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산화한 지가 올해로 40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근로기준법은 우리사회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차례에 걸쳐
근로기준법기준법의 허실을 살펴 보겠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인권의 최소 기준이다. 3

- 법 위에서 잠자는 사람을 법을 보호하지 않는다.


예전에 우리 상담실에서 함께 상담을 도왔던 분은 중졸인데 노조 간부를 하면서 노동법을 익혀 간단한 상담을 했다. 그런데 그 분이 한탄하는 것 중 하나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나와도 노동법에 대한 기초상식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근로계약서도 딱 부러지게 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전세계약만 해도 계약서는 쌍방이 도장 꾹꾹 찍어 보관한다. 그런데 근로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드물지만 쓴 자기 근로계약을 보관하고 있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근로계약서는 오직 회사의 소유이다. 이런 무지가 자본가들의 편법과 불법의 무기가 된다.


근로기준법과 산재법 그리고 노동조합법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독립적인 과목으로 필수적으로 철저하게 교육되어야 한다. 그 사람이 장차 사장이 되던 노동자가 되던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하다. 누구나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동권은 불온한 것이었다. 노동조합 자체가 빨갱이의 소굴로 배척당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노동권은 여전히 감춰지거나 줄임을 당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이 생겨 임금이 오르고 해고가 줄었다. 하지만 97년 IMF사태 이후 임금은 도루묵이 되었고 고용불안은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정리해고는 비정규직 확산으로 이어졌다. 다시 한 번 저임금 장시간 불안노동이 되돌아 와 버린 것이다.

한 편으로 정권과 자본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집요하게 똥칠을 했다. 그 결과 일반 시민들조차 노동조합하면 이제 배부르고 이기적인 존재로 본다. 노동법을 겨우 보장받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노동귀족으로 보는 것이 대표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다. 정권과 자본의 이런 이데올로기 공세가 사실은 우리의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똥칠임을 알아채는 이가 너무 적다.


노동기본권은 생존권이다. 다른 말로 생명권이다. 생명권을 이기적인 무엇으로 돌리는 것은 정권과 자본의 탐욕 아래 노동자들의 생명을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용기는 드물다. 우리 상담경험으로 보면 해고나 체불 등에 대하여 10중 7은 아예 포기한다. 진정이나 고발을 하는 경우가 30% 수준이고 이들도 2-3년이 넘게 걸리는 소송을 감당하는 사람은 또 수만큼 준다. 법에 호소하는 경우도 열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니 자본들은 불법 편법을 하는 것이 준법을 하는 것보다 경영상의 효율이 높다는 계산을 하는 것이다.


끝까지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1/10의 사람은 주위로부터 독하거나 이상하게 본다.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면 회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등 불온시 하거나 이상한 집단주의로 왕따를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니 의무만 보이지 어디서 제대로 된 권리의식을 경험하겠는가? 권리의식이 제거된 사람들을 우리는 착하다고 한다. 하지만 권리의식 없는 착함은 우리를 탐욕의 호구(虎口)로 만들 뿐이다.  


법의 경구 중에 ‘법위에 잠자는 사람을 법은 보호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법이나 판례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자꾸 고쳐져야 하는 것이다. 똥이 더럽다고 피하듯이 눈 앞에 체불 등 불법에 눈 감으면 뒤에 또 다른 사람이 동일하게 억울함을 당한다. 나의 불이익을 바로 잡는 것이 다른 노동자들의 사람대접을 높이는 길이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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