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간 사회적경제

금천구사회적경제특구, ‘학교에 사회적경제를 더하다’ 



 벌써 10월 중순이다. 올 한해 금천구에서 가장 분주했던 곳 중 하나가 금천구사회적경제특구추진단(이하 추진단)이다. 금천구사회적경제특구 사업 ‘학교에 사회적경제를 더하다’가 올해 봄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특구사업은 2016년 6개월의 간의 예비특구 기간을 거쳐 지난 2월 서울시로부터 본 사업으로 선정돼 오는 2019년까지 3년의 계획으로 진행된다.  지역문제를 사회적경제를 통해 풀어보자는 취지 아래 서울시가 지원하는 의미있는 시도이다. 노원구, 광진구 등 몇몇 지자체에서 노인문제, 재활용 문제 등을 이 사회적경제특구사업으로 진행해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금천구는 ‘학교’ 즉 교육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보기로 했다. 학생들을 점수 경쟁으로 내몰지 않고, 학교가 말 그대로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일인만큼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학교에 사회적경제라니?” “공부하기도 바쁜 아이들에게 경제는 무슨~”, “과연 사회적경제가 학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라는 숱한 의문과 우려가 있었지만 이를 딛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열어가고 있다. 실제로 특구사업이 진행된 지난 8개월은 그 같은 의문과 의심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저도 정확한 답이 뭔지 몰라요. 다만 우리 학생들이 좋은 대학가기 위해 공부하고 경쟁하는 것 외에 다 함께 잘 살아가는데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회적 가치’를 배울 수 있길 바라는 거죠. 그것을 위해 지역과 학교가 어떻게 협력하고 변화해 나가느냐, 하는 거예요. 이것만 생각하고 일단 가보는 거죠. 그러기 위해 어떻게 하느냐, 뭐가 해답인지는 길을 가면서 찾아야죠” 

 

 올 초 추진단의 조정옥 사무국장이 ‘사회적 경제를 어떻게 학교에 더할 것이냐’라는 물음에 대해 지나가듯 한 말이다. 사회적경제가 정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본’이 아닌 ‘인간’을 중심에 두는 사회적경제의 가치를 직접 경험토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그것만 믿고  ‘일단 가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난 7개월 동안 금천구사회적경제특구사업은 금천구의 초.중.고등학교에 다양한 형태로 스며들었다.


‘학교에 사회적경제 지도 그려넣기’     먹거리, 교육, 교복 3개 사업 추진 

 

  금천구사회적경제특구 사업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교육, 먹거리, 의복’ 으로 분야별 추진계획을 수립했다. 관내 34개 학교들을 일일이 다니며 설문조사를 통해 학생, 학부모, 학교측의 요구를 충분히 파악 후 선정한 사업들이다. 

 초등학생의 경우 먹거리와 돌봄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면, 중고등학교에서는 자유학기제와 진로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비중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요구가 절실했다. 이같은 요구를 지역의 사회적경제기업과 풀어보고자 했다. 

 교육사업은 다양한 형태로 학교에서 진행됐다. 한울중학교는 진로특강 프로그램으로 사회적경제를 선택했다. 문성초등학교는 6학년들에게 검도 프로그램을 이용한 인성교육과 사회적경제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문일중학교는 자유학기제 수업과 진로체험 등의 활동에 사회적경제 교육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했다. 동일여상의 경우 사회적경제 동아리에서 8주간에 걸친 사회적경제 교육을 진행, 사회문제해결 프로젝트를 추진해보기도 했다.

  교육사업과 더불어 특구사업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건강한 먹거리 지원 사업이다. 청소년들에게 양질의 먹거리를 공급하고 올바른 식생활 습관을 심어주고자 하는 사업이다. 금천구는 서울시에서도 차상위 계층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이다. 그렇다보니 아침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먹거리 지원사업은 이 학생들이 믿을 수 있는 안전한 식재료로 만든 먹거리로 규칙적인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고자 추진한 사업으로 학생 ‘돌봄’의 한 영역이다. 

