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이었을때 몰랐는데 이제는 모든 생산직이 다 기륭이더라"

 금천구 가산동에 자동차 스피커를 30여년동안 생산해온 한국음향이 폐업한지 1년이 됐다.
당시 재직중이던 60여명의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정규직에서 실업자로 전락했다.
그들중 생산직에 있었던 박정은(가명41)씨의 일년간 취업기를 소개한다.

“회사폐업소식에 처음에는 당황하고 막막했지,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결정이 난걸...한편으로 아직 젊으니깐 금방 취직할수 있다고 생각했지.”


<출처-임응식 "구직" 서울 명동(1953년 작) 1953년 서울 명동>


대부분 10여년을일한 노동자들은 당분간휴식을 취하고 구직활동을 했지만 박씨는 폐업 후 바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지만 그동안 받아온 월급에 비해 턱없이 적으면서도 매일 의무잔업에 토.일요일 특근까지 하는 조건은 어느생산직이든 다 똑같았다.

“전 직장과 비슷한 데는 이미 멸종 됐더라,그렇다고 일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정규직이니깐, 한번은 면접관이 내얘기 듣더니 비웃어서 싸운적도 있어”

수십번 면접을 보던 박씨는 이대론 취업도 못할거 같아서 조건을 낮춰 LED생산직에 취직했다. 70시간이상 잔업.특근을 해도 월120도 안된다.그보다 더 화나는건 차별이다. 회사에서 야유회를 가도 정규직만 데려가고 비정규직은 일을한다.

지난 9월 태풍 때문에 지각 할때도 비정규직들만 지각 한시간만큼 월급에서 뺐다.
“내 잘못으로 지각했으면 인정하겠는데 자연재해로 어쩔수 없었는데 너무하더라. 그래서 때려쳤어”

그 이후에도 여러 군데를 더 다니고 지금은 식당에서 일을 하 고있다.하루 12시간근무에 주1회휴무 한달 180정도 낮잠시간과 손님이 뜸할 땐 쉴수도 있어 오히려 차별받는 생산지보다 더 낫다고 하는 정은씨,

폐업후 일년간 열군데더 넘는 회사를 다닌 정은씨는
“1986년도에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처음 직장을 다녔는데 그때도 잔업을 했지만, 학교간다고 하면 잔업을 빼주고 했는데 지금은 제삿날이라고 해도, 아이가 많이 아파도 잔업.특근은 안빼주더라, 얼마전 타결된 기륭전자 있잖아, 정규직으로   있을땐 몰랐는데 이젠 모든 생산직이 다 기륭이더라, 어떻게 된게 거꾸로 가고 있어, 내 자식들은 더할 것 같아.  우리가 기륭노동조합 보다 더하게 싸우면 아이들은 괜찮을까?”

앞으로 가 더 걱정인 박정은씨 한달에 한번 한국음향 조합원 모임에는 여러명의 박정은씨가 구직활동을 하고있다.
얼마전 G20개최와 더불어 광저우 아시안게임 2위를 하는 등 선진국으로 한걸음 나아갔다고 하지만,우리네 인생은 뒷걸음 치고 있는게 현실이다.

김진숙 기자
saoul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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