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일은 

 내일이 걱정하게 하라.


자신을 예술가라고 소개하며. '해피'라고.


무의식 중에 뒤를 돌아본 듯하다.

자그마하고 깡마른 사내가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인데, 유난히 까만 피부가 그를 더 왜소해 보이게 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나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여행지의 어디나 이런 사내들은 있고, 보통은 성가시지만, 낯선 곳에서 말이 통하면 약간의 구전으로 좋은 가이드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소개하며, ‘해피’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해피’라니… 갑자기 견공님들이 생각나 킥킥거렸더니, 본명은 따로 있지만 늘 웃고 있다고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어릴 때 엄마 아빠를 모두 잃고 떠돌다, 공예가를 만나 도제로 있으면서 기술을 익혔다고 했다. 예술가라기보다 기능공에 가깝다. 어쨌던 아프리카는 자칭 예술가가 많은 땅이다

영어를 꽤나 해서 한참 영어 공부하는 내게 프리토킹 상대로도 나쁘지 않았다. 영어는 어디서 배웠냐고 했더니, 신이 자신에게 특별히 준 재능이란다. 공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읽고 쓰는 건 못한다고 했다. 다른 언어는 기억이 안 되는데 영어만은 일부러 노력하지 않았어도 그냥 배워진 걸 보면 신의 선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길을 안내해준 보답으로 약간의 돈을 건넸는데, 이건 뭐냐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자신이 좋아서 한 일이라나. 예술가라며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에게 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마침 저녁 시간이었고 이런저런 말 상대로도 나쁘지 않았기에 잡았더니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민물 생선이 유명한 곳이어서 시키려 했더니 고기류나 생선, 심지어 우유나 계란, 유제품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채식주의자냐고 했더니 ‘비건’이라고 고쳐준다. ‘비건’은 완벽한 채식주의를 의미하며 일반 채식주의자와 구별된다는 설명이었다. 이유를 묻는 내게, 어느 날 갑자기 고기가 역겨워졌고, 얼마 후 생선과 우유, 달걀까지도 싫어져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 했다.


독특한 캐릭터의 그. 현실에서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한국에 이곳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는데 너를 좀 더 소개해 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순순히 그러마,고 했다. 

그는 남의 집을 무단 점거해 살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돈을 다 모은 후 한꺼번에 집을 완성하는 게 아니고, 어느 정도의 돈이 모아지면 집 짓기를 시작해 벌어가며 완성하므로 미완성 집들이 많은데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멘트 바닥에 깔린 돗자리 한 장과 모기장이 세간의 전부였다. 놀란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여기저기 떠돌며 살고 있는 탓이란다. 형편이 나을 때는 호텔에서 지내기도 하니 걱정 말라고 나를 되려 위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돈이 좀 더 많았으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성공했으면 하고 끊임 없이 욕심을 내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기에 늘 웃을 수 있다고 했다. 장가도 가야하고 아이도 길러야 할 터인데 미래가 불안하지 않냐고 찔러보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특별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은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산다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난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포즈를 취해 주는데 마치 수도승 같다. 

 

책이 출판되고 나는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 지인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그네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떠나올 때의 용기는 다 사라지고 두려움이 나를 집어 삼켰다. 가진 게 없기에 잃을 것도 없다는 것이 내게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물쇠로 꼭꼭 채워놓은 곡간이라도 털린 양 억울해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칭찬이나 이해, 공감을 기대한 것인데, 그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자 나는 좌불안석하며 좌절하고 두려워한 것이다. 버린 것이 아니고 새로운 욕심으로 나를 채찍질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연결되어 나를 밑바닥까지 밀어내며 상처 입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 날로 충분하다.’


 돗자리 하나와 모기장. 푸성귀만 있어도 항상 웃을 수 있는 그. ‘해피’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내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11월 26일



일체유심조


두리안의 일종인 '훼나스'라는 과일을 보여주는 상인

 

내 마음이 에덴인데 어딘들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이곳이 바로 에덴동산이 아니었을까 싶다는 내용의 메시지에 대한 지인의 답신이다. 지금 내 마음은 정녕 에덴인가?

