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의 일방적 ‘나가라’ 기댈 곳 없어
판매점 넘어 동네 사랑방 역할 해온 공간 사라져

 

 

설 명절의 설레임이 있어야 할 1월23일, 시흥5동의 골목슈퍼는 마지막 영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가게는 많은 물건을 빼내 썰렁한 모습이었지만 이웃 주민들이 삼삼오오  주인과 함께 하고 있었다. 한 젊은 엄마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지만 슈퍼가 문을 닫는다는 소리에 찾아와 인사를 나눴다. 
명절을 앞두고 가게를 정리하게 된 이유는 집주인의 ‘나가라’한마디였다. 그렇게 33년간 한자리에서 운영해왔던 조정은 씨는(가명. 66세) 작은 슈퍼를 정리해 갔다. 이 슈퍼는 1986년 부부가 함께 일군 삶터이자 일터였으며  7년전에 여윈 남편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있다. 개업을 하는 날 떡을 9말반이나 만들어 인사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 가게가 어쩌다 설 명절을 앞두고 나가게 됐을까? 2019년 5월경 한 대기업에서 편의점으로 바꿔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나이도 많고, 앞으로 5년 정도 만 하고 정리할 생각이었기에 거절했다. 그랬더니 6월말에 3천 만원을 줄테니 넘기라는 제안을 했지만 다시 거절했다.  그런데 갑자기 7월부터 주인이 이상한 요구를 했다. 7월초 구두로만 수정해왔던  임대계약서를 수정하고 지난 계약서를 가져가더니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마당청소를 왜 안하느냐 소리를 지르더니 뒷방을 빼라고 요구하고 급기야 죽은 남편까지 욕하면서 슈퍼를 뺄 것을 요구했다. 


조 씨는 집세를 올려달라면 올려주겠다, 올려줄테니 3년만 더 하자고 제안했지만 거부당했고 10월부터는 내용증명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정부의 나들가게 지원을 받아 수리를 한 부분이 있어 4월까지는 유지해야 된다고 부탁했지만 그것마저 거절당했다. 법률에 의지해보려 했지만 30년 이상 해왔고 계약기간도 마무리가 되는 상황에서 방법은 없었다. 
조 씨는 “나가라고 하니까 나가야겠지만, 밑도 끝도 없이 일방적으로 와서 소리 지르면서 삿대질 하고 나가라고 하니 그게 억울하다. 집주인에게 당한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다. 내가 잘못해서 나가면 당연하겠지만, 그건 아니지 않나?”고 하소연했다.
이 골목슈퍼는 단순한 골목가게 이상이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12시까지 문을 연 이곳은 골목의 사랑방이었으며, 이웃지킴이였고, 아이돌보미였다. 복날이면 국수를 삶아 이웃 간에 나눠먹고, 아이들을 돌봐주고, 낮에는 밖에 나와 한담을 나누는 사랑방으로 서로가 함께 지탱해 온 공간이었다. 
조 씨는 “이곳은 니 것 내 것 없이 나눠먹었다. IMF시절 여기는 그나마 덜 힘들었다. 서로 나눠먹고 함께 먹었다. 여기 오면 다 준다. 진짜 이런 분위기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15년 간 인근에 살던 한 엄마는 “아줌마가 아이들이 지나면 그냥 보내지 않았다. 뭐하나라도 들려 보내주고 먹여줬다. 이렇게 슈퍼가 사라진다니 가슴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가게를 함께 지켜주던 주민은 “여기는 이웃들이 이야기하고 만나는 자리였는데 없어진다니 너무나 서운하다. 여기 동네아줌마들이 다 서운해 한다. 남의 집에 매일 놀러갈 수 없는데 이 슈퍼는 주인이 좋을 뿐만 아니라 함께 놀고 머물기에 부담이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조 씨는 오히려 이웃들 덕에 살았다고 고마워했다. 특히 사별한 아저씨가 닦아놓은 덕으로 지금까지 살았다고 이야기했다. “이웃의 도움을 받고 지금까지 살았다고 봐도 된다. 옆에 어르신들이 진짜 많이 도와줬다.  여기서 식사 할 때도 밥만 해놓으면 어르신들이 이것저것 다 갖다줘 함께 먹었다.”고 고마워했다.
그리고 조 씨는 자신과 같은 억울함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정부에서 수십억을 풀어서 영세업자 살린다고 하는데 이렇게 피해를 당하다보니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당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나처럼 피해가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편의점도 다 기업이다. 정부에서 영세업자를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대기업에서 치고 들어오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피해를 보더라도 정부에서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돼야한다.”고 당부했다.  
시흥5동의 골목을 33년간 자리를 지켜온 슈퍼는 이렇게 사라졌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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