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으로서의 정치학의 출발은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자원은 한정되어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신의 도움없이 조화롭고 평화로운 인간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인류염원은 정치학자들만의 꿈은 아닐 것이다. 인류의 탄생 이래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인류의 전쟁과 학살은 몇몇 예외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끊임이 없었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서 조화롭고 평화로운 인간사회를 만들고자, 결국 근대는 공화정과 민주주의를 소환했고 정당을 만들었다. 그 결과 정당은 부족하나마 내란의 위기에서 평화를 유지하게 해주었고, 민주주의는 외환의 위기에서 부족하나마 인간의 생존을 지켜주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1.새누리당은 해체하고 다시는 공화국의 헌정사에 나오지 말아야.

정당은 상존하는 내란의 위기를 종식시켰다. 근대가 발명한 위대한 정당은,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늘 학살을 동반한 반란이 유일한 방법이었던 시대를 종식시키고, 평화적으로 정치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역사 이래, 정당이 온전하게 제 역할을 하는 국가에서는 아직까지 단 한번의 내란도 없었던 경험적 사실을 통해 우리는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게 국가에서의 정당은 인간이 이성적 존재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초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그러기에 우리 헌법에서도 어느 기관보다 가장 먼저 정당을 명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정당을 해체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정당을 만들지도 말고, 그 구성원들은 대한민국 공화국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다시는 헌정사의 나오지 말아야 한다. 새누리당은 국정원과 군이 동원된 불법선거에서도, 또 무고한 동료시민 300여명이 영문도 모른 채 물속에서 차갑게 죽어야 했던 세월호 사태에서도, 대한민국을 온통 불안에 떨게 했던 메르스 사태에서도, 그리고 끊임없는 방산비리 등으로 공화국 자체가 근간에서부터 흔들릴 때도 그들은 공화국의 집권여당으로 어떠한 자정능력도, 판단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 비리들의 한 복판에 서 있었다. 정당이 공화국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 위기로 몰아넣었던 장본인이었다. 굳이 더 이상의 예가 필요할까? 


새누리당의 전신인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신한국당 면면이 늘 그래왔다. 지금의 새누리당은 친박도 비박도 아닌 박근혜라는 허수아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결국 그 과실을 이용해 먹으려했던 용박에 불과했다. 결국 백번을 생각해도 새누리당의 존재는 공화국의 안정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정당이 하잘 것 없어 보여도 내란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든 근대 정치체제가 만든 위대한 제도이다. 건강한 정당은 건강한 역사를 만들고 부실한 정당은 부시한 역사를 만들며 탐욕스런 정당에 기초한 국가는 탐욕의 역사를 만들 뿐이다. 더 이상 새누리당이 정당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나오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그들은 우리 헌정사의 불행과 늘 함께했다. 


2.민주주의는 왜 생명과도 같은가? 

아직도 민주주의를 하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고 비아냥거리는 철없는 사람이 있다. 

민주주의는 우리를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역사적으로 헌정질서가 제대로 내린 민주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 사이의 전쟁은 아직까지는 단 한번도 없었다. 역사 이래 전쟁은 독재국가와 독재국가, 또는 민주주의 국가와 독재국가 사이에만 있었을 뿐이다. 아무리 옆의 나라가 작고 보잘 것 없다 해도 민주주의 국가끼리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은 바로 소수가 자신들의 윤리관과 세계관 그리고 자신들만의 이익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의사결정을 할 때 일어났다. 민족정기니 신의 뜻이니 하고 선량한 시민들을 선동하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최순실과 그 몇몇 소수가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왔다는 것은, 정말 아찔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몇몇 소수의 잘못된 의사결정구조는 전쟁과 같은 극단의 위기를 배 이상 증가시킬 수 있다. 남북한을 보다 극단으로 몰아넣고 근거도 없이 몇 년 내에 통일이 될 거라고, 통일은 대박이라고 시민들을 선동하면서,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최순실 일가는 재산을 독일로 옮기려 했다. 그 사실에서 그들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하찮게 유린해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이라도 밝혀진 것은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전쟁의 가능성을 크게 줄이고 평화의 가능성을 그만큼 높여준다. 우리가 평화롭게 장사하고 자유롭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어찌 밥이나 떡에 비유될 수 있을까. 모두들 알겠지만 근대라는 이 세계는 아직도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 


3.연대와 박애와 민주주의 정신을 구현해야 할 때 정치 지도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87년 야권이 분열되어 군사정권만을 연장시켜주었던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민주주의를 말하던 놈들도 다 똑같은 놈이라는 비아냥과 신성해야할 정치에 대한 극심한 혐오감이었다. 논리적 비약이겠지만, 그 결과 우리는 승리했음에도 지역은 극단으로 분열되어야 했고, IMF를 겪어야 했었으며,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같은 괴물들을 또 다시 낳아야 했다. 연대는 선거 때만 공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연대와 박애와 동료애의 정신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얽힌 상황에 뚜렷한 방안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뚜렷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정치 지도자들에게 공적자금을 지급하고 명예와 영광을 부여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의 정치인은 그냥 정치인이 아니라 혼란에 빠진 2016년 대한민국을 책임져야할 당사자들이다. 우리 시민은 50만, 100만, 그리고 200만의 시민이 모여 어떤 폭력도 사고도 없이 평화적으로 정치적 의사표시를 했다. 연대와 박애와 민주주의의 정신이 무엇인지 이제 정치인들이 답해야 한다. 물론 정치인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 할 수 있고, 또 때로는 현명한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의 정신 그것만큼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바로 그것이 지금의 정치지도자들이 존재해야하는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사회악은 괴물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괴물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잘 하지 못한다 해서 실망해서는 안 된다. 이제 더 이상 정치가 더럽다고 외면해서도 안 된다. 정치가 더러우면 시민이 나서면 될 일이다. 다시는 87년처럼 민주주의의 여정을 중간에서 포기하지도 말아야 한다. 다시는 위대한 인물이 우리를 구해 줄 거라 의지해서도 안 된다. 결국 우리의 몫이다. 이렇게 비 정상적인 상황의 하루하루는 견딜 수 없는 모욕이며, 수치이겠지만 하루빨리 이 수치스러움을 접고, 당당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우리다.


 

금천구 주민

이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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