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는 생활체험기-2

  선물(증여)경제의 관계창출론


정월 대보름날 새벽, 잠에서 깨어 주위를 둘러보면 아버지는 김에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리고 계셨다. ‘오늘 아침엔 구운 김에 오곡밥을 싸먹고 나물들을 먹겠구나’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다.  바스락 김바르는 소리,  들기름에 나물 볶는 냄새,  아홉 번 밥 먹고 아홉 가지 나물을 먹는다는 이야기. 귀밝기술, 더위팔기 등이 그립다. 아홉 번을 밥을 먹으려면 동네의 여러 집을 돌아야 그 아홉 번을 채울 수 있다. 어머니 어렸을 적에는 남의 집에 들러 아홉 번 밥먹기를 채웠을지 몰라도 나 어렸을 적에는 밥 먹기 아홉 번까지는 어려웠고 친구 서너 집 정도 찾아가서 오곡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지금에는 오곡밥 아홉 번은 먹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집에서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을 다해서 먹는 집도 드물 것이다. 

  보름날 전날 저녁 아홉 가지는 어렵고 네 가지 나물을 했다. 무조림, 콩나물무침, 고사리나물과 이름 모를 나물 한 가지. 이름 모를 나물은 내 이웃이, 자기 다니는 직장에서 전국 팔도사람들 모이는 전국총회에서 충청도사람한테서 받았다는 나물이었다. 마른 나물이 차곡차곡 채워진 양파망 한 망을 나에게 던져준 지가 작년 초겨울이었던가. 이 이름 모를 나물을 볶아놓으니 부드럽기 그지없고 식감도 매우 좋아 나물담은 접시가 비워지는 게 아까울 정도로 맛있었다. 

세 가지 나물을 덜어 담고 팥 삶고 강낭콩, 밤콩 삶아 찹쌀 반 되씩 담아 놓고 가져가라고, 가져가라고 애원해도 다들 바빠서 못 오는 정월대보름 이브. 이러니 밥 아홉 번은 고사하고 한 번도 못 얻어먹을 사람들 쯧,쯧,쯧.  

할 수 없이 대보름날 아침에 일어나 솥적은 솥에 오곡밥 두 솥하여 나물과 함께 두 집에 직접 갖다 줬다. 한 집에서는 “정월보름날 오곡밥과 나물도 먹어보네” 하면서 답례로 구운 김 10봉지를 줬다. 구운 김 10봉지를 들고 오다가 골목입구 미장원집에 들러 1봉지 주고 4봉지는 한 지인에게 줬다. 공짜로 얻은 것들은 원래 내 것이 아니기에 다시 여러 사람과 나눠야한다. 


오곡밥에 넣은 팥이며 강낭콩, 밤콩, 찹쌀은 우리 어머니께서 주신 선물이다. 어머니 또한 팥은 지인에게 찹쌀은 이모에게 받은 것이라고 한다. 선물은 이렇게 피라미드처럼 퍼지고 꼬리를 물고 연결된다. 선물 식재료는 노동력이 첨가되어 더 감동적인 선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한 집에 주면 세 집이 나눠먹고 답례가 오가고 그 답례가 여러 집을 거치게 된다. 



  화폐의 순환은 신용창출로 통화량이 증가하지만 선물(증여)의 순환은 사람관계와 믿음이 창출된다. 선물(증여)이 전달되는 모든 경로를 알게 되면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공동체에 기여할 것을 스스로 찾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선물(증여)가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기반으로 유통되기 때문이다. 선물경제의 관계창출론이라고 할까.  화폐는 시간이 가면 이자가 붙지만 선물은 시간이 가면 곰팡이가 붙을 수 있다.  유효기간 내 써야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빨리 넘겨야 하는 것도 있다. 선물은 화폐보다 더 빨리 순환되기도 하고 결국 노화되고 소멸하게 된다. 순환되고 소멸된 자리에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남게 된다. 

  얼마 전부터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기 생활체험기를 쓰고 있다면서 동네방네 나팔을 불고 다녔다. 여러 사람들이 트렘폴린, 전자렌지, 딸의 옷을 줄 수 있다고 알려왔다. 나는 다시 동네사람 만나는 자리마다 “전자렌지 안 필요해?  트렘폴린도 있는데. 누가 동글이청소기와 작은청소기 바꾸고 싶다는데 그럴 맘 있어? 안 쓰는 거 사람들한테 줄 만한 거 없어?” 라고 묻는다. 이렇게 해서 시흥동 벽산아파트 사람하고 우방아파트 사람에게 서로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트렘폴린을 증여케 했다.


