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대통령당선자 이름이다. 그는 기괴하다. “필리핀의 범죄자 10만 명을 물고기 밥으로 만들겠다.” “마약상들 위한 장례식장이 더 필요할 것.” “나는 피비린내 나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니 말이다. 영국의 가디언은 두테르테의 당선이 확실하자 (트럼프보다) ‘필리핀 지도자가 훨씬 나쁘다'는 칼럼을 실었다. 글은 "두테르테는 (트럼프와) 비슷한 (정치적 아웃사이더의) 이미지를 키워왔지만, 그는 검사 출신이고 그와 가족은 강력한 정치파벌“이다. 트럼프는 기행과 독설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않겠지만,(정말?) 두테르테는 독재자였던 마르코스의 철권통치를 이을 것이라 지적한다. 실제 두테르테는 정부 내 부정부패 탐과오리 척결, 범죄와의 전쟁을 위해 계엄령의 선포를 공약했다. 노골적 독재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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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두테르테는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그의 내력을 보면 더 무섭다. 예컨데 범죄자라는 이유로 1,000명의 인명을 살상했다는 보도에 그는 자기가 죽인 것은 1,600명이라 자랑 했다. 미친 학살자다. 그래도 민중의 인기를 끈 것은 선거구호가 민중의 염원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는 필리핀의 문제를 ‘범죄와 부패, 빈곤’으로 규정했고 그것은 민중들의 고난을 정확하게 파악한 판단이다. 게다가 반칙과 특권에 대해 더 큰 반칙과 특권을 동원해서라도 해결하겠다는 주장은 그의 과격한 행보와 합쳐 통쾌한 현실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민중은 느낀 것이다.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비주류의 주류화! 노무현 정권의 등장 과정이다. 그것은 대중들의 자발적 힘의 폭발이었고 또 거대한 청산이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대통령으로 성공에서 훌륭한 것이 아니라 실패 속에서도 빛나는 인간으로 위대하다’는 식의 평가를 받을 뿐이다. 그의 정치적 결과가 이명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두테르테는 노무현의 과정으로 전두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철권통치 선언은 인류 문명이 잉태한 이성과 지성의 결정체인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문제는 이런 터무니없는 결과도 민주주의 상징이라는 선거를 통해 만들어 졌다. 제 발등 찍을 도끼를 필리핀 민중은 택했다. 선거의 선택이 민의일지 몰라도 그 민의가 반드시 현명한 것은 아님을 확인한다.   


정말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민주주의는 본래 시끌 복잡하고 더딘 과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한국이다. 일제식민지억압과 군사독재라는 밖으로 억압에 사육된 조건에서 눈치 보며 요령껏 사는 것이 지혜로 알고 산 사회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노력의 소산인줄도 모른 채 주어진 민주주의는 혼란했다. 독재의 멍에가 풀렸다고 생각한 이들은 이제 민주국가에서 돈만 벌어 잘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맞은 경제 환란과 정리해고 비정규직의 세상은 더 큰 혼돈이었다. 그 원인이 혹시 민주주의 아닌가했다. 그래서 도둑질을 하든 말든 바람을 피우든 말든 돈만 잘 벌어 오면 장땡이라고 선택한 대통령 이명박. 세상을 망쳐 사욕을 잘도 챙기는 사기의 귀재 이명박 세상 이후 한국은 헤어날 수 없는 빚의 늪이다. 청년들은 출발부터 빚쟁이다. 고실업 사회에서 빚은 스포츠카로, 벌이는 세발자전거로 달린다. 자살과 타인에 대한 절망의 죽임이 범람한다. 박근혜까지 이어진 한국의 선택은 과거의 악령이 오늘을 지배하고 미래를 망치는 최악의 선택의 연속, 필리핀의 모습은 이미 우리가 겪은 일이었다.


부패와 범죄와 빈곤은 특권과 독점과 독재의 결과다. 악마의 문제를 풀기 위해 더 큰 악마가 되겠다는 선언은 통쾌하게 들리나 민주주의와 인본을 아예 모르는 특권자들의 망상이다. “한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가장 파괴적이고 사악한 전근대적 영웅 관념이다. 시정잡배가 큰소리를 치는 민주주의를 불편하다는 것은, 그래서 일사불란이 좋다는 것은 식민과 독재의 시간이 새겨 논 증오와 배제의 국가주의가 스며있다. 한국인은 여기에 취약하다. 일제 36년, 분단 70년, 군사독재 20년, 자본 독재 20년, 민주주의는 결국 종북좌파로 몰렸다. 혹자는 김대중 노무현 시기를 빼자고 할 테지만 노무현 스스로가 “권력이 돈으로 넘어갔다.”고 자백하지 않았던가. 그것을 대표하는 상징이 삼성이다. 삼성은 무노조 경영이 말해 주듯 단 한 치의 혼란 즉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움직임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직 순종하라고 한다. 군부독재의 총칼의 억압은 삼성이라는 빛나는 성공의 상징으로 둔갑하여 우리 내부를 지배했다. 


필리핀 민중의 선택은 기존의 주류를 흔들었지만 또 다른 혼동의 길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민중의 정치적 힘이 계급적으로 결정되지 못했다. 오늘에 분노했지만 내일을 꿈꾸지 못했다. 착한 일 했다고 믿었는데 지옥으로 가고 만 결과다. 선거는 지배자들의 죄악 세탁과정이자 칼자루 쥐는 과정이다. 민중에겐 정치적 패배허무주의에 빠져 영원한 구경꾼이 되는 과정이다. 선거제도는 자본주의 유지의 가장 큰 비밀이다.   

필리핀의 선택은 필리핀에 국한되지 않는다. 증오와 배제를 정치화하는 것은 미국의 트럼프, 유럽의 극우 정치의 득세에서 보듯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주류는 흔들리지만 가짜가 판치는 혼동이 세상이다. 진짜 원인은 당연 자본주의의 실패, 그것도 미국이 꿈꾼 새로운 제국주의적 지배 틀 신자유주의 실패다. 실패를 만회책은 국가를 동원한 더 잔인한 긴축 신자유주의였다. 더 강한 악마화 전략이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인간사회를 타락시켰다. 인성을 파괴하고 공동체적 품성을 해체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혐오범죄, 묻지 마 범죄의 원인도 관계를 우애가 아니라 승자독식의 경쟁과 배타로 대체하겠다는 신자유주의가 만든 구조적 필연이다. 어둡고 음습하고 잔인한 민주주의 외적 존재, 대통령은 선출해도 과장 부장은 뽑을 수 없는 민주주의 밖의 존재, 자본-기업들이 세상을 지배한 결과다. 세상은 길을 잃었다. 길을 찾아야 한다. 돈 대신 사람이 주인인 세상의 길을 찾아야 한다. 반 지성, 반 문명, 반 인간의 자본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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