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의 탄자니아 통신-36

꿈을 서포트하는 추장님



외국에서 혼자 보내는 명절이 특별할 것은 없다. 늘 그렇듯이 토스트 한쪽과 계란 후라이,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하고, 지인들과 메시지로 새해 덕담을 주고받던 중, ‘해피 설날, 저는 평창에 있느라 가족과 못 있네요,’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탄자니아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김태균님이시다. 

내가 그를 이렇게 부르는 것은 첫 만남을 교장선생님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개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와 맺어진 관계의 유형에 따라 그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느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는 건 대충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새 평창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던 그가 한가하게 올림픽 구경을 위해 그곳에 갔을 리는 만무한데 하며 갸웃거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케냐올림픽위원회 아시아총괄 홍보관’으로 위촉 받아 스태프들을 측면 지원하기 위해 그곳에 있다는 메시지가 떴다. 그제서야 며칠 전 읽었던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늘 표범무늬 선수 복을 입어서 ‘눈표범 소녀’라는 멋진 별명을 갖고 있는, 스키 선수 사브리나 완자쿠 시마더의 이야기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에 살며 스키광인 새아버지에게 어릴 때부터 스키를 배웠고,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지만 참가비를 마련할 수 없어 출전을 포기해야 할 처지였다. 그런데 때마침 이웃 나라 탄자니아에서 사회적 기업 ‘나우 리미티드’를 운영하던 김태균 대표가 그녀의 사연을 접하고, 그녀를 도울 방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 했고, 동아프리카에 진출해 있던 하나카드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적도 부근의 나라에서 무슨 동계 올림픽이야? 하는 시선이었던 반면, 그는 눈을 보기 힘든 아프리카에서 겨울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자체가 귀한 일이라 생각했다니 그 역발상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 하나카드 역시 본사에서 마케팅 본부장까지 보내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니 고마운 일이다. 선한 의도가 기업 이미지를 드높이며 윈윈하는 결과가 되었고 민간 외교관 역할까지 톡톡히 한 셈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작년 여름 다르에스살람에서였다. 한글학교에 대한 관심이 그를 만나게 했다. 한국국제학교와 한글학교에서 일한 경험 때문에 새로운 나라를 방문하면 기회를 만들어 찾아보는 것이 재미이기도 했지만, 학교를 운영해 보는 꿈이 있기에 현지학교 뿐 아니라 한글학교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탓이다. 그 날도 출장 스케줄이 잡혀 있었을 뿐더러 탄자니아에 자리 잡기 위해 오신 선교사님을 도와주시느라 짬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곧 음베야로 돌아와야 하는 나를 위해 차 한 잔의 여유를 내준 것이었다. 

그는 키가 크고 늘씬해 양복이 잘 어울리는 멋쟁이로 교장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잘나가는 사업가 같은 첫인상이었다. 그가 건넨 명함은 나우리미티드 대표. 한글학교는 정규 학교가 아니므로 선생님들의 직업이 따로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순간 어찌된 영문이냐는 표정을 지었나보다. 그는 노트북부터 펼쳤다. 그곳에는 자신이 맡은 직함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족히 열 개는 되어 보였다. 혹자는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는 자신에게 숨겨진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하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은 오늘 하루의 호흡이 즐거울 뿐이란다. 그리고 멀리는 못가도 물러날 생각은 없단다.  

돌아오는 길에 그의 집에 잠시 들렀는데,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파트로 내부는 손수 디자인했다는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 감각이 예사롭지가 않다. 그중 유난히 나의 주의를 끄는 물건이 있었는데, 동물의 털을 붙여 만든 봉이었다. 아무리 봐도 먼지떨이 같은데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자신이 추장작위를 받았기 때문에 갖게 되었고 추장을 상징하는 물건이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했기에 작위까지 받을 수 있었던 거냐고, 그 비결 좀 가르쳐 달라고, 나도 좀 받아보고 싶다 했더니 피식 웃고 만다.

그의 다양한 일 중 가장 멋진 것은 학교에 도서관을 지어주는 일이었다. 아프리카에 올 때부터 꾼 꿈이었지만 재정적인 문제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데, ODA에 참여하며 ‘탄자니아 작은 도서관 프로젝트’를 만나게 된 것이라 했다. 한글학교를 방문했을 때 도서관도 찾아보고 싶었으나 학교가 방학이어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본 도서관은 너무나 세련되고 예뻤다. 이곳에도 저런 인테리어 소품들이 있었냐고 감탄했더니,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정말 보람 있었겠다며 부러워하는 내게,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진행과정에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서 전해져 오던 감동을 피부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사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 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그와 함께 이곳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참 일을 잘 찾고 행동으로 옮겨 결과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2018.02.27

 탄자니아에서 소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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