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단죄 있는 청산의 일보!



우리 구로공단은 남한현대사의 자궁(子宮)이다. 한국의 자랑(?)이라는 민주화, 산업화가 보수 진보의 다른 뿌리가 아니라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땀과 근육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구로공단의 역사를 밑으로부터 보면 70년대 원풍모방, 80년대 구로동맹파업과 박영진 열사, 그리고 90년대 혼돈을 거쳐 노예제도인 비정규파견제도에 맞선 현대판 스파르타쿠스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특히 기륭전자 투쟁은 구로공단 생산적 산업자본이 어떻게 부동산 투기자본이 되고 금융투기꾼들에 의해 난도질당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여성 비정규노동자들의 가혹한 인간적 소외, 물질적 소외의 현실을 뚝 쪼개 보여준다. 노무현 정권을 함락시킨 신자유주의 정책의 위력을 보여주고, 불법파견을 확인해도 해고가 당연하다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민낯도 확인시켜준다. 법과 정부권력이 외면한 곳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무서운 진실과 무수한 난관에도 절박하고 끈질긴 투쟁과 연대만이 승리의 길이라는 무거운 진리를 증거 한다. 군사독재의 절제를 모르는 칠흑 같은 자본의 착취 사회에서 인간해방의 빛줄기 한 올 되려 했던 전태일의 투혼은 박영진 -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빛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기륭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일터로 돌아갔다. 좋은 노예제도가 없듯이 좋은 비정규직은 없다고 비정규직차별 철폐라는 어정쩡한 차별인정의 요구를 비정규직 자체의 철폐로 돌려놨다. 2017년 10월 11일 기륭전자 회장 최동열의 법정구속은 성찰 없는 반인륜적 자본가들의 패악에 쇠고랑을 채운 셈이다.


“최동열이 근로기준법 위반(체불임금)으로 법정구속 되었다. 그간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기쁘다.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우리가 기륭으로 들어가든지 기륭이 망하든가 할 것이다. (돌아 간 일터에서 월급 한 푼 받지 못했는데) 합의 이후엔 최동열은 야반도주했다. 기업 사기꾼 최동열을 반드시 구속시키겠다고 말했고 그렇게 됐다. 이제 여한이 없다. 그동안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고 또 고맙다.” 유흥희 기륭전자 분회장의 말이다. 

기륭전자 투쟁을 곁에서 보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자본의 불법 사기 패악 질에 대한 무한한 관대함과 노동자 투쟁에 대한 무한한 사회적 폄하다. 이번 최동열 구속은 체불임금에 대한 형사적 책임이다. 하지만 정상적 사회였다면 최동열은 부동산 투기를 노린 공장부지 매각 개발, 중국공장 인수 과정의 의혹, 본사 사옥과 관련된 과정을 통해 확인된 배임 횡령으로 이미 감옥에 있어야 한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기륭전자가 불법파견인 것을 확인하고도 위장 도급을 강요했다. 많은 이들이 싸울 만큼 싸웠고, 법원 판결에도 졌으니 타협하자고 했다. 기륭전자 재무 담당 이사는 삼성의 초청으로 삼성 직원들을 대상으로 노조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로 간증 교육을 했다. 김소연 전분회장 금속노조로부터 월 500만원의 활동비를 받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의식화 조직화 하는 현대판 러드 장군(러다이트 기계 파괴운동이 상징으로 거론된 가상의 인물)이었다. 삼성은 무노조가 필요한 이유로 기륭을, 만약 노조가 필요하다면 바람직한 모습으로 현대자동차 이경훈 집행부를 예로 들었다. 기륭노동자들은 최악의 적의 비난은 최선의 칭찬이라 믿었다. 


최동열은 전 분회장의 대선 후보 출마도 욕을 했다. 분회가 순수한(?) 노조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불온한 노동운동가들의 음모의 증거로 믿었다. 헬조선 대한민국 자체가 개념 없는 괴물의 나라지만 특히 노조에 대한 생각은 유난히 심하다. 정규직이 연대를 말하면 정치적이라며 불온하다고 비난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말하면 이기주의라 욕한다. 노조가 정치 사회적 발언을 하면 사회불안 범죄라 여기며 노사화합의 기수로 제 코만 닦는 것도 아니고 회사의 가려운 곳만 긁어야 노조라 여긴다. 그러니 여성 고졸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선후보로 출마한다니 이 얼마나 가당찮단 말인가? 돈 백 인맥 권력 유명세도 없는 비정규직 후보를 위해 십시일반 정신? 돈 받는 것이 아니라 돈 몸 시간을 내는 선거운동? 이 무슨 웃긴 개소리란 말인가? 

모든 사용자들은 노조가 만들어지면 배후를 찾는다. (더 큰 비극은 이런 오염된 현장 민중 무시 시각에 아타가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노동자들을 꼭두각시로 여긴다. 시키는 대로 하는 존재다. 그러니 언제나 상급이 있어 지휘를 받아야 하는 존재, 배후가 있어 조종을 받아야 하는 괴뢰들이다. 그런 존재가 스스로 주인이 된다니 터무니없다는 편견이 상식이 된 것이 대한민국이 내장(內藏)한 최악의 적폐다. 


괴물의 세상이 된 이유 중 큰 몫이 ‘역사적 범죄에 대한 단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죄가 없으니 청산되지 않은 식민과 독재와 부패의 후예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근혜의 부끄러운 패악에 대한 최소한의 단죄도 정치보복이라는 작금의 현실은 이 역사적 비극을 잘 보여 준다. 최동열의 구속은 더러운 지배 구조에 대한 투쟁이었다. 이해관계의 조정이전에 옳고 그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 개인의 처지와 조건에 밀린 좋은 게 좋은 해결이 아니라 공동체적 정의가 있어야 한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신영복 선생은 “청산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것이다. 단죄 없는 용서와 책임 없는 사죄는 '은폐의 합의'다. 책임짐으로써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청산이”라 했다. 최동열 구속의 의의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법정에 제출한 탄원서에 잘 나타난다. “우리가 탄원을 하는 이유는 단지 임금지급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수단화 도구화 일회용화 하는 반인간적 범죄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현재 최동열은 어떤 반성도 죄의식도 없다. 기회가 되면 이런 (범죄와) 고통을 반복하겠다는 파렴치한 모습이다.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없는 사회적 부적응자, 최동열이 대표하는 (돈과 권력은) 우리 사회 비인간적인 적폐의 근본 뿌리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땀을 돌려받는 것의 당연 당당함과 반인간적 패륜적 범죄에 대한 엄벌을 내려달라는 것이다.” 진정한 적폐청산의 기본은 ‘웃으며 은폐하고 평화롭게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단죄를 통해 반복을 제거하는 것이다. 적폐청산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기륭전자 투쟁의 결실인 최동열의 구속이 반가운 이유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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