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The Sea


곧추세운 몸이 위로 서서히 떠오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빛의 알갱이들이 늘어나며 주위는 점점 밝아온다. 드디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윤슬이 눈부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사랑해요.”

그는 미소 짓는다.


대학이 긴 방학에 들어갔다. 나도 덩달아 배낭을 꾸렸다. 다르에스살람에서 잔지바르행 페리를 타면서도 이곳이 여행의 종착점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동북 지방을 돈 후 종단해서 돌아오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스쿠버다이빙은 꼭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었다. 실행력 하나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는데, 물에 들어가는 것만은 늘 미적거리게 되는 나를 알기에 이번에는 기필코 하며...

트럭을 개조한 버스를 타고 도착한 능귀 해변. 인도양의 진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석고 가루를 개어놓은 듯 희고 고운 모래. 모래톱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고 깨끗한 물. 그 모든 것을 축복하듯 쏟아지는 햇살. 그것들이 한데 버물어져 비취색 물결을 빚어내고 있다. 저 멀리 검푸른 물결은 하늘로 이어져 있다. 머뭇거리기만 하던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나를 탐하라고,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다이빙 포세이돈’. 그가 운영하는 다이빙 숍이다. 안정감 있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 베른하르드. 오십이 되며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어, 그동안 해오던 일을 접고 호주에서 이곳으로 온지 육 년째라고 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활동이므로 그는 매우 신중했다. 기본 교육 후 테스트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사인을 하고야 계약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프랑스인 커플과 미국인 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수는 둘 씩 짝을 이뤄하는 스포츠로 나는 베른하르드와 팀을 이뤘다. 준비를 마친 후 차례차례 물로 뛰어들었다.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처음 짊어진 산소통과 익숙하지 않은 호흡기가 나를 긴장하게 했나보다. 균형을 잡지 못한 몸이 뒤뚱거리며 바닷물이 목구멍을 통해 들어가자 정신이 아득해진다. 지금은 이렇게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를 붙잡고 발버둥 쳤을 내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창피하다. 어쨌든 그의 도움으로 겨우 우스꽝스런 사태를 수습하고 서서히 하강을 시도했다. 그러나 곧, 귀에 강한 통증이 인다. 수압에 적응하기 위해 몇 차례 올라오고 내려가기를 반복한 후에야 밑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오직 내가 내뿜는 숨소리만 들리는 공간에서 호흡에만 집중하는 절대적 순간. 인간의 손이 가지 않은 태고의 신비와 마주하는 일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그 어떤 일보다 나를 전율케 한다. 

새하얀 모래 바닥에 몸을 곧추세우고 있는 실뱀들. 산호초 사이를 들락거리며 숨바꼭질하거나, 하늘거리는 말미잘 사이를 노니는 빨간 물고기들. 바위틈에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모여 있는 밤송이 같던 성게들. 조류에 몸을 맡기고 부유하는 해마. 그 곁을 유유히 헤엄치는 형형색색의 물고기 떼. 산호초 동산 위를 떼 지어 날아다니던 작고 투명한 물고기들, 그들은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는데, 마치 불꽃놀이를 하는 듯하다.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어쩌지 못하고 우우, 소리만 뱉어 낼 뿐이다.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횟수를 더해 갈수록 나와 바다는 하나가 된다. 때론 나를 위해 물길을 열어주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공간에 가두려고 한다. 우리는 밀당을 하며 조금씩 서로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마지막 다이빙,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로 코렐 마운틴이라고 했다. 

이곳은 사뭇 다르다. 두 개의 세계로 극명하게 나뉘어져있다. 한쪽이 산호초 산이라는 밝음이라면, 다른 한쪽은 검푸른 어둠이다. 한 번 빠지면 절대 되돌아 나올 수 없는 크레바스 같은. 

두 세계는 똑 같이 나를 유혹한다. 저 알 수 없는 깊은 세계로 들어가 보고 싶은 어두운 욕망과 아름다움을 더 탐하고 싶은 욕망.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며 양쪽을 곁눈질한다. 엄마가 한눈을 파는 사이 신기한 것들을 쫓아가다 길을 잃는 어린아이처럼 나도 눈앞에 펼쳐지는 욕망을 쫓으며 길을 잃으려는 찰라, 그는 손목에 찬 눈금을 가리킨다. 더 이상 내려가지 말라는 사인이다. 나는 고개를 있는 힘껏 저으며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해 강하게 내리 꽂는다. 좀 더 내려가 보고 싶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다. 


나의 휴가는 두 개의 욕망 사이를 오가며 모두 소비되었다. 이제 남은 건 새로운 바다를 꿈꾸는 일. 그게 무엇인지, 어떠한 모습일지는 나도 모른다.


7월29일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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