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꽃 탄자니아에도 피어나다




재외국민투표가 4월 25일부터 6일간 치러졌다. 

월요일이 마침 공휴일이라 주말을 끼면 삼일 연휴다. 아프리카에서 치르는 대선, 그 특별함을 놓칠 수 없다는 결연함도 있었지만, 이번 선거는 여느 대선과는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기에 다소 무리한 일정이 되겠지만 강행하기로 했다. 새벽 여섯시에 출발해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14시간 만에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음트와라에 있는 루나가 나를 맞는다. 얼마 후 송게아에서 출발한 우리의 프린세스, 와니가 16시간을 달려와 합류한다. 마지막으로 필리가 도착했고, 반주로 맥주 한 잔씩을 겹들인 저녁이 시작되었다. 간단히 안부를 주고받은 후, 자연스레 화제는 선거로 무게 중심이 옮겨간다.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정치적인 성향도 다르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와니에서 진보 성향이 짙은 루나에 이르기까지 후보에 대한 선호도는 극명하게 갈렸다. 그러나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으므로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다양한 시각을 나눌 수 있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우리는 대사관을 향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부끼는 태극기가 보인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가지만 대사관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국(異國) 하늘 아래에 휘날리는 태극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19층에 내리자 투표소를 향해 뻗은 군청색 화살표가 가장 먼저 우리를 맞는다.


현재 탄자니아에는 약630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는 데, 그 중 300명이 국외부재자투표 신청을 했다고 한다. 내가 210번째 투표자. 

선거인명부를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받아들었다. 기표소 뒤, 창문 너머로 파란 바다가 한가득 안겨온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저렇게 파랗고 맑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슴에 담으며 기표소에 들어갔다. 잠시 망설인다. 사표 방지 심리가 발동한 탓이다.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에게로 저울이 기운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 차선도 없으면 차악을 선택하라고 했지.  화룡점정(畵龍點睛)하는 마음으로 도장을 꾹, 누른다. 용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 잘 봉한 후 투표함에 넣는다. 


선거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20대 여성에게 물었다. 어떤 기준으로 후보자를 선택했으며, 새 대통령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던 그녀는 재외국민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펼치실 분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투표했다고 했다. 

단기 파견근무로 나와 있다는 김 동희 씨는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불공정한 사회구조를 개선해 살맛나는 사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을 코이카 단원이라고 밝힌 현주 씨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사람 사는 사회가 아니었느냐고 짓궂게 묻자, 진짜 말도 안 되고 상식이 안 통하는 사회에 사느라 힘들었단다. 정권교체를 염두에 두고 선택했지만, 누가 되든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하겠단다.    

 

작년 11월부터 4개월 가까이, 주말마다 박 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1300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고 하는 촛불집회. 손에 손에 촛불을 든 장면들을 친구들은 인증샷이라며 이곳으로 전해 왔다. 외신을 통해 이런 소식을 접했던 이곳의 동료들은 나를 걱정하며 말했다.


“소피아, 너의 나라 괜찮은 거야? 매일 데모하던데...”


나는 그럴 때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겠느냐며 웃곤 했다. 

4개월에 걸친 집회에서 단 한 건의 폭력이나 불법 행위도 없었고, 강제 진압이나 연행 역시 없었다고 하니 말이다. 또한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인 광화문 광장에 다음 날 쓰레기 하나 없었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은가! 혹자는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 정신을 이렇게 완벽히 구현한 사례는 이전에 없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또한 프랑스 정치학자 토크빌은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걸 맞는 정부를 갖는다’, 라고 했다. 촛불 시위는 우리 국민의 수준을 확인시켜 주고 진정한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 아닐까? 

이 글이 신문에 실릴 즈음이면 청와대는 새 주인을 맞이했을 것이다. 장미대선이란 아름다운 이름에 어울리는 지도자가 새 주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장미대선을 있게 한 힘, 촛불 시민 혁명을 성공시킨 유권자들의 힘을 믿는 까닭이다. 



 5월8일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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