말라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냐사 호수를 끼고 있는 도시 키에라. 내가 살고 있는 주에 있지만 이곳과는 날씨가 확연히 다르다. 이곳이 초가을쯤의 날씨라면 그곳은 온도계의 눈금이 30을 웃돌고, 건기임에도 주위는 온통 초록빛이다. 호수를 끼고 있는 탓일 것이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 샛길로 빠지자 간간이 농가만 보일 뿐 주위는 온통 카카오나무다.

 

가나와 함께라면 고독마저도 감미롭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의 성우가 나레이터를 하고, 긴 생머리의 청순했던 채시라가 유난히 돋보였던 초콜릿 광고다. 고독마저도 감미롭게 만들어 버렸던 마법의 초콜릿 원료가 되는 나무. 좀 멋지게 묘사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참 볼품이 없다. 엉성한 나무줄기에 잎은 이상할 정도로 윤기가 없는 것이 푸석푸석해 보인다. 조화가 아닐까하고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했다. 과일은 메인 가지 여기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잘못 돋아난 혹처럼 기괴하기까지 하다. 모습으로 치면 천생 럭비공이다.

샛노랗게 잘 익은 과일을 따서 돌에 내려치자 쩍하고 갈라지며 하얀 과육이 알알이 드러난다. 미끌미끌한 과육은 새콤하면서 달작지근하고 부드럽지만 먹을 건 없다. 씨앗이 카카오 원두가 되는 것인데, 마치 오랫동안 씻기고 씻겨 매끈해진 바닷가 조약돌 같다. 짙은 보랏빛을 띠고 있어 언뜻 보면 검정색으로 보인다. 겉껍질이 따로 없고, 씹어보니 의외로 부드럽게 씹히는 것이 풋콩처럼 비릿하면서 쓴맛이 난다. 입자는 어느새 고운 보랏빛으로 변해있다.

 

과수원을 직접 볼 기회가 없었던 어린 시절, 나는 과일을 보면 저게 어떻게 나무에 매달려 있을지가 참 궁금했었다.

처음 딸기밭을 보며 밭두렁을 타고 이리저리 뻗어 있는 가지에 달린 빨갛고 싱싱한 딸기는, 차마 저걸 어찌 따나 싶을 만큼 경이로웠다. 그 후 참외와 수박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그러다 나무에 달린 사과를 보면서는 마치 신밧드의 모험에 동참한 기분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시시한 것이 다 궁금했구나 싶은데, 그런 사소한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이곳까지 이끈 힘이 아닐까도 싶다.

탄자니아는 내게 식물원이고 동물원이며 박물관이다. 여기는 자연이 만든 것은 무엇이든 풍부하다. 세네갈에 살면서 나는 신이 버린 땅이란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곳은 신이 축복한 땅이다.

 

돌아 나오는 길이었다. 몇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그 곁에 어른 머리통 두 세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크기에 삐죽삐죽 침이 돋은 과일을 달고 있는 나무가 있다. 두리안의 한 종류일 거라고 추측했는데 젝플룻, 이곳에선 훼나스라고 불리는 과일이었다.

주인을 불러 살 수 있냐고 했더니 창고로 안내했다. 시장에 내달 팔 요량으로 보관한 과일 몇 개가 바닥에 뒹굴고 있다. 크고 잘생긴 놈을 하나 골라 내 온다. 저걸 집에 가져가는 것은 엄두조차도 못 내겠다 싶어 마당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할 요량이다.

잠시 후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바나나 잎을 따든 아저씨가 나타나는 가 싶더니 교복을 입은 학생을 비롯해 꼬마들이 몰려드는데 어림짐작으로 봐도 서른 명은 너끈하다. 마치 미리 대기하고 기다리던 엑스트라 배우들 같다. 커다란 바나나 잎을 척 까니 그대로 잔칫상이다.

