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희망버스가 출발한다




 희망버스가 있었다. 2011년 6월, 이명박 시대라는 절망의 한복판에서 죽음으로 암흑을 가르던 희망의 신음소리 같은 몸부림이었다. 지독한 이기와 탐욕의 시대에 돈 시간 마음 다 주며 연대에 나선 시대적 의인들의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헬 법원은 7년의 긴 과정 끝에 사랑의 실천을 ‘유죄’로 확정했다. 한진 중공업 조선소로 들어간 것은 “목적이 정당”할 지라도 “불법적 수단의 사용”으로 부당하며, "교통방해를 직접 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시위참가자들과 공모해 교통을 방해한 것“으로 불법이라는 것이다.


  당시 동료이자 동지인 한진 중공업 김주익 노조 위원장이 목을 매 자결한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은 말했다.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동안 끝이 없는 싸움이 될 수 있겠고” 박창수 김주익을 이어 "내가 죽어야 싸움이 끝나”겠구나. 그때 그 죽음의 그늘을 거둬 준 것이 희망버스였다.  "309일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고립감'이었다. 희망버스를 통해 나는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됐다." 사람을 구한 것과 특별한 손괴도 없이 농성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행진을 한 것에 대해 대한민국 법은 유죄라 한다. 아이가 차도에 있어 이를 구하려 해도 도로에 무단 침입을 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라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차도에 나서면 불법이라는 경중완급도 사회적 책임도 인정도 사랑도 없는 법을 무조건 따르라는 헬조선의 헬 법원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3.1혁명과 4.19혁명으로 규정했다. 3.1은 반제 민족해방혁명이다. 새로운 나라는 자주와 평화로운 나라라는 선언이다. 봉건 왕조 신분제 사회로의 복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으로 나간다는 혁명이다. 4.19는 비록 5.16 군사쿠데타로 피를 흘렸지만 부정부패하고 독재적인 이승만 정권에 맞서 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실천한 혁명이다. 3.1혁명과 4.19 혁명, 모두가 당시 법률로는 불법이다. 하지만 누가 두 혁명을 두고 ‘목적은 정당하지만 수단이 불법으로 부당하다’고 할 것인가? 약자의 이른바 불법은 법이 보장되지 않는 곳, 법이라는 이름이 가진 자의 흉기가 되어 법이 불의가 된 곳에서 피는 민주주의의 본체다. 본시 법은 상식의 최소화이다 기성관념의 집약이라 극히 보수적인 관념체계다. 그래서 모든 역사적 진보와 발전은 법의 준수가 아니라 기존 법의 한계와 모순을 깨어 확장하는데서 나왔다. 실정법으로 가두거나 규정당하지 않는 곳에 내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있는 것이며, 그래서 기존 법과 정의가 충돌하면 정의의 입장에 서는 것이 옳은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원은 끝내 사람의 목숨보다 작업조차 멈춘 조선소 텅 빈 광장을 채운 누군가의 재산 소유권이 더 소중하다고 선언했다. 이것을 법비(法匪)라 한다. 


  악법도 법이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봉건시대 신민(臣民)의 논리다. 아니 봉건시대에도 폭압한 정권에 대한 저항이 인정됐다. 악법은 법이 아니라 악으로 보고 반드시 그것을 고쳐야 사회의 정의가 선다고 믿는 것이 민주공화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이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짓밟고 불의에 저항하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가 있다면 불(不)법이 아니라 반(反)법이라도 희망버스를 출발시키고 또 타야 한다. 빛이 환할수록 더 어두워지는 그늘이 우리의 눈길이 머물 곳이기에.. 


  전주에 택시 노동자 김재주가 있다. 전주시청 앞 20m 높이 조명탑에 오른 지 3월22일로 200일을 넘기고 몸서리쳐지는 날짜를 하나하나 늘리고 있다. 저 날짜의 숫자는 그저 숫자가 아니다. 사람이냐 야만이냐를 묻는 역사의 질문을 담은 숫자이고 무게다. 그는 전주시청과 택시사업주, 노조가 합의한 전액관리제를 전주시청이 이행하지 않자, 지난해 9월4일부터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흔히 우리는 택시가 이른바 사납금제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납금 제는 하루 일의 시공간적 변동성을 고려하지 않아 회사에게는 일정하고 고정적인 수입을 주지만 기사에게는 장시간 노동에 종종 자기 돈을 쳐 박아야 하는 살인적 노동조건을 만든다. 그래서 이미 1997년 사납금 제도가 불법화되었지만 전국의 법인택시 대부분은 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변경한 불법적 사납금 제를 고수하고 있고 지자체들은 이를 묵인하고 있다. 불법을 고수하기 위해 정부 지자체 사용자 그리고 이미 노동자의 권익대신 사용자와 결탁한 어용노조들의 강고한 야합이 있다. 특권과 반칙과 차별과 학대를 적폐의 가장 밑바닥 뿌리들의 결합니다. 그 결과 기사들은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면서 소정근로 시간은 4시간~ 6시간으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모든 교통수단 중 압도적으로 많은 교통사고율과 사망사고율에 시달리고 있다. 


  김재주씨는 이미 2016년 2월 전주 시로부터 ‘전액관리제를 2017년 1월부터 시행’한다는 지자체 차원의 노사정 협약의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토대인 더불어 민주당이 오래 집권 중인 전주에서조차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공중농성을 200일 넘게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 뿐 아니라 스스로 정한 법까지 20년 넘게 지키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 이유는 택시라는 현금 사업에 토호정치, 지자체의 무책임과 비리구조, 사용자의 탐욕과 어용노조의 패악이 고스란히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죽어나는 것은 직접 일하는 택시기사이며 노동자 서민이다. 이런 악폐 적폐를 깨기 위해 김재주 택시기사는 ‘가로 180㎝×세로 70㎝’ 조명탑 공간에 6개월이 넘게 박혀 있다. 


  다시 출발하는 희망버스는 불법 사납급 제라는 대못을 함께 빼자는 촛불 정신의 제대로 된 계승이다. 그리고 이번 희망버스는 목적은 물론 심지어 수단도 정당하다. 김재주 택시기사를 구하고 전국의 택시 노동자를 구하고 무엇보다 안전한 택시를 시민들에게 제공하자는 희망버스다. 함께 희망버스를 타, 보이는 적폐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밑바닥 적폐에 절망하여 신음하는 형제들의 목소리에 촛불의 힘을 싣자.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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