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월요분과에서 < 우리 동네 미자 씨> 읽었는데, 미자씨 읽다가 다들 선화선배 생각난다고 했어요. 나는 미자씨가 좋은데 선배는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한번 읽어봐요."


나를 닮은 주인공이 있다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도대체 미자씨가 어떤 여자기에 나와 닮았다며 여럿이 웃고 떠들었을까? 궁금했다. 여태 많은 책을 읽었지만 굳이 내가 이야기 속 누구와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팥쥐엄마 정도랄까? 키는 구척장신에 얼굴은 검은 게 콩멍석 위에 구른듯이 얽었고 입술은 썰면 아홉접시가 나올 것 같이 생겼다고 한다. 6학년 때 친구에게 입술이 너무 두꺼워 토인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두꺼운 입술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거기에 붙어버리게 되어, 어쩌다 보니 나를 스스로 팥쥐엄마에게 갖다 붙이고 있는 것이다. 글쎄, 그럼 미자씨도 팥쥐엄마 스타일일까? 책을 검색해 보니 표지그림에 시꺼멓고 입이 함지박만한 미자씨가 있다. 일단 외모가 합격이다.


'미자씨는 혼자 살아요. 어쩌다 보니 가진 돈을 다 날리고 빚을 잔뜩 지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지고 날품을 팔아서 버는 돈으로 가난하게 살아가죠. 찢어진 모기장도 바꾸지 못하고 해진 구두도 그냥 신고 다녀요.'

어라?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게 닮았나? 나와 좀 다른 것 같은데 뭐가 비슷했을까? 도대체 미자씨 어떤 구석이 나를 닮았는지 요리조리 뜯어보며 읽어간다. 

책 중간쯤 읽다보니 미자씨는 일단 어깨가 떡 벌어져 한 덩치하고, 별명이 천하장사다. 몸집과 별명이 일단 나와 같다. 방바닥에 누워 며칠이고 이리 저리 구르는 게 취미란다. 취미생활도 비슷하다. 누가 부탁을 하면 허드렛일도 마다않고 닥치는대로 잘해준다는 것도 닮았다. 게다가 그녀도 좀처럼 아픈 적이 없다. 어쩌다 아프면 약 먹을 생각은 전혀 않고 맛있는 거를 먹으면 나을 거라고 믿는 스타일이다. 나 같다. 그리고 그 맛있는 거라는 것도 아주 소박해서 '오뎅' 정도면 되는 것도 나 같다. 

그렇게 미자씨는 뭔가 엉성하고 모자란 것 같지만 가끔 잘하는 것도 있다. 고추가루도 없이 라면스프와 순대소금을 넣고 기가 막히게 맛있는 동태찌개를 끓일 줄도 아는 것이다. 요리천재가 따로 없다. 

옷 입는 스타일이나 외모도 솜씨도 그렇지만 사는 모양새도 나와 닮았다. 찌개 끓일 재료로 쌀뜨물이 있다고 다행이라고 말할 만큼 쌀도 없이 살아본 적이 있지만, 일단 그녀는 지나간 일에는 담담하다. 그리고 현실에 있어서는 남들이 미자씨에 대해 어떻게 말하든 자신이 보통은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내가 사는 법과 닮았다. 성지는 말끝마다 아줌마가 말하는 보통은 보통이 아니라고 핀잔을 주지만 그런 성지에게 말한다.


"있잖아, 성지야, 내 보통이 보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게?"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 불행해져." (63쪽)


나도 몰랐는데 행복해지고 싶은 내 본능이 내가 보통이거나 보통 이상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며 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미자씨 덕분에 나를 알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나도 다시 미자씨의 사는 법을 가슴에 새긴다. '자신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불행해져.' 미자씨는 모자란 것 같지만 이렇게 누군가에게 가끔 어른다운 얘기를 할 때도 있다. 나도 성지와 같은 아이를 만나면 그 정도 이야기를 꼭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미자씨는 호기심도 많다. 일단 무언가를 배우면 꼭 실험을 해보는 성격이다. 차 장수 아저씨가 아픈 미자씨를 위해 준 동태를 요리하기 전에 일단 치약이 진짜 비린내를 없애주는지 실험부터 한다. 새로운 걸 들으면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도 나와 닮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닮은 건 누군가를 금방 좋아하는 것이다. 아프다는 미자씨에게 동태 두 마리를 준 차 장수의 친절에 금방 사랑고백이라도 받은 듯 들뜨는 여자. 냉동실에 아껴두었던 동태를 차 장수에게 대접을 하겠다고 맘 먹고, 드디어 차장수가 오는 날을 잡아 고슬고슬 맛있게 밥 짓고 보통 정도가 아닌 시원하고 맛있는 찌개를 끓였는데... 차장수 총각은 이제 총각이 아니란다. 지난 달에 결혼을 했단다. 

결국 찌개 한 냄비를 혼자 다 닦아 먹고도 속이 허해서 어린 총각 성지에게 안아 달라고 떼를 쓴다. 성지를 안고 엉엉 우는 모습도 나와 닮았다.

몰래 좋아한던 남자는 이미 장가를 갔대고, 이제 다시 미자씨는 혼자가 됐다. 앞으로 미자씨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똑같은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난 그녀를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그녀는 자신이 불쌍해지지 않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뻔뻔스러울지라도 스스로 누추해지지 않을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2016.05-1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 읽는 어른모임 정선화  글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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