박을 타듯 타니 노랗게 익은 과육 사이로 울콩 같은 씨앗이 듬성듬성 박혀있다. 잔치의 주빈이 되어버린 내게 제일 먼저 한쪽을 잘라 건네는데 먹는 게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씨앗이 박힌 곳을 중심으로 결이 나있는데 쭉쭉 찢어 먹으니 쫄깃하고 달다.

지금 생각해보니 몇 개 더 사서 푸짐하게 나누어 먹었어도 좋았을 걸 싶다. 그 당시에는 갑자기 모여들던 사람들, 식탁보 같던 바나나 잎, 과일에 대한 호기심 등에 신바람이 나서 생각할 여가가 없었다.

돌아와 현지인 친구에게 그 곳을 스케치해 보여주니, 이곳이 에덴이었던 걸 어찌 알았냐며 박장대소했다. 아담과 이브가 백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아담과 이브는 흑인이었단다.

과일 한 통이면 즉석에서 축제가 열릴 수 있는 이곳.

늘 축제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마음을 열면 어디서든 천국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10월 28일

 

푼디


 집수리 기술자 푼디와 아이들



종점에서 기다리겠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달라달라(시내버스)에 올랐다.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틈 사이로 잡목 숲이 언듯언듯 보이는 가 싶더니, 제법 큰 마을이 나온다. 차장은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목적지라고 알려준다. 달라달라에서 내리자 자그마한 키에 호리호리한 사내가 나를 발견했는지 다가온다.   

  그는 집을 수리하며 만난 푼디(기술자)다. 

관사로 들어와 집을 손보는데 며칠이면 끝날 것이라던 공사는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데도 진척이 없어 지쳐가던 중, 기술자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며 찾은 사람이 그였다. 

 식전 댓바람에 와서 늦은 시간까지 묵묵히 일만 했다. 물 달라는 말조차 없었다.  그런 그가 맘에 쓰여 중간 중간 간식을 냈다. 그의 손이 닿자 며칠 만에 공사는 마무리 되었다. 일을 끝내고 돌아가며, 자신의 집에 초대를 했던 것이다.  


 그는 삐뚤빼뚤한 골목길을 한참이나 걸어가서야 자그마한 대문 앞에 멈추어 선다.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집인데, 그 중 커튼으로 내부를 가린 입구로 안내한다. 좁은 거실에는 벽면을 따라 레이스 천으로 커버를 씌운 소파가 자릴 잡고, 중앙에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거실 한 귀퉁이를 차지한 배불뚝이 구형 텔레비전에서는 합창단원들의 몸짓만이 권태롭다. 

 거실을 가운데 두고 두 개의 방이 나란히 놓여있다. 부부침실엔 커다란 침대하나가 방을 가득 채우고, 벽면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옷가지가 전부다. 맞은 편 방은 부엌이며 동시에 아이들의 거처다. 부엌살림이라고 해봐야 아직도 불길을 안고 있는 숯불 화덕과 켜켜이 쌓여있는 플라스틱 통, 몇 개의 양은 냄비가 전부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참 열악하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삶이 내게는 작은 위안으로 다가온다.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것들을 탐내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곡간을 채우려고 전전긍긍 하던 욕심만 내려놓으면, 내 한 몸 거둘 수 없겠나 하는 맘이 들었기 때문이다.       

 

 딸만 셋인 딸부자였는데,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나를 보며 경계하는 지 곁눈질만 할 뿐 선뜻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곳에 자리 잡고 사시는 한인분이 자신의 딸 이 입었던 것이라며 주신 원피스와 막내를 위해 쇼핑한 옷이 든 쇼핑백을 큰 아이에게 내민다. 면 체크무늬 원피스를 밑에 동생에게 넘기는 걸 보니, 공주풍의 하늘하늘한 분홍색 레이스 원피스가 맘에 들었나보다. 동생은 바로 갈아입고 나와 내 앞에 서서 자랑을 한다. 언니는 체면을 차리는지 멀찍이서 몸에 대보기만 하는데, 입에는 함박웃음이 걸려있다.  

