문제를 풀어 놓았는데, 그 모양새가 예전 세네갈의 초등학교 교실을 떠올리게 해서 잠시 추억에 잠겼다. 선생님 한 분이 고학년과 저학년으로 나눠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교실 앞뒤에 칠판을 설치하고 고학년과 저학년이 등을 뒤로하고 앉아 번갈아 수학과 과학 수업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주말인데도 아이들은 학교에 머물러 있었는데, 탄자니아의 사립학교는 대부분 기숙학교인 까닭이다. 이름이 알려진 학교는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여드는데, 초등학교라고 예외는 아닌가 보다. 이 오지의 학교에 다르에스살람뿐 아니라 멀리 무완자, 아루샤에서도 온다고 하니 말이다.  


공립학교가 초등학교에서는 스와힐리어 교재를 사용하다가 중학교부터 영어 교재로 바뀌기에 수업을 따라 가기 어려운데 반해, 사립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로 수업하기에 큰 변화 없이 고등교육으로 옮겨가므로 안정된 수업의 진행이 가능하고 회화 실력도 월등하게 좋다. 이곳은 유치원부터 영어 교육을 하기에 더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잠시 기숙사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넓은 방에 이층 침대를 나란히 줄 세워 놓았다. 몇 명의 아이들은 침대에 누워 눈만 오도카니 뜨고 나를 쳐다볼 뿐 반응이 없다. 엄마 아빠가 그리워 그럴 것이라 생각하니 안쓰럽다. 한참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유배와 다름없는 학교생활을 하게 된 배경에는 아프리카의 고질적인 문제인 부족 간의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내 자식이 공부하는 마을을 공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초대 대통령인 니에레레가 학생들을 분산시켜 교육하게 했다고 하니 말이다. 아이들을 볼모로 한 평화유지책이었지만 효과는 컸다. 그런 위험이 사라진 지금은 전통이 되었고, 독립심과 강인한 정신력을 기른다고 생각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단체 생활에 참 익숙하다. 우리 대학 기숙사도 보통 한 방에 예닐곱 명의 학생들이 함께 거주하는데 전혀 불편해 하지 않고 잘 지낸다. 천성이 순하기도 하지만 공동생활에 길들여진 탓이지 않을까 싶다. 

해발 삼천 미터인 이 마을에서, 넓은 평야가 쫙 펼쳐져 있는 고원 아래 도시, 치말라를 굽어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거인이 된 듯하다. 이런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 아이들도 자연과 더불어 자연스레 자존감을 키우지 않을까?



2018.03.11

 탄자니아에서 소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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