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정과 현명


“공정해도 현명하지 않으면 어진 이를 어리석게 보고 어리석은 이를 어질다고 한다. 현명하나 공정하지 못하면 어짊을 사용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한다.” 조선시대 영조의 말이란다.


새벽 네 시, 가산디지털단지 3공단 한진 사거리에 위치한 하이텍알시드공장에 용역들이 들이닥친다. 그리고 공장을 점거하고 출입을 봉쇄한다. 기존의 회사가 공장 부지를 팔았고 새로운 땅주인이 땅 소유권을 주장하며 기존에 공장이전 반대와 민주노조 사수를 요구하며 농성중인 노동조합을 밖으로 몰아 낸 것이다. 


용역이 용역깡패라는 이름으로 불린 지는 꽤 오래됐다. 80년대 중 후반이후 철거 용역들을 비롯해 최근에 민주노조를 깨는데 동원되는 모든 용역의 역할이 모두가 조폭적 행위를 방불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덩치가 산만하고 행위가 완전히 양아치인 젊은이 들이 동원되어 아마도 자기 어머니뻘인 30년 그곳에서 일한 여성노동자들을 내친 것이다. 


문제는 그런 폭력 현장에 항상 경찰이 함께하고 있다. 전번에 기륭전자 투쟁에서 망루농성을 시도하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공장안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것은 용역이었다는 황당한 경험을 직접 하기도 한 나다. 그리고 그들은 용역을 앞세운 폭력을 묵인하다 그들이 밀릴 것 같으면 즉각적으로 출동하여 사태 해결을 막아선다. 그 날도 직장폐쇄 중이라도 당연히 보장되는 최소한의 권리인 노동조합 사무실 출입권의 차단을 풀기 위해 철망 담을 손을 대고 그것을 말리는 용역들이 밀리는 듯하자 득달같이 달려와서 조합원과 깡패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연대대오를 막아선다. 그 유기적 협조라니...


경찰은 공장 부지가 매각되어 소유권이 넘어갔음으로 저들의 재산권 행사가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을 보장하기 위해 공정하게 법 집행을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찰은 거리의 중간이 공정으로 본다. 힘의 강약을 보는 민주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전혀 배우지 않는가 보다. 그 결과 한국경찰은 공권력이란 물리력을 경중완급을 완전히 뒤집어 집행한다. 소유권만을 이야기하고 노동권 또한 헌법적 권리임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지나친 소유권 행사가 공동체를 깨고, 지나친 빈곤과 차별이 한사람의 현재를 파괴하고, 사람들의 미래를 포기께 하는 것을 막는 것이 민주공화제의 본래 의미임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공화국은 사적 소유권의 무한 보호가 아니라 사적 소유권의 제한에서 출발했다. 그럼으로 민주공화국의 공권력이란 생존과 생명을 살리는 입장에서 강자의 가해적 폭력을 막고 약자의 방어적 폭력을 설득하며 문제를 약자의 입장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힘이 될 때 공정하고 현명해 진다. 


하지만 한국의 경찰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에 대해 단 한 번도 약자에 선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민주주의 근간인 집회 및 시위, 즉 유일하게 남은 직접 민주주의 행위를 범죄로 보기 때문이다. 세월호에서 학생들을 구출하지 않는 해경도 그 구출 행위가 세월호를 소유한 이들의 구출과 관련된 업무의 비용에 대한 소유권과 세월호의 진짜 주인들의 정치적 의도가 먼저 작동되었기에 가능한 모습이다. 물에 빠진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선주의 입장에 섰다는 말이다. 이것이 지금 한국 경찰이 생각하는 준법질서이자 법집행의 기준이다. 가진 자들, 사회적 강자들의 직접적인 폭력 무기가 용역깡패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강자들의 슈퍼맨이 경찰인 셈이다. 그래서 자본에 고용된 용역의 두 얼굴을 깡패와 경찰이라 한다. 


보도에 의하면 이번에 공장 부지를 인수한 곳은 자본금 1억짜리 신생 기업이라 한다. 페이퍼 기업에 바지 경영진만 있는 유령회사다. 최근에 조세도피처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탈세를 해온 명단이 유출되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바 있다. 그런 탈세 사기 도적질이 국내에서 진행되는 유형의 대표가 급조된 페이퍼 기업들이다. 급조된 기업들은 거대 자본이나 펀드 그리고 금융기관의 아바타가 되어 투기를 하고 탈세를 하고 또 먹튀를 한다. 신자유주의가 극성인 시기에 한국의 언론들은 이것을 신경영기법이라 치켜 올렸다. 하지만 이것은 국가에게 국민에게 공공연한 사기 질에 도둑질일 뿐이다. 하이텍에서 1억짜리 신규 기업이 240억짜리 부지를 사서 부동산 투기를 하겠다고 용역을 동원해 30년을 넘게 거기서 일한 노동자들의 삶과 삶터를 부순 것이다. 이런 비상식이 합법적으로 가능한 나라가 바로 헬(지옥)세상이다. 


법대로 하는 것은 깔끔해 보이지만 그것은 공동체 속 관계와 각기 다른 처지를 도외시하는 폭력이다. 법대로만 한다면 정치도 행정도 그리고 문제의 전향적 해결도 불가능하다. 법은 기준의 최대치가 아니라 가장 보수적 최소치이기 때문이다. 법은 과거의 잣대이지 현재나 미래를 보는 잣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례만 따르는 것, 기존의 법을 잣대로 공정하다 주장하는 것은 봉건시대에도 이미 부당하다며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상황에 맞는 문제해결을 해 내는 현명함이 반드시 필요하다. 


영조는 공권력이 공정해도 필요한 것이 현명함이라 하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옳은 것을 옳다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할 수 없다. 생명과 생존의 입장에 서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노력은 어리석게 보고 이기심을 극대화한 탐욕을 현명하게 본다. 하물며 한국경찰은 용역 경비가 노동권을 짓밟고 각종 불법을 저질러도 눈을 감으면서도 노동조합이 마이크로 말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집요하게 탄압하는 모습에서 최소한의 공정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니 어디서 현명을 구할까?  독립 민주 공화국으로 민(民)이 아니라 돈과 권력을 주인으로 보고, 민(民)을 말썽 유발자로 보며 감시의 대상으로 보는 식민지 순사, 독재 경찰의 오랜 유전자를 청산하지 못한 필연의 업(業)이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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