 그의 아내가 식사 준비를 하는 사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며 나를 끈다. 대문을 나서자 어느새 준비했는지 오토바이 한 대가 서있다. 친구에게 빌려온 것이란다. 울퉁불퉁 자갈길을 한참 달려 도착한 곳은, 넓은 들판에 몇 채의 집만 덩그맣게 서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저만치 공사 중인 건물이 보였는데, 혼자 자신의 집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삼십대 초반인 그는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공사판을 떠돌며 기술을 익힌 것인데, 손끝이 야물고 영리해 웬만한 전문가 뺨쳤다. 기술이 있는 그에게 땅이 마련되자 자연에서 나는 재료만으로도 너끈히 집을 짓는 것이다. 거실에 방 둘, 부엌 그리고 화장실 겸 샤워 실. 좁지만 다섯 식구가 살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미 몇 그루의 망고와 아보가도 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는 마당에 야채도 심을 거란다. 정원도 가꿔보라는 나의 말에 빙그레 웃는다. 


 여섯 가구가 함께 세 들어 살고 있는 지금의 집. 수도꼭지 하나가 시설의 전부인 욕실을 공동으로 사용했고, 마당의 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쓰고 있었다. 그의 집과 맞은편에 살고 있는 중학교 교사의 집을 제외하면 단칸방이라고 했다. 이곳은 서아프리카와 달리 핵가족 형태를 띠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독신인구가 많다. 부족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인구를 분산시키는 정책을 편 영향인 듯하다. 120개나 되는 부족들을 섞기 위해 학생들을 다른 지방의 학교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그래서 기숙사나 관사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이런 저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그곳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이사 갈 꿈으로 행복한 그. 몸뚱이 하나로 삼십대 초반의 나이에 자신만의 집을 갖게 된 사내. 탄자니아에서 보기 힘든 사람이다. 

  그의 아내가 정성스레 준비한, 감자에 소고기를 넣어 찐 전통음식을 맛나게 먹고 나오면서 집들이 선물로 예쁜 식기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10월 15일


한가위 보름달을 야생의 자연 상태에서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배낭 하나 매고 나서는 발걸음은 늘 가볍다. 이링가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보다보다’라 불리는 오토바이 택시를 탔다. 투타말랭가행 낡은 대형 버스가 기다린다. 행선지가 정확하게 적혀있지 않은 차를 운전사의 말만 믿고 탔다가는 어디로 갈 지 모른다. 여러 사람에게 재차 확인을 하고 난 후에야 차에 오른다.  

오후 여덟시에 출발한단다. ‘지금이 오전 열한시인데...’하다가, 탄자니아 시간에 생각이 미친다. 이곳은 그들만이 사용하는 로컬 시간대가 따로 존재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시간과 꼭 여섯 시간 차이가 난다. 계산을 해보니 오후 두시를 의미했다. 세 시간, 기다리는 데는 이제 나도 이력이 난 터라, 제 시간에 출발해 주기만 바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꼭 한 시간을 더 채우고 차는 움직인다. 시동을 거는 데 엔진 소리가 불안하다. 옆 좌석에 앉은 학생을 걱정스레 쳐다본다. 괜찮단다. 

두 시간이 걸린다는 버스는 정확히 네 시간이 채우고 투타말랭가에 도착했다. 두 시간 거리를 이동하는데 꼭 하루가 걸렸다. 이곳은 마음을 넉넉히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땅이다.

코끼리 떼가 물을 먹고 있다


바오밥 나무와 기린의 모습


루아하 국립공원의 첫인상을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쯤으로  서술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 기대를 배반하기 마련이다. 낯익은 풍경에 실망하려는 순간 제법 커다란 물체가 후다다닥 길을 가로질러 잡목숲 속으로 사라진다. 초입부터 송아지만한 짐승을 만났다면 기대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잠시 스친다.

