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민과 신민, 그리고 (노동자) 민중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을 시민(市民)이라 부른다. 봉건 왕조의 구성원은 신민(臣民)이다. 봉건 시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의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등장과 함께 신분제가 사라진 것이다. 신분제가 사라진 것, 그 표현이 신민에서 시민으로이다. 그래서 전근대(봉건제)에서 근대(민주제)로의 전환을 정치적으로는 “신민(臣民)에서 시민(市民)으로” 전환이라 한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농노(農奴)가 노동자가 된 것이다.  


신민과 시민의 차이는 통치와 정치, 복종과 권리라는 이름으로 대별된다. 신민은 통치의 대상, 즉 다스림의 대상이다. 그들은 사회의 주인도 아니고 주권도 없다. 봉건 왕조 시대의 백성이나 일제 강점기 식민지 노예가 바로 신민이다. 무능하고 무식하여 이끌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로 천시 당하다가 조금이라도 역사와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면 역심을 품고 언제 주인의 목에 칼을 들이댈지 모르는 잠재적 범죄자로 감시와 관리를 해야 하는 대상이 신민(臣民)이다.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간섭하고 관리해야 정상이라고 믿는 정치행위가 통치다. 통치를 위한 반민주적 법이 있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으로 시작된 희대의 악법 국가보안법과 이번에 만들어진 테러방지법 등이 통치법이다. 통치는 권력을 가진 자는 의무가 없고 백성들은 권리가 없는 정치다. 자기들은 치외법권으로 살며 아랫것들은 준법에 무관용원칙으로 적용하는 정치가 통치다.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박근혜씨의 행동이 전형적인 통치다. 그 통치에 순종하는 것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이다. 


반면에 시민은 사회와 관련한 교양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 즉 자신이 나라의 주권자임을 자각하고, 인권을 중시하고, 인권을 보장 받고, 인간 존엄을 실현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시민은 사회계약의 주체로 무엇에 구속되지 않은 원래의 사람이다. 국민을 주권자로 봉사하는 국가 체제가 민주공화국이다.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보고 법과 질서를 앞세워 특권과 부정을 감추고 국민들에게만 엄격한 나라를, 독재 국가라 한다. 담배 값은 올리고 법인세는 내리는 등, 소수의 부자를 위해 다수의 국민을 쥐어짜는 체제처럼 다수를 소수의 이해에 종속시켜 다스리는 정치가 통치다. 통치 국가가 즉 독재 국가다. 


그래서 시민과 신민의 근본적인 차이는 복종하는 존재냐 저항하는 존재냐의 차이다. 신민에서 시민으로 전환을 선언한 최초의 문건이 미국의 독립선언서인데 거기서 인간의 기본 권리를 “생명(생존), 자유(주), 행복 추구권”을 가진 존재로 선언한다. 우리가 말하는 인권(人權)의 구체적 요약이다. 이어 미국의 독립선언에서는 만약 이런 기본권리를 부정하는 정권은 타도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국민의 저항권, 집회 및 시위가 헌법의 기초권리가 되는 이유다.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전체 인권의 기준이자 민주화 운동이 되는 이유다.   


이제 한 달도 안 되어 우리는 또다시 대한민국에서 시민인지 신민인지를 결정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선거다. 시민은 이의를 제기하고 불의에 맞선다. 돈과 권력의 부당한 힘에 복종하고 그들의 전횡을 묵인 순종하는 것은 신민의 특성이다. 선거를 보는 것에도 시민과 신민은 뚜렷이 다르다. 시민은 평가하고 단죄하고 그리고 선택한다. 신민은 묻지마 투표를 한다.  


대통령이 한정 없이 관권 부정선거를 하고 있다. 공권력의 선거에서 중립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정 편파선거가 되는데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국정원의 부정 관권선거를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다. 그 결과 도둑이 매를 드는 적반하장의 참사를 경험하고 있다. 노동자들과 노동자들의 기본권리는 기득권이 되어 뭇매를 막고 감시와 통제의 눈길은 테러방지법이라는 희대의 악법으로 합법화되고 있다. 얼마나 오만하고 불손한지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로 즉 시민의 모습이 아니라 신민의 모습으로 애국심을 재는 시대가 되었다. 애국의 타락(墮落)이다. 공주를 걱정하는 거지들이 입에 침을 물고 세월호 유가족을 몰아치는 천인공노의 범죄가 국가의 보호아래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일본 놈보다 더 설치는 친일파들의 모습이 바로 저런 모습이다. 


시민으로 선거는 우선 낡은 것과 부정한 것과 잘못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심판이 전제된다. 노동자 민중을 탄압하고,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며, 민주와 인권을 부정하는, 친일 사대 매국 분단 전쟁세력에 대한 응징으로 이번 총선을 치르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의무이자 권리다. 나아가 시민적 정치를 넘어 노동자 민중이 직접, 정치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꿔야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 유명한 사람이 국민을 대신하는 것은, 절대다수이자 이 사회의 주인인 대중들의 처지와 조건을 왜곡하고 이해와 요구를 뒤튼다. 선거 때만 주인이고 다른 때는 머슴인 세상이 된다. 그래서 선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선거는 벌써 불법화 됐을 것이라는 말은 슬픈 진실이다. 


노동자 민중이 행복하기 위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우리 노동자 민중이 직접, 정치의 주체 주인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주체를 요구하는데 지본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주체는 오직 일하는 사람들만이 가능하다. 아니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비록 시민으로 살지만 내일은 노동자 민중의 이름으로 세상을 접수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지난 시기 민생을 파탄 낸 세력에 대한 심판의 기능을 살리는 선거를 치러야 한다. 누가 우리 노동자 서민들의 벗인가? 신민의 눈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확연한 선택을 하자. 이번 총선이 신민에서 시민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자. 오염되는 역사, 퇴행하는 민주주의, 가중되는 전쟁과 분단의 광기를 막아내는, 우중(愚衆)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民衆)이 되어 집권여당 대표도, 전 원내대표도 독재라고 하는 지금 세상을 바꾸자.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