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사람들-아홉번째 이야기


Chief Executive Officer(최고 경영자)의 준말이 CEO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영행위를 통해 주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문 경영인이 본디 뜻이다. 언제부턴가 이 말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급기야는 선거 구호까지 되었다. CEO 대통령, CEO 총장,  CEO 지자체장, 심지어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에도 CEO 교육감이 붙었다. 다른 눈으로 보면 CEO라는 이름은 구조조정, 정리해고, 비정규직, 아웃소싱 등의 살기 띤 말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CEO의 특징은 무엇일까? 우선 주주에 고용된 자다. 누군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생산적, 투자적 의지와 능력이 저하되자 그 자리에 마름을 내세운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지주보다 마름이 더욱 잔인하게 소작을 쥐어짰듯이 노동자들을 쥐어짠다. 대주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경영을 하다 보니 장기적 인간적 안목을 상실하고 단기적 투기적 노동자 배제적 경영만 득세한다. 그 모습을 보자.

첫째는 유성기업 사태를 통해 CEO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잠시 어려움을 피하는 수단으로 본다. 선거 때의 공약과 당선 후의 정책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무수한 언급과 공약의 무차별한 변경도 그가 CEO 출신이라는 습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유성기업 사태에서 자본가들이 노사가 3년 전에 함께 서명한 단협을 뒤집고 오히려 자동차 테러를 하는데도 정부는 노조만 탄압한다. 그러니 CEO들은 마음 놓고 약속을 어긴다. CEO 말 속에 믿음, 신뢰라는 덕성 자체가 결여됐는데 그 원인은 한국의 돈과 권력이 가진 천민적 특징때문이다.

둘째는 공적(公的) 과정을 부차(副次)화 하고 사적(私的)이고 비공식적 과정을 중시한다. 그리고 사적 비공식적 과정에서 특유의 향락과 은밀한 거래가 제공된다. 알고 보면 비즈니스 능력은 상대방을 어떻게 향락과 은밀한 거래로 포획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포획되면 성공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은밀한 비밀을 간직한 공범 의식을 심는다. 최근에 북경에서 남북이 은밀히 만났고 거기서 돈봉투가 건네졌다는 것은 이명박 정권이 얼마나 남한형 비즈니스 남한 형 CEO 습성이 깊이 중독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일례이다.

셋째는 태도의 이중성이다. 강자와 바이어에게는 굽신, 약자나 내부 인사들에게는 군림(君臨)의 습성이 그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 나도 해봐서 아는데”라는 어법에는 국민을 부하직원쯤으로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다. 특히 한국의 CEO는 약자에게는 제왕적 모습이 두드러진다. 이들에게 상대방이 존중의 대상이라는 의식은 없다. 그래서 협상도 항상 ‘네가 먼저 무엇을 하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전형적이다. 북이 핵을 포기하면 무엇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핵의 포기가 전제가 아니라 결론이 되어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은 쳐다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당연시 되는 것은 그들이 CEO 경험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파업을 대화로 보지 않고 파업을 풀면 대화를 한다는 본말 전도의 태도 말이다.

최근에 서울대 총장이 농성 중인 학생들에게 한 말도 이 땅 상층이 얼마나 한국형  CEO 증후군에 중독됐는지를 보여 준다. “총장실 점거 농성을 중단하면 대화하겠다.”는 말이 그렇다. 점거농성 자체는 그동안 얼마나 소통을 안 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그래서 항의도 하고 집회도 하고 시위도 했고 드디어 점거에 돌입했다. 그런데 농성을 풀면 대화한다는 것은 점거 자체가 가장 강력한 대화의 요구요, 사회적 대화 상태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원인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상식을 뒤집는다. 학자 출신인 대학 총장조차 얼마나 깊숙이 한국형 CEO 증후군에 전염되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라는 그럴듯한 말에는 최소 비용의 대상이 궁극적으로 ‘사람’이란 사실이 감춰져 있다. 최적의 비용으로 최적의 효과를 보고 일하는 사람이 존중되는 경제가 CEO들의 보편적 인식이 되길 기대한다. 그것이 잘못된 돈 중심의 돈(狂) 세상을 치유하는 길이다.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무료노동상담문의 02-859-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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