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환제(國民召還制), 어떻게 생각하는가? 



추석 연휴 중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가 들린다. 국회의원들을 파면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도를 논하는 소리가 그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국회의원을 파면할 수 있는 제도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필자 외에도 수없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럴 만큼 오늘 우리 사회에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는 낮다. 


사실 국회의원 소환제기는 낯설지 않다. 그간 언론이나 세평을 논하는 자리에서 국회의 파행이나 의원들의 무능, 부정 등 부끄러운 실상이 드러날 때 마다 사회의 여러 경로에서 제기 되곤 했다. 그런데 이런 필요한 제기들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제재와 관련하여 지금껏 아무런 제도나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것은 좀 그렇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특정 사안에 대한 부정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 어떤 형태로던 대안이 마련되는 것이 상례인데 그냥 지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민들의 무관심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한다. 법제는 그들 집단 즉 국회의 권한이고 따라서  자기를 구속하는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를 가진 자들도 시행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국민 다수가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당사자들인 그들이 그런 의미 있는 일들을 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차제에 국민소환제에 대하여 알아보자. 국민소환(國民召喚, Recall)이란 국민파면(國民罷免) ·국민해직(國民解職)이라고도 한다. 이 제도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되었으며 현재 스위스의 몇 개 자치주 외 몇 곳에서 채택하고 있다. 국회의원 등을 투표 방법으로 선출한 유권자들은 그의 해임도 같은 방법으로 할 수 있다는데 그 이론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요지를 말하면 유권자들이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가 그 임무 수행에 부적격하거나 비리 등이 있을 경우 투표에 의하여 파면시키는 제도가 곧 국민소환제다. 그러나 오늘날 선거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국민들은 정치적 무관심에다 행정기능도 복잡 다양하게 전개됨에 따라 이 제도의 의미는 퇴색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제도권에 의한 국민소환제 제기가 있었다. 자유당 말기 무렵인 1950년대 친 정부 세력과 여당 국회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이를 시행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오늘에 생각하는 국민소환제로서의 의미를 둘 수 없다. 당시 야당의원의 정부·여당에 대한 집요한 견제에 제동을 걸고자 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과 같은 국회의원들의 무능이나 비정(秕政)에 대한 응징목적이 아니고 야당 의원들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한 집권 세력(정부 측)의 반정부 세력 탄압이 목적이므로 가치를 둘 수 없다. 그러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런 목적이지만 실정법에 의한 방법으로 야당을 억제하려했다는 사실이다. 이후의 군사쿠데타로 민주주의를 말살한 군사정권은 초법적 방법으로 야당 의원의 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일방적 법 시행과는 비교된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후 국회의원 등 정치권력을 견제하는 국민소환 규정이 없었으나 1987년 6월 항쟁이 계기가 되어 점진적인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이러한 요구는 힘을 얻기 시작하더니 2006년 5월 마침내 주민소환제 법률이 마련되어(법률 제7958호) 이듬해 7월부터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 법률은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대상으로 할 뿐 국회의원은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국회의원은 그들이 가진 법률 제정권을 앞세워 그 법률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법제(法制)를 한 것이다. 당시에도 국민들의 대 국회의원 신뢰도가 부정적이었음에도 그들이 이토록 용감한(?) 행동을 한 것은 무슨 배경일까?


그들은, 일정 시간이 흐르고 나면 먹고 사는 일에 바빠 남 탓 할 겨를이 없는 국민들은 자기들 생활과 직접 관계가 없는 사안은 곧 잊어버리는, 자유주의 사회에 흔히 나타나는 망각의 법칙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뻔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꾼의 생존법칙은 불리한 것은 무시하거나 딴전을 피는 것이 유력한 방법인 것을 그들 정치선배의 행적에서 보고 배워 알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면서 갖게 되는 특권이 얼마나 대단한데 어떻게 쉽게 이를 잃을 수도 있는 일에 참여하려 하겠는가?


국회의원이 되면 갖게 되는 권한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단하다. 면책특권과 불 체포 특권 같은 일반시민들은 가질 수 없는 권한을 비롯하여 경제와 사회 부문에서의 특권을 가지고 있다. 고액의 세비와 다수의 보좌관에다 넓은 사무실에 교통시설 사용 등 여러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민주주의를 채택한 다른 나라도 유사한 제도를 두고 있는 등 국회의원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장치를 두고 있는 것은 낯설지 않다. 이러한 국회의원의 권한을 시비하고자 함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가지는 막중한 책임을 살필 때 그에 상당한 권한을 주는 것은 문제 삼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권한의 행사가 그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공감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이나 불 체포 특권을 부여한 것은 국회의원 고유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게 하려 함이다. 막강한 집권세력의 권력에 대하여 정의롭게 대응함으로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수호하게 하려함이고, 경제적 사회적 특혜를 부여한 것은 다른 데 눈 돌리지 말고 오로지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 수행을 성실히 수행하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 


국가공동체가 각 통치 영역에 권한을 부여하고 그것의 권력화를 용인하는 것은 질서를 세우고 그것을 지켜나감으로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도모하기 위함이므로 그 설치는 당위성을 갖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오늘과 같은 문명의 발달은 그러한 바탕에서 비롯하였다고 이해한다. 다시 말하면 합리적 국가권력 체제는 그것이 미치는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의 강력한 수단이 됨에 동의한다.


그렇듯이 국회의원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권리는 국민적 동의에 의한 것인 만큼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가지는 이러한 권리들은 오늘에 이르러 그들의 입신양명과 재산형성 목적으로 이용하는 등 반사회적 권력자로 만드는 역현상을 초래케 하여 결과적으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헌법은 특권층의 존재를 부정한다(11조 ②). 다만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른 권한을 부여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헌법적 가치 수호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관련자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등은 그런 취지다.


국회의원의 권한은 이런 근거를 가지고 있는데 왜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반문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헌법은 국가 규정의 모법이자 근간이다. 그곳에서 규정하는 권리들은 그것 곧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하여 규정을 세웠는데 그것이 구성원 중 일부 특정인을 위한 목적으로 이용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고 곧 헌법에 위배된다 할 것이므로 위헌 행위다. 헌법가치 수호를 위하여 부여한 권한이 그것을 훼손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는 유용한 정치 구성이다. 다른 방안도 있는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이보다 더 유용한 선택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그 구성원들이 구성 목적에 반하거나 부합하지 않는 행위를 할 때 대안이 필요하다. 물론 이들을 선택할 때 이러한 점이 유의되어야 하지만 선출자도 피선출자도 그 시스템 관리자도 인간인 만큼 오류를 배제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도를 설치하자는 명분은 그래서 존재한다.(♣2017.10.14.)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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