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디


 집수리 기술자 푼디와 아이들



종점에서 기다리겠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달라달라(시내버스)에 올랐다.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틈 사이로 잡목 숲이 언듯언듯 보이는 가 싶더니, 제법 큰 마을이 나온다. 차장은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목적지라고 알려준다. 달라달라에서 내리자 자그마한 키에 호리호리한 사내가 나를 발견했는지 다가온다.   

  그는 집을 수리하며 만난 푼디(기술자)다. 

관사로 들어와 집을 손보는데 며칠이면 끝날 것이라던 공사는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데도 진척이 없어 지쳐가던 중, 기술자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며 찾은 사람이 그였다. 

 식전 댓바람에 와서 늦은 시간까지 묵묵히 일만 했다. 물 달라는 말조차 없었다.  그런 그가 맘에 쓰여 중간 중간 간식을 냈다. 그의 손이 닿자 며칠 만에 공사는 마무리 되었다. 일을 끝내고 돌아가며, 자신의 집에 초대를 했던 것이다.  


 그는 삐뚤빼뚤한 골목길을 한참이나 걸어가서야 자그마한 대문 앞에 멈추어 선다.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집인데, 그 중 커튼으로 내부를 가린 입구로 안내한다. 좁은 거실에는 벽면을 따라 레이스 천으로 커버를 씌운 소파가 자릴 잡고, 중앙에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거실 한 귀퉁이를 차지한 배불뚝이 구형 텔레비전에서는 합창단원들의 몸짓만이 권태롭다. 

 거실을 가운데 두고 두 개의 방이 나란히 놓여있다. 부부침실엔 커다란 침대하나가 방을 가득 채우고, 벽면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옷가지가 전부다. 맞은 편 방은 부엌이며 동시에 아이들의 거처다. 부엌살림이라고 해봐야 아직도 불길을 안고 있는 숯불 화덕과 켜켜이 쌓여있는 플라스틱 통, 몇 개의 양은 냄비가 전부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참 열악하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삶이 내게는 작은 위안으로 다가온다.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것들을 탐내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곡간을 채우려고 전전긍긍 하던 욕심만 내려놓으면, 내 한 몸 거둘 수 없겠나 하는 맘이 들었기 때문이다.       

 

 딸만 셋인 딸부자였는데,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나를 보며 경계하는 지 곁눈질만 할 뿐 선뜻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곳에 자리 잡고 사시는 한인분이 자신의 딸 이 입었던 것이라며 주신 원피스와 막내를 위해 쇼핑한 옷이 든 쇼핑백을 큰 아이에게 내민다. 면 체크무늬 원피스를 밑에 동생에게 넘기는 걸 보니, 공주풍의 하늘하늘한 분홍색 레이스 원피스가 맘에 들었나보다. 동생은 바로 갈아입고 나와 내 앞에 서서 자랑을 한다. 언니는 체면을 차리는지 멀찍이서 몸에 대보기만 하는데, 입에는 함박웃음이 걸려있다.  

 그의 아내가 식사 준비를 하는 사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며 나를 끈다. 대문을 나서자 어느새 준비했는지 오토바이 한 대가 서있다. 친구에게 빌려온 것이란다. 울퉁불퉁 자갈길을 한참 달려 도착한 곳은, 넓은 들판에 몇 채의 집만 덩그맣게 서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저만치 공사 중인 건물이 보였는데, 혼자 자신의 집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삼십대 초반인 그는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공사판을 떠돌며 기술을 익힌 것인데, 손끝이 야물고 영리해 웬만한 전문가 뺨쳤다. 기술이 있는 그에게 땅이 마련되자 자연에서 나는 재료만으로도 너끈히 집을 짓는 것이다. 거실에 방 둘, 부엌 그리고 화장실 겸 샤워 실. 좁지만 다섯 식구가 살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미 몇 그루의 망고와 아보가도 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는 마당에 야채도 심을 거란다. 정원도 가꿔보라는 나의 말에 빙그레 웃는다. 


 여섯 가구가 함께 세 들어 살고 있는 지금의 집. 수도꼭지 하나가 시설의 전부인 욕실을 공동으로 사용했고, 마당의 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쓰고 있었다. 그의 집과 맞은편에 살고 있는 중학교 교사의 집을 제외하면 단칸방이라고 했다. 이곳은 서아프리카와 달리 핵가족 형태를 띠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독신인구가 많다. 부족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인구를 분산시키는 정책을 편 영향인 듯하다. 120개나 되는 부족들을 섞기 위해 학생들을 다른 지방의 학교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그래서 기숙사나 관사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이런 저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그곳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이사 갈 꿈으로 행복한 그. 몸뚱이 하나로 삼십대 초반의 나이에 자신만의 집을 갖게 된 사내. 탄자니아에서 보기 힘든 사람이다. 

  그의 아내가 정성스레 준비한, 감자에 소고기를 넣어 찐 전통음식을 맛나게 먹고 나오면서 집들이 선물로 예쁜 식기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10월 15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