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주민주(覆舟民主)’의 2017년을 만들자


‘군주민수’(君舟民水)는 교수들이 뽑은 작년의 사자성어다. 순자(荀子)의 왕제(王制)편에 나온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水則載舟 水則覆舟(수즉재주 수즉복주)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뒤집기도 한다. 임금은 이를 염두에 두어 위기가 닥칠 때 이런 상황에 이르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에서 뽑았다고 한다. 

역성(易姓)혁명을 주장하고 나선 맹자 이후 이를 경계하기 위한 순자의 왕도 정치를 하라는 권고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에서 임금 군(君)이라는 봉건적 의미가 그대로 사용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차라리 정부 정(政)자를 사용하여 ‘정권은 배요 민심은 물이다.’라는 ‘정주민수’로 살짝 돌리고 싶다. 하여튼 재작년의 ‘어리석은 지도자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다’는 뜻의 ‘혼용무도’(昏庸無道)와 이를 뒤집자는 의미의 연계는 자못 신통하다. 


국회 탄핵까지 관철했지만 현재 우주의 기운이라는 요기를 체현한 기괴한 박근혜정권은 복주(覆舟)되지 않고 여전히 황교안이라는 대행체로 재주(載舟) 중이다. 그러니 민이라는 물이 군이라는 배를 뒤집었다는 말은 아직 현실이 되지 못했다. 광장의 촛불은 여전히 타고 있고, 헌재와 특검이 탄핵과 퇴진을 위한 진실을 캐고 있지만 그것이 민의 뜻을 담을지 낡은 배의 고질을 땜 빵 하는 것으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지핀 촛불의 불빛만큼, 우리가 펼친 광장의 크기만큼, 우리의 희망과 염원을 밀고가야 한다. 6개월 전 우리가 광장과 촛불과 탄핵 정국을 알지 못했듯 또다시 현재의 모습으로 미래를 재고 낙심하고 줄서고 이익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촛불이 보여주는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념과 이상이 없는 현실은 고인물이다. 고인 물은 썩을 뿐이다. 잠시 출렁이다 만 무수한 역사적 지체(遲滯)들,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와 그 구조들, 청산되지 못한 군사독재의 잔재들, 끝내 처단하지 못한 광주학살의 원흉들, 불사의 오뚝이로 무수한 부정부패를 범하고도 부만 늘린 재벌들,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관료 판검사들 이 모두가 응어리 뿌리를 뽑지 못한 악성 종기들이다. 그러니 죽 쒀 개주지 말자는 소극적인 말을 넘어 광장 촛불이 심지로 박힌 민주주의를 꿈꿔야 한다.


광장의 촛불이 기성의 기득 세력의 자리바꿈에 기대를 걸고, 주춤주춤하는 사이에 정말 부숴야 할 벽이 그대로 있음에, 촛불의 고여 지체됨에 저항한 한 스님이 소신공양 분신 항거를 하였다. 정원스님이다. 그는 “원이 있다면 이 땅에 새로운 물결이 도래하여 더러운 것들을 몰아내고 새 판 새 물결이 형성되기를 바랄 뿐이다.” “일체 민중들이 행복한 그날까지 나의 발원은 끝이 없사오며 세세생생 보살도를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생명의 서를 세웠다. 우리는 이 스님의 원을 제대로 이을 것인가? 배를 뒤집고 새로운 배를 띄워야 한다. 그런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2017년은 정말 중요하고 또 격변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광장의 촛불이 만든 정세로 한껏 단물을 빠는 존재들이 있다. 국회의원들이다. 행정 권력의 통제를 벗어나 민주주의 화신이라도 된 듯 말잔치를 해 대지만 정말 필요한 것을 한 적은 없다. 그보다 더 제 세상을 만난 이들이 이른바 대권주자들이다. 이들은 개헌이니 조기 대선이니 하면서 광장의 촛불을 정지시킨다. 뼈를 깎는 혁신이니 탈당 후 보수 신당이니 새누리와 그 잔당들의 모습은 똥은 그대로 둔 채 보자기를 씌우거나 바꾸자는 것이다. 똥 위에 똥 종이가 아니라 비단 보자기가 씌워져도 똥은 똥이다. 제삼지대란 말은 3당야합의 역사적 부활이고 개헌을 말하는 것이나 조기 대선으로 광장의 길을 비트는 것은 칼날위의 삶을 그대로 둔 채 칼 날 위에 습자지 하나 겨우 덮자는 꼴이다. 과장에게 고인 물이 되라하고, 촛불을 든 사람들에게 그만 구경꾼이 되라한다. 


이래서 복주(覆舟)가 되지 못한다. 더 괴물이 되고 더 교활해진 굶주린 호랑이들을 만날 뿐이다. 노무현이 집권 초에 이미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할 때 그는 실은 민주공화국을 포기했다. 차라리 두려우면 방안에서라도 벽을 보고 투쟁을 하라던 사망 직전의 DJ가 낫다. 그 결과 우리는 몰염치한 이명박을 만났다. 이익이 된다면 뭔 말을, 뭔 짓을 못하겠냐는 그는 입에서 항문까지 모든 장을 일직선 고속도로로 만든 꼴이 4대강 망치기를 해 냈다. 그런데도 심판하지 못한 한국은 이제 자기 염치에 대한 외면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염치마저도 모조리 파괴하는 파렴치 박근혜를 만났다. 박근혜에게 강요로 뇌물을 받쳤다는, 300억 주고 3조 5조의 이익을 본 삼성은 피해자가 아니라 수익자다. 만찬가지로 현실 권력을 나눠지고 공생한 모든 보수 여야 정치 또한 공범이지 피해자가 아니다. 정말로 피해를 본 것은 뇌물청탁으로 삶이 더 피폐해진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다.   


그러니 복주(覆舟)를 완성하는 해, 대의제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이 주인이 되는 직접 민주(民主)의 해, 복주민주(覆舟民主)의 2017년을 만들자. 농단의 진정한 실세들, 특히 국정원에 대한 전혀 새로운 혁파가 필요하다. 시장, 이윤, 기업 중심의 사회적 살인 체제에 대한 97년 이후의 적폐를 확실하게 분쇄하자. 부정과 부패가 구조화된 헬 조선, 유착이 힘이 되고, 힘이 특권이 되고, 특권이 반칙의 무기가 되어 헌법이 유린되고 국정이 농단되는 세상, 서로에게 서로가 경쟁도 넘어 생사를 가르는 원수가 되는 세상, 이 반 인간적 사회를 근본에서 성찰해야 한다. 사탄이 된 인류의 자기학대 체제, 출세와 돈이 모두인 맹목의 체념의 체제 돈 중심의 세상, 그 배를 뒤집어야 한다. 군주민수(君舟民水)를 넘어 복주민주(覆舟民主)로 나가자. 

구체적 대안? 그것은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있는 것은 이미 낡았다.

주체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목숨을 건 정원 스님이 보여준 그 발원 ‘일체 민중들이 행복한 그날’을 위한 노동자 민중, 우리 자신이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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