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불편러의 투표참관기

제도의 공정하고 실효성 있는 구현에 대한 고찰 




사실 민주주의에 걸맞는 시민의 자세라는 건 매우 까다롭고 예민하고 피곤하다. 대개 사람들은 문제가 된다고 지적하는 사안에 깊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아니라고 넘기면 문제가 아닌, 아무도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쓰는 문제를 굳이 (심지어 실익도 없어보이는데) 꺼내는 사람을 보면 사실 짜증부터 솟구친다. 심지어 얼핏 듣기에도 그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으면 생각하느라 머리도 아프고 그냥 꼴뵈기 싫고 외면하고만 싶어진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고 해도, 그 말을 듣고 원래 하던대로 안하고 쓸데없이 움직였다가 괜히 뭐 잘못되면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까봐 겁부터 난다. 그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그 맞는지를 따져보자고 누군가 질문받는 일 자체는 정말 귀찮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마인드는 뒤가 구리고 당당하게 공개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는 밀실 정치 세력들에겐 필수적이다. 누가 알려달라고 물어보고 달려들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만큼 기득권 세력을 위협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일 제대로 하기 싫어하고 타성에 젖은 조직일수록 그 자신을 건강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게 비판하는 일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이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정당화하면서 '지적하는 당신이 틀렸다'며 힘과 권력으로 누르려는 고압적인 리액션을 당연하게 취한다. 결국, 이런 사고의 경직성과 문제회피적 태도, 권위주의의 일상화가 바로 비리와 부패가 판치고 종국에는 폭력으로 점철된 독재 체제를 만들어내는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라 하겠다. 


그런데 소위 민주 국가가 건설되었다는 이승만 정권에서 박정희 정권, 그리고 그런 독재정권들을 추억하며 당선된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는 위에서 하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의심하지도 않고 그냥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해온 사람들이 다수인 참 부끄럽고 안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이 사회의 전반에는 정당한 질문에는 부담을 느끼고 바른 말과 바른 행동에는 스트레스 받으니 자제하라는 태도가 곳곳에 만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거권 있는 민주시민으로서 자존감이라곤 눈꼽만큼도 가지기 힘든 적폐 중의 적폐라고 할 수 있다.


이번 5월 9일 대선은 무엇보다도 필자에게 이런 적폐가 청산되길 기대하게 만든 최초의 선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년이 넘도록 끈질기게 행동을 이어가면서 결국 탄핵을 이루어낸 대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난생 처음 쪽팔린 과거를 벗어던지고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미래에 대해 한줄기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선거가 진행되는 첫걸음인 투표소에서부터 여전히 멀었구나, 굳어진 사고는 쉽게 바뀌지 않겠다는 현실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투표용지 잘못 나왔다, 대리투표 적발되었다, 이런 뉴스는 사실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고 불거지는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이다. 특히 바로 직전인 박근혜 정권은 마지막까지도 부정선거 의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어째서일까? 실제 이 부정선거가 진짜였는지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전국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선거일에 투표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라는 것, 권력 투쟁의 장이자 감시와 비판이 역시 날카롭게 세워져야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이 거의 공유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투표 참관인 제도가 있어도 허울 좋은 껍데기 마냥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투표참관인제도는 투표과정에 이해당사자들을 참여시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의 교부상황 등 투표과정을 지켜보면서 법에 위반되는 사실이 있으면 이의를 제기하고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다. 즉, 선거에서 가장 긴장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는 바로 정당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역으로 이용하며 '정당'별로 투표참관인을 선정하고 이들로 하여금 선거를 개시하는 시점부터 개표되는 시점까지 투표함 바꿔치기나 유권자 조작 등 공정한 선거를 위협하는 모든 시도로부터 감시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역할을 맡게 하는 것이다. 즉, 모든 선거에서 부정선거 의혹의 가장 일차적인 책임은 투표소 내 투표참관인에게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제도가 제대로만 이루어졌어도 부정선거 의혹으로 쓸데없는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건 자명하다.


그러나 필자가 참여한 투표참관인은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투표소 나가는 방향 즈음에 앉아서 투표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투표참관인의 역할이 "1. 선거인 본인여부 확인 과정 참관, 2. 투표용지 교부 상황과 투표 상황 참관, 3. 투표 간섭 또는 부정투표, 그 밖에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는 사실 발견 시 투표관리관에게 이의제기 및 시정요구, 4. 투표소 안에서 사고발생 시 그 투표상황 촬영, 5. 임시기표소 사용 시 투표 참관" 이라는 점이 뻔히 적혀진 브로셔를 배부하고도 투표관리인에게 이 내용을 묻자 돌아온 답변은 투표 참관인은 배정된 자리를 일단 지키고 앉아있는 것이며 의심이 될때나 가서 수시로 지켜보라는 내용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 유권자마저 필자에게 시끄럽다고 투표참관이나 하라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투표참관인 제도가 무엇이고 뭘 하는지에 대해 유권자들조차도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걸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필자에게 있어 이번 대선은 특별하고 소중한 의미가 다른 어떤 때보다도 남달랐으며 그 만큼 투표의 공정성에 대해 투표참관인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느꼈다. 이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를 달 수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선거과정의 모든 단계를 의심을 하고 그걸 푸는 역할이 필자가 투표참관인으로서 여기 온 이유가 아니냐고 말하고 투표용지와 본인 여부 확인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 20분이 흘렀을까.. 투표 관리인은 결국 필자를 불러내서 서 계시는 걸 보는게 불편하기도 하고 직원들이 일하는 걸 지켜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심리적 압박을 느껴서 안하던 실수도 할지 모르니 자리로 돌아가라고 10여 분이 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그럼 다른 참관인들이 이런 역할을 같이 해야될 게 아니냐고, 근데 아무도 이런 합리적인 의심을 하지 않고 공무원들 힘들다 소리만 하며 필자를 설득하려 들고, 심지어 그 의심하는 일을 하라고 선관위에서 돈받고 투표소 와있는 거 아니냐고, 다른 분들에게 이 활동이 최소한 정당하다는 걸 교육시켜야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해도 그저 똑같은 말이 계속 반복될 뿐이었다. 결국 필자는 자리에 돌아와 우리는 무척 공정하고 원칙적으로 선거를 진행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4시간이 넘는 남은 시간 동안 그저 멍청하게 참관인 석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필자가 어떻게 보일지 뻔히 알고 있다. 그 시간 금동초 투표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필자는 쓸데없는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프로 불편러도 이런 프로불편러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오히려 그렇게 건의사항을 덮으려는 투표관리인의 태도가 적폐 중의 적폐가 아닐까?


사실 우리 사회에 이런 무책임과 게으른 사고가 도처에 널려있다. 예를 들면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세월호에 대해서 누구 한 명이라도 이 배는 위험하다고, 출항하면 대참사가 일어날 거라고 걱정을 안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있었다 해도 그런 '불편한 사실'을 공론화는 커녕 아무도 귀기울여 듣지 않았고 결국 300여명이 넘는 희생자가 세상을 떠나 유족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아직까지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현재형 사건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사실 특별한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저 제도가 제대로 실행만 되어도 예상치 못한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공공사회에서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대통령이 누가 되도 딱히 큰 희망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박새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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