  지역의 식자재 유통업체 사회적기업 [이그린]이 믿을 수 있는 재료를 공급하고 [금천지역자활센터]에서 식단을 만들고 조리해 매일 아침 8시 학생들에게 배달한다. 관내 6개 학교가 조식과 돌봄급식을 해결하고 있다. 덕분에 급식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 아동들이 안전하고 영양이 갖춰진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조식사업과 더불어 진행되는 식생활 교육은 [금천한우물아이쿱생협]이 책임지고 있다. 한울중학교와 금천초등학교 등이 먹거리 교육에 참여했다. 

 먹거리 지원사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학생참여 사업이다. 간식 만들기 프로젝트. 학생들이 직접 자신들이 먹는 간식 메뉴를 개발해보는 프로젝트다. 이미 예비특구 사업을 진행할 때 동일여상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사업. 당시 김밥 메뉴를 개발해 30여만원의 수익금을 내 지역에 환원하기도 했다. 이번 특구사업으로 진행된 간식 만들기 프로젝트는 [삼각김밥 좋아해?]. 12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총 6회에 걸쳐 진행된 프로그램에서 시장조사, 메뉴선정, 개발, 평가와 홍보  전과정을 진행했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간식은 ‘육ㆍ해ㆍ공 컵밥’과 ‘오므라이스 삼각 김밥’. 학생들의 먹거리에 대한 이해를 돕고 적성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한 메뉴는 사회적기업 이그린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판매, 수익금은 지역에 환원된다. 

 의복 사업은 교복 재사용과 재활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사업은 특구를 준비할 때부터 가장 오랫동안 고민해온 사업이다. 높은 부담을 주는 교복비를 사회적경제를 통해 해결할 방법을 찾는데 많은 고민이 있었다. 여전히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에 있지만 우선 교복 재사용 현황을 파악하고  독산고등학교와 교복 회수율과 순환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사제 프로그램,학생들의 반응은?


지난 9월 15일 한울중학교의 사회적경제 진로 특강프로그램을 찾았다. 향후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어떻게 학교와 함께할 지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교육나눔협동조합], 뮤지컬 등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기업 [하늘에], 마을기업 [민들레워커협동조합] 등  총 9개 사회적경제 기업으로 진로특강 프로그램을 채웠다. 

 기존의 특강프로그램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와 색깔의 진로 프로그램에 학생들 반응도 다양했다.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져보는 사회적기업 문화예술교육협회의 프로그램은 2시간의 긴 시간에도 학생들의 집중도는 높았다. 수업에 별 기대없이 참여했다는 2학년 정하은 학생은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미래의 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밝혀면서 지금의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공정무역과 사회적경제]에 참여한 3학년 김시연 학생은 이 수업이 공정무역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직접 공정무역 생산자 체험을 해보면서 그동안 막연하게만 알던 공정무역을 좀더 이해하게 됐어요. 사실 커서 공정무역 관련해 일해볼 생각을 했는데, 미리 체험하고 알 수있어 좋았어요. 보람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사회적경제연구 모임’을 통한 지속가능한 교육콘텐츠 발굴 


짧은 시간이지만 사업은 학교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같은 배경 뒤에는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협업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경제 연구모임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최근 교육계에서는 자유학기제와 진로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비중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절실했다. 학생들에게 진로를 탐색할 시간을 갖게 한다는 취지로 진로체험과 자유학기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다양한 교육콘텐츠도 부족한 상황. 

  더구나 특구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경우 사회적경제라는 테두리 안에 있지만 기업마다 분야가 다르고 역량도 천차만별이다보니 학생들에게 체계적이고 일관성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학교가 요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사회적경제를 이해하고 소개하는 동시에 개별 업체들의 프로그램이 녹아들 수 있는 체계적인 커리큐럼 개발이 필요했다.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이 모여 머릴 맞대고 연구해보자는 게 모임의 취지다.


  연구모임에서 개발해낸 콘텐츠는 9개 과정으로 된 공통프로그램. 