사파리 도중 가장 많이 만난 동물이 임팔라, 코끼리, 기린 순이었는데, 임팔라는 아담하고 날렵한 몸매에 산머루 같은 눈망울이 선하고 앙증맞지만, 존재감 없이 얌전하기만 해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학창시절 동창처럼 싱겁다. 


기린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몸매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법하다. 나뭇잎을 뜯어 먹는 품새마저 잘 자란 양갓집 규수마냥 기품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눈을 꿈뻑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껑충껑충 뛰어 달아나는데, 춘향이가 향단이로 변한 양상이다.  

곳곳에 밑동이 벗겨진 바오밥 나무들이 있었는데, 나무속의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코끼리가 한 거라고 했다.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 역시 그들의 소행이란다. 이쯤 되면 초원의 무법자다. 코끼리하면 내게는 타잔 영화 속의 정의의 사도로 기억되었었는데 말이다. 타잔이 곤경에 처해 ‘아~~~~~아아’하고 손나발을 불면, 어느새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와, 악당들을 물리치곤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들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라고 있는, 풀을 뜯는 광경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왼쪽 발로 땅바닥을 툭툭 차서 풀을 뽑아 놓고는 긴 코로 살짝 집어  올리더니, 마치 키로 까불듯이 몇 번 흔들어 흙을 털어내고 입으로 가져간다. 무리들과 조금 떨어져 걷고 있는 코끼리 세 마리가 보였는데, 마치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소풍가는 가족같이 정겹다. 


아름답기로 치면 기린과 쌍벽을 이룬다고 생각한 얼룩말도 자주 눈에 들어왔다. 의외로 백 미터 미남 미녀들이다. 작달막한 키에 통통한 몸매, 두툼한 목살이 둔해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사자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는데, 사자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가이드가 차를 돌린다. 이미 몇 대의 차량이 서 있다. 암사자 몇 마리가 그늘에 앉아 있다. 수놈은 보이질 않는다. 맹수의 본능을 숨기고 있는 그녀들은 그냥 게으른 사냥개처럼 보일 뿐이다. 그 외에도 원숭이, 하마, 악어, 이름 모를 새들을 보았다. 

입장료를 치르며 만났던 공원관리가, 휴일을 맞아 때마침 이링가에 있는 본가로 돌아간다며, 차를 태워주겠다고 했다. 국립공원에서 이링가까지는 비포장도로였는데 곧 포장을 할 거라고 했다. 이미 설계도 끝나고 착수만 하면 된단다. 밀렵꾼은 없냐는 나의 질문에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단다.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잘 관리하고 있는 탓이란다. 인상 깊었던 것은 공원 입장료를 카드로만 받고 있었는데, 현직 대통령 마구풀리가 집권하며 비리를 막기 위해 취한 조치라고 했다. 

탄자니아는 없는 게 없는 풍요로운 땅을 가졌지만 유능한 지도자가 없다고 한탄하던 나의 동료, 로엘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내내 꽉 찬 ‘슈퍼 문’이 나를 호위해 주었다.

부시에서 동물들을 많이 만났지만, 오래 기억되는 건 그래도 사람이다. 정반대 방향의 차를 타라던 무책임한 차장들, 가는 내내 말동무가 되어주던 까까머리 고등학생. 자신이 로얄 패밀리라고 허풍을 떨던 가이드, 환율로 나를 바가지 씌우던 사내, 예쁘고 영민해 보이던 친절한 호텔 프론트 아가씨... 그들과 웃고, 수다 떨고, 다투기도 하면서 탄자니아에 한 발 더 나가선 듯하다. 


2016.09.25.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일식 추적자


'스카이 워처'라는 장비로 일식의진행 상태를 스크린으로 중계하고 있다.


