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좋은 나라? 헬 조선!

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 120

지난 1월과 2월, 인천·부천 지역 전자 업체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 5명이 시력을 잃는 참사가 있었다. 원인 모를 괴질이라 했는데, 다행히 시력을 잃은 한 노동자가 찾아간 대학 병원에 ‘근로자 건강 센터에 직업 환경 의학 전문가’가 있어 증상이 메틸 알콜 급성중독증세임을 밝혔다. 


나중에 확인되기를, 회사가 공업용 알콜로 쓰는 에탄올 대신 독극물이자 값싼 메탄올로 바꿔치기해 발생된 참사다. 이 회사들은 삼성전자 하청이다. 삼성이 공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은 전년 대비 2.69% 줄었지만 영업 이익은 오히려 5.55%가 늘었다. 매출이 줄었는데도 영업 이익이 늘어나는 기적의 비밀은 오직 노동자들과 원하청 관계를 쥐어짜는 것. 그러니 쥐어 짜인 곳을 메우기 위해 하청업체는 더 싼 원자재, 더 싼 임금을 찾는다. 하청업체가 비싼 에틸올 대신 싸고 위험한 메탄을 사용한 이유다. 그리고 하청업체가 생산직에서는 불법인 파견 노동자를 고용한 이유다. (참세상 김혜진님 글 참조)


파견노동은 권리 없는 의무만 강요하는 일자리다. 파견노동은 실질적으로 인신매매 중간착취 제도다. 파견노동은 존재 자체가 인간 존엄에 반(反)하는 노예의 일자리다. 좋은 노예제가 없듯이 좋은 파견제란 없다. 하지만 현 정권은 싼값에 고용과 해고를 제 맘대로 하면서 기업에게 면책특권을 주는, 기업에게는 최상, 노동에겐 최악의 제도인 파견 노동을 확대하려 한다. 현재 생산직 파견노동은 ‘일시 간헐적 업무의 경우 3개월 파견이 가능하고 3개월 연장’을 허용한다. 현실에서 파견법은 6개월짜리 단기 비정규직 노동의 법적 토대다. 그러니 6개월짜리 철새 노동자를 위해, 안전한 일자리, 안전한 노동 조건, 위험업무에 대한 안전장치 설치 및 교육을 할 한국의 기업은 없다. 파견노동자들을 4대 보험에 가입시키는 귀찮음을 감당할 좋은 기업이 한국에 거의 없다. 이번에 실명을 한 20대 젊은 노동자들은 파견노동자들이라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일하면서 어떤 유해물질을 취급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나중에 중독 증세가 나타나도 하소연 할 곳이 없다. 그 결과는 실명(失明)이다. 그런데도 원청회사는 물론 하청회사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것이 박근혜정권이 말하는 규제를 단두대로 보낸 결과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방해한 규제의 실체는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 우리가 살아가야 할 환경,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적 존엄의 마지노선’이다. 규제철폐는 생태 공동체 노동에 대한 일상적 테러체제를 만들겠다는 악마의 각오다.   


우리를 더 처참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다. 문제가 되자 고용 노동부가 전수조사를 했다. 그 방식이 가히 박그네정권스럽다. 노동부는 우선 점검 대상 사업장에 공문과 전화로 사전공지를 한다. 그리고 예고된 시점에 현장에 가서 5분 남짓 현장을 둘러보고 돌아간 것으로 조사를 끝냈다. 그 회사는 노동부가 오는 낮에는 에탄올을, 밤에는 메탄올을 바꿔가며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노동자로부터 하지도 않은 안전교육에 사인을 받았다. 그 결과 노동부가 조사를 한 뒤에도 실명자가 나왔다. 이것이 지금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국가, 재벌기업 전제국가 대한민국 행정의 현실이다.


작년에도 남영 전구 광주 공장에서 공장 철거 해체 작업을 하다 20명이 집단으로 수은에 중독 된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 산재적용도 받지 못했거나 고작 보름만 휴업급여 지급을 받았다. 박그네 정권의 환경부도 직무유기를 한다. 환경부는 남영전구 광주공장 인근 토양 및 수질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 인근 대기 중 수은농도가 전국 평균보다 최대 40배나 높게 측정된 사실을 인지했다. 하지만 공개하지 않는다. 이유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어’서다. 그 오해가 생명과 생태의 파괴인데도 말이다. 시간 끌기, 책임 회피하기, 진상규명 덮기... 이 더럽고 잔인한 짓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너무 익숙하지 않는가? 세월호 진상규명 과정 말이다.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설치보수 외주 하도급 노동자 사망도 결국은 개인과실로 처리 되었다. 8명이 사망한 한화 케미칼 폭발사고도 담당자 몇 명만 집행유예, 기업의 벌금은 1,500만원에 그쳤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대기업은 형식적인 사과로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난 후 모든 보상을 하청, 재하청에게 떠넘기고 끝이다. 제2, 제3의 산재사망, 수은중독, 메탄올 중독이 줄줄이 이어지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규제철폐였다. 박그네 정권이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규제 완화, 노동개혁은 결국 노동자 서민을 주권자가 아니라 노예로 만들고, 일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지옥의 일터를 만들겠다는 몽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규제철폐가 아니라 노동자 목숨을 파리 목숨 취급하는 기업에 대한 살인죄를 적용하는 기업 살인법의 제정 등 규제 강화다. 도대체 사람과 생태와 민주를 죽여 얻는 사탄의 경제가 왜 사람세상에 필요하단 말인가?


총선 시기다. 정책도 의제도 없이 오직 차기 권력놀음에 빠진 최악의 선거다. 결과는 뻔하다. 빈부격차는 벌어지고 사람을 기계 부속으로 취급당하다 폐기물로 버려지는 세상은 여전할 것이다. 뭐가 문제인가? 인간을 수단과 도구로 보고, 지구를 통째로 고갈 오염 폐기시키면서도 성찰하나 없는 극단의 신자유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의 정치가 없다. 기업을 위한 통치를 위해 민주와 인권을 저버린 정치에 대한 저항이 너무 적다. 작금의 1번 2번 3번 찍는 선거가 결과적으로 무의미 한 것은 뿌리로부터 사람 중심의 세상을 만들 가능성을 배제한 정치판이기 때문이다. 정말 필요한 과제는 돈이 사람을 식민화하는, 기업 중심의 탐욕 체제, 생명을 갉아먹는 체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할 수 있는 정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정치를 할 수 있는 중심은 여전히 노동자 민중뿐이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일터에서 삶터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적극적 민주주의 정치를 만드는 것만이 헬 조선 탈출의 길이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 Recent posts