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국의 정보 보고서 - “글로벌 트렌드” 





법치를 추상같이 외치던 박근혜 정부의 실상이 법꾸라지들의 난장판이었음을 이제 세 살배기도 안다. 그런데 민주공화국을 겪어 보지 못한 이들이 민주(民主)라는 과정과 공화(共和)라는 지향 대신에 지배자에 대한 무조건 복종을 말하는 봉건 왕조적 발상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다. 문제는 이들이 이런 역사적 추태와 퇴행을 마치 대한민국을 지키는 충성쯤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상징을 태극기로 삼고 자기들의 행위가 애국이라고 생각한다. 


애국이라는 말이 악당들의 의지처요, 바보들의 도피처라는 점에서 설핏 뭐 무식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들이 생뚱맞게도 태극기와 함께 미국기를 들고 설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미국인들도 갸웃할 괴행(怪行)이다. 이른바 보수의 전형은 역사적 자존심을 제대로 지키는 지사(志士)형의 인물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현대사에서는 보수의 전형은 백범김구 쯤 되리라. 역사적으로도 병자호란 당시 끝까지 투쟁하자는 김상헌의 척화파와 현실을 인정하고 종전하자는 최명길의 화의파가 논쟁을 할 때 척화파가 보수의 모습이다. 자기 땅에 침략한 남의 군대를 증오하고, 자기 땅에 존재하는 남의 군대를 치욕적으로 생각하며 아파하고 그것을 격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안보에 대한 보수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데 유독 보수를 자처하는 한국에서는 보수가 외세를 환영하고 외세에 의존한다. 참으로 기괴(奇怪)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도 곰곰이 생각하면 한국의 비극적인 현대사의 필연적 모습이다. 친일파들은 생존을 위해 친미파가 되었으며, 자기들의 역사적 범죄를 가리기 위해 갑자기 반공의 전사가 된다. 하지만 이들은 6.25를 통해 미국 없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처절한 경험을 한다. 이른바 한국군의 3일 버티기는 3일만 버티면 미국이 구하러 온다는 식의 6.25 트라우마의 발현이자 이들의 존재 자체가 사대 망국의 뿌리 위에 핀 썩은 곰팡이 신세라는 것을 보여준다. 북에 비해 모든 것이 양적으로 우세해도 작전권조차 가져오지 못하는 겁쟁이 모습의 뿌리다. 그 결과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반공 반북을 소리 높여 외치되 물리력은 무조건 미국에 의존하면 된다는 상징이 한손엔 태극기와 다른 손엔 미국 국기를 들게 된 것이다. 결국 이들의 득세는 한반도의 분단 증오 전쟁이고 이를 위해 사대 매국 부정부패 특권 반칙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 절정이 박근혜정권의 모습이다. 그 찌질 함의 극치가 성조기요 헌재에서 보여주는 박근혜 변호사들의 모습이다. 


그러면 미국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직접적인 언급은 아니지만 최근에 번역된 책이 하나 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가 발행하는 세계 미래예측 보고서 <글로벌 트렌드>다. 매 4년마다 향후 20년을 내다보는 민간에 공개하는 미래 예측 보고서다.

국가정보위원회(NIC) 9.11 사태 후 신설된 CIA 등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장(DNI) 산하 조직이고 이들은 연간 700억 달러(약 80조 원)의 예산을 쓴다. 실제 9.11 테러는 미국을 대외적으로 상시 전쟁국가로 만들고 대내적으로 모든 국민의 감시 체제 속에 가두는 경찰국가로 만들었다. 형식적인 미국식 민주주의조차 이른바 애국과 국가주의에 질식사 한 꼴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한국보다 낫다. 기밀이라는 이유로 정보를 감추고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를 한다. 그 이유를 국가정보위원회는 “미래의 위험과 기회에 관해 공개 토론을 고무하는 것, 보안이란 이유가 1~2년 이상을 내다보는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은 전문가와 공무원뿐 아니라 학생, 여성단체, 기업가, 투명성 옹호자 등과 폭넓게 접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보는 비밀이 아니라 공개 토론 접촉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청와대는 국가 비밀이라 범죄 조사를 위한 방문조차 막는 한국과는 참으로 다른 모습이다. 


보고서는 단기적으로 세계적 경제 침체로 인해 세계화가 멈추고 각 국이 섬처럼 떨어지는 고립주의로 경사될 것으로 본다. 갈등의 시간이란 말이다. 그런데 NIC는 놀랍게도 지금의 위험을 잘 극복하려면 "여성이든 소수집단이든 아니면 최근의 경제·기술 추세로 타격을 입은 사람이든 모든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내서 포용하는 사회"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힘과 경쟁 체제가 아니라 패자부활, 사회, 공동체적 가치를 강화하는 사회가 위기를 벗어날 힘을 가진다고 강조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과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나 다름없다. 이런 성찰을 할 수 있는 힘이 미 제국주의의 보이지 않는 힘이리라. 


보고서는 국제적 문제의 해결을 개입과 강제로 풀어왔던 미국의 모습도 반성한다.

"이처럼 명백한 혼란에 대해서는 질서를 강제하는 것(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이 솔깃한 유혹으로 다가오겠지만, 궁극적으로 그러한 조치는 단기적으로 비용이 너무 크며 장기적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전제로 한반도 정세를 보지 못하고 6.25적 시절의 사고로 21세기를 사는 한국의 수구 정치세력의 낡음이 기가 막힌데 여기에 휘말리는 노인층의 무지와 맹목과 광신은 정말 끔직하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의 언급은 세계 최고령 국가 대열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부록으로 동남아시아 정세를 개괄하는데 보고서는 미국의 경쟁자인 중국에 큰 관심을 쏟고 있으며, 그 뒤로 일본과 인도, 인도네시아를 언급한다. 독자적으로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것이 미국이 보는 한국의 위상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국익을 제치고 무조건 남한을 지지하며 하늘같은 은혜를 베풀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전 통일부 장관 송민순씨는 자칫 한국이 살계경후(殺鷄警猴)를 당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닭을 죽여 원숭이에게 경고를 한다는 것으로 일벌백계와 같은 말이다. 만만한 한국이 트럼프 미국에서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대상이 되어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경고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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