“선생님은 글감 사냥꾼이에요.” 어디를 가나 호기심을 갖고 글감을 찾는 나를 보며 필리는 말했다. 마감이 있는 글쓰기가 나를 그리 만드는 것인데, 보통은 사소한 일상에서 소재를 찾게 되지만, 특별한 일이 있으면 절대 놓칠 수가 없다.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식을 보기 위해서라면 북극의 설원도 마다않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일식 추적자‘ 또는 '반그림자 애호가'라고 한단다. 나도 하루쯤 일식 추적자가 되어 보아도 좋을 듯하다. 


루제와, 음발라리. 

우주 쇼를 보기 위해 특수 안경을 쓰고 해바라기 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이곳에 오지 못한 사람들은 집에서 물그림자로 일식을 관측한다니 퍽이나 낭만적이다.. 

비쩍 마른 몸매에 키가 크고 옷차림이 독특해 눈에 띄는 마사이 사람들이 나무 꼬챙이에 끼운 갓 잡은 양고기를 장작불 주위에 둘러 바비큐 하고 있다.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야생의 삶을 사는 그들도 이런 날에는 장돌뱅이가 되기도 하나보다.  

저만치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금줄까지 쳐놓고, 백인 두 명이 마치 북처럼 생긴 ‘스카이 워처’라는 장치를 통해 일식의 진행 상태를 스크린을 통해 중계하고 있다. 렌즈를 통과한 태양은 마치 달 같다.  

열 시 방향에서부터 점점 야위어 가던 해가 종국에는 동그라미로 남는데 걸리는 시간만 두어 시간이다. 성질 급한 사람은 필름을 빨리 감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영락없는 금가락지가 떠있다. 팔을 살그머니 뻗어 두 손가락으로 길어 검지에 끼면 딱 맞을 듯하다. 한참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붉은 빛으로 타오르는 듯도 하다. 동그라미 하나만 달랑 남기고, 달이 해를 완전히 품어 버린 순간 공기는 투명하다 못해 서늘해지며 냉기가 흐른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다. 

잠시 머뭇거리던 달이 제 갈 길을 재촉하자, 네 시 방향에서 동그라미가 깨지는가 싶더니 다시 열시 방향에서부터 해는 살이 찐다. 


우주쇼 장면을 한국에 실시간 생중계하던 중이다. “지구가 좁지? 우주로 가려고?”  

 스마트폰을 통해 보내온 지인의 답신이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꽤 오래 전 일이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우주여행 상품을 팔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 되었다. 천문학적인 가격의 상품이었는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세계 부호 중의 한명이 선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와 그 여행의 가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비교적 현실적이었던 친구는 짧은 순간의 호기심을 위해 거금을 투자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낯선 상황에 자신을 던지는 끊임없는 여행이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고 믿는다. 

일식은 일 년에 적어도 2회, 많으면 5회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특정 장소에서 일어날 확률은 평균 370년에 한 번. 역사적인 순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단지 우연일까? 전날 밤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찾아온 꿈을 꾸었고, 임지에 파견된 후 꼭 한 달만의 일이다. 돌아오는 길, 잠시 버스에서 내려 렌즈 속에 담긴 해를 본다. 마치 낮에 뜬 보름달 같다. 참 예쁘다. 




소피아

9월 9일


Fungatera



“푼가 테라”

“푼가 테라”


앞서가던찰스는 ‘푼가 테라’를 외치며 손을 내민다. 

그의 말에 의하면 테라는 자체 동력을 갖지 못한 컨테이너를, 푼가는엔진을 가진 차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력을 가진 차가 그렇지 못한 컨테이너를 끌고 가는 것이다. 손에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간다는 뜻도 되고 힘내라는 격려의 말로 쓰이기도 한단다.

지금음베야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루사조는음베야 산에 오를 팀을 구성 중인데 함께 하겠냐는 전화를 해왔다. 우리 집 창을 통해 매일 보는 풍경이기도 했고, 집수리 때문에 지쳐있기도 하던 터라 흔쾌히 그러마, 고 대답했던 것이다. 


