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죠
"매달 정기적으로 만나는 거 너무 의무적이고 비생산적이고 소비적이지 않냐?"
이 말에 모두 공감을 했습니다. 15년 넘게 매달 만나다 보니 이제는 매너리즘도 생기고 만나도 특별할 것도 없고 그냥 마냥 부어라 마셔라 불러라 이 세 가지만 했습니다.  술먹고 노래부르고  끝..

이 지긋지긋한 패턴을 깨보자고 말이 나왔고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 친구들의 모임의 목적은 곗돈 모아서 여름에 놀러 가는 것 입니다. 그러나 다들 직장 다니고 결혼들을 한 친구가 많아서 여름에 다 모여서 놀러 가기도 힘들어 졌습니다. 사실 가정이 있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술자리를 매달 갖는것도 힘들기도 하죠.  아내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남편분들이  매달 친구들 모임을 갖는 다는 것을 알고 보내주지만  술만 퍼먹고 새벽에 들어 오는 것을 좋게 볼 아내분 없습니다.


한 친구가 아내 핑계를 되면서  새벽에 들어오면 '나 죽어'라고 핑계를 됐고  다른 유부남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친구들의 모임은 총각과 유부남으로 알게모르게 갈리게 되고  새벽이 되기 전에 유부남들은 알아서 집으로 가고 누군가의 구속이 없는 총각들만 새벽까지 마시곤 했죠.  이런 생활이 몇 년 되다보니 모임에 큰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하더니 변했다'는 친구의 말에 '너도 결혼 해 봐라' 라고 응대하는 친구가 나왔습니다

전 이 모습을 보면서  15년 동안 만나면서  우리의 모음패턴 즉 만나서  하는 행동이 딱 정해져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나도 참 술을 좋아하지만 술과 노래 말고 우리가 했던 행동이 뭐가 있냐고  직설적으로 말했고 다들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꺼낸 나에게 묻더군요. 그럼 대안은 있냐?

흠.. 대안까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 라고 말하면서 의견수렴을 했습니다.  여러 의견이 나왔습니다.
고아원 방문도 나왔고 자원봉사를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10년 전에도 나왔는데 그때도 그 과정의 복잡함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제가 말했죠.  "IT 쪽 지식들은 다들 대단한데  다른 분야들을 보면 수준이 좀 떨어져. 톡 까놓고 말해서 30대 후반 나이에 재테그 제대로 하는 친구도 없고 관심 있는 친구는 딱 한 명이야. 나머지들은 돈을 어떻게 굴리는지도 관심 없고 그것뿐이냐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도 많지 않지. 우리 친구들 보면 다들 잘하는 분야가 약간씩 달라.  저 친구는 증권 쟁이고 저 친구는 레저의 달인 이 친구는 사진쟁이이고 이렇게 각자 좋아하는 것이 약간씩 달러.  그래서 이런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지식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은 어떨까? 대신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받은 강의를 하는 거지"

"강의는 누가 하냐?" 라는 질문에
"누가 하긴 우리가 하는 거지 누가 해?""강의 해 본적 없는데?"
프리젠테이션은 해 봤을 거 아냐. 그런식으로 하면 되지 뭐 강의가 어렵냐"""어디서 하는데?"흠.. 그러게 그게 문제이긴 하지"
세미나실을 즉석에서 알아봤습니다. '민들레 영토'에 물어보니  10인실을 무조건 써야 하고 두당 4천 원 이상씩 내야 하며 빔프로젝터를 무조건 대여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격이 상당히 비싸더군요.

여기저기 세미나실을 알아 봤는데 다들  사람당 4천원 이상을 요구했고 4명이상이 사용해야 했습니다. 거기에 지리적으로도 멀더군요. 대부분의 세미나실이 강남에 몰려있습니다.   친구들은 서울 서남부지역인 신림, 독산, 광명, 구로 쪽에 사는데요
"내가   미니빔TV가 있는데 이걸로 그냥 카페나 술집에서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말에 친구들이 솔깃해했습니다.  "그게 뭐냐?"

"작은 빔프로젝터야. 손바닥보다 약간 큰데 외장형 배터리 달면 한 3~4시간은  사용할 수 있어"
"그래?  그럼 니가  장소섭외도 하고 준비 좀 해라""응 내가 강의할 장소섭외랑 장비세팅 할 테니까 누가 뭘 강의할지 결정하자"
이후 한 시간 동안 열띤 토론 후 8명의 친구는 각자 자신이 강의할 내용을 정했습니다. 
처음에는 과반수의 동의를 받은 강의만 할려다가  프리젠테이션 즉 남 앞에서 발표할때의 자신감이나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고양 시키고자 각자 하나씩 하기로 했습니다

강의들은 이렇게 정해졌습니다.  
1. 증권, 재테크
2. DSLR  촬영의 기본 및 출사지
3. 열정의 화가 고흐
4. 직장인들의 절세법
5. 정의란 무엇인가
6. 스노우 보드 중급
7. 봄에 가볼만 한 여행지
8. 아이폰 VS 안드로이드폰

회계사 친구는 절세법을  스노우 보드의 달인인 친구는 스노우 보드 중급편, 카메라 매니아인 친구는 DSLR강의를 저는  '열정의 화가 고흐'에 대해서 했습니다. 미술에 관심이 많고 특히 인상파 화가에 대한 다큐나 책을 많이 읽었는데  이 기회에 확실히 공부 마무리겸 강의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강의는 지루하면 안되기에 짧고 굵게 30분 단위로 한달에 최소 2명 최대 3명까지 하기로 했습니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생긴지 15년만에 가장 색다른 시도입니다.  이게 잘 정착될지 안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수업시간에 떠들고 해찰하는 친구가 있듯 중간에 포기하고  술자리에만 참석하는 친구들도 있겠죠. 하지만 서로의 지식공유를 한다는 자체는 다들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학적이고 와 닿지도 않는 강의로 수업에 대한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킬 필요는 없습니다. 30대가 살면서 필요로하는 지식과 지례를 재료 삼아  찰진 강의로 서로의 영혼에 식스팩을 만들어 줄수 있다고 생각되기에 큰 기대를 하게 되네요.

썬도그 
http://photohistory.tistory.com/

이 글은 금천구에 사는  ‘사진은 권력이다’란 블로그(http://photohistory.tistory.com/)를 운영하시는 썬도그님의 글을 지면에 맞게 편집하여 연재합니다. 블로그 글을 사용하게 해주신 썬도그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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