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 쿠폰으로 행복더하기

마을에서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는 생활체험기-3


 얼마 전까지 자리 카페 도장쿠폰을 모았는데 이제 더 이상 모을 수 없게 되었다. 어쩌다 넉넉치 않은 운영사정을 알게 되니 도장 10번 받아서 1잔을 무료로 마시는 게 미안한 일이 돼 버렸다. 그동안 내가 주문하는 것은 물론이고 약속시간에 늦은 사람이 음료주문 하러 가면 득달같이 달려가 도장을 찍어달라고 했다. 도장 가득 찍힌 쿠폰 두 장을 매니저에게 청소년들이 ‘미리내’ 쿠폰으로 쓰면 좋겠다면서 건네줬다.


 이후에 지인들에게 카페 이용 후 도장 쿠폰 다 찍으면 자기가 공짜로 홀랑 마시지 말고 동네청소년들에게 미리내 쿠폰으로 주자고 했다. 지인들이 도장 찍힌 쿠폰을 나한테 주기 시작했다. 돈을 미리 내고 ‘미리내’를 하는 것보다 도장 쿠폰으로 ‘미리내’를 하는 게 사람들에게 흔쾌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 같다. 

당장에 내 주머니에서 돈이 안 나가고 1잔은 공짜로 생기는 것이니 손해보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 때문 아닐까?


티끌모아 태산이 아니라 쿠폰모아 ‘미리내’이다. 처음 두 장을 미리내로 낼 때는 부끄럽게 매니저님이 굳이 이름을 쓰라고 해서 동네김현미아줌마가 라고 썼는데,.. 이제는 멋진 말과 쿠폰을 증여한 사람의 이름을 다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넓고 넓은 세상, 금천구의 작은 마을에서 동네아이들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하기 위해서 동네 어른 10명이 도장을 꾹꾹 찍는다는 스토리를 상상하니 너무 낭만적이다.


얼마전 지인이 구례로 이사갔다. 떠나기 전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별의 정을 나누었다.  서로가 선물교환을 약속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상대방에게 선물을 준비해와서 교환했다. 떠나가는 지인은 핸드드립 커피를 즐겨 마시는 취미가 있는지라 다섯 가지 원두를 조금씩 포장해 선물로 줬다. 구례에서 새로운 이웃들과 핸드드립 커피마시면서 잘 사귀어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받은 선물은 숲의 향기가 나는 향초였는데 집에서 향초를 켜보니 그 지인에게 어울리는 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같이 한 공간에서 살아온 비슷한 추억들, 서로를 기억하겠다는 마음, 구례에 오면 꼭 연락해서 만나자는 약속.  이별이 무거워지지 않도록 배려한 선물은 그 사람의 품위를 느끼게 한다. 구례라는 말만 나오면 나는 기분좋게 한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구례에 가면 설레이는 마음으로 전화를 할 사람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귀기가 쉽지 않아서 지금까지 가꾸어온 관계를 소중하게 유지하는 게 좋고 편하다. 새로운 인연이 다가오더라도 젊었을 때보다 마음을 내주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새롭게 만난 사람을 탐색하는 과정들(과거에 뭐했던 사람인지, 평판은 어떠한지,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원만한 사람인지)에서 나온 정보를 통하여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결정을 한다. 또 이것저것 함께 겪어보고 나서 소중한 관계로 발전시킬 사이인지 사무적인 관계가 될지, 되도록 안 만나고 살 사이인지도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들은 시간이 많이 소비되고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생길 수 있는 사소한 오해들의 용서와 화해들, 입장 바꿔 배려하기 등의 과정을 통하여 소중한 관계로 발전된다. 


요즘에는 이런 과정을 겪는 게 피로해 사람에게 집중하는 시간에 돈을 벌어 자기한테만 쓰는 혼밥과 혼술이 유행하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관계가 시작되면 진심어린 마음을 주고받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그리 많이 쏟지 않아도 관계유지가 가능하다. 또 그 사람의 소중한 관계망이 내 관계망과 접속하고 확장되기도 한다. 세상의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그 사람을 자랑스럽게 소개시켜주게 된다. 그 사람의 필요를 세심하게 챙겨서 선물하기도 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서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기도 하고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들은 내 행복에 영향력을 끼친다. 이로써 행복해진 나는 내 친구(이웃)의 행복을 평균 9% 증가시킨다. 불행한 친구는 내 슬픔을 7% 증가시킨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주변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협력해야 한다.




미리내:이용손님이 미리 금액을 지불해놓은 후에 누구나 그 금액만큼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나눔문화



독산동 주민 김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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