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24시] 

2013 / 김화영 외 / 새움 출판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늦게까지 대학을 다니며 용돈벌이를 할 때,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원고 교정’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교정’이라는 게 단순히 오탈자만 보면 된다고 생각했고, 두어 번 보면 되겠지…… 게다가 남이 안 본 글을 먼저 본다는 호기심이 더해져 솔깃한 마음에 친구에게 덥석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장장 한달 여간 300여장 되는 원고는 저를 참 많이도 괴롭혔습니다. 처음의 호기심과 설레임은 원고를 받는 순간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한 자라도 오탈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전을 뒤져가며(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 맞춤법 검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파일이 아닌 출력된 원고의 형태로 봐야 했으니, 순전히 사람의 손으로 오탈자를 찾아낼 수밖에요) 보고보고 또 보고 빨간 펜으로 잔뜩 고쳐서 친구에게 원고를 건냈습니다. 친구는 이 원고를 앞으로 두 번은 더 봐야 한다고 했고, 이왕 보는 거 문맥도 자연스럽게 손봐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저는 총 4번에 걸쳐(불안한 제 마음이 한 번을 더 늘였습니다) 원고를 눈이 빠져라 봐야 했지요.


더 이상 오탈자가 안 나와 친구가 그만 봐도 된다고 했을 때,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혹시 인쇄되어 나왔는데, 나 때문에 잘못되지 않았을까?’ 싶어 두려워지기도 했습니다. 책이 나왔어도 선뜻 열어볼 수 없었던 건 그 두려운 상상이 현실이 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번역본-말 그대로 글자 그대로 번역만 한 것이었습니다-을 교정하기도 하며 몇 달간 출판사를 들락날락했습니다. 하지만 일에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정신적으로 너무 압박이 강해(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다 맞았나? 문맥을 이상하게 고치지는 않았나?) 자면서도 꿈을 꿀 지경에 이르게 되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책을 책이 아닌 ‘원고’로 본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전혀 즐겁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더불어 책을 원고가 아닌 ‘책’으로, 내게 즐거움을 주는 ‘책’으로 다시 읽고 싶은 간절한 열망을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출판 24시]는 [책]을 [책]으로 보는 게 어려워진 출판사의 사람들과 작가에 대한, 실제 출판인들이 함께 쓴 특별한 소설입니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져 팔리기까지 출판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소설인데, 실제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출판인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토대로 실제 작가와 협업을 통해 만들어낸 소설이니만큼, 그 생생함은 남다릅니다.


한 권의 책, 읽고 싶은 책, 단순히 팔리기 위한 책이 아닌 좋은 책, 그러면서도 많이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은 얼마나 분주하고 얼마나 치열할까요? 새삼, 책을 사.주.고 싶어졌습니. 정독보다 다독에 욕심이 많아 늘 도서관의 신간코너를 기웃대고, 누군가의 책에, 혹은 글에, 말에 언급된 책들은 보고 싶어 늘 조바심이 나 갈 때마다 가방이 터질 듯이 책을 빌려오는 저 같은 독자만 있다면 출판사는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출판 24시]에서 말하는 출판계의 불황에 저도 한몫을 했는지 모릅니다. 좋은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쏟은 그들의 노력과, 독자의 눈에 들기 위해 들인 무수한 고민들을 알게 된 지금은 책을 이제는 사보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그랬습니다. 자신의 책장에 두고두고 볼 책이 20권이 되는가? 여러번 읽어도 또 읽고 싶은 책은 20권이 되지 않을 확률이 크다고……. 그만큼 좋은 책은 만들기도 어렵고, 나와 인연이 되어 만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밤을 좋은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책을 통해 알고 나니, 책장이 차고 넘칠지언정 책을 사.주.고 싶습니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과 고민도 같이 말입니다. 


이번 주에는 도서관이 아닌 서점으로 가야겠습니다.



                 2016.04-2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 읽는 어른모임

안해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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