  사회적경제에 대한 소개부터 사회적경제가 추구하는 협동, 존중, 공동체, 배려 등의 가치를 기업 특색에 맞게 요리, 목공예, 검도 등 영역별로 접목시켰다.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을 기업들이 연대와 협업으로 만들어낸 성과다. 

  연구모임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토대로 학교들이 보다 쉽게 사회적경제 교육프로그램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회적경제 학교 사용설명서]를 제작해 관내 34개 학교에 배부했다. 사회적경제에 대해 관심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학교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연구모임을 통해 짜여진 프로그램은 학교 측에도 높은 신뢰감을 주었다. 덕분에 사회적경제 교육을 의뢰하는 학교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조정옥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기업) 혼자서는 약하고 설득력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협동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면 학교에 훨씬 큰 설득력을 가집니다. 프로그램의 체계도 잡히고요.

또한 학교에 설득력이 있으려면 학교에서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이 프로그램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 거죠. ”


  기업들이 협력해 만든 사회적경제 연구모임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이 모임은 앞으로도 계속 학교의 요구에 맞게 프로그램을 개발 보완하는 역할을 해나갈 예정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앞으로 교사의 참여도 유도할 계획이다.

 지속가능한 사회적경제 학교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콘텐츠의 개발이 필수다. 연구모임이 앞으로도 계속돼야하는 이유다. 모임 덕분에 기업들 간의 네트워크도 더욱 단단해졌다. 연구모임이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협업은 새로운 아이디어도 주었다. 연구모임을 통해 두 개 이상의 기업들이 연계한 콜라보 프로그램도 개발해볼 계획이다. 가령 마을 역사를 배우는 프로그램이라면 역사교육 관련 기업과 VR(가상현실)관련 기업이 연계해 학생들이 마을 역사를 듣고 가상현실을 통해 그 당시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든가 하는 것이다. 특구사업을 통해 금천구 사회적경제 생태계도 한단계 성숙해질 것 같다.


‘더디가도 과정이 중요하다’ 

 -지역이 함께 하는 민관학 거버넌스 구축


  사회적경제연구모임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와 사회적기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지역과 학교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추진단의 민관학운영위원회다. 말그대로 학교와 지자체, 지역전문가와 사회적경제 기업으로 구성된 운영회다. 

  운영위는 특구사업의 모든 안건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기관으로 특구사업추진단이 처음부터 강력하게 주장해온 운영원칙이기도 하다. 사회적경제를 통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특구사업의 목적만큼 지역의 동의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더디가더라도 민주적 절차를 거쳐가는 과정 역시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추진단이 그동안 큰 잡음없이 사업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데는 이같은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결국 일이든 사업이든 사람과 관계 맺기... 사회적경제도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 


  이제 연말 사회적경제 시범학교를 선정하면 1년차 사업도 대략 마무리된다. 

  올 한해 추진단의 목표는 ‘학교와 관계 맺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성과가 있었던 한 해였다는 게 추진단의 자평이다. 내년에는 단단해진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시범학교에 집중적인 사업이 이뤄질 것이다. 그 속에서 사회적경제의 자립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특구의 목표다. 

 이 특구사업을 기획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여해 온 추진단의 조정옥 사무국장은 사회적경제를 한마디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존중하는 사회적 공기가 흐르는 것” 이라고 말했다.

 “지난 한해 좀 더 많은 기업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워요.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희망을 더 키웠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가장 큽니다”라며 소회도 덧붙였다. 


  하지만 올해 초 사업을 앞두고 ‘일단 가보는 것’이라고 말한 추진단의 ‘무대뽀’ 정신이 아무 데서나 통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 금천구사회적경제 생태계 안에서 사회적경제 주체들과  다져온 신뢰와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한해는 기업의 숨은 역량들이 특구 사업을 통해 확인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연말 사회적경제 시범학교가 정해지고 내년 한층 업그레이드된 교육프로그램들이 가동되면 학교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사회적경제 기업들은 또 어떤 역량을 발휘할 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박금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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