독산3동 녹색장터 운영회의 때 회의참여자들 간에 하프바이올린 증여약속이 이뤄지기도 했다. 증여로 모르는 사람들 간에 사적인 관계가 생겼다. 또 그냥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도 하프바이올린을 주고받아서 친밀한 사적관계가 생겼다. 하프바이올린이 켜질 때마다 증여자를 기억할 것이다. 아이가 커서 하프바이올린이 작아졌을 쯤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증여되고 바이올린은 그렇게 낡아질 것이다. 하프바이올린 어린 연주자는 살아가는데 뭐가 젤로 중헌지를 느끼게 되고 자기와 가족을 둘러싼 주변의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고민이 생겼다. 증여를 약속한 물건의 보관 그리고 증여자와 수증자의 연결을 스마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증여약속을 해도 물건을 가져와 보관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아 증여 약속자의 집에 그대로 두고 있다. 증여 받은 물건은 빨리 새로운 임자를 찾아줘야 할텐데….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신방물장수처럼 돌아다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다. 이에 대한 묘수가 떠오르질 않는다. 증여 물건의 보관과 연결에 대한 당신의 아이디어를 선물해주기 바란다(연락처:010-2774-9276)



김현미

마을에서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는 생활체험기-1

고구마와 통기타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더 깨끗하게 사는 생활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이런 편리한 생활은부작용을 남기고 누군가 그 부작용을 감당해야 하거나 지구가 점점 파멸에 이르지 않을까 라는 불안한 예상을 하면서도 소비를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생활의 편리는 찾았을지 몰라도 더욱 여유롭고 행복해졌는가? 라는 대답에 쉽게 ‘예’ 라고  답할 수도 없다.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우리는 더 일하고 더 많이 벌어야 한다. 끈임없이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계속 소비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번듯한 일자리로 돈 벌 기회조차 갖는 것이 어려운 시절이다.

  돈없이도 가능한 삶, 정확히 말하자면 돈을 적게 가지고도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를 실험해보고 싶었다. <마을에서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기>는 극단적으로 소비를 억제하는 고통스러운 생활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서로 가진 것을 나눠 쓰고 바꿔 쓰는 실천을 일상에서 해보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는 교환경제보다 얼마나 더 행복감을 주는지, 증여•선물경제를 통하여 느껴지는 연대나 우애, 증여자의 인격 등을 기대하면서 생활체험기 <마을에서 증여와 선물로 살아가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몇 주 전 어떤 회의자리에서 안지성 목사님으로부터 통기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새터에서 청소년 통기타반을 운영하는데 수강생 수에 맞춰 통기타를 구비하지 않았다며 집안에서 놀고있는 통기타 수배를 내렸다. 나는 우리집에 있는 통기타 하나를 갖다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날 회의가 끝나자 안목사님은 시골에서 농사지어 올라온 고구마를 회의참석한 사람들에게 선물하셨다. 썩기 전에 얼른 가져가서 나의 고민을 덜어주라면서 고구마 선물받는 사람들의 심적 부담까지 가벼이 해주었다. 선물받은 고구마 중 일부는 건강한농부협동조합에 와서 목공수업 온 학생들의 군고구마 간식이 되었고 또 남은 고구마는 방문객들이 생으로 깍아먹는 주전부리가 되었다. 선물의 미학은 이런 것이다. 선물 받은 고구마가 누구누구에게 전달되었는지 누가 맛있게 먹었는지 알 수 있고 서로 감사하고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또 선물 받은 자는 고구마 선물에 대한 만족감과 감사함으로 답례선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으리라. 우리가 고구마를 산 마트에 가서 구입한 고구마로 누구누구랑 나눠서 맛있게 먹고 누구는 정말 감사하다고 하더라 이런 말을 전할 수 있는가?  선물은 최초 선물한 사람부터 최종 선물 받은 자까지 선물의 경로를 알 수 있으며 그 사람들의 마음씀씀이까지도 느낄 수 있다.


  우리집에 먼지를 쓰고 있는 통기타는 금천인 이성호 편집국장이 2년 전인가 나에게 증여한 것이었다. 그때는 독산고 매점에 갖다두고 아이들이 방과후 통기타를 치는 장면을 상상하며 냉큼 기타를 받았다. 매점에서 아이들은 기타 '등등' 조차 치지 않았다. 자리만 차지하는 기타를 매점에서 가져와 집에서 8개월을 묵힌 후 새로운 주인(통기타반 청소년)을 찾아줬다.  우리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무언가 3년을 두면 쓸 일이 꼭 생긴다고, 다만 많은 것들을 3년 묵히기에는 집이 개판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선물은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행복하나니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다.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여 선물받고 싶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좀 느긋이 기다려야 한다. 누군가의 필요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응답하기에는 몇 주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24시간 내내 불을 켜고 지갑들고 어서 오라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필요를 당장에 사야하는 사람은 선물경제인이 되기 어렵다.  필요한 것을 바로 충족시키지 않고 불편함을 참으면서 좀 기다려야 한다. 꼭 필요한 선물을 받아들고 선물을 준 사람에게 ‘이 사람이 내 마음을 잘 알고 있구나’ 라는 우애의 정을 느껴보는 마을생활 신나지 않은가.



김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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