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사람들 -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사라지는 세상
마을신문 기자들의 기사 내용 검토가 열렬하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에 대한 공사(公私)의 책임소재에 대해 논의 중이다. 그 논의를 귀 등으로 듣다가 문득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미국에서 있었던 장면이다. 불타는 집을 보며 집주인이 발을 동동 구른다. 그리고 끝내 집은 불타 무너졌고,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애완동물 5마리가 불에 타 죽었다. 문제는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와 소방관은 옆에서 '강 건너 불 보듯' 구경만 하고 있었다.
소방관은 왜 불을 끄지 않았을까? 그것은 집 주인이 소방서에 세금 75달러(약 8만원)를 내지 않아서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소방관이 한 일은 불이 나 애가 타는 집주인에게 "당신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통보와 함께 불을 끄는 대신 불길이 세금을 낸 다른 집에 옮아붙지 않도록 물을 뿌렸다. 집주인은 "지금 당장 돈을 내겠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우선 시비를 가리는 것보다 당장 불을 먼저 끄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랜 날 우리들의 윤리적 기준인 측은지심에 대한 동의다.
아무리 흉악한 놈이라도 아이가 우물가에 있으면 노파심이 발동되어 ‘어어~~’하는 그 마음 말이다. 낮고 약하고 못난이들에 대한 연민이 측은지심이다.
이것이 없으면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다고 맹자님은 말했다.
미국에서도 사회적 논란이 됐다. 하지만 미국답게(?) 소방관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특히 법과 질서를 부르짖는 보수 논객들은 공공연하게 "그 집이 불타게 내버려 둬라!"외쳤다. "집이 불탄 건 안타깝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공동체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소방관이 세금 안 낸 사람의 집의 불을 끄면 그동안 75달러(약 8만원) 성실하게 내 왔던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고, 결국 모두 세금을 내지 않아 공동체에 해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심지어 "이웃의 세금을 빼앗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노라고 해도 물에 빠진 사람을 먼저 건너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말이다. 미국 사회의 논리는 75달러 때문에 생 자체가 재가 된 집주인의 마음을 제거한다.
그와 동시에 인간다움이 삭제된다. 마을 신문에서 말하는 불법(?)으로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것은 버린 사람을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지 않는 모든 이웃을 범죄자로 보고 응징하는 것이다.
불법을 다른 사람도 따라 할 것이라는 기우를 앞세우기 전에 먼저 치울 것은 치우고 대책을 공동체적으로 마련해 나가는 것이 옳다.
그래서 ‘돈, 법, 질서’라는 사람을 위한 수단들이 오히려 사람을 수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을 선함에 대한 믿음은 포기하고 탐욕과 이기주의를 전제로 한 불신과 모든 이에 대한 무차별한 응징만 키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다.
프랑스의 대학자 시몬드베이유는 말했다. “우리 앞에 총을 들고 서 있는 정면의 적만이 진정한 적이 아니다. 우리의 행복을 축원한다면서 우리를 수단으로밖에 보지 않는 자는 모두 우리의 진짜 적이다.”
빈부격차가 단군 이래 최고이고, 전월세가 하늘처럼 솟는 지금이야 말로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하는 행정, 공공의 서비스가 군림이 아니라 더 약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이자 의무임을 아는 따뜻한 행정이 필요하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상담문의 859-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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