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통신] 성공하려면? 난 글렀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크버그의 미의회 청문회 참석 기사는 질의응답보다 그가 입고 있던 옷에 더 초점을 맞춘 듯했다. 매일 회색 티셔츠에 후드티, 청바지 차림이었던 그가 짙은 남색 양복에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나왔으니, 신선하기도 하고 예의를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옅은 회색 반팔 티셔츠 9벌과 짙은 회색 후드티 6벌이 걸려 있는 자신의 옷장 사진을 공개한 후 그의 패션이 더욱 화제가 되었는데, 사소한 일상의 선택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남성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선택을 늘 강요당하는 최고 경영자로서의 고뇌가 느껴지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들 중엔 한 가지 스타일 옷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하는데, 그 효시로 스티브 잡스를 꼽는다. 특별한 경험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일본 소니를 방문했던 그에게 제복을 입고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큰 감동을 주었고, 그것이 회사와 사원을 하나로 묶는 매개라고 판단했다. 그는 즉시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에게 애플의 유니폼용으로 100벌의 검정 터틀넥을 주문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그것들은 오로지 그만의 차지가 되어 죽을 때까지 입었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이곳은 대학을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교복을 입는다. 여학생들의 경우 거의 발목까지 오는 긴 주름 스커트에 흰색 블라우스, 그리고 카디건을 덧입는다. 색상만이 다를 뿐 대동소이하다. 머리는 빡빡 밀어야 한다. 여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푸석한 곱슬머리를 기르면 솜처럼 뭉치기에 가시 땋기를 하고 가발을 덧대어 멋을 낼 수도 있지만, 학생들에겐 금기인 것이다. 현지인의 말에 의하면, 현대통령 마구풀리는 치마의 길이가 짧으면 찢어 버리라고 했다니 그 분위기를 알만하지 않은가.

며칠 전, 마르티나 카얀다 수녀님이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는 ‘제임스 상구 여자 중학교’에 다녀왔다. 그곳은 베이지색이다. 그러나 주말이 되면 봄 향기 가득한 화사한 빛깔의 원피스로 갈아입는다. 일 학년은 꽃분홍색, 이 학년은 하늘색, 삼 학년은 바다색.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그 나이만이 누릴 수 있는 감성을 허락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예쁜 원피스를 입고 뽐낼 곳은 없다. 시내에서 약 11킬로미터 떨어진 시골 마을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도 있지만, 방학 외에는 학교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교칙 때문이다.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는 잔디밭에 삼삼오오 앉아 수다를 떠는 일.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무채색의, 멋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교복을 입었다. 남들이 보면 그게 그 옷이었을 텐데, 우리는 모양을 낸답시고 매일 다림질을 하고 새하얀 칼라로 바꿔달았다. 재킷은 최대한 몸의 곡선을 살려야 한다며 수선했고,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수 있는 학교 밖에서는 스커트 허리 다트를 접어 기장을 짧게 했다. 머리는 귓불이 보여야 하는 단발이었는데, 조금만 길어도 수시로 가위를 들고 나타나는 선생님에 의해 잘려 나갔다. 대범한 아이들은 휴일이 되면 가발을 쓰는 위험(?)도 감수했다. 가지 말라는 곳은 또 왜 그리 많았던지. 제과점이나 영화관도 출입금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금기를 어기면서 오는 쾌감을 우리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삼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던 나이였으니 말이다. 대학에 가면 뭐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이 공부를 하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이었던 시절이었다. 

민주주의가 정착되며,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교복이 개성을 말상 시킨다는 여론과 함께 한동안 자율화로 가나 싶더니, 다시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변신을 거듭하더니,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특별한 행사나 기념식이 있으면 화려한 색상과 패턴의 키텡게나 캉가라고 하는 천을 공동 구입해 옷을 맞춰 입는데, 디자인만은 개인의 취향이나 체형에 따라 각자가 선택한다. 아프리카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해, 나도 성당 교우들을 따라 원피스를 만들어 입어 본 적이 있다. 생각보다 디자인이 예쁘게 나와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은 한복을 입듯 입곤 했다. 외국인이 한복을 입고 있으면 신기하고 예뻐 보이는 것처럼, 그들도 내가 자기들의 전통의상을 입어 주는 것을 굉장히 기뻐하며, 아낌없는 칭찬을 해 준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러나 사실 나는 획일화 된 것들이 참 싫다. 조직에 속해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입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행사가 끝나면 누구보다 먼저 잽싸게 벗어던진다. 장시간 입고 있어야만 하는 때는 초반에 슬쩍 흉내만 내다, 더워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옆에 벗어 놓는 꼼수를 쓴다. 그래서 이렇게 떠도는 삶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인생이 지루하다는 느낌이 든다. 중요한 일에 참여할 만큼의 역량이 없으면서, 사소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조차 잔재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유목민의 생활 방식을 선택한 이상 최대한 단순화 시키며 사는 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이라도 자주 바꾸어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 그러나 이곳에서 쇼핑은 언감생심. 헤어스타일 역시 마찬가지. 어정쩡하게 인도 미용사가 잘라놓던 머리도 길러서, 땋는 것으로 해결하고부터는 더 변화가 없어졌다. 선택에서 오는 피로, 그것이 때론 그립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겐 작은 변화마저 삶의 원동력이 되는 까닭이다. 성공하지 못해서 일까? 그래서 성공하지 못한 걸까? 


2018.04.28


 탄자니아에서 소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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