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산책]정전으로 가는 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지나면 사람들은 대개 의문을 품는다. 바로 궁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커다란 문이 하나가 더 있는 것이다. 그 문을 흥례문이라고 하는데, 궁궐의 실질적인 입구다. 심지어 그게 다가 아니다. 그 뒤에는 근정문이라고 하는 문이 하나가 더 있고, 그 문들을 모두 지나서야 겨우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에 당도할 수 있다. 이로써 경복궁은 커다란 정문이 차례차례 세 개나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이는 동양의 궁궐 문화 특유의 건축 양식이기 때문에 생소한데, 이유를 알고 보면 재밌다. 경복궁은 “주례”라고 하는 주나라의 건축 법제를 따라 창건한 것인데, 이 주례에는 황제국은 5문3조, 제후국은 3문3조라 하여 궁궐의 전체적인 구조를 확실히 정해놓고 있다.

 즉, 경복궁의 중심축이 되는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까지의 세 개의 문이 3문이고, 그 안으로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으로 이어지는 건물들이 3조인 것이다. 여기서 3조란, 근정전. 바깥 정치를 담당하는 곳(외전), 사정전. 왕이 집무를 보고, 정사를 돌보는 곳(내전). 강녕전. 왕이 잠과 휴식을 취하는 곳(침전)으로 구성된다.

 쉽게 말해 정문인 광화문으로부터 왕이 잠을 청하는 곳인 강녕전까지가 한 몸이자, 경복궁의 몸통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경복궁을 즐겨보기 위해서는 그런 구조적 매력과, 모든 중요 건물들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통쾌함을 느껴보지 않을 수 없다.

 

 3문 중 두 번째의 문은 바로 이 흥례문인데, 광화문이 경복궁이라는 커다란 궁궐의 정문이라면, 이 흥례문은 본격적인 왕의 공간으로 가기 위한 정문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궁궐이라 한들 조선 왕조에서는 흥례문 바깥의 영역은 왕의 영역이 아닌 백성의 영역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흥례문은 그 앞에 굉장히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조선 왕조가 숨 쉬고 있을 시절에 이곳은 수많은 병사들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위용을 재현하기 위해 하루에 두 번씩 흥례문 앞에서는 병사들이 나와 수문장 교대의식을 치룬다. 

 흥례문을 지나면 꼭 지나쳐야 하는 것이 영제교다. 모든 궁궐에는 길을 내어 금천이라고 하는 명당수가 흐르도록 하는데, 이 금천을 지나는 돌다리가 바로 영제교다. 금천은 사상적으로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주고 좋은 기운을 가져오게 하는 의미가 있으며, 문과 문 사이에 이런 다리가 있으니 보기에도 아름답다. 영제교의 난간 끝과 끝에는 총 네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있는데, 용은 곧 왕의 권위를 뜻한다.

 영제교를 지나갈 때 재미있는 것은 영제교의 난간에 몸을 기댄 후 나와 함께 금천을 바라보고 있는 네 마리의 천록을 바라보는 순간 느낄 수 있다. 이 천록은 돌로 조각 된 상상의 동물인데, 물을 통해 흘러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왕을 지켜주는, 어찌보면 이곳에서 가장 근엄해야 할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무섭다기보다는 귀엽게 짝이 없다. 왜냐하면 이 중 한 마리의 천록이 너무나도 익살스런 모습으로 메롱하듯 혀를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조각가의 실수였을지, 아니면 그 나름의 위트였을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아마 매일 같이 왕과 신하들이 지나는 길에 그저 조각가의 실패작이 올라와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아마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것은 강한 힘만이 아닌, 상황에 맞는 유머와 재치라고 생각했던 왕가의 미덕이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김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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