새벽 여섯 시가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도착했으니 내려오라는 루사조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경쾌하게 울린다. 계단을 내려가자 그녀의 자동차가 전조등을 켠 채서있다. 빛이 소리 없이 어둠을 잠식하나 싶더니 어느새 사위는 밝은 빛으로 채워진다. 참 순식간이다. 어둠이 내리는 것보다 빠르다. 

산행 초반에는 영 힘이 든다. 일행 중 몇명과 뒤로 처진다. 그 중 한 둘은 뒤처진 일행을 위해 속도를 줄여준 것이리라. 

나는 늘 그렇듯 초반에는 힘을 못 쓰다, 조금씩 신체 리듬이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몸이 가뿐해지며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매사에 늦되다.

나를 위해 보조를 맞춰주던 찰스와자연스럽게 팀이 되어 일행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찰스는 내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한국 여성의 강인함을 알겠다며 은근슬쩍 추켜 세운다.

시간이 갈수록 여러 팀으로 나눠지고, 선두 그룹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여기저기서‘요~~~~~ 요요요요요, 요~~~~요요요요요’하는 메아리 소리가 요들 송처럼 가볍게 나풀거리며 산을 간지른다. 나는 우리네 식으로 손나발을 불며 ‘야~~호’로 화답하자 그들도 나를 따라 ‘야~~호’를 외친다. 


여러 개의 작은 산봉우리를 넘고 넘어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사방이 산인데고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정상은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인장 류가 자라고 있고,정상을 향해완만하게곡선을 이룬 산등성이엔 노란 야생화가 만발해 마치 유채꽃밭 같다. 계곡을 이루는 곳은 어김 없이 열대성 산림이 울창하다. 멀리에는세파족이 사는 마을이 제법 크게 자릴 잡고 있다. 그들은양을 키우고화전을 일구며 산다고 한다. 

일행을 기다리는 와중에 한 편에선 열심히 사진을 찍고, 한 편에선 동영상을 촬영하며 인터뷰까지 한다. 나에게도 폰을 들이대며 한국말로 한마디 하라고 재촉한다.

아프리카는 사진 찍고 찍히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대륙인 것만은 분명하다. 저렇게저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긴 역사를 통해 기록할 언어를 갖지 못해 남의 나라 철자를 차용해서 쓰는지…


내려가는 길은 곡예다. 바위산은 그렇다 쳐도 한 발짝만 잘못디디면 양쪽이 낭떠러지. 거의 기다시피 내려온다.

바위산을 겨우 벗어나 한 숨 돌리며,한 시간길어야 한 시간반이라 했으니 곧 마을이 나타나겠지 했는데 다시 새로운 능선이 저만치 앞에 보인다.가까이 가니 앞서간 일행들이 미끄러지다시피 헤쳐나간 흔적만 있다. 엉덩이에 불이 나는 가 보다 하면, 잡목 숲. 두 팔을 휘저으며 길을 만들며 나아간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질 무렵, 무릎을 삐끗했는지 시큰거리기 시작한다.헛발질만놓다뒤뚱거린다.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잡는다. 까만 얼굴에 눈과 치아만 하얀 낯선 얼굴의 청년이다. 그의 도움을 잠시 받지만여전히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는 메고 있던 가방을 뒤따라오던 동료에게 부탁하고 등을 내민다. 도리가 없다. 나 때문에 지연될 수는 없는 일. 염치불구하고 업힌다. 그는 마치 산토끼 같다. 한 걸음에 달려 내려간다. 

그는 동력을 가진 푼가. 나는 동력이 없는 테라다.

국부인 니에레레는 말했다고 한다.탄자니아는 아직 엔진을 켜지 못해, 유럽이 끌어주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시동이 걸리면 엄청난 속도로 달릴 것이라고… 이곳이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란 것을 알아갈수록 그의 말은 설득력을 갖는다. 막내의 설음을 딛고 젊고 힘찬 대륙으로 태어날 그날. 나도 기다려 볼 것이다.



소